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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새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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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들! 스크랩 重病이 들면 큰 病院을 가지 마세요?
조처음 추천 0 조회 7 16.05.14 00:5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중병(重病)이 들면 병원(病院)을 가지 마세요?

내가 격은 일인데 멀쩡한 사람도 병원(病院)에 가면

병을 고쳐야 하는데 도리어 망가져서 나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작은 병은 동네 병원(病院)으로 가시고

중병(重病)이라고 생각(生角) 되고 진행(進行)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생각(生角) 하면 다른 방법(方法)을 찾으십시오!

꼭 큰 대학병원(大學病院)이라고 해서

치료(治療)를 잘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병원(大學病院)에 의사(醫師)들은 많이 있지만 거의 모두가

수련의(修鍊醫) 아니면 인턴이나 학생(學生)들로

구성(構成)되어 진짜 전문의(全文醫)는

각 분야(分野)에 한사람 아니면 두 사람뿐입니다.

병원(病院)은 영리(營利)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組織)이다 보니

매상(買上)을 원칙으로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슈바이처 같은 의사(醫師)는 없다고 생각 하세요?

허울 좋은 흰 가운에다 선생님이라 칭호(稱號)는 허울 일 뿐입니다.

내가 겪은 바로는 의사(醫師)들도 돈이면

사족(四足)을 못 쓰는 것 같았습니다.

(아랫글중에서)

 

 

重病이 들면 큰 病院을 가지 마세요?

글 조 처음

세월(歲月)은 나도 모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세월(歲月)을 잡아 보려고 별별(別別) 짓을 다 해 보지만

내게는 힘의 한계(限界)가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흐르는 세월(歲月) 속에서

병든 몸을 이끌고 안간힘을 쏟아 봅니다.

겨울에 병이 들고 추운 정월(正月) 구정(舊正)아래에

병실(病室)을 찾아 입원(入院)을 했지만 치료는커녕

아무것도 이것저것 차도(差度)는 없었습니다.

병원(病院) 측에서는 최선(最先)을 다 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병을 알아내기 위하여

검사(檢査)를 한 것이 전부(全部)였습니다.

무슨 검사(檢査) 무슨 검사(檢査) 하면서

검사(檢査)한 비용(費用)이 일천만원에 육박(肉縛)했습니다.

아내와 자식(子息)들 보기에 미안하고

내 자신(自身)이 저주(咀呪)스러웠습니다.

자식(子息)들은 좀 더 있어 보자고 하지만 부풀어 오르는

입원비(入院費)를 감당(堪當)할 길이 없고 자식(子息)들 보기에

면목이 없어3月말(月末)일 경에 막내에게

퇴원(退院)을 강요(强要) 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운동(運動)을 열심(熱心)히 하고 있습니다.

병원(病院)에서 주는 52일치 약을 손에 들고

막내 자동차(自動車)로 그리운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病院)을 찾아 간 것을

몹시 후회(後悔)를 했습니다.

 

중병(重病)이 들면 병원(病院)을 가지 마세요?

내가 격은 일인데 멀쩡한 사람도 병원(病院)에 가면

병을 고쳐야 하는데 도리어 망가져서 나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작은 병은 동네 병원(病院)으로 가시고

중병(重病)이라고 생각(生角) 되고 진행(進行)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생각(生角) 하면 다른 방법(方法)을 찾으십시오!

꼭 큰 대학병원(大學病院)이라고 해서

치료(治療)를 잘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병원(大學病院)에 의사(醫師)들은 많이 있지만 거의 모두가

수련의(修鍊醫) 아니면 인턴이나 학생(學生)들로

구성(構成)되어 진짜 전문의(全文醫)는

각 분야(分野)에 한사람 아니면 두 사람뿐입니다.

병원(病院)은 영리(營利)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組織)이다 보니

매상(買上)을 원칙으로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슈바이처 같은 의사(醫師)는 없다고 생각 하세요?

허울 좋은 흰 가운에다 선생님이라 칭호(稱號)는 허울 일 뿐입니다.

