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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演好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靑波
좌우 극한대결의 해법을 찾는 중앙일보 릴레이 인터뷰가 이번엔 언론인 조갑제(64)씨를 만났다. 이를 두고 "해법을 찾는다면서 왜 하필 그 사람이냐"는 의문이 제기될수 있다. 조씨가 대한민국 극우(極右)의 상징적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다.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은 과연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중앙일보는 앞으로 좌파적 입장에 서있는 분들과의 인터뷰도 내보낼 예정이다. 조씨는 "사회민주주의적 좌파는 얼마든지 인정하겠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부인하는 친북좌파는 절대 용인할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광화문에 있는 조씨의 개인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조 대표는 13권짜리 전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통해 ‘박정희 붐’이 일어나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박대통령을 원래 좋아했습니까. “저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피해를 당했거든요. 1976년도에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해 취재해보니까 이게 경제성이 없는 석유예요. 기사를 쓰려니까 중앙정보부에서 못하게 했어요. 그 석유 시추를 중앙정보부가 유령회사 만들어서 한 겁니다. 석유도 땅 밑에서 나온 게 아니고 원유가 아니고 정유였다고. 당시엔 그 사실까지는 몰랐지만요. 기자라는 게 알고 있는걸 못쓰면 병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논문을 써서 돌렸는데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이 그 논문으로 ‘포항 석유 경제성 없다’고 기사를 썼어요. 그 일로 정보부가 압력을 넣어서 당시 부산 국제신보에서 쫓겨났어요. 1년 동안 신발공장 국제상사에서 일하고 복직했습니다. 1979년 10월26일 박 대통령이 피살됐다는 얘기 들었을 때 사회부에서 ‘부마사태’를 취재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좋은 세상이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왜 박대통령 예찬론자가 됐습니까. “1983년부터 월간조선에서 일하며 ‘3공화국 비화’를 많이 쓰게 됐어요. 당시 월간지들이 ‘3공 비화’를 써서 부수가 늘었지요. 저는 그때 김형욱 사건, 박동선의 ‘코리아 게이트’ 등 박 대통령의 부정적인 면을 많이 썼어요. 그런 폭로기사가 매력이 있고 부수도 늘죠. 한 4~5년쯤 쓰니까 박정희란 사람이 점점 더 크게 보이는 거예요. 아무리 깎아 내려도 커지기만 하는 거목같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나 했는데 1984년 6월에 애들 데리고 당시 국립묘지 박 대통령 묘소에 갔어요. 일요일이었는데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참배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얼굴이 새카맣게 탄 농부들의 얼굴속에 박 대통령에 대한 서민들의 마음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 분 때문에 먹고 살게 됐다는 진정한 감사의 마음. 거기 동원한 사람 없었거든요. 그걸 보고 ‘박정희가 생활인·서민들 사이에는 영원히 살아 있는 존재구나’ 하는걸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87년부터 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판을 하다 교화가 된 셈이네요. “박정희를 탐문해 가는 과정에서 점점 더 크게 보이더란 겁니다. 저는 박대통령을 ‘근대화 혁명가’라고 표현합니다. 요약해서 교사·군인·혁명가·행정가였다고 표현합니다. 그 사람은 대통령이 돼서도 교사와 같은 역할을 했죠. 그 다음에 군인이었습니다. 군인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잡았고 동시에 혁명을 한 사람이고. 그 다음이 행정가죠. 시스템 운영의 귀재죠. 국가라는 큰 조직을 어떻게 만들고 그걸 어떻게 연결시키고,효율적으로 운용하느냐에 대해선 역대 한국인 중 가장 뛰어난 귀재였다고 생각합니다." -교사·군인·혁명가·행정가란 네 가지 측면 중에서 어떤 걸 가장 높이 평가합니까. “다 높게 평가하지만 저는 ‘교사’라는 면에 주목합니다. 보통 정치인은 교육하지 않습니다. 군인은 뭐 군인 교육만 하겠죠. 이 분은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5·16혁명 때 혁명 공약을 인쇄소에서 갖고 와 남산에 있던 KBS에 들어가서 방송하도록 했죠. 당시 박종세 아나운서에게 줬어요. 주면서 왜 우리가 혁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거기서 몇 분 동안 설명했다고 해요. 