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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오울진종합수산쎈터 2
박성기회장은 갑판장이 나가자 아무 일없었다는 듯 다시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자꾸만 머릿속에서 갑판장이 던지고 간 말이 앵앵거려 만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여직원을 퇴근시키고 박성기회장도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다.
그 시간 갑판장은 번개와 부두가의 노상마차에서 닭새우와 조개를 구워 놓고 소주를 하고 있었다. 갑판장의 어두운 안색을 살피며 번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무님. 기분이 워째 그런다요?”
번개의 말에 갑판장이 벌컥 화부터 냈다.
“무슨 놈의 상무야? 내가 니 상무가?”
갑판장은 평소에도 가능한 상무라는 직책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오늘처럼 성질까지 내지는 않았다. 그런 갑판장이 왈칵 성질내자 영문을 모른 번개가 약삭빠르게 말을 돌렸다.
“와따메, 흥님도 성질 살아있오잉? 근디요. 뭔일있었소?”
갑판장이 번개의 말에 퍼석 웃었다. 그리고 성질 낸 것이 무안했던지 소주잔을 던지듯 번개에게 내 밀었다.
“뭔 일은 무슨 일? 없었다.”
“오메, 구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몬 속이요. 흥님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내일인디 워째 자꾸만 안하던 짓하요? 퍼뜩 까발려 보시요잉.”
“됐다. 술이나 마시라.”
갑판장은 연거푸 술 두 잔을 약 먹듯 마시고 술잔을 스텐탁자 위에 짜랑 소리 나도록 내려놓으며 독백처럼 말했다.
“씨발놈의 세상. 조까치 되가네.”
번개도 갑판장 따라 술잔을 꽝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알겄소.”
“머가?”
“선장님 때문에 그라는 거 아니어라?”
번개가 얼른 다음 말을 이었다.
“우리 선장님 조로코롬 아파샀는디 그냥 가삐리는 거 아니겠지라?”
“인명은재천이라캤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가?”
“그란디요. 선장님 병이 확시리 머라요?”
“와? 궁금하나?”
번개가 몹시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로 갑판장을 쳐다봤다.
“인자 알아도 괘안타. 직장암이란다.”
번개가 놀라 자빠질 듯 허리를 뒤로 재끼며 반문했다.
“직장이라몬 똥구녕 말하는 거이요? 오메 우리선장님 똥구녕에 암이 걸렸다요? 이 무신 날벼락이다요? 호메, 우리선장님 시상에 겁난거이 없던 사람인디 똥구녕이 그리 약했쏘?”
“그것도 최근에 큰 병원 옮겨서 발견했다. 진작 큰 병원 가보라니까 글케 고집부리더마는. 에이 씨빨. 자꾸 욕이 나오네.”
번개도 갑판장도 그때부터 말이 없었다. 그냥 술잔만 기울였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어선들은 집어등을 밝히고 다음날 작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선원들의 작업현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갑판장이 말했다.
“인자 하모호선장, 배는 다 몰았는갑다. 인생이란기 참 별시럽다. 한 놈은 죽어라하고 잘돼고 진짜 살라꼬 바둥거리는 사람은 자빠지고. 에이 씨빨.”
또 술잔을 연거푸 두잔 들이킨 갑판장이 취기를 못 이겼는지 아니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못 이겼는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사정해도 노래 부르지 않는 갑판장이었다. 노래방에서 선원들이 사정사정하다 못해 애걸하다시피 해도 노래하고 인연이 없다던 갑판장이 갑자기 한 곡조 뽑자 번개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번개의 두 눈은 갑판장의 노래가 이어질수록 얼굴을 거의 덮어 버릴 정도로 커졌다. 갑판장의 말대로 갑판장의 노래는 별스러웠다. 고음저음이 분간 안 되는 완전중음이었다. 마치 랩 같았다.
사아아공에 배앳노오래 가아무울거어리이고오 오오
사암하아악도오 파아도오오소오오리 스으며어드으는은데
부우우두에 에에 에에
갑판장이 스크라치 난 LP판처럼 가사를 잊고 제 음절에서 계속 ‘에 에’ 거리자 번개가 퍼뜩 갑판장의 노래를 이었다.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에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서름.
번개가 목포의 눈물을 끝내자 갑판장이 한숨을 팍 쉬었다.
“음메. 이 노래부릉께 목포가고 싶소잉. 흥님, 우리 목포갈라요?”
“목포는 누가 밥먹이준다더나?”
“배타면 되지라.”
“배라캤나? 그 시절이 좋았다. 허나, 이젠 다 틀렸다. 하모호도 언제 팔릴지 모르고. 선장도 자빠져 삐릿이니 늙은 날 누가 써준다카더나? 그래도 말은 고맙다. 허지만 말이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늘이 부르면 가야겠지만 남은 사람은 또 우야노?”
갑판장이 숙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눈가에 울진항 밤바다만큼 우수가 짙게 절었다.
번개가 궁금해서 물었다.
“남은 사람이라캤소? 흥님은 씽글아니어라?”
갑판장은 끝내 번개의 물음에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박성기회장은 액풀이한다고 며칠 째 밤새 전 층에 불을 밝혀 놓은 자신의 새 건물 앞에서,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찍어 놓고 일 년 전부터 달라는 아래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머하노식당자리를 주고도 여유가 있다. 평수 말이다. 그러나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달라는 장소는 절대 줄 수 없었다. 설계도면이 나오고 기초공사 때부터 그 자리를 점찍었을 때만해도 철썩 같이 약속했던 자리다. 그러나 건물이 윤곽을 잡아가고 쑥쑥 자랄수록 박성기회장의 마음은 조금씩 변했다.
머하노식당일대가 재개발로 결정 나면서 어구 상들이나 선박부품업체 그리고 잡동사니 상점들이 외지로 몰려나면. 박성기회장의 건물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가가 형성되는 건 뻔한 일인데, 지저분한 식당을 머하노식당아주머니에게 임대해 주면 건물이미지가 죽을 것은 자명했다. 그래서 머하노식당아주머니에게 깨끗한 일식집이나 전문요리점을 하도록 권유했다. 허지만 머하노식당 아주머니는 한사코 반대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위판장일꾼들을 위해 현재의 레시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재, 생각해바라. 위판장 사람들이나 노점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처지 아재가 더 잘 안다 아이가? 내가 한 푼 더 벌자고 업종 바꾸면 우찌 되겠노? 머하노 밥 묵으러 오는 사람들 백원 이백원 함부로 몬 쓰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그래도 내가 여서 버팅께 다른 식당들이 값 몬올맀다. 그 사람들 오백원만 올리도 몬 사묵는다. 밥 굶는단 말이다. 알겠재? 아재?”
머하노식당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라 박성기회장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나간 정리를 생각하면 마땅히 그저 드려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외국바이어들도 드나드는 유기오울진종합수산센터의 품위를 지켜야 할 때다. 지나간 정에 얽매이면 어떻게 앞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반문하며 박성기회장은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지나간 날의 기억을 밟고 가는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박성기회장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걸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카페 아마추어'불자라'
"종교란 살아가는 가치관과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보석"
첫댓글 어느듯 벌써 음력12월 이제는 달력도 새로운것으로바뀌었으나 우리는 오랜풍속때문에 몸에젖은듯 항상 음력구정이되어야 새해가 정식으로 오는듯합니다.
세월이유슈같다하나 아마도 (전광석화)보다 더빠르늣합니다
잘보고나갑니다
잘보았읍니다
시간되면 글을읽으려고 아마추어불자라를찾읍니다
네 사천왕님
날이 좀 흐립니다
허지만 신나는 저녁시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