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개미식당 약초순대
충북 제천 남천동의 허름한 개미식당 주인 이종흥(58)씨가 한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순대처럼 손 많이 가는 음식두 드물 거여. 내 이십팔 년 동안 밥집 해서 먹구 살지만서두, 힘들기룬 순대가 제일입디다. 음청 힘들기는 해두, 그저 지역에서 나는 약초들을 써서 전통 음식을 맹그러 판다아, 하는 자부심 하나루 하는 거여.”
찬바람 불면 문득 소주 한 잔과 함께 떠오르는 뜨끈뜨끈한 순대국. 순대가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 서민 대중이 자주 즐기는 간식거리이자 술안주이며 별미 음식임엔 틀림없겠다.
순대란 일반적으로 돼지 창자에 찹쌀과 야채, 돼지 선지, 당면 따위를 버무려 넣고 삶아낸 음식을 말한다. 지역마다 만드는 방식과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지만, 오래 전부터 전국적으로 해먹어온 우리 전통 음식이다. 몽골 징기즈칸 시대에 전쟁을 할 때 돼지 창자에 쌀이나 고기 야채 들을 다져넣은 뒤 말려서 식량으로 지니고 다닌 데서 순대가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제민요술, 규합총서 등 우리나라 기록에도 소나 돼지, 양의 창자에 고기를 다져 넣고 쪄 먹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 선조들이 순대를 즐겨 먹어왔다는 사실은 개성순대, 병천순대, 아바이순대, 암뽕(암퇘지 애기보)순대 등 각 지역에서 특색있는 순대가 발달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보통 돼지 작은창자(소창)을 많이 쓰지만, 큰창자(대창)을 사용해 왕순대를 만들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선 암퇘지 소창만을 쓰거나 막창을 쓰기도 한다. 무엇을 쓰든 순대 만드는 일엔 손이 많이 간다.
식당 일이란 것이 어느 종목 하나 힘들지 않은 일이 없겠지만, 순대 만들기도 여간 고되고 복잡한 게 아니다. 일반적인 순대 제조 과정을 보자.
돼지 창자를 구입해 오면 먼저 물에 한동안 담가 핏기를 빼고 이물질을 제거한다. 깨끗이 씻은 다음엔 창자를 일정한 길이로 자른 뒤 뒤집어 본격적인 세척작업에 들어간다. 장에 달라붙어 있는 기름기를 제거하는 작업인데, 이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특유의 냄새 때문에 제맛을 낼 수 없게 돼 상품성이 떨어진다. 씻을 땐 굵은 소금과 밀가루를 사용해, 여러 번 정성들여 문질러 씻어야 기름기를 없앨 수 있다.
세척이 끝나면 다시 물에 담가두어 냄새를 우려낸다. 여기에 미리 불려놓은 찹쌀과 돼지 선지, 야채, 당면 등 재료를 버무려 순대 속을 채우게 된다. 옛날엔 속을 채우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지만, 요즘은 기계로 손쉽게 할 수 있다. 속을 채운 다음 창자 양쪽을 묶어 30~40분 가량 쪄내는데, 그냥 찌면 내용물이 팽창하면서 순대가 터질 수 있으므로 꼬챙이로 찔러 김을 빼줘야 한다. 식탁에 낼 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간, 허파, 오소리감투 등과 함께 차려낸다. 순대는 보통 새우젓이나 후추소금에 찍어 먹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된장, 초고추장 등에 찍어 먹기도 한다. 순대국은 뼈를 고아 우려낸 국물에 순대와 갖가지 고기류를 넣고 마늘, 파, 들깻가루 등을 곁들여 낸다.
요즘엔 순대도 넣는 내용물에 따라 다양한 변천을 겪고 있다. 시중에서 파는 일반 순대야 당면에 선지를 쓰는 게 고작이지만, 돼지 창자를 직접 다루고 내용물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순대 전문식당들은 다르다. 전통 방식을 고집하면서, 그들만의 특별한 순대 속을 개발해 상차림에 올려 인기를 끌고 있다. 야채만 듬뿍 넣기도 하고, 여러 곡식을 섞어 쓰는가 하면, 재료의 색깔에 따라 색색의 순대를 만들어내는 집도 있다. 더덕순대, 오미자순대 등처럼 몸에 좋고 맛도 새로운 순대도 만들고 있다. 한번 이름이 나면 금세 전국 곳곳에 체인점이 문을 열기도 한다.
개미식당의 이씨는 전통 방식의 순대를 고집하되, 약초의 고장 제천의 특산물을 이용한 경우다. 순대와 한약을 결합시켜 맛과 건강을 함께 겨눈 순대를 개발했다.