사소한 것이라도 이 사람은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대통령으로서 이 분은 ‘국민들은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야 민주시민이 되고 선진국을 만들 수 있다’고 봤죠. 그건 보통 정치인이나 혁명가가 하기 어려운 일이죠." -박정희 정권 때 인권유린을 당한 사람들이 적지 않지요. 3선 개헌 등 영구집권 시도가 있었고요. 그런 부정적인 면도 지적해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박정희를 미화하는게 아니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사람이에요. 박정희의 부정적인 면은 아마 제가 발굴한 사실에 기초한 게 많을 거예요. 박정희가 남로당에 포섭됐다가 잡혀서 죽음 직전에 백선엽씨가 살려 줬지요. 여순 반란 사건 직후에 박정희가 체포되지 않았습니까. 군 내의 남로당 조직원이었죠. 그러나 조사를 받을 때 자신의 조직을 많이 털어 놓았죠.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배신이고, 대한민국 입장에선 보면 충성을 다한 거죠. 그래서 살아난 거 아닙니까." -그런 걸 조 대표가 처음 밝혔습니까. “공개적으로는 제가 처음 썼어요. 이후락씨가 사위 이름으로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갖고 있다는 것도. 그때까지만 해도 공개적으로 거론 못했던 박정희의 결혼 관계도 밝혔죠. 육영수 여사를 만나기 전에 정식으로 한 번 결혼했고, 또 이화여대 다니던 분과 동거를 했어요. 고문이나 조작에 대해서 저는 많이 썼어요. 박정희는 미화할 필요가 없어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됩니다." -인간 박정희, 정치인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에 대해 있는 사실은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는 거군요. “다 보여줘도 작아질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박정희를 표현할 때 ‘청탁(淸濁)을 같이 들여 마신 사람’이라고 해요. 난세에서 맑은 물만 마신 사람도 아니고, 청탁을 같이 들여 마시되 본인의 영혼은 죽을 때까지 깨끗했던 사람입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서 말한 초인(超人)에 대한 정의가 그런 거 아닙니까. 초인은 바다와 같은 사람이다. 바다로 들어오는 그 오물을 다 삼키고도 영혼이 맑은 사람을 초인이라고 한다. 저는 그게 박정희에게 딱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박정희는 죽고 나서 유일하게 국장(國葬)을 했어요, 국민장이 아니고요. 그 때 국립교향악단에서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주했어요. 선곡한 사람은 그 의미를 잘 몰랐겠지만 참 잘했어요. 저는 박정희가 ‘부끄러워하는 초인’이라고 표현 한 적이 있습니다. 비정한 사람이 아니라, 눈물도 많고 수줍어하는 초인이에요." -전기를 쓰려면 취재를 많이 했겠습니다. “박 대통령 관련 자료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고 정부에서 공개한 자료도 별로 없었죠. 주로 사람 만나는 게 대부분의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다들 돌아가시고. 특히 박 대통령의 출생과 어린 시절, 만주군관학교 시절을 증언할 분들은 거의 남지 않게 됐습니다. 그 타이밍을 안 놓친 게 지금 생각해도 다행입니다." -취재원들을 통해서도 인간 박정희의 면모를 확인했습니까. “우리 세대에겐 박 대통령이 삼촌·아버지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1917년생인 박 대통령은 우리 아버지 세대예요. 박 대통령은 굉장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서민적 정서도 보통 사람과 똑같아요, 음식이나 취향이나. 그러나 그 분이 하신 일이 뛰어나죠. 제가 위대하다고 할 때는 그 분의 업적이나 의지력·용기를 말하는 거지요. 영웅이라고 하면 시저나 나폴레옹을 연상하는데 그런 분은 아니었어요." -조갑제는 박정희 교의 신도라는 평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건 이후락씨지. 이씨가 자기가 ‘박정희 교의 신도’라고 했지. 기자가 무슨 신도가 됩니까? 기자는 기록자지." -이승만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승만, 박정희 두 분은 20세기의 세기적 지도자죠. 요새는 이승만 대통령이 점점 더 크게 보여요. 눈에 보이는 건 대부분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었어요. 교육개혁, 농지개혁, 한미동맹,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기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대부분은 이 대통령의 업적이에요.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잊어 버리고 과소평가 받죠. 현재 시점에서는 가장 억울한 분이죠. 이승만 없는 박정희는 없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이 대통령은 최초의 상인 출신 대통령이죠. 그 점을 굉장히 높이 평가해요. 상인은 손해 볼 일을 별로 안 하지. 