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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우리 비판에 대한 인도인의 반박
다우리 문제를 제기하면 '인도 종특'인 말 돌리기를 시작한다. 인도인이 서구 선진국에 대해 품은 열등감 버튼이 눌리기 때문이다. 우선, 결혼지참금은 서양·중동·동양 사회에도 폭넓게 퍼진 풍습일 뿐 인도만의 고유한 풍습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몇몇 사람은 다우리가 힌두 풍습이 아니고 서양에서 넘어온 외래 풍습이라며 궤변을 펼친다. 하지만 현대 서구 사회에서는 인도 다우리 비스름한 풍습은 거개 사라졌다는 말은 쏙 빼놓는다.
더불어 몇몇 인도인은 '영국 식민 지배 시기에 남성에게만 토지소유권을 인정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여성이 보호받으려면 다우리를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요즘 인도 보수주의자들은 뭐만 하면 영국 탓을 하는데, 결국 다우리도 영국 탓이라는 거다.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를 탓하는 게 한국 보수와는 다른 듯하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인도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다우리는 1947년 독립 이후 급증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보험금을 노린 살인도 많이 일어나는데 왜 이런 보험금 살인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다우리 살인만 문제 삼느냐?'라며 신박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물론,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하는 경우 남자가 여자를 죽이는 때와 여자가 남자를 죽이는 때가 골고루 섞여 있어서 나름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반면, 인도에서 벌이는 다우리 살인은 거의 100% 여성이 피해자라는 이야기는 쏙 빼놓는다.
인도 정부마저 다우리의 폐해를 인정하고 이미 1983년부터 다우리를 불법으로 지정했으나 이 법을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점 또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늘날 다우리 문제는 인도인이 부끄러워하는 여성 권리와 지위에 관련해 매우 껄끄러운 이슈인 터이다.
3. 다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다우리는 실제로 어디에서 기원했을까. 과연 일부 인도인이 주장대로 서양에서 유래한 악습일까. 그렇지 않다. 고대 인도에서는 신부 아버지가 신랑 아버지에게 돈을 주는 카니야단(Kanyadan)이라는 풍습과 함께 시집가는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스트리단(Streedhan)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스트리단은 부모가 죽기 전에 딸에게 일종의 '미리 상속하는 증여(Pre-mortem inheritance)'다. 과거 인도에서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가족 내 재산에 지분권이나 상속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던 터에 이를 보정해 주고자 여성에게 (주로 결혼하는 시점에) 재산을 나눠준 셈이었는데 여기에서 다우리가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와 현대의 결혼지참금 풍습에는 차이가 있다. 옛날의 스트리단 풍습은 시집가는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처분권을 줬다면 지금은 딸이 시집가는 시댁에 다우리를 제공하고 그 처분권도 사실상 넘긴다는 점이 다르다. 현대 인도에서는 다우리를 받는 신랑 가족이 신부가 가져온 다우리를 자기들 재산으로서 처분함은 물론이고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고 나서도 수시로 처가에 추가적인 다우리를 요구하며 신부를 괴롭힌다.
한편, 19세기 남인도 대부분 지역에서는 신부 부모가 아닌 신랑 부모가 결혼지참금을 지불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지금의 형태와 반대로 신부를 돈 주고 사 오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힌두교가 주류가 아닌 인도 북동부 지역에서는 신랑집에서 신붓집에 돈을 보내는 풍습이 잔존한다. 북중부 인도에서도 가난하거나 카스트 계급이 낮은 집안에서는 신랑집이 지참금을 부담해 왔다.
낮은 카스트일수록 미혼 여성이 육체노동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딸이 결혼 전에 친정에 제공하던 노동력을 가져가는 신랑집이 이 노동력을 보상한다는 뜻으로 신붓집에 지참금을 건넨 것이었다. 반면 카스트 계급이 높은 소수의 가족에서는 여성이 밖에 나가서 고된 노동을 해야 할 일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신부 부모가 신랑 집에 결혼지참금을 제공했다. '스트리단'과 같은 풍습은 그나마 딸에게 나눠줄 돈푼이나 있는 상층 카스트에만 한정되었던 터이다.
