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출발-4
일주일 동안 조철봉은 TV는 말할 것도 없고 신문도 읽지 않고 바닷가 빌라에서 지냈다. 최갑중은 수시로 사회와 전화 연락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조철봉에게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집에 사고가 난 것 외에는 일절 말하지도 전화 바꾸지도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빈둥거리면서 밤에는 꼭 소주 한 병은 마셨지만 일주일이 지났을 때 조철봉은 몸에 가득찬 원기를 느낀다. 활력 또는 생기라고 불러도 되는 기운이었다. 8일째 되는날 아침 최갑중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조철봉은 서울로 출발한다.
“자, 말해라.”
오전 10시, 사회와 단절된 지 만 8일이다. 조철봉이 최갑중의 뒷머리를 보며 말했다.
“중요한 일만.”
“예, 개혁당이 88명으로 늘어났고 제1당이 되었습니다.”
최갑중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대답했다. 백미러에서 시선을 맞춘 최갑중은 말을 이었다.
“박준수 대표는 강력한 국정운영을 선언했습니다.”
“그래야지.”
“북한은 방송으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사해서 개혁당 창당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당연하지.”
그러고는 조철봉이 묻는다.
“내 이야기는?”
“이삼일 전부터 언론에서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빙그레 웃는다.
“빠르군.”
“예, 과연 그렇습니다.”
“앞으로 한 달만 조심하면 난 사라진 인간이 된다.”
최갑중은 대답하지 않았고 조철봉은 말을 잇는다.
“내 재산을 환원할 기회를 놓쳤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되겠지.”
“어쨌든 큰 일을 하셨습니다. 당을 만드셨지 않습니까?”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기분 나빠질라고 한다. 그런 말 하지 마라. 내가 주도적으로 한 일이 아니라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이용당한 것 아니냐? 그걸 내 재주로 둔갑시키지 말어.”
“죄송합니다.”
“일주일 동안 많이 생각했는데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분수는 순발력이나 융통성, 임기응변에 능해서 사기꾼이 적격이야. 조금 더 발전시키면 중견기업 사주쯤이 될까?”
“또 겸손하시네요. 그것도….”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가 저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국가에까지 해를 끼친 경우가 어디 하나 둘이냐? 그 사람들 다 저 나름대로 자위하지 않았겠어? 잠재 능력이 어떻다는 둥 하고 말야. 옆에서 너 같은 놈이 추켜 주고 말이지. 그러다가 그 모양 그 꼴이 된 것이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났다. 최갑중의 핸드폰이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최갑중이 몇번 응답하더니 송화구를 가리고는 백미러를 보았다.
“김 실장인데요. 받으시겠습니까?”
김경준이다. 지금까지 김경준 전화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자 최갑중은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응, 무슨 일이야?”
핸드폰을 귀에 붙인 조철봉이 대뜸 물었을 때 김경준이 대답했다.
“청와대 한 비서관이 오늘 찾아 뵙겠답니다. 오늘 오시는 줄 알고 있던데요.”
그러자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들, 끈질기구만 그래.”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