그래서 대한민국도 손해 보지 않는 그런 5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경제 관리도 이만하면 잘하고, 한미동맹 복원한 건 정말 잘 한 거고, 남북관계에서도 뜯어 먹히지 않으니까 저는 잘 했다고 봐요. 법치 확립이라는 이 시대적 사명에 대해서 너무 용기가 없이 대처하는 바람에, 폭력 국회, 쌍용자동차 사태, 작년에 있었던 촛불 난동시위, 이런 걸 통해서 성실하고 법 지키는 국민들이 ‘불안해서 못 살겠다, 화가 나서 못 살겠다’고 하는 이런 사태를 만들어 놨어요." -이대통령이 왜 법치부분에서 무른 모습을 보인다고 보십니까. “헌법의 힘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연설에서 헌법이 인용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헌법에서 구해야 되거든요. 대통령이 왜 힘이 있습니까? 모든 행동에 헌법적 뒷받침이 들어가니까 무서운 거예요. 그런데 헌법을 우습게 생각하고, 또는 헌법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굉장히 약한 존재가 돼 버렸어요. 경찰관이 힘이 있는 건 그 사람이 뭐 레슬링 선수라서가 아니라 그 뒤에 국법이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경찰관이 ‘법률 이거 별 거 아니다’라고 하면 깡패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닙니까. 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의 기초인 헌법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느냐? 그것은 이념무장이 소홀하고 본인 스스로가 이념이란 말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저는 생각해요." -작년 촛불시위는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국가적 진실을 방어를 해야 할 사람이 대통령과 정부입니다. 국가적 진실을 방어하지 못하니까 거짓말이 판을 치고, 정의를 세울 수가 없었어요. MBC PD수첩이 지난해 4월29일 50분 동안,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희대의 거짓 선동방송을 했죠. 그것이 인터넷으로 확산되고 친북좌익 세력들이 대중동원을 할 때 즉 4월 말이나 5월 초에 대통령이 바로 나섰어야지요. 지금 MBC PD수첩이 보도하고 그걸 확대 재생산한 MBC 뉴스데스크는 완전히 거짓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어야죠.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 안전하다, 우선 나부터 퇴임할 때까지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 먹겠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이 단호하게 맞서고, 야간 촛불시위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그대로 적용했더라면 초장에 막을 수 있었어요.그런데 그건 안하고 계속 ‘소통 부족입니다’ ‘협상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습니다’, ‘나도 한 때 데모를 한 사람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어요. 대통령은 계속 사과하고 MBC PD수첩, 거기다 KBS까지 합세를 해서 떠드니까 국민은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한 게 맞구나’하고 속은 게 아닙니까? 국민의 60%가 속았습니다. 그러니까 몰려 나온 거죠." -협상과정이 졸속이었던 건 사실 아닙니까? “저는 인정 안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은 사람이 미국 3억 인구와 117개 수입국의 국민이다. 그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인간 광우병에 걸린 적이 없다. 미국에서 1년 동안에 벼락 맞아 죽는 사람이 100명이다. 미국산 쇠고기는 확률로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안전하다. 그렇다면 협상이 졸속이고 뭐고가 있습니까? 또 한국에 들어올 때 여러 단서를 많이 만들지 않았습니까? 최선을 다한 것이죠. 사실은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재협상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야기한 식으로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했으면 조기에 잠재웠을 거 아닙니까? 저는 그게 대통령의 용기 부족이라고 봐요, 신념의 부족이고. 화가 나서라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이 화가 날 때 화가 났어야죠." -폭력시위는 안되지만 국민이 정당하게 항의와 거부의사를 표현할수 있는게 아닐까요. “시위를 핵심적으로 선동하고 주도한 세력은 MBC와 당시 ‘한국진보연대’라고 하는 좌파 총연합체가 핵심 그룹이었죠. 이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거짓선동을 했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거기에 속은 사람들 많지요. 