예천의 현대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이 도남 선생이다.그는 1953년에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그런 존경을 받을만한 위치에 있고 그의 애국애족적 학문태도에 감동한다.
도남 조윤제(1904-1976) 박사는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출신이다.국문학의 제1세대이며 본관은 함안이며 아버지 조용범씨와 청주한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도남이라는 아호는 퇴계 선생을 존경하면서 도산(陶山)서원의 남(南)녘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붙인 것이다.1924년 3월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가 창설되자 제1회생으로 문과에 입학, 이어서 26년 4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문학과에 진학, 조선어문학(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유일한 학생이 되었으며, 1929년 3월 동 학부를 졸업하여 문학사의 학위를 받았다.이어 동 학부의 촉탁과 조수를 거쳐 1932년 3월 경성사범학교 교유로 임명되었으며 이어 4월에는 그의 첫 저서인 <조선시가사강>을 쓰기 시작하였다. 1937년에는 조선시가사강을 간행하였다.1939년 3월 경성사범학교를 사임, 자유의 몸으로 당시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장인 손진태 선생, 뒤이어 대학후배인 학산 이인영 선생과 모여 학문연구방법론을 토론하고, 그 결과 민족사관의 입장을 밝혔다. 그 뒤 경신학교,양정중학교,동성상업학교,청주교신학교 등의 강사를 역임하고, 1945년 8월 조국광복과 함께 경성대학 법문학부 재건의 책임을 맡았으며, 이어 동대학의 법문학부장, 개편된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부원장, 문리과대학 교수 및 동 학장을 역임하고, 다시 성균관대학교 교수와 동대학원장 및 부총장을 역임한 뒤, 다시 청구대학, 영남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역임하다가 71세 때인 1974년 2월에 영남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다.그리고 그의 모든 장서를 모아 도남문고라는 이름으로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여 오롯이 보관되어 있어 주목된다.영남대 심재완 교수님이 모든 후사를 담당하신 걸로 안다.
저술로는 일제하에서 자비로 출판한 <조선시가사강>(1937년)을 필두로 <교주 춘향전>(1939),<조선시가의 연구>(1948),<국문학사>(1949),<국문학개설>(1955),<한국문학사>(1963), <도남잡지> 등20여 권에 이르며, 논문으로는 1929년 2월 동아일보에 발표한 <조선문학과 한문학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50여 편, 수필과 잡문 등은 거의 100여 편에 이른다.
한편 도남 조윤제선생기념사업회 성격의 도남학회가 운영되면서 도남학보가 줄곳 간행되면서 학술적 성과를 싣고 있다. 그리고 예천 출신이 김경한(金慶漢) 선생은 도남의 성균관대 문하생으로 열심히 존경하시고 그 유업을 이으려고 노력하였다.그리고 도남조윤제 선생의 모든 저서를 총괄하여 <도남조윤제전집>을 태학사에서 간행한 바가 있다.
한편 조윤제 선생은 천태산인 김태준, 청계 김사엽, 가람 이병기, 일오 구자균, 상산 이재수 교수등과 비교를 통해 그 업적을 발견할 때 그 의미가 새록새록해진다.도남의 신민족사관은 가장 큰 특장이며 문학의 유기체적 전체성을 강조한다.
첫댓글 허교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상세하게도 올려주셨네요! 도남 조윤제 박사님은 우리 지보가 낳은 나라의 보배이십니다.
잃어버린 나라의 조선어문학을 전공했다는 자체가 엄청남 충격입니다. 우리 지보인들이여! 이 글을 꼭 읽으시고 도남정신을 이어 받도록 합시다!
지보리의 함안조씨는 연접한 안동의 풍산류씨, 명당터의 주인인 동래정씨및 신풍의 명문가 파평윤씨 등의 세도에 밀려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도남을 비롯하여 독립운동하신 선대들이 음덕을 많이 쌓았답니다. 그 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예들이 지금 각계에 훌륭한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 조현천 장군, 조현설 서울대부교수 등....
최동순 선생님의 자상한 가르침에 저는 많이 격발되고 있습니다.도남 선생은 대한민국의 국보적 존재입니다.함안조씨가 지보면에서의 위상에 대해서는 일석 이희승과 심악 이숭녕 선생들이 글을 통해 지적한 바가 있어서 조금 알고 있었습니다.
김경한(金慶漢) 선생은 1917년 출생이고 예천 대창학원 출신이던데, 아직 생존해 계시는지요?
최근 몇 년전에 김경한 선생의 장서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적이 있습니다.그 분의 필사노트와 원고와 저서, 장서 등이 말입니다.동성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내고 성대 강사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교 대창중학교 교감선생님으로 계셨고, '어문춘추'를 15년간 발행 및 많은 저술을 하셨다. 또 "동양 역사의 중심은 한민족이다. 그런 맥락에서 역사 인식이 이뤄져야 마땅하고, 우리 학자들도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라고 하셨다는데.... 저는 김경한 선생님을 잘 모르겠네요!
아주 주체적인 분이고 국한문혼용을 선택하셨습니다.어문춘추도 기념비적인 잡지인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