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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들의 수고는 괴로운 것이다 1:12~15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다 1:16~18
16 내가 내 마음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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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전도자는 왕이 되어 마음과 지혜를 다해 하늘 아래 모든 일을 살폈지만,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어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보다 낫지만, 이것 역시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지혜와 지식이 많으면 번뇌와 근심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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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지혜로움을 추구하는 삶(12-16절)
우리는 세상에서 지혜롭게 사는 것을 큰 가치로 여깁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리석게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불쌍하게 여깁니다. 하자민 전도자는 오늘 말씀에서 자신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았지만 자신과 반대로 사는 어리석은 사람과 그 결국을 비교해 보니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결국에는 같은 운명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허무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지혜롭다고 해서 인생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로병사의 모든 죄로 인한 고통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죽음의 문제 앞에서는 그들은 동일한 입장에 서게 되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혜롭게 살았던 자나 우매하게 살았던 자가 함께 사람들의 기억속에 지워져 버리고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이것은 참으로 허무한 일임을 우리로 알게 합니다. 진정한 지혜로운 삶은 이땅의 것을 많이 얻기 위해서 추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게 하며 천국을 소망하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사는 삶인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참된 지혜를 온전히 소유하고 사는 자인가?
2.하나님의 기쁨이 되라(18-26절)
사람이 또 하나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다음 세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행하는 이 일을 맡을 다음 사람이 지혜로울지 아니면 우매할 지를 알 수 없습니다. 평생을 바쳐 좀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절제하며 노력하지만 그 다음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이 내가 세운 그 일을 다 망쳐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참으로 허무한 일이 되고 맙니다. 솔로몬은 인간의 노력과 관계없이 그 결과를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자신이 가지려고 애를 쓰며 모아 두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재산들을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에게 나누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잘되고 못되는 것이 사람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 되시고 주권이 그의 손에 있음을 바로 깨달아서 먼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세상을 얻는 첩경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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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13절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동인(動因)이십니다. 전도자가 마음과 지혜를 다해 탐구한 결과, 세상만사는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신 것이라 결론 내립니다. 힘들고 수고로운 일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 믿으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수고로운 일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며 거기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3:13). 어쩌다 닥쳤다고 생각하는 일, 내 손에 달렸다고 믿는 일, 실은 모두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 일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2-14절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짜내도 인간들로 수고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까지 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관찰은 필요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닙니다. 인간 이해와 지식 너머의 세계에 대한 겸손한 고백이 없다면, 성실한 탐구도 허망한 실패로 돌아갈 것입니다. 모름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앎은 허술하고 때로 위험합니다. 보이는 것에 대한 관찰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묵상에도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까?
15절 안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왕 전도자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롭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그릇된 일을 바로잡을 수 없고 모든 부족한 것의 해결책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곧게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7:13). 자기 지혜의 한계를 아는 것이 진짜 지혜입니다.
16-18절 더 많은 지식과 지혜가 더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왕상 10:23) 사람이지만,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까지 알아 지혜를 더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또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는 삶의 수고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 고통을 해결할 능력이 없기에 근심만 더할 뿐입니다. 더 많은 지식, 더 발전된 기술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반드시 구해야 하는 지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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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수고(1:12~15)
죄악으로 타락한 인생의 본질은 왜곡과 결핍과 수고와 고생입니다. 전도자는 이스라엘 왕이라는 신분 덕분에
하늘 아래 인생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을 살펴본 후 전도자가 내린 결론은
‘인생은 괴로움과 헛됨뿐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땀 흘려 수고하게 하시고 각자의 삶에 괴
로움과 고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추구하느라 애쓰며 살아도 결국 인생은 헛되고 무상할 뿐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은 고난과 역경과 수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없는 인생은 아무리 애써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참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인생이 아니라 사명을 이루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인생을 살펴보고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가 하는 수고는 하나님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헛된 지식(1:16~18)
인생에서 가장 참되고 값진 지식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스라엘 어떤 왕이나 유력자보다
더 큰 권력과 더 많은 지식을 얻었습니다. 왕의 신분으로 수많은 지식을 접했고 여러 지혜자를 만났습니다.