본디 보리밥집을 했던 이종흥, 김옥희(54)씨 부부는 일반 순대를 만들어 팔다, 제천 농촌지도소의 의견을 받아들여 약초순대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지역 특성을 살린 전통식품 개발에 부심하던 시쪽의 제안이 이씨의 새 음식 개발의욕을 자극한 것이다.
2001년 약초순대를 차림표에 올린 뒤 이씨는 농촌지도소의 지도 도움 아래 갖가지 약초를 이용한 순대 개발에 매달린 끝에 “약초 냄새가 강하게 나지 않으면서도 약효가 뛰어나고, 돼지 냄새도 제거한” 약초순대를 만들어 냈다. 만드는 방식과 새로운 맛이 인정돼 식약청으로부터 특허도 받았다.
“내 자랑 같지만, 은은한 약초 향이 그만이여. 구수하구, 맛두 깔끔하구. 약효까지 있잖어. 보약 순대여어.”
이씨가 만드는 약초순대엔 황기, 천궁, 백출, 당귀 등 25가지의 한약재를 달인 원액이 들어간다. 사흘에 한번 꼴로 약재를 12시간 달여 그 물을 다른 재료와 버무려 순대 속으로 쓴다. 순대 속엔 양배추, 무, 시래기, 부추, 당근, 찹쌀, 선지, 당면, 기장쌀, 두부, 숙주나물 등 45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소창만을 쓰는데, 도축장에서 신선한 창자를 직접 골라와 손질해 쓴다. 순대국 국물은 돼지 머리뼈를 하루 정도 푹 고아 우려낸 것이다. 순대국엔 순대와 머릿고기, 내장, 파, 마늘, 들깻가루 등이 들어간다.
상차림엔 순대를 고춧가루 양념장에 찍어 먹는 이 지역의 특성대로 양념장과 된장, 새우젓이 곁들여지고, 무를 큼직하게 썰어 만든 깍두기와 청양고추 한 접시가 따라 나온다.
순대 맛은 담백하다. 누린내가 나지 않고 느끼한 맛도 거의 없다. 약초 향을 즐기려면 순대국보다는 그냥 순대가 낫다. 뜨끈한 순대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으면, 졸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데 은은한 약초 향이 뒷맛으로 남는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도 훌륭하지만, 매운고추를 썰어 넣은 새우젓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이씨는 “약초 즙을 듬뿍 넣으면서도 약초 냄새가 강하지 않게 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 좋은 순대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해마다 향토음식경연대회에도 나가고 여기저기서 약초순대의 우수성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대개 식당들이 손쉽게 만들어 파는 보통 순대에만 관심을 갖는 게 안타깝다.
“다른 집에 아무리 설명해 줘두 그때뿐이여. 그냥 재료 안들이구 손쉽게 맹그는 찹쌀 순대만 할려구 한다니까. 그것만 팔아두 괜찮은데 고생시럽게 뭐하러 이걸 하냐는 거여어.”
이씨가 손으로 연신 어깨를 주무르는 걸 보면 약초순대 만들어 파는 일이 힘들기는 힘든가 보다. 그가 덧붙였다. “그래도 순대장사에 젊음을 바쳤는데, 계속해야지.”
개미식당에선 순대볶음, 곱창전골 등도 먹을 수 있다.
<개미식당>
약초순대 5천원, 순대모듬 5천원, 순대국밥 5천원, 순대볶음 1만5천~2만원, 곱창전골 1만5천~2만원. (043)643-509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 쪽으로 가다 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제천나들목에서 나가 제천시내로 들어간다. 중앙시장을 찾아가면 된다. 신당삼거리에서 경찰서, 의림지 쪽으로 좌회전해 가다 왼쪽에 제천경찰서를 보고 500m쯤 더 간 뒤 네거리에서 중앙시장 쪽으로 우회전해 직진한다. 명동교차로 다음 네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중앙시장이다. 여기서 200m 더 가면 오른쪽에 개미식당이 있다. 밝은미래 진단방사선과 의원 맞은편이다.
<주변 볼거리>
삼국시대 축조된 저수지 의림지, 유원지 탁사정, 청풍호, 청풍문화재단지, 번지점프장·인공암벽이 있는 청풍레저단지, 청풍호 유람선, 금수산 자락 절벽 밑의 절 정방사 등.
첫댓글 순대묵고싶다....ㅋㅋ
나 순대 좋아하는데.....
나둥^^
나도오돌오돌 씹히는거....귓떼긴가....하는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