그때 조사를 하면 ‘미국 쇠고기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50%를 넘은 적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 호기심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사람 구경을 좋아하니까 몰려온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죠. "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속았다고 보십니까. “한국이 경제·과학·기술·군대, 이런 면에서는 선진국으로 갔는데, 우리가 아직도 선진국이 못 되고 있는 부분은 정치나 언론, 학계가 아니겠습니까. 선진국이 못 되고 있는 이유를 국민에게 묻는다면, 선동에 잘 속는 국민이란 거죠. 아무리 방송이 선동했어도 일본 사람이라면 안 속았을 겁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그런 선동을 했으면 NHK는 1주일 안에 문을 닫았겠죠. 그건 국민 교양 수준을 보여주는 겁니다. 선동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속을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굉장히 고민해야 할 분야입니다." -속은 데는 시민의 책임도 있다는 건가요. “선진 민주국가 국민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죠. 왜 속습니까? 아무리 속이는 방송을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몇 개만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미국 사람들은 쌀처럼 쇠고기를 먹는데 아직도 한 사람도 병에 안 걸렸다. 그런데 방송은 너무한 거 아니냐. 외국에선 저렇게 안 하는데 이 사람들은 왜 이러냐? 이렇게 몇 개만 생각하면 됐을 텐데요. 한국 사람들은 분별력이 굉장히 약해요. 말에 참 잘 속거든요. 민주주의를 외치면 민주투사다. 평화를 외치면 김정일이라도 평화주의자다. 민족반역자인데도 민족을 외치니까 민족주의자다. 이렇게 말에 잘 속아요. 행동을 보고 판단하고 그 사람의 과거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오늘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 퇴보 세력을 진보라고 미화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언론의 책임이지만, 또 거기에 속는 국민도 있는 거죠." -한국민이 특별히 어리석은 겁니까. “외국에서 조사한 국민 평균 IQ 랭킹을 보면 한국이 전세계에서 1등이에요. 한데 속는 데도 세계 1등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는 117개국중 어느 나라도 이렇게 아우성을 치지 않았다. 유독 한국 사람만, 더구나 인터넷 보급률이 1등인 나라가 이렇게 됐다. 저는 이게 우리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남을 속이는 일에 종사하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에 있고, 정치부문에 있고, 학계와 친북사회단체에 있습니다. 이렇게 남을 속이는 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인구조사를 해 봤으면 좋겠어요. 수십만명은 넘을 것 같아요. 이 사람들 끈질깁니다. 나름대로의 광신적인 이념으로 무장돼 있고. 국회에도 들어가 있고. 그래서 암 덩어리죠. 남을 속이는 데 끈질기고 머리 좋은 이 집단이 한국 사람 전체의 수준을 내려 앉혀서 공멸의 길로 갈 수도 있죠. 이 집단을 순화시킬 것인가, 이들과 함께 우리가 공멸하게 내버려 둘 것인가, 이 두 가지 힘이 한국사회에서 격돌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 대표는 좌파와는 타협하면 안된다는 입장인 걸로 아는데 최근의 이념 대립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정리하면 간단해요. 헌법이 좌우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이런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고요, 보다 본질적인 것은 국가 정통성이죠. 대한민국 헌법 1조, 3조, 4조가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묶으면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국가’다, 또 헌법에 쓰여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 민족사에서 유일한 정통국가’라는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자유통일을 하되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북한 노동당 정권을 평화적으로 해체해서 자유통일을 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헌법에 나타난 국가의지이고 국가목표입니다. 이건 아무도 수정할 수도 없어요. 헌법 개정 불가 사항입니다. 보수세력은 이걸 믿는 사람이에요. 동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진실에 기초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이념이 좋다 해도 거짓말이면 그걸 따라가선 안 되죠. 