전도자는 할 수 있는 한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고자 힘쓰며 연구하고 관찰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았습니다. 세상에서 지혜를 더 많이 얻을수록 번뇌도 많아졌고,
지식을 더할수록 근심도 늘어났습니다. 성도는 지식을 추구하기에 앞서
지혜의 근본이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지혜와 지식을 통해 삶의 의미와 소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수많은 지혜와 지식을 추구했던 전도자는 지혜와 지식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나요?
- 적용 질문: 세상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중 어느 것을 더 힘써 추구하나요?
오늘의 기도
더 많이 성취하고 획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치는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무엇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지혜의 근본이신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며 제게 주신 사명을 굳게 붙잡는 데 더욱 열심을 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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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지혜와 지식을 향한 인간의 욕구는 은근하고 또 치열합니다.
이것을 지식욕이라고 할 때 이는 물욕과 함께 인간에게 나타나는 탐욕의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지식욕은 단지, 알아야 할 것을 아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랑거리로 삼고자 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명예욕과 사촌지간인 것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마치 물욕이 그 대상을 자기가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항상 넘치도록 소유하고 그것을 과시하기를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인간의 지식욕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통렬하게 말합니다.
지식욕으로 인해 스스로 왜곡되고, 옥죄이고, 또 헛된 시간을 쓰고 사는지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자신에게 있는 지나친 지식과 지혜 때문에 싫증나서가 아닙니다. 그로 인해 진절머리나서 머리를 흔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 인간이 알아야 참 지혜가 그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와 함께 생각나는 또 한 사람의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절) 그래서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절)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나도 나의 영혼을 울릴 진정한 지식과 지혜가 아니라면 내 중심으로부터 거부할 것을 다짐합니다. 내 영혼이 기뻐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아니라면 마음에 두지 않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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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에서 지혜와 지식이 많으면 번뇌와 근심이 더합니다.
전도서 1장 12~18절
전도자(솔로몬)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것을 연구하고 살펴본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며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지혜로운 전도자는 지혜와 지식을 많으면 번뇌와 근심이 더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일으키거나 변화시키는 데 작용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십니다. 전도자는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모든 일을 연구하여 살핀즉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합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어야 합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지혜와 지식이 많으면 번뇌와 근심이 더한다고 고백합니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서 변호사가 되었지만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지혜와 지식은 도리어 번뇌와 근심이 더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해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지혜를 구하며 세상의 미련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때때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게 하소서! 해 아래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을 기억하며 해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지혜를 구하며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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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12~18 주님 없는 인생은 헛될 뿐입니다.
말씀요약:
전도자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연구하고 살펴 보았으나
하나님이 인간에 주신 인간의 운명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또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지혜를 더 많이 얻을 수록 번뇌도 많아지고
지식을 더할 수록 근심도 늘어난다.
묵상:
솔로몬 왕은 사울 왕, 다윗 왕을 이어서 이스라엘의 세번째 왕이였고
일천 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 전무후무한 영광과 명예를 누리며 살았다.
그랬던 솔로몬 왕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인생의 황혼기에 5번이나 헛되다고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
반복적인 자연 현상 즉 해, 바람, 강물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움지이는 것은
인생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전도자가 누구인지 다시 한번 언급하신다.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12)
자신의 약력을 소개하는 것은 신뢰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최고의 권력자이고 최고의 신분에서 모든 것을 가져보고 누려 보았다는 말씀이다.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고 살펴 보았다고 소개한다.(13)
결론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이 인간에 주신 인간의 운명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다.(13)
둘째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14)
아무리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어도 세상의 모든 물질이 자기 것이라 해도
또 아무리 많은 인기가 있고 누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론은 한 마디로 헛된 수고라는 것이다.
사람에서 실제 이런 경험들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예를들어 월급이 100만원이면 150만원만 받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월급이 막상 150만원이 되면 한 300만원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300만원이면 만족할까?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오히려 100만원 받을 때 보다 더 부족하게 느껴지고 더 만족 함이 없어진다.
권력도 마찬가지고 인기도 마찬가지이다.
한 나라 국가 권력을 가지고 다스려 보았던 왕의 첫번째 고백이 헛된 수고 였다면
두번째는 헛된 지식에 대한 말씀이다.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 보다 먼저 있던 자들보다 낫지만(16)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썻지만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17)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한다.(18)
실제로 솔로몬 왕은 왕의 신분으로 수 많은 지식을 접했고 지혜자도 만났고
지혜이 대명사로 불릴만큼 탁월한 자 였다.