내가 겪은 바로는 의사(醫師)들도 돈이면

사족(四足)을 못 쓰는 것 같았습니다.

내 막내아들이 교통사고(交通事故)를 당해

허리 보조기(輔助基)를 찼었는데

내가 현재 그것이 필요(必要)해서 그것을

내 몸에 맞게 수리(修理)해서 가져갔는데

멀쩡한 그것을 가지고 병원(病院)을 갔는데 그거는 못쓴답니다.

왜? 못쓰느냐고 물었습니다.

정형외과(整形外科)의사(醫師)라는 사람이 와서

몸에 맞지 않아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정해준 곳에 가서 맞추어야 된답니다.

수리(修理)해서 다시 맞춘 것인데 안 된다고 합니다.

계속(繼續) 버티고 있었지만

진료(診療)를 해 주지 않아 다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정형외과(整形外科)

의사(醫師)들이 번갈아 찾아 와서

의료(醫療) 보조기(輔助基)를 하라고 독촉(督促)을 했습니다.

치료(治療)도 안 해주고 10여 일간의

시일(時日)만 끌어서 할 수 없이

의사(醫師)에게 보조기(輔助器)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금방어디서인지 젊은이 하나가 나타나

몸을 이리저리 재고 가서 한 시간(時間)도 안 되어

보조기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350,000원이랍니다.

그렇잖아도 부풀어 오르는 병원비(病院費) 때문에 애를 먹어 힘들어서

병원(病院)입원비(入院費) 낼 때 함께 낸다고 했더니

보조기는 보험(保險)에서 제외(除外)되어 별도(別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나중에 안일지만 보조기 업자(業者)들은

세금(稅金)도 한 푼 안내고

무허가(無許可)로 영업(營業)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진 보조기가 이 병원(病院)에만

한 달에 평균(平均) 200개가 넘어 보였습니다.

이렇게 무허가(無許可)로 불법(不法)으로 영업(營業)을 하는 곳이

서울에서만 수백 개도 넘는 다고 했습니다.

큰 병원(病原)에는 필수적(必須的)으로 한 개씩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준 명암(明暗)을 봤습니다.

버젓이 모(募) 대학병원(大學病院)의 이름을 따서

**의료기(醫療器) 상사(商社)라고 표기(表記) 되어있었습니다.

영수증(領收證)도 없고 허가증(許可證)도 없었습니다.

세금(稅金) 한 푼도 안내고 무허가(無許可) 이고

수많은 환자(患者)가 의사(醫師)들의 권유(勸誘)를 믿고

보조기를 생산(生産) 판매(販賣) 하는데 저들이 무엇을 믿고

불법(不法)으로 영업(營業)을 하는 지 의심(疑心)스러웠습니다.

의사(醫師)들하고 모종(某種)의 무슨 관계(關係)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 푼도 깎아주지 못한 다고 하고 자기들은 남는 게 없다나요?

세상에는 요상(凹狀)한 것들이 많으니까요?

아래 성경(聖經)말씀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苦痛) 하는 때가 이르러

( 사람들이 자기(自己)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驕慢)하며 비방(誹謗)하며 부모(父母)를 거역(拒逆)하며

감사(感謝)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無情)하며 원통(?痛)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謀陷)하며 절제(切除)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善)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背信)하며 조급(躁急)하며

자만(自滿)하며 쾌락(快樂)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1-4)≫☜

 

병원(病原)도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다를 바 없고 한심한 것입니다.

옛날우리 주변(周邊)에는 한의사(韓醫師) 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돈 보다 더 사람의 생명을 존중(尊重)하게 생각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의사(醫師)들은 병든 사람을

환자(患者)로 여기지 않고

하나의 상품(商品)으로 생각(生角)하는 풍조(風操)가

사람의 마음을 아프고 슬프게 합니다.

돈이 없으면 진료(診療)거부(拒否)가 먼저 이고

돈이 없는 환자(患者)는 나중이라는 것이

지금의 의사(醫師)들의 공통(共通)된 심리(心理)들입니다.

