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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고난의 종 말씀/ 이사야 49:1-53:12 요절/ 이사야 53:5,6 | 2023. 8. 20 | |
이사야 제 15 강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늘 말씀에는 여호와의 종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종은 고난의 종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고난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고난 없는 인생을 꿈꾸기도 하지만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고난을 이기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9:1을 보십시오.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 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여기서 ‘나’는 누구입니까? 먼저 이사야가 떠오릅니다. 3절에 보면 그는 여호와의 종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입니다. 그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을 대변합니다. 섬들은 온 세상을 가리키며, 먼 곳에 있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태에서부터 이사야를 부르셨고 그에게 특별한 뜻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르셔서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그의 손 그늘에 숨기셨습니다. 또한 그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날카로운 말씀의 종으로 연단하시고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쓰시기 위해서 그를 감추어두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그를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 특히 회개와 심판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은 이사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고백을 합니까? 그는 헛되이 수고하였다고 했습니다.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토록 뜨거운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유다 백성들에게 전했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헛수고한 것 같았고, 청춘과 인생을 낭비한 것 같았습니다. 힘이 빠졌고 허탈했습니다. 하지만 낙심과 절망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힘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보면 힘이 빠지고 절망스러웠지만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는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수고와 희생을 다 보고 계시고, 그의 삶을 의로운 삶으로 평가하시고 그의 상급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태에서부터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지으신 분이요 야곱을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알게 된 종은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자신이 영화로운 자이며, 그의 하나님이 그의 힘이 되었다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방인 구원과 세계선교 비전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를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야곱의 지파를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고 하십니다. 이사야는 유다 백성을 일으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 일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큰 뜻을 두고 계십니다. 그것은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십니다.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7)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미움을 받고 핍박과 조롱을 당하였지만,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더 나아가 열방들을 품고 기도하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왕들과 고관들은 이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존중하고 위기의 때에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여호와의 종은 궁극적으로는 메시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방의 빛으로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미움과 조롱을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심으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사 그 앞에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구원자로 세워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고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습니다.
한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안전한 나라로서 여행하기 좋은 나라라는 평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리를 활보하고 등산을 하는 것도 안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흉기를 들고 다니는 자들, 마약을 하고 성폭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있어서 여인들은 외출하기 겁나고 일반시민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범죄를 막기 위해 경찰인력을 더 많이 동원하고 CCTV를 더 많이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고, 인성교육과 가정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범죄를 막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는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온상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죄인으로서 자기를 발견하고 애통하는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죄와 어두움과 사탄의 세력에서 벗어나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태에서부터 나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나를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연단하시고 말씀의 종이요 성경선생으로 키우셨습니다. 혼돈과 절망이 가득한 오늘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켜 주시고 이제는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립니다. 춘천 5개 대학 학우들이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9월 수요바이블카페를 통해 갈급한 영혼들이 주제강의 말씀과 인생소감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기쁨과 희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9:8-50:3은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생활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나오라 하며,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시고,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않게 하여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올 것입니다. 이는 동서사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레스의 귀환령 때 돌아온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고, 흩어진 북이스라엘 백성들과 많은 이방인들이 포함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돌아오는 역사는 메시아 시대 다시 말해 신약시대에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하늘과 땅과 산들도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역사를 보며 노래하며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시온은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하였지만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신부처럼 맞이할 것이며 소중히 여기실 것입니다. 황폐하고 적막한 예루살렘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그들을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입니다. 여호와는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그 자녀들을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혼증서를 준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었고 그들의 패역함으로 말미암아 포로로 끌려갔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그들을 구속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건질 능력이 없어서 그들이 포로가 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이 망하고 비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고 하나님의 언약백성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50:4-9은 여호와의 종이 어떻게 사람을 돕는지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여기 ‘나’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이사야로 볼 수도 있고 메시아로 볼 수도 있습니다. 곤고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학자의 혀와 학자의 귀가 필요합니다. 학자라고 해서 지식이 많은 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 학자는 배우는 자입니다.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곤고한 자를 잘 도우려면 그의 상황에 맞는 말, 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에게 학자의 혀를 주셔서 곤고한 자를 잘 도울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또한 사람을 잘 가르치고 돕기 위해서는 학자의 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지혜로운 말씀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학자의 귀가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고 내 마음의 양식이 되고 힘이 됩니다. 내가 말씀을 가지고 있고 말씀이 풍성할 때 곤고한 사람을 적절하게 도울 수 있고 위로와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침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학자의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각을 내세워 하나님께 거역하지 아니하였고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고 고난과 십자가 말씀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때리는 자들에게 그의 등을 맡기며 그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그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그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심으로 그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그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람들의 핍박과 모욕과 조롱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셨습니다. 그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의 대적이 누구냐 하며 사단의 고소를 물리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역사를 섬기며 사단의 고소를 많이 받았고 견디기 힘든 고난에 직면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적신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3-37)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흑암 중에 있을지라도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여호와를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는 고난을 없애 주시지 않고 고난을 견디고 이기는 삶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고난들이 있습니다. 특히 복음역사를 섬기는 자들에게 더 많은 고난이 따릅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고난을 견뎌내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발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51:4,5을 보십시오. 구원과 심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하나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이 있는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악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하나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를 아는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를 믿고, 의의 나라 사랑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파수꾼들의 외치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52:7,8을 보십시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파수꾼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그들은 평화를 공포하며 구원을 공포했습니다. 그들은 복된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은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왕들의 통치는 복된 좋은 소식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복된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와 사랑으로,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십니다. 무엇보다 백성들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52:13-53:12은 여호와의 종 노래의 절정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저자는 여호와의 종 노래의 결론을 서두에서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종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지극히 존귀하게 되셨습니다. 하지만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았고 거절하고 배척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의 모습이 너무 보잘 것 없고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고 얼굴이 아이돌처럼 빼어나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매력도 없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였습니다. 간고는 슬픔을, 질고는 병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고난이요, 그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53:5,6을 보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난의 종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시고 상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치유와 건강을 위해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목자 하나님을 떠나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길로 갔습니다. 그 길은 어두움과 죽음과 심판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목자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 모두의 죄악을 독생자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루어주시고 우리에게 참 평화와 자유와 건강과 하나님 나라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해진 복된 좋은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불의한 재판을 받고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고,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셔서 승리의 주, 영광의 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 가운데 질병으로 고통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마음이 힘든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고 있는 자녀로 인해 편히 잠을 자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교만과 정욕에 자주 빠지는 자신을 보며 무력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십자가 복음입니다. 매순간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인정하고 십자가 복음을 믿고 의지하는 자만이 죄사함과 강건함과 새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