동물학, 식물학, 우주 과학에 시와 노래까지 두루 섭렵한 만물박사이다.
수 많은 지혜와 지식을 추구했던 전도자의 결론은 하나이다.
헛 되다는 것이다. 번뇌와 근심만 쌓인다는 것이다.
왜 헛되다고 하는 것인가?
말씀의 제목처럼 주님 없는 인생은 헛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누려보신 전도자가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모든 사람은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심을 듣습니다.
주님 없는 인생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헛것임을 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 없는 지혜와 지식은 다 헛것이요
세상에서 지혜와 지식을 더 많이 얻을 수록 번뇌와 근심이 많아짐을 배움니다.
인생에서 최고로 값진 지식은 주님을 아는 것임으 깨닫고
지식을 추구하기 이전에 지혜의 근본이신 주님을 경외하는 삶 살길 원합니다.
주님의 자녀로 더욱 경외하는 삶 살게 인도하옵소서.
지혜의 근본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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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12~18
우리에게 전도서는 인생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전도서의 주제어는 ‘헤벨’인데 이는 ‘아주 잠깐의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고 미약한 지를 그리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전도서는 조언한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지혜를 동원하여 세상의 일들을 깊고 넓게 연구하고 알려고 수고해도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시도가 될 수 밖에 없다라고 한다. 아무리 살펴도 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인간의 지혜도 마찬가지다. 어떤 지혜에도 한계가 있고, 그 지혜만으로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전도자는 어떤 취지로 지혜가 헛되다고 했을까? 피조물은 창조주의 세계의 전모를 다 파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지식과 지혜도 그 한계를 잊고 목적을 잃으면 이로움이 아니라 해로움만 된다. 지혜와 지식을 쌓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크기와 나의 크기를 아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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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지혜는,
첫째, 겸손한 환경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13절 후반을 보니,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고 해요.
지혜를 써서 연구한 인생의 결론이 괴로움이라니 너무 아이러니하지요.
그러나 괴로운 것이 맞습니다.
인생의 모든 수고는 죄에 대한 형벌이기에 거기에 참된 안식이 없어요.
인간은 결코 고통과 수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수고하게 하신 것의 원어를 살펴보니, { 겸손하게 하셨다 }는 의미도 있어요.
하나님이 인생의 모든 수고를 통해 우리를 겸손하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겸손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저 겸손한 환경만 있을 뿐이에요.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아픔, 상처와 괴로움의 이 겸손한 환경을 통해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는,
둘째, 나의 부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14절에,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고 해요.
그런데 그 결과 역시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14절)입니다.
바람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지요.
아무리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도 바람을 쫓는 것과 같아서 다 헛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또 15절에,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라고 해요.
해 아래 사는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요.
구부러지고 모자란 것 투성이입니다.
구부러진 것을 알아도 곧게 할 능력이 없고,
필요한 것이 있어도 내 것으로 온전히 사용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부러진 것을 펴시고, 모자라는 것을 채우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오늘 17절에,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지혜뿐만 아니라
지혜와 반대되는 미친 것과 미련한 것까지 열심히 연구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결론 역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허무하고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18절에,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는 말씀도 그래요.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부족과 불의함과 어리석음이 드러나기에
지식을 더할수록 근심할 것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진리는
인생의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허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을 깨닫는 것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깨닫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지요.
그러면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되기 쉬워요.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으로 채워야 해요.
날마다 말씀을 통해 나의 무지함과 연약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공동체에 나누며 가는 것이 참된 지혜와 지식 속에 우리를 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도 나의 구부러진 것을 펴시고,
모자람을 채우시는 주님의 손을 의지하여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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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12~18절)
❝하늘의 지혜를 구하는 삶❞
❚ 인생에 답이 없는 해 아래서의 수고를 멈추고 예수님 안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 세상 지혜가 허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괴로운 인생을 해결치 못하기 때문입니다(12~13절).
