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날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종희
아침 6시 30분. 우리 부부는 무창포를 향해 집을 나섰다. 재롱을
피울 손자들을 그리며 전주군산 간 산업도로로 진입하니 안개가 시야를 방해했다. 2, 30m 앞을 분간하기 어려워 속력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는 만개한 벚꽃이 흐릿하게 보인다고 불만이었다. 서천 IC를 지나서야 조금씩
걷혔다.
무창포 비체팰리스 콘도에서 아들 차에서 내린 손자들이 앞을 다투어
안겪다. 녀석들과의 따뜻한 체온이 합해지는 순간 너무도 행복했다. 볼을 비비고, 뽀뽀까지 서슴없었다. 집에서 챙긴 통 두 개, 호미, 약초 캘
때 썼던 작은 약초괭이와 조금 묵직하고 뾰족한 괭이를 꺼내 하나씩 들려주었다. 이제부터 신비의 바닷길을 따라 해산물을 채취하러 출격하는 것이다.
오늘 바닷길이 열린다고 예고된 10시가 되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저마다 이곳저곳에서 모래사장을 헤집는다. 드디어 장화를 신은 사람들이 앞장서
나가고 뒤를 이어 행렬이 따랐다. 이럴 때를 인산인해人山人海라고 하는 것인가.
주위보다 높은 해저 지형이 바닷물이 빠질 때 드러나는 현상, 즉
조석潮汐의 영향으로 바닷물이 빠진 것이다. 이 현상을 한자로는 해할海割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화성군 제부도, 전남 영광 상하낙월도,
완도의 노호도·노록도, 전남 여수의 사도, 충남 보령시 무창포, 전북 변산의 하섬에서 자주 일어난다. 특히, 전남 진도의 해할 현상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4m 이상일 때 일어나 주목을 받기도 한다. 성경에 모세가 지팡이를 홍해 위로 들어 바닷물이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 수백만 명과
동물이 안전하게 건넜다. 그러나 뒤따라오던 이집트 군들은 바다에 수장되었다는 모세의 기적도 이런 현상이라고 한다.
조개 캐기는 90년대 초, 부안군 진서면 후배 집에 놀러가서
바지락을 낚시미끼로 쓴 일이 있다. 또 심포항 앞바다에서 호미로 긁기만 하면 모시조개가 걸려나오는 재미에 빠져 허리가 끊어지는 줄도 몰랐던 일이
있었다. 간혹 백합이 나올 때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앞장서서 이곳저곳을 긁어보지만 조개를 구경할 수가 없다. 부지런히 호미질 하는
옆집 통을 곁눈질해보니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바닥을 차례로 긁는 것이 아닌가. 나도 차분하게 앉아 한쪽에서부터 긁어댔다. 어깨가
아파올 즈음에야 바둑알만한 놈이 하나 걸렸다. 그놈이라도 어딘가. 이곳저곳을 헤매는 손자를 불러 요령을 알려주었다. 한참을 긁어댔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다시 20여m를 걸어갔다. 또다시 부지런히 긁어대는 아줌마가 눈에
띄었다. 역시 바구니를 보니 내 엄지손톱 마디보다 큰 바지락이 제법 들어 있었다. ‘바로 여기구나’싶어 옆자리에서 괭이질을 했다. 대여섯 번
했을까? 나도 큰 바지락 한 개를 담을 수 있었다. 눈이 번쩍 띈 나는 아들과 손자들을 불렀다. 아들은 알아듣고 왔는데, 손자 상완이는 괭이질에
빠져 있었다. 공부할 때도 저렇게 인내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父자가 들어간 사람의 욕심인가보다. 할 수 없이 아들이 가서
데려왔다. 그간에 걸린 바지락이 새끼손톱 마디라면 이제 본 바지락은 엄지손톱 마디였으니 상완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와!”소리를 터뜨렸다. 손녀
수빈이도 찾아보겠다고 괭이질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시간이 갈수록 지치기만 할 뿐 통에 담기는 게 미미했다. 괜히 어린 손자들
몸살 날까 걱정되어 그만 나가자고 했더니 아들은 반기는 눈치였고, 손자들은 아쉬워했지만 따라 나왔다.
