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 삽입된 내 친구 이야기
며칠째 폭설이 내려 세상이 온통 눈 덮였고, 한길은 두껍게 빙판 져 차량들은 체인을 감고서도 엉금엉금 기었다. 아직 아침나절인데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L이 사냥용 공기총 한 자루를 빌렸다며 찾아와 새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어인 엽총에 새? 사냥하는 걸 구경하기는 했지만 직접 사냥을 나섰던 적은 없었다. 새를 잡는다기보다는 총이나 한 번 쏴보자는 생각으로 따라나섰다. L은 중학교로는 나에게 일 년 선배였지만 고등학교로는 동기동창이었다. 그가 중학을 졸업하고는 일 년 꿇고서 고교에 진학했기 때문이었다. 선배였기에 한 동네에서 마주치면 그저 눈인사나 하는 정도였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내리 삼 년 동안 같은 반으로 지내다 보니 급격히 절친이 되었다. 우리가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다른 곳에서 이사를 떠나 그 동네로 들어간 것은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 때였다. 그러면서 보게 된 그 친구(선배)는 여자처럼 얌전하고 말수도 적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온 저녁때나 특히 방학 같은 때면 아이들이 다 쏟아져 나와 동네가 떠들썩하기 마련인데 그는 잠시 보였다가도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보이지 않곤 했다. 그것이 그의 아버지를 닮아 그런가 보다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때 벌써 백발 할아버지였는데 일요일이면 깨끗한 옷차림에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가는 장로로써 점잖기로 소문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동네에서 큰 소리 한번 나지 않는 조용한 집이었는데, 그의 위로는 누나들이 많았고 결혼한 큰누나 아들인 조카가 벌써 그와 나이가 엇비슷한 정도였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정확히 몇 명인지도 모르는 그의 많은 누나들 맨 아래로 아들이 둘 있었는데 그가 그나마도 두 아들 중 형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를 닮아 얌전한가보다 여겼던 L이 막상 친해지고 보니 얌전하면서도 의외로 놀기도 잘 놀고 술도 잘 마시는 등 모자랄 것 없는 남자 그대로였다. 그러면서 천생 남자 그대로인데도 몸에 밴 얌전이는 또 뭐냐고 묻자 하는 말이 태어나면서부터 위의 많은 누나들에 치어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여자 성격 같은 구석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교회 다니면서 술을 끊어서 그렇지 그러기 전에는 엄청난 술꾼이었다고, 자신이 술을 잘 먹는 것도 실은 아버지 쪽의 내력일 거라고, 아무튼 엄청난 술꾼의 아버지였던 까닭에 월급날이 되면 당신이 술집 순례를 하면서 불쌍한 사람들 주워가라고 길거리에다 돈을 뿌리고 다니는데 그 때문에 집에서는 비상이 걸려 누나들과 함께 아버지의 직장 앞에서 기다렸다가 뒤를 쫓아 따라가며 그 돈들을 주워 와야 했다는 것이다. 그처럼 엄청난 술꾼 아버지가 둘째 딸인가 셋째 딸인가가 목사와 결혼하고 그러면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술을 완전히 끊고는 집안에서 큰소리 한번 담장 너머 흘러나오지 않는, 동네에서 제일 점잖은 어른이 된 것이다. L이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이 그렇게 변하기도 하는가 했었다.
아무튼 집안 내력도 그렇고, 내가 주로 어울리던 친구들 무리와는 별도로 또 다르게 몇 년 동안 어울리며 절친으로 지냈던 L. 그 친구가 죽은 지도 어느새 십 년이 넘어가고 말았다. 내가 지금의 아내인 Y와 결혼을 하면서 그 소도시를 떠나고 L 역시 직장을 잡아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우리는 서로 연락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그래도 언제든 만나면 예전처럼 마주앉아 히히 낄낄거리며 술잔을 나눌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L의 죽음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내 동생이 L의 동생에게서 듣고 전해온 소식이었다. 내 동생과 L의 동생은 아직도 그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너네 형은 잘 있지? 우리 형은 죽었어. 그게 지나가다 만난 L의 동생이 내 동생에게 한 첫마디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통사고로 그렇게 됐다고, L이 차를 몰고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내 충격이 얼마나 컸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그처럼 죽을 수 있는가. 멍한 기분이었다. 둔기로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으면 그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러면 L의 처(妻)는……? 아이들은……? 하다가도 생각은 툭툭 끊겼다. 더 이상의 생각 자체가 그저 먹먹하기만 했다.
