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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3일 목요일 [(녹) 연중 제12주감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유다 임금 여호야킨이 항복하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나라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만 남기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포로로 끌고 간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만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며, 모래와 반석 위에 지은 집의 비유로 군중을 가르치신다(복음).
<바빌론 임금은 여호야킨과 건장한 모든 사람을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이스라엘 백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사건은 바빌론 유배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약속된 땅에 살면서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이란 자긍심을 갖고 예루살렘 성전에 거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이민족의 땅에서 이방 신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 치욕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
가르친 바를 산다는 것 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시켰던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은 안타깝게도 39세의 나이로 암살당합니다. 영웅적 죽음 이전 13년 세월 동안 그는 흑인들의 인권 신장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펼쳐나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합니다. 당시 흑백으로 나눠져 있던 학교의 통합, 대중교통 수단의 통합,거주지 통합, 흑인들의 투표권 확대, 흑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녔습니다. 교통사정이 좋지 않던 당시 상황 속에서 총 600만 마일을 돌아다니며 2500여회의 연설을 해나갔습니다. 오랜 고민과 성찰 속에 만든 로드맵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실행해나갔던 것입니다. 암살된 그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의 심장은 반복된 과로, 계속된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60세 되는 사람의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명설교가만이 아니라 자신이 설교한 바를 자신의 삶 안에서 그대로 적용한 실천가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돈 보스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돈 보스코 역시 교육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하는 교육자였습니다. 평생토록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는 언제나 수많은 일과 고뇌와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부족과 만성 피로에 시달렸습니다.
돈 보스코의 시신을 검안했던 의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그런 시신은 정말 보기 드물었습니다. 마치도 모든 것이 다 타고 이제 겨우 재만 남은 것과도 같은 그런 시신이었습니다. 영혼이 빠져나간 그의 시신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신에는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완전히 시든 꽃과 같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두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공생활 기간 내내 들은 바를 믿고, 믿은 바를 가르치며, 가르친 바를 살아가셨습니다. 당대 수많은 거짓예언자들과는 달리 가르치신 바를 온 몸으로 살아가시면서 백성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셨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선포하셨는데 그에 대한 실천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기에 앞서 당신 몸소 선포하신 메시지를 실천하는데 앞장서셨습니다.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진정성은 선의, 지속성, 언행일치가 담보될 때 사용가능한 말입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행적에서 우리는 참된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악의가 아니라 선의를 가지고 진심을 담아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은 살아있어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그분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으시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통해 인류와 세상의 구원이라는 단 한 가지 노선을 일관되게 유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에게도 거창하고 원대한 계획도 좋지만 매일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 복음 7장 21절) 이 세상에서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노동만큼 무서운 형벌은 다시 또 없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이 진정으로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인가 끊임없이 성찰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뚜렷한 계획과 목표가 수립되면 온 몸과 마음을 바쳐 그 일에 헌신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잘 실행하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The true disci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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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3일(목) 음5/19 오와니에의 福女 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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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레의 어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마리아(Maria)는
* 자료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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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생활을 원했지만 선행의 삶을 전제로 결혼을 받아들이니
남편도 협조하여 집을 나환자 구호소로 내어 놓고 함께 허름한 옷차림에 곤한 잠마저도 아끼며 환자들을 돌보았고
다시 남편의 허락을 받아 수도원 가까운 곳에서 독수 생활에 들어가니 환시와 기적의 신비가 따랐던
오와니에의 복녀 마리아 님이시여
선행과 기도가 저희 삶의 중심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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