이렇게 지역과 더불어 경제·사회적 지위에 따라 제각각 다른 형태로 행하던 풍습은 1947년 인도의 독립 이후 점차 통일된 패턴을 띠기 시작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극소수의 지역과 카스트 계급을 제외하고는
(1) 신부의 집에서 지참금을 지불하며,
(2) 대략 신부 가정의 1년 치 소득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3) 과거 주로 보석류였던 지참금이 자동차, 가전제품 등으로 다양해졌고,
(4)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도 추가적인 지참금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4. 왜 오늘날 악습이 되었나
신부 가족이 다우리를 부담하는 풍습이 인도 전체로 퍼져나간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한때 북중부에 거주하는 높은 카스트 계급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나던 풍습은 불과 수십 년 만에 낮은 카스트 계급과 남부 지역까지 퍼져나갔다. 왜 이렇게 확산하였을까. 이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가장 첫 번째 추론은 바로 '산스크리트화(sanskritization) 가설'이다. 산스크리트화는 낮은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상층 카스트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자신들의 사회 지위가 높아 보이게 노력하는 행동 양식을 말한다. 즉, 다우리는 보통 상층 카스트에서 행하던 풍습인데 사회 지위 상승을 열망하는 하층 카스트가 모방하면서 인도 전 사회와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이게 설득력이 있으려면 하층 카스트에서 다우리 비중이 작았다가 쭈욱 증가하고, 상층 카스트에서는 높은 비중을 쭈욱 유지하거나 천천히 증가해야 한다. 하지만 그림에서 보듯이 1947년 독립 이후 카스트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 비슷한 속도로 다우리 결혼 비중이 증가했다. '산스크리트化'라는 가설로는 다우리 증가를 말끔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 가설은 '인도의 경제적 성장이 다우리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계속하면서 전체 인구의 약 1/4에 불과한 상층 카스트(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 가족에게 자기 딸을 시집보내고자 희망하는 낮은 카스트(수드라 및 그 이하 계급) 가족의 열망이 다우리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이 본격화되기 이전에는 인도 사회 전체의 부가 상층 카스트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경제성장 덕분에 많은 부를 축적한 하층 카스트 숫자도 늘어났다. 이제 하층 카스트 출신 미혼 여성도 높은 카스트 출신 여성과 동일한 경쟁 선상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경쟁은 격화되고 더 많은 가족이 더 많은 다우리를 제공하는 무한경쟁 구도에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가설에도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바로 인도인은 같은 카스트 내 결혼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인도인은 남녀노소·종교·카스트 계급에 따라 조금 다르기는 하나 대략 10명 중 8명가량이 '같은 카스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짓 바네르지(Abhijit Banerjee)와 에스터 듀플로(Esther Duflo) 등 연구자들도 동일 카스트 내 결혼 선호 현상이 인도 전역에 걸쳐 뚜렷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터이다.
세 번째 가설은 '신랑 질(質)이 높아지면서 신랑에게 지불하는 가격(groom price)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다우리는 냉정하게 말해서 신부가 신랑을 돈 주고 사 오는 '신랑 값(groom price)'이다. 신랑이 얼마나 가치 있는 상품이냐에 따라 다우리 수준이 달라진다. 신랑의 카스트·교육 수준·급여 수준·직업 등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신랑의 질 가설'에 따르면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교육 투자를 주로 남성 쪽에 하다 보니 신랑 값이 비싸지고 신부 측에서는 점점 더 비싼 값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에도 문제가 있다. 교육투자가 남성에게만 집중된 것은 인도만의 현상이 아니다.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도 경제발전 초기에는 남성 위주로 교육적인 투자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인도처럼 다우리가 급증하거나 결혼지참금이 적다고 해서 수천 명의 여성을 살해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더불어, 1990년대 이후로 인도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여성에 대한 교육투자도 빠르게 늘어났다. 다시 말해서 교육투자 금액으로 봤을 때 신랑과 신부의 상대적인 가치 차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가 신랑에게 지불하는 다우리는 오히려 더 느는 상황이다. '신부 질(質)'도 '신랑 질(質)'못지않게 높아졌는데 왜 다우리는 늘어날까.
이에 대한 답은 여성에 대한 인적 투자가 사회참여 즉 여성의 경제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도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은 전 세계 평균인 40%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인접한 방글라데시나 스리랑카보다도 낮다. 여성에 대한 교육투자가 수익으로 돌아오지 않고 매몰 비용으로 전락한다.
신랑이 미래에 벌어들일 경제적 이익을 상징하는 다우리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신랑이 외국 국적이고 선진국에서 그럴듯한 사업체라도 운영한다면 다우리로서 한국 돈으로 7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을 내야 한다. 인도 최고의 시험이라 할 수 있는 인도 행정고시(Indian Administrative Service) 합격자라면 1억 5천만 원에서 3억 원이 시장가격이다. 한국 물가 기준으로도 엄청난 금액이다.
화려한 의상과 보석 그리고 몇 날 며칠 계속되는 화려한 결혼식 행사, 수천 명이 참석하여 떠들썩하게 진행되는 인도 결혼식은 멋진 볼거리이자 양가 집안 사이에 가장 중요한 행사다. 이러한 인도식 결혼을 예찬하고 동경하는 시선도 제법 있다. 하지만 현대 인도에서 결혼은 양가 집안이 경제·사회적 지위를 재확인하고 공고히 하는 장이다. 철저한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거래 행위이다. 거래에는 가격이 있다. 그 가격이 바로 다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