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성미산학교는 인원수가 적은 대안학교이지만 도시형이고 일반학교에 비해 존중받고 개성의 표출이 많아 그런지 매일 뭔가 문제가 발생한다. 아직은 그런 일들에 내가 잘 대처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한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안타깝고 슬펐다. 주말에 아이에게 편지를 쓰려다 쓰지 못했다.
아내가 마시는 차가 떨어져가는지라 인사동에 나갔다. 찻집에 가기 전 광화문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 책방에 갔다. <녹색평론> 97호와 최근 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들 생각이 나서 <섹스 북>, <당당하게, 여자!>1,2권, <현경과 앨리스의 신나는 연애> 그리고 반갑게도 존 테일러 게토의 교육 비평서인 <바보 만들기>를 만나 샀다. 이철수의 판화와 편지가 담긴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도 샀다. 생각보다 많이 샀지만, 살 책을 산 느낌이다.
헌책방을 나와 조계사에 들렀다. 마침 해가 지는 시각이라 범종각에 법고 소리가 울렸다. 한동안 법고 울리는 모양을 구경했다. 어루고 달래고 격동하는 스님의 북채놀림에 영혼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법고 다음 목어, 목어 다음 운판, 운판 다음 범종의 타종이 있었다. 온 세상 중생을 다 어룬 셈이다. 저물녘의 시간과 잘 어울린다. 조계사 대웅전 앞 왕버드나무와 500년 된 백송을 구경했다. 높이 7,8미터는 됨직한 부처님 앞에 신도들이 독경을 하고 절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거리엔 목련이 피어 있었다. 인사동에 오니 수양버들의 가지에 물이 올라 연둣빛 발을 쳐놓은 것 같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절정의 순간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해질녘 인사동 수양버들은 연둣빛 분수 같고 규방의 은은한 발 같다. 그리고 수많은 내외국인들이 거닐고 있어서 마치 천 년 전 신라의 경주통을 걷는 기분이었다. 역시 저녁이 주는 특이한 차분함 때문일 것이다.
학교와 집을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다가 봄이 이만큼 지나가고 있는 걸 미처 몰랐다. 진달래도 벌써 지나고 있는데, 나는 겨우 집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진달래를 보았을 뿐이다. 적어서 간절하고 적어서 묘미인 것들도 있다고 자위한다.
저녁엔 지유명차에 들러 차를 두어 시간 마셨다.
차를 마시다 밥 얘기가 나왔다. 나이 들며 나도 느끼는 것이 역시 밥이 최고라는 것이지만, 밥맛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압력밥솥도 맛이 있지만, 가마솥이 최고라는 것이다. 불 냄새 밴 가마솥 밥은 방학 때 내려간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나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불 때는 것을 좋아했다. 나뭇재가 살짝 날아와 얹히기도 했지만 가마솥에 한 시골밥의 냄새와 맛은 확실히 잊을 수 없다.
마침 다른 곳에서 팽주 하시던 여자 분 같이 있었는데, 가마솥은 너무 불편하다고 말을 하니, 아는 한 노인이 ‘그런 데 정성을 쏟지 않고 어디에 정성을 쏟겠는가’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밥의 소중함과 간절함을 아는 사람은 더욱 그렇게 느낄 것이다. 더구나 사라진 가마솥에 대한 추억이 가득한 분들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는 살림이 아니라, 여자만의 노동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마음이 맞아 함께 가마솥 밥을 지어먹을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집에 오니 열시 가까이 되었다. 전철에서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