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오동 전투”를 보셨나요?
보통 사람은 성장기에 자리잡은 인생관과 가치관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면 가치관의 전환점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 있는 이들 가운데 군인이었던 사람이 있소!,
어제까지 농사 짓든 이들이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 때문에 오늘 독립군이 되었잖소!”
영화 봉오동 전투의 장면 가운데 일본군을 봉오동으로 유인하기 하기 위하여
산 중턱의 동굴 속에 숨어 있던, 황해도 일대에서 전설적 독립군이었던
황해철이 동료들에게 열변을 토하는 대사입니다.
그러니까 대한독립을 위하여 땀과 피와 목숨까지 초개처럼 내던진
우리 선열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할 수 있었던 요인을 설명하는 한 부분일 수 있는 대사입니다.
영화“봉오동 전투”를 관람하면서 들었던 생각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생활의 근간에는,
황량한 들판과 우거진 밀림 그리고 협곡을 뛰어넘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피땀과 눈물 나아가 생명까지 내어놓았던 선열들의 헌신을 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국땅에서 아무런 조건과 이름없이 오직 대한독립을 떠 올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완성을 위하여 자기 역할을 다하다가 스러져 간 무명의
순국선열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입니다.
그분들의 피 값으로 세워진 우리 조국 강산을 굳건하게 지켜가야 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에게 주어진 임무이자 의무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가져 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울컥해진 두 명의 배역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인물은 일본군을 유인하기 위하여 강태공의 신분으로 위장해 있다가
일본군의 포로가 된 독립투사입니다.
일본군의 본진에 붙잡혀 끌려다니며 길잡이의 역할을 하다가 황해철에 의하여
구출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끝까지 봉오동으로
적을 유인해야 하는 미끼임을 고백하며 죽는 순간까지 책임을 완수합니다.
그러한 책임 감당 때문에 그는 산 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내어야 하는
처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과
언어생활을 대비해보게 됩니다.
비신자들, 특별히 교회를 상대로 거래를 하는 많은 이들의 공통적인
지적 가운데 하나가 세상에서 교인들이 가장 사랑이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하는 이들 가운데 많은 부분 자기중심적 견해이겠지만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는 말 한마디는 어쩌면 태산같이 진중해야 합니다.
자기가 뱉은 한마디 말을 책임지려는 장중(莊重)함을 회복할 때
세상은 교회와 교인들을 두려워할 것이며 새롭게 대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를 사도 바울식으로 표현하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5, 3:3)이라 하겠습니다.
또 한 명의 인물은 독립군에 지원할 때 누이로부터 어머니의 유언인“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라”를
전해 들으며 유품인 반지를 보게 되는 이장하 분대장의 배역입니다.
마적단 출신들로 구성된 독립군을 이끌며 작전 지휘를 하던 분대장이
중요한 지점에 이르자 그는 부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홀로 봉오동 골짜기까지 적들을 유인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죽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자 일본군을 유인하며 죽음의 골짜기인
봉오동까지 분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처절함 그리고 누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모습은
지도자가 왜 존재하는가와 인간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평범한 일상이 무료하거나 지겹고 삶이 무미건조하다고 여겨지는 분이 있다면
내게 주어진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삶인가를,
조국 광복을 위하여 치열하게 싸우다 스러져간 장엄한 선조들의 기록을
생생한 화면으로 되살려낸 “봉오동 전투”를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