바지락 칼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숙소에 가서 체크인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새벽부터 설친 피로와 식곤증이 한꺼번에 밀려와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한참을 자고 눈을 뜨려니 눈꺼풀이 무거웠다. 시계는 5시
반이었다. 6시가 되어서야 큰딸가족이 도착해서 함께 수산센터로 갔다. 무창포 특산물인 주꾸미 축제를 즐기고 싶었다. 주꾸미 1kg에 4만
5천원, 광어는 3만원이었다. 아홉 식구가 먹을 만큼 사서 2층 식당으로 갔다. 이곳은 1kg에 1만 원씩 수고비를 받았다. 꿈틀대는 주꾸미를
끓는 물에 넣을 때는 머리부터 넣으라고 했다. 머리를 마비시켜 다리를 요동치지 못하게 하는 지혜였다. 며느리가 먼저 잘라주는 주꾸미 다리는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사위가 따라준 소주잔을 나도 모르게 입에 부었다. 상추에 광어 한 점을 놓고 마늘, 고추, 된장을 얹어 씹는 맛이라니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말이구나 싶었다. 서너 점을 입에 넣고서야 둘러보니 저마다 바쁜 입놀림이다. 이렇게 잘 먹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오늘은 내가 낼 테니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자식들은 많이 먹어야겠다고 농담을 하며 씹는 소리가
커졌다.
돌아오는 길 숙소 앞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손자들이 좋아할
것 같아 2천 원짜리 하나씩 사주었다. 큰손자 동준이부터 차례로 시연시켰다. 동민이, 수빈이도. 상완이는 무서운지 뒤로 물러섰다. 담력이 약한
것인가? 제 동생인 수빈이도 하는데 말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해보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사주었더니 높게,
낮게, 곡선 등 기교를 부리며 몹시도 좋아했다. 새로움을 창조할 때마다 터지는 환성, 이럴 때 두되가 활기를 찾지 않겠는가.
방에 들어가니 며느리가 준비하느라 한창이었다. 남겨온 주꾸미를
데치고, 통닭이며, 과자 등을 탁자에 올려놓고 케익도 내 앞에 놓았다. 20일이 내 생일인데 며느리 해외출장 때문에 앞당겨 만난 것이다. 지난번
출장 때 제 아내가 사왔다며 사각 상자를 여는 아들손이 가벼웠다. 투명한 보석과 같은 병에 담긴 맑은 술이었다. 중국 3대 명주로 잘 알려진
마오타이, 오량액과 함께 하는 수정방이라며 아들의 톤이 높아진다. 중국 백주 제일방인 전국중요문화재라는 수정방水井坊은 병 밑에 그려진 6폭의
그림은 금관성의 심오한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했음을 알려주었다. 소박하고 고전적인 받침대는 목재로 제작되어 수정방이 중국 농향형浓香型 백주의
원조를 뜻하며, ‘원산지 지역보호’를 나타내고 있어 진귀함을 더해 주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온 방안에 퍼지는 향기. 한 모금 마시니 은은한
사과향이 코를 자극하며 입안으로 들어와 목구멍으로 넘어가더니 이내 창자를 자극한다. 독하다기보다 넘어갈 때 따끔하면서도 향긋하며 단맛이 났다.
나는 입에서 싫지 않다는데, 사위는 독하다고 소주를 마셨다. 나 혼자 마시는 수정방, 정말 끌리는 술이었다. 사위가 마시지 않으니 내 몫이
많았다.
다음날 갈매못 성지를 순례하고 헤어지려는데 아들이 트렁크에서 커다란
상자를 낑낑거리며 내 차에 상자를 실어주었다. 액이 진하니까 물을 약간 희석해서 드시면 좋을 거라며 아로니아 엑기스 먹는 방법까지 설명해
주었다. 가슴이 울컥해졌다. 고추를 내놓고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불혹을 넘어 부모를 생각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날마다 오늘 같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
자식들과 만난다는 설렘, 신비의 무창포 바닷길에서 조개 캐기 체험,
주꾸미와 광어회, 중국의 명주 수정방, 손자 상완이·수빈이·수연이와 한 이불을 덮은 하룻밤은 몹시도 행복했다. 더불어 갈매못 성지에서, 온
가족이 병인박해 때 순교한 프랑스 외방선교 소속 다불르 주교를 비롯한 순교자들의 거룩한 뜻을 기억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어제 아침 안개에 가려 화사함을 볼
수 없었던 벚꽃이 기어이 아내의 콧노래를 끌어내면서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주었다.
(2016. 0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