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짐승은 지금 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코모도왕도마뱀 혹은 두꺼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엎드린 저 구도자는, 제 몸 안에 남아 있는 모든 슬픔을 천천히 끓여 올리는 중입니다. 보십시오. 물살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빚어진 저 오돌토돌한 돌의 피부는, 수천만 년 동안 고통을 정면으로 통과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훈장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통을 피해야 할 재앙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고통은 생이라는 거대한 가마솥을 지피는 필수불가결한 땔감이기도 합니다. 의식이라는 불꽃이 요동치며 육신을 태울 때, 그 열기는 마침내 가장 높은 온도의 정수를 증류해냅니다. 삶은 단순히 먹고 자는 윤회의 반복이 아니라, ‘나’라는 무거운 물질을 끓여 형체 없는 정신으로 뽑아내는 가혹한 연금술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저 구도자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는 세상이 집착하는 부피와 무게를 버리기 위해, 스스로를 가마솥으로 삼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커지기 위해, 더 무거워지기 위해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걸지만, 저 돌 안의 정신은 이미 증류를 마치고 증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여기에 남은 것은 그 지독한 몰입이 남긴 껍질, 혹은 우리가 끝내 내려놓지 못하고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최소한의 물질적 흔적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마기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닳아갑니다. 닳고 닳아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물질과 의식 사이의 완전한 변태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무거운 육신이 날개를 얻기 위해서는, 끓여도 끓여도 더 이상 남지 않는 상태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생이 우리에게 조용히 건네는 유일한 과제, 의식의 완전변태라는 이름의 숙제일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보십시오. 저 엎드린 돌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가장 가벼워지기 위해 잠시 이 지상에 닻을 내리고 있는 존재입니다. 극진한 육체가 마침내 투명한 날개를 얻어 날아오르기 직전, 그 모든 무게가 팽팽한 고요로 응축된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