전도자는 앞에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그는 하늘 아래에서 되어지는 온갖 일을 살펴서 모든 수고가 과연 헛된 것인지를 알아보려고 지혜를 짜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얻어낸 결론은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수고하게 하셨는데, 사람이 아무리 이 땅에서 수고할지라도 돌아오는 것은 괴로움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갈 동안 참으로 많은 수고를 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 없는 수고는 결국 고통에 처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현재 내 자신이 얻기 위해 애쓰는 것들은 결국 내 자신의 삶을 좀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할 뿐,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러한 것에 소망을 두지 않는 삶이어야 합니다. 고통만 안겨주는 덧없는 세상이기에 하나님 없는 내일에 대한 계획은 모두가 헛된 것일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평생 수고하며 살아도 죄인인 인생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죄인을 쉬게 하시는 예수님께 삶을 의뢰해야 합니다. 아무 의미 없이 수고만 하던 인생이라도 그리스도께로 내 인생을 맡길 때,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인생의 참 의미와 기쁨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괴로운 내 인생을 해결하지 못하는 세상 지혜는 그래서 허무한 것입니다.
➲ 인생의 처지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14~15절).
전도자가 해 아래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살펴보니, 그 모두가 마치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즉,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바람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행위와 노력이 어떤 유익한 결과도 낳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울러 한 번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부족한 것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15절,쉬운성경). 세상에서 목표로 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수고들이 결국은 성과 없는 헛된 일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혜로 세상을 바꾸려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 주는 사회적 환경이라 할지라도 이미 왜곡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죄악으로 왜곡된 인생의 실상을 그 무엇으로도 개선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착하게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근본은 선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 또한 그 어떤 것으로도 죄인된 인생의 처지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시고 지혜로운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선하고 온전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처지를 바꾸지 못하는 세상 지혜는 그래서 허무한 것입니다.
➲ 주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16~18절).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던 어느 누구도 지혜에 있어서는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며, 지혜와 지식을 쌓는 일에서 자신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은 없을 것(16절)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곧 자신이 그만큼 많은 지혜를 소유했을지라도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은 어떻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또한 인생에서 지혜로운 것과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으나, 이 또한 바름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17절).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지혜가 많은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더라(18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만큼은 심판을 피해 보기 위해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세상 지혜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결국 인생의 참된 지혜와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 멸망에서 벗어난 참된 안식과 생명을 얻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 인생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시는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심판을 결코 피하지 못하는 세상의 지혜는 그래서 허무한 것입니다.
오늘도 참된 만족을 주니 못하는 헛된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참된 숨과 안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의뢰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파멸시키려 하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삶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만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전 1:12~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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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자 철학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 알려진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순간에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류 최고의 지혜자인 소크라테스는 아무리 불합리한 법이라 할지라도 그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이 지혜로운 말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악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과 주장을 지킨 위대한 스승임을 보여 주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장 위대한 스승들 중에 한 사람이자 지혜자였던 소크라테스였지만, 그의 명언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은 자신이 가진 지혜로 하늘 아래의 모든 일들을 연구하고 살폈습니다. 솔로몬의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고 성경이 설명할 정도로 최고의 지혜를 가진 솔로몬이었지만, 인생이 헛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지혜 역시 헛되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지혜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 인간 능력은 한계가 있다.
솔로몬은 먼저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인류 최고의 지혜를 가진 솔로몬이었지만, 자신의 지혜를 써서 인생에 대해 연구하고 살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연구에 대한 결과에 대해 14절과 같이 말합니다.
전도서 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아무리 깊게 연구하고 넓게 살펴 보아도 인생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오히려 고민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고민과 문제를 깨달을 수밖에 없다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결론은, 인생이 무엇을 하든지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이 말한 "헛되다"(הֶבֶל, 헤벨)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공허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아무리 날고 기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고 공허할 뿐입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2. 인간 지혜는 한계가 있다.