저는 진실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실·정의·자유, 이게 우리 헌법에 담겨 있는 3대 가치죠." -그럼 좌파는 뭡니까. “이론상으로는 친북좌파와 반북(反北)좌파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한국사회에선 ‘반북좌파’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반북좌파라고 하면서도 친북좌파와 똑같이 행동해요. 진보신당이 반북좌파라고 해서 민노당에서 나갔는데, 그 뒤에 행동하는 걸 보면 친북좌파를 따라가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친북좌파 이외의 좌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친북좌파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담겨 있는 정통성과 정체성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좌우를 나누는 기준은 헌법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인정하지 않으니 타협할 수 없다는 건가요. “사실관계에 대해서 합의가 이뤄지면 여기에 대해 동의하고 그 다음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친북좌익 세력이란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본다든지, 그 사람들 행태를 보면 사실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해요. 남북관계에 있어서 사실에 대한 합의는 뭡니까.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700만 명(한국전쟁 300만 명, 아사자 300만 명, 강제수용소 희생자 100만 명으로 추산)의 인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데 책임이 있는 정권입니다. 민족반역자 아닙니까. 그런데 김정일 정권하고 손 잡고 ‘우리 민족끼리 하자’ ‘민족공조 하자’는 것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대북 정책의 기조로 삼았습니다. 민족 반역 집단과의 ‘민족공조’를 대북 정책의 기조로 삼아서 6.15 선언의 제일 첫 문장에 나오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그럼 이걸 지지하는 세력, 즉 김정일을 민족반역자로 안 보겠다는 세력과 무슨 타협이 있고 대화가 되겠습니까?" -헌법을 인정하지만 평등과 분배에 강조점을 두는 이들도 많지 않나요. 이런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들은 우리 편이죠. 대한민국에 적대하지 않으면 우리 편이에요. 경제적, 사회 복지적 면에서의 좌파는 정책적 문제입니다. 저도 경제적, 사회 복지적 부문에선 평등 지향적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한국에서 복지정책을 제일 많이 편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에요. 1977년 7월 1일 날 의료보험을 처음 시작한 게 박대통령 아닙니까. 그게 한국사회 복지부문의 획기적인 일 아닙니까. 한국사회에서 복지부문은 돈 많이 번 보수세력이 자기들끼리 갈라 먹지 않고 못 사는 사람들 도와주자고 해서 77년부터 의료보험을 시행한 겁니다. 복지에 대해 한국 보수세력은 아무 컴플렉스도 없어요. 한데 좌파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정통성에 대해, 그거야 헌법에 적힌 대로 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의외로 적어요. " -조 대표가 규정하는 ‘친북·종북 좌파’ 세력은 얼마나 되는 것 같습니까? “굉장히 많아요. 6.15선언이 만악(萬惡)의 근원입니다. 폐기해야 됩니다. 첫째 헌법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6.15선언 2항은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 수단인 ‘연방제 통일안’을 우리가 대폭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대로 하면 대한민국이 적화될 수가 있습니다. 북한은 그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적화통일하자는 말 대신에 ‘6.15선언 실천하자’는 말을 씁니다. 6.15선언 실천이 남북한 좌익들 사이에 ‘연방제 적화통일’이라는 말의 암호로 됐습니다. 6.15선언을 지지하면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6.15선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민노당·민주당, 그리고 대부분의 친북좌익세력들, 또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 그러면 굉장히 많은 거지요. 1980년대에도 여론조사를 해 보면 북한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한 5%는 있었습니다. 민주화가 되면서 이 세력이 점점 더 커졌어요. 2001~2003년 사이 여론조사에서 김정일을 ‘선(善)’으로 보느냐 ‘악(惡)’으로 보느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선’으로 본다’는 사람들이 항상 10%에서 많을 땐 15%였어요. 김정일을 ‘선’으로 본다면 종북세력인데 이들이 10~15%라는 겁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이게 가장 과학적 데이터라고 봅니다. -6.15선언을 남북한이 잘 지내자는 것 정도로 알고 지지하는 사람도 많은데 종북세력이라고 하는건 심하지 않나요. “그렇죠. 