그래도 잠시 그 옛날 공기 수렵총을 들고 새를 잡으러 갔던 날을 떠올려 보면 그날의 일들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땅바닥에 거꾸로 처박고서 펌프질을 하고 산탄을 끼워 저 허공의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그 일대의 차갑게 언 공기를 뒤흔들 듯 울리며 터져 나가던 그 엽총과 총성……. 시내에서는 새가 있다 해도 총을 쏠 수 없었으므로 버스를 타고 좀 멀리 나가기로 했다. 길이 온통 빙판이라 엉금엉금 기듯이 하는 버스를 타고 사오십 분 가량을 달리다가 내렸다. 야산이 있고 하얗게 눈 덮인 밭 자락들이 아주 완만한 경사로 펼쳐진 곳이었다. 달리는 버스에서 줄곧 차창 밖을 내다보며 마땅한 곳을 찾다가 이곳이다 싶어 내린 것이었다. 비교적 넓게 펼쳐진 밭들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낮은 야산들과도 멀지 않아 제법 새가 있겠다고 판단되어졌다. 우리는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가로지르며 허공을 훑었다. 하지만 새들이 생각처럼 많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몇 마리씩 어울려 날아다니고 그러다가 농로 가의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기는 했지만 드물게 만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면 날씨가 너무 추워 새들도 제 둥지에서 나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가끔 나뭇가지에 내려앉는 새 보게 되면 L과 나는 걸음을 멈춘 채 숨을 죽이고는 총을 겨눠 그 긴장의 순간을 폭발시키듯 방아쇠를 당겼다. 언 유리창 같은 하늘을 깨는 듯이 울리는 총성. 그러나 나뭇가지 위의 몇 마리 새들은 놀라서 날아가고 허공을 갈랐을 그 산탄 총알에 맞아 떨어지는 새는 없었다. 그렇지만 어디 한두 번에 배부르랴. 우리는 또 눈밭을 해치고 나가며 다시 새들을 찾곤 했다. 그렇게 눈밭을 헤매 다니기를 수 시간. 새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새를 잡는다는 것도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다. 이십여 발 넘게 총을 쐈지만 단 한 마리의 새도 잡지 못했다. 이거 총이 완전히 후졌구만. L이 총신으로 나무를 툭툭 치며 낄낄거렸다. 맞아. 총이 형편없어서 그래. 우리는 장비 탓으로 돌리며 너털너털 웃었다. 애초에 새를 잡을 목적은 아니었다. 설혹 새를 잡았다고 해도 처치 곤란이었을 것이다. 발을 푹푹 빠져가며 겨울의 눈 쌓인 들판을 휘젓고, 저 허공을 향해 총을 쏴본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만족했다. 겨울의 짧은 해는 빠르게 기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시골 동네의 버스 정류장이 있는 허름한 가게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놓고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버스가 생각보다 좀 일찍 오는 바람에 미처 다 마시지 못하고 버스에 올라 돌아왔다.
L과는 동네 앞에서 헤어졌다. L의 집과 우리 집은 직선거리로 치면 불과 삼사십 미터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서로 들어가는 골목이 달랐다. 그렇게 골목으로 들어서서 얼마쯤 지나 대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그만 나를 멈칫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내 방으로 들어가는 좁은 마루 앞에 놓인 여자구두. 그것도 한 켤레가 아니라 두 켤레였다.♧
♬ - Last Summer, Official Trailer
첫댓글
삼척에 환선굴...
동굴속에 모습이 참 다양하게 아름다운데
삼척을 다녀 가셨나 봅니다
그림들이 아주 신기한데
저도 한 십여년이 되었지 싶어요
다녀 왔답니다
네 추석전에 설악산행후 새벽녁에 이동하여
더위도 식힐겸 환선굴을 돌아보고 동해안에서
점심먹고서 도착하여보니 하루해가 지더군요.
@행운
아마 저 동굴에선 자신 쵤영이 금지인 걸로?
동해에서 한 끼 식사를 하셨어요
하여튼 팔도의 음식은 다 드셨지요...
@양떼 네 산행후 꼭 맛집에 들리니
팔도 미시까랍니다.지금에는
핸드폰을 수거하지않으니
요즘에는 대부분 촬영은
카메라도추억들을 담아오니
어쩔수 없이 연구보안지역,
군시설외에는 허용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