아울러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가 세상 어떤 지혜보다 풍성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지혜가 많을수록 인생이 덧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전도서 1: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을수록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아는 것이 많을 수록 더욱 염려가 많아진다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인류의 스승으로 칭송을 받지만 그의 지혜와 가르침에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들 중에 완전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하는 행복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 평생에 수고로움이 뒤따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서에서 말하는 수고는 이 같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들을 거스르는 인간의 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모든 인간의 행동들은 모두 헛되며 바람을 잡으려는 허무함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에 순종할 때 진정 지혜로운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오늘을 살아가고 땀 흘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기쁨으로 응답하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지혜로운 삶임을 기억합시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해 내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함께 하는 기도
창조주 하나님!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는 섭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귀한 하루와 인생을 주시고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오늘 하루의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참된 삶의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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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1:2~2:26)
세상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지혜가 뛰어난 예루살렘의 왕이다. 그는 영예롭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으며, 당대 최고의 현자로 손꼽힌다. 문제는 이런 점이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혜가 있느니 적어도 어리석은 사람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지만, 이 또한 부질없다. 결국 다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혜와 재주를 다해 수고하다 보면 하나님이 보상해 주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할 수 있지만, 전도자는 이 또한 허무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전도자는 지혜를 구한 결과가 결국은 많은 번뇌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식이 많아도 그 지식을 다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고 그 지식을 다 사용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외칩니다. 지혜와 지식을 쌓으려는 시도는 번뇌와 근심을 모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온갖 지혜가 다 있으면 행복해 질것이라 기대하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인간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질 뿐이라는 말입니다.
전도자는 지혜를 탐구하던 사람이었던 자신이 전도자가 된 이유와 자신이 전하는 참지혜, 곧 도가 무엇인지 말해주려합니다.
지혜도 헛됨(전1:12-2:17).
이세상에서 온갖 부귀와 영광을 누리며 가장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지혜로 말미암아 삶의 풍요를 누릴수 있는가? 이세상에서 얻어지는 지혜로 이세상의 모든 것들을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지혜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
1)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수 없음
지혜있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히9:27). 물론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세상에서 살아갈때 남들보다 좀 나은 삶을 살수 있을지 모르나(전1:13,14), 결국은 세월이 흐른뒤 그것은 인간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인간의 전존재에 대해 깊은 허무를 느끼게 된다. 이세상에서 주어지는 지혜와 지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깊은 근심과 고통속으로 끌고 간다. 즉 세상의 지혜는 인간의 삶에 대해 많은 유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끝없는 문제의 심연을 이끌어간다고 할수 있다. 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한 자는 그 지식이 깊어지면 질수록 더욱 가치있는 삶을 살아갈수 있다(딤후3:15-17). 그러므로 변하지않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여야 할 것이다(욥36:26).
2) 겸손한 인생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이처럼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찬 사람일수록 겸손할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전1:15). 그 한계를 깨달을때 인간은 삶의 참된 방향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지혜와 겸손은 병행되어야 하지만 현실을 볼때 역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은 세상의 지혜와 지식보다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 지혜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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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사람의 수고(1:14,2:11,17), 지혜(2:15), 재물(2:26,5:10,6:2), 존귀(4:16), 쾌락(2:1-2), 젊음과 힘(11:10)생명(6:12,7:15) 죽음(11:8) 등 인간사에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인생의 허무를 경고하면서 솔로몬은 결론적으로 '해 아래서'의 진정한 삶의 의미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하나님만을 경외할 것을 권하고 있다.
지식 주의의 길.(1:12-18)
현대 교육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현대는 지식의 정도에 따라 평가되고 가치가 결정된다. 즉 머리에 얼마나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현대에 와서 컴퓨터화되고 기계화되고 있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다. 인간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사실은 교육받은 현대인의 삶의 현장에서 잘 증명해 주고 있다. 현대인은 지식의 축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삶의 현실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잃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지성인의 사회에 사랑이 거의 없고, 전쟁의 공포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단적인 예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이 중심에 없는 지식은 어떻다고 말하는가? (17절)
2. 하나님이 중심에 없는 지식과 지혜는 무엇을 더 한다고 말하는가? (18)
3. 당신은 지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이 중심에 없다면 지식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 하나님이 중심에 있는 지식은 무한한 가치와 인생에 의미를 준다. 이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식의 참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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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락은 순간에 끝난다 >
오늘날 많은 현대인의 삶은 권태와 단조로움으로 요약된다. 매일 아침 좋은 날을 기대하며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결혼 생활이나 자기 일에 만족하는 사람도 적다. 그처럼 많은 사람이 삶을 회의하며 ‘조용한 자포자기’의 삶을 산다. 해 아래 사는 인생은 바람을 잡는 것처럼 공허하고 무익하고 목적이 없고 지루한 권태만 있다. 휴가, 여행, 탈선, 외식, 명품 소유, 여흥도 큰 만족을 주지 못한다. 짧은 흥분이 가시면 또 권태가 찾아온다.