그건 아니죠. 저는 헌법에 반하는 통일방안을 의식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을 종북(從北)이라고 봅니다. 민노당에서 핵심적으로 일했던 사람이 나오면서 민노당은 주사파가 주도한다고 폭로한 적이 있어 종북이란 말이 유행한 것 아닙니까. 정치인·공직자 중에 종북인사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엔 마르크스주의자거나, 민족을 앞세우고 외세를 배격하자고 생각하다가도 나이가 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선 관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과거에 한때 좌경 낭만주의로 갔던 시절, 젊은 사람들은 다 그런 경험 있지 않습니까? 저도 고등학교 다닐 때 미국의 문예비평가 에드먼드 윌슨(1895~1972)이 쓴 『핀란드 역으로』(당시엔 『근대혁명사상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를 읽고 트로츠키 이런 사람들이 근사하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제 소련·동구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김일성·김정일의 악행이 다 드러났는데도 종북을 하고, 이들이 정치, 언론에 들어가 있고, 교단에도 선다면 큰 일이죠. 그런 사람들까지 관대하게 우리도 한때 그랬다는 식으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간첩과 접촉하는 이들이 많다고 봅니까? “민노당과 관계된 간첩사건이 많았지 않았습니까? 2006년의 일심회 사건이라든지, 그 앞에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민노당 강령이 ‘사회주의 지향’ ‘연방제 통일 찬성’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어요. 이거 북한의 대남공작 노선과 똑같습니다. 민노당은 위헌 정당이기 때문에 해산돼야 합니다. 헌법 제8조 위반입니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입니다. MBC가 허가 취소돼야 하듯이, 전교조가 해산돼야 하듯이, 민노당은 대통령이 해산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게 자발적 간첩입니다. 주사파 교육을 받으면 마음 속에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경계심과 증오심이 없어지고, 미국과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심은 있어요. 북한에선 그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간첩 보낼 때 주사파 운동 전력가들과 접촉하라고 합니다. 그럴 때 신고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런 거대한 친북 조직, 쉽게 말해서 1990년대 이전의 조총련 세력이 한국 안에 생겼다고 보면 돼요. 우리나라에서 잡힌 간첩 중 조총련을 거쳐서 들어온 간첩이 3분의 1쯤 됐습니다. 조총련은 약화된 대신에 한국에 주사파라는 제2의 조총련 세력이 생긴 거죠." -지금 친북좌파가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우리 사회 전체 흐름으로 볼 때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 입장도 있는데요. “막연한 낙관론을 주장하면서 자기 자신은 반(反)헌법 세력과 맞서는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는 게 가장 비겁합니다. 그런 사람들 많아요. 또 그런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선 보수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게 한국 보수세력의 큰 약점이죠. 싸우지 않는 보수가 가장 문제예요. 절대로 낙관론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북한이 저렇게 오래 계속됩니까?" -적극적으로 싸워 나가야 한다는 건가요. "거짓말에 구체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반박되지 않는 거짓말은 진실로 통용되는 게 정치의 세계 아닙니까? 그게 공식적으로 된 게 작년 광우병 사태 아닙니까? 대통령이 반박을 하지 않으니까 MBC의 거짓말이 진실로 통용이 돼가지고 국민을 속이고 해서 한국사회를 3개월 동안 마비시켰잖아요. " -대한민국의 보수가 잘한 건 뭐고 잘못한 건 뭡니까? “한국 보수세력의 가장 큰 약점은 보수층은 있으나 보수정당이 없어요. 한나라당은 보수정당이 아니죠. 저건 기회주의 정당이고. 그게 문제입니다. 보수층은 아주 커요. 저는 국민의 한 70%는 보수층으로 봅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하고 김정일 편에 안 서는 사람을 보수층으로 본다면 사실 70%도 넘겠죠. 그런데 보수정당이 없는 거예요. 이게 한국 보수층의 과제입니다." -북한 체제가 붕괴하고 통일이 되면 대한민국 헌법을 부인하는 세력은 사라지는 거죠. 그러면 한반도 내에서 다양한 정당과 사상적 자유를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요? “그걸 부인하면 대한민국 헌법을 부인하는 거죠. 세상에 그걸 부인하는 보수 세력은 없어요. 다만 반역자 편을 들어선 안 된다. 좌파를 하더라도 좀 고운 좌파를 하란 말이죠. 애국좌파를 하란 말입니다. 왜 반한(反韓) 좌파를 하냔 말입니다. 왜 반역자의 졸개가 되는 그런 좌파를 하느냐는 거죠. 그런 좌파 말고 좀 제대로 된, 독일의 빌리 브란트(1913~92) 전 총리와 같은 좌파를 하란 말이죠. 사회민주주의는 다 허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민노당 같은 종북좌파를 하느냔 말이죠.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노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 이 대통령이 이야기하고 있는 건 이념적 의미의 중도실용이 아니라 정책적 중도실용이라고 저는 보고 싶어요. 정책적 중도라는 건 아까 말씀 드린 평등이냐 자유냐 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서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사면도 서민 위주로 하겠다고 하고. 서민 또는 중산층. 그쪽이 사실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쪽이 또 표가 많고. 그런데 이 대통령과 참모들은 말을 참 잘못하?? 사람들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문제가 없지요. 대한민국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하는 게 나의 이념이다. 그러나 정책은 중도실용을 펴서 서민과 중산층을 보호하겠다. 정책 부분에서는 좌우가 없다. 오직 실용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처음 나온 이야기가 보니까 ‘좌우가 다 문제다, 좌우 대립이 문제다, 그러니까 중도실용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이 중도실용이란 말이 딱 이념적으로 들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념적으로는 중도실용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의 잘못입니다. 좋게 해석해서 저는 그 분이 말하는 중도실용은 이념적인 것이 아니고 정책적인 중도실용이다, 그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 -조 대표는 북한 김정일 체제와 대화를 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굉장히 큰 오해인데요? 아니 교전(交戰)할 때도 적과 대화를 하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대화해야죠. 대화해야 하고 교류해야 합니다." -교류도 해야 한다고요? “물론이죠. 교류해야 하는데 정당하게 해야죠. 그리고 실체를 인정해야 되죠. 그러나 국가로 인정하면 절대 안 되죠. 하나의 권력집단으로서 실체를 인정하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겁니다. 교류하든 대화를 하든 그 목적은 헌법이 지향하는 바대로 해야죠. 헌법이 지향하는 건 뭐냐. 평화적으로 총 쏘지 말고 자유통일 하라는 거죠. 그건 국가의지입니다. 정부에 몸담은 사람은 이 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어요. 대화를 하든 교류를 하든 무슨 수를 쓰든지 북한사회가 민주화가 되고 개방되게 해서 그 사회가 자유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총을 쏘지 않고 소련이 무너졌듯이 북한 사회의 변화에 의해서 통일이 되는 것이죠. 그쪽으로 유도하기 위한 대화와 교류는 필요하죠. " -좀 의외인데요. 조 대표의 생각은 대(對)북한 ‘봉쇄 정책’이 아닐까 했는데요. “목표만 딱 정해져 있으면 수단은 자유자재입니다. 봉쇄해야 할 때는 봉쇄하는 거예요. 그러나 대화할 때는 대화하고요. 그러나 항상 이쪽에서 목표 감각을 상실하면 안 되죠. 우리 헌법이 그런 점에서 선견지명이 있어요. 평화적으로 자유통일하라. 전쟁해서 통일하면 그 후유증이 또 한 세대 이상 더 갈 거 아닙니까? 박정희 대통령도 재임 때 국방부 연두 순시에서 ‘전쟁해서 통일하면 안 된다’고 했지요. 북한이 무너진다는 표현을 할 필요도 없어요. 북한이 내부적으로 변화·자유화·개방화로 가도록 하는 거죠. 북한 주민의 선택에 의해서 정권이 바뀌는 게 제일 좋죠. 그 때 우리가 옆에서 도와주기도 하고요. 그러면 결국 흡수통일이 되는 건데요. 뭐 ‘흡수통일’이란 말이 거부감이 있다면 ‘자유통일’이라고 해도 되겠죠." 대담=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정리=배노필, 사진=김상선 기자 ◆조갑제 대표=1945년 생. 부산 출신으로 당시 국립 부산수산대(현재 '부경대')를 다니다 국제신보(현재 '국제신문'으로 제호 변경)에 입사해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마당 편집장과 월간조선 편집장을 거쳤다. 현재 조갑제닷컴 대표. 전 13권에 달하는『박정희 전기-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포함해 다수의 책을 냈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유고-10.26사건의 기록』(전2권)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김대중의 정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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