솔로몬은 해아래 괴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이 그런 괴로움과 수고를 허락하셨다고 했다(12-13절). 또한 바람을 잡는 것 같은 잘못된 인생을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더욱 인생의 허무를 절감했다(14-15절). 솔로몬 왕은 원하면 마음껏 다양한 쾌락을 즐길 수 있었다. 궁전에는 낮이건 밤이건 욕정을 채울 수 있는 1000명의 여인이 있었지만 쾌락이 끝난 후에는 동일한 결론이 내려졌다. 그 쾌락으로 만족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고상한 지혜가 주는 만족도 얼마 가지 않았다(16절). 지혜는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이 인생의 질(quality)은 높여도 인생의 가치(value)는 높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일류 대학을 나오지 못해도 지혜롭게 잘 산다. 인생은 지식 경쟁이 아닌 지혜 경쟁이다. 학교에서의 1등이 사회에서도 1등은 아니다. 지식이 없으면 지식 있는 사람을 월급 주고 쓰면 된다. 그처럼 지혜가 중요하지만 솔로몬은 그런 인간적인 지혜도 허무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또한 솔로몬은 고백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17절).” 여기서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를 뜻한다. 거룩한 지혜는 평안을 준다. 왜 솔로몬의 지혜는 평안을 주는 거룩한 지혜가 되지 못했는가? 그의 지혜가 공부로부터 얻은 지혜였지 삶에서 터득한 지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고난은 변장된 복이다 >
솔로몬은 왕실 최고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 다윗이 신실했기에 신앙교육도 잘 받았다. 게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지혜를 받았다. 열왕기상 4장 29-34절을 보면 그의 지혜는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고 잠언을 3000개 말했고, 1005개의 노래를 지었고, 식물학, 동물학, 조류학, 어류학까지 다방면의 지혜가 있었다.
그는 성경 지혜서인 <잠언>의 저자다.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어떻게 점점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와 도덕적 타락과 우상숭배에 빠져 그토록 무섭게 타락했는가? 솔로몬의 지혜와 신앙이 이론적인 공부를 통해 얻어진 지혜와 신앙이었지 하나님을 만난 체험에서 나온 지혜와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윗은 솔로몬처럼 지식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의 지혜와 신앙은 고난의 체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신앙이었기에 그 수명이 길었다.
솔로몬도 말년 중의 말년에는 다시 지혜를 되찾았다. 성경에는 그의 말년 중의 말년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말년에 사방에서 대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타락한 삶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통해 참된 거룩한 지혜를 체득하고 죽기 직전에 쓴 성경이 바로 <전도서>다. 참된 거룩한 지혜는 고난의 체험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은 복의 일종이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라면 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때 더 하나님께 매달린다. 상처를 입었을 때 더 하나님께 하소연한다. 실패했을 때 더 하나님의 위로를 갈구한다. 고난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만드는 변장된 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눈물의 렌즈를 낄 때 하나님의 약속들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의미 있는 고난은 의미 없는 만족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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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에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혜를 찾는 일에 있어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아래에서 찾아가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답이 아니라 아래에서 '고민하는 나'와 '탐구하는 나'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의 지혜 찾기는 많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이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방법론도 매우 필요합니다. 그렇게 나에서 시작하는 고민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고민하는 이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도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까? 혹시 아직도 인생의 목적을 분명하게 갖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빨리 이제라도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전도자의 말을 잘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전도자가 매우 힘들게 찾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삶의 의미는 조금 힘들게 찾아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남이 알려주어 너무 쉽게 찾는 삶의 의미는 삶의 의미이기 보다는 또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그 길을 가는 행복한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전 1:17)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라고 말합니다. 연구하는데 때로는 지혜와 미친 것이 일맥 상통합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때로는 혼란스럽습니다. 그것조차 어렵습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라고 말합니다. 지식을 더 찾으면 찾을수록 해결책이 생기고 행복해질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확실성이 늘어가고 고통(근심)이 더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