전체(全體) 의사(醫師)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人間)의 생명(生命)을 존중(尊重)하고

의사(醫師)의 정해진 본분(本分)을 지키는 의사(醫師)도

많이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들입니다.

 

의사(醫師)라는 직업(職業)과

의사(醫師)라는 이름은 벼슬이 아닙니다.

그들은 남을 위해 봉사(奉仕)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합니다.

이렇게 많은 의사(醫師)들 중에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고

남을 위해 평생(平生)을 봉사(奉仕) 하는

그런 사람도 우리나라에는 있다는 게 다행(多幸)스러운 일입니다.

슈바이처 박사(博士)처럼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해 봉사(奉仕)하는

철두철미(徹頭徹尾) 하게 봉사(奉仕)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다행(多幸)스럽고 이런 의사(醫師)들 때문에 우리는 행복(幸福)을 느낍니다.

그러나 대학병원(大學病院)에서 내가 겪은 의사(醫師)들은

이런 부류(部類)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남의 경제(經濟) 사정(事情)을

전혀 고려(考慮)치 않고 병원(病院) 이익(利益)에만

정신(精神)을 쏟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해(理解)는 갑니다.

그 병원(病院)에 몸을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보조기((輔助器))는 환자(患者)가 싫다고 거절(拒絶)하면

두 번 다시 말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계통적(系統的)으로 내려 와서 보조기(輔助器)를 사라고

강요(强要)하는 것은 몰염치(沒廉恥) 한일입니다.

나는 지금 불필요(不必要)한 두개의 보조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 형편(形便)에는 35만원이란 는 금액(金額)은

거금(巨金)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 하면 분이 치밀어 오르고

내 입에서 저주(咀呪)가 튀어 나오고 있습니다.

철없는 의사(醫師)들 때문에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며 망연자실(茫然自失)하고 있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처음에 망우리(忘憂里)에 있는

모 병원(病院)을 갔습니다.

허리 부분(部分)을 Mri 촬영(撮影)을 했는데

아주 작은 세균을 발견(發見)됐다고 그곳 의사(醫師)가 말을 했습니다.

다른 병원(病院)을 가보라고 해서 그 의사(醫師)가 소개(紹介)하는

휘경동의 모(某) 대학병원(大學病院)을 가보라고 하고

전화(電話)를 해 놨으니 아무 염려 말고 그 곳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 의사(醫師)의 말만 믿고 소개(紹介)해준 그 병원(病院)으로 갔습니다.

그 날은 병실(病室)이 없다고 해서

그 곳에 연락처(連絡處)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만 하루가 지난 후에 병원(兵員) 측에서 연락(連絡)이 왔습니다.

그 날은 못가고 그 이튿날 일찍이 병원(病院)을 방문(訪問) 했습니다.

그 날도 병실(病室)이 없어서 정오(正午)까지 기다려서

겨우 입실(入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에 열거(列擧) 한 것처럼

검사(檢査)가 시작 되고 병상(病床)생활(生活)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 정형외과(整形外科)에 입원(入院)을 했는데

입원(入院) 3일째 되는 날에 자기는 이 병원(病院)에

내과의(內科醫)라고 소개(紹介) 하면서 나를 보고

폐암(肺癌) 4기라고 하고 돌아갔습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빤히 그의 얼굴을 처다 봤습니다.

이런 말을 전 할 때는 그의 가족(家族)이나

친지(親知)를 불러서 그들에게 전하는 게 관행(觀行)인데

철없는 이런 의사(醫師)가 이곳에서 내과의(內科醫)를 하나를 보고

이 병원(病院)의 수준(水準)을 알듯했습니다.

그 후에 정형외과(整形外科)의사(醫師)가 찾아와서

전과(轉科)를 하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하는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을 참고

나는 모르고 내 아들에게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병원(病院)을 가자고 한 것이 그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들에게 모든 전권(全權)을 일임(一任)했기 때문입니다.

내과(內科)로 전과(轉科)가 되어 다시 처음부터

검사(檢査)가 다시 시작(始作) 되었습니다.

수십 장의 사진(寫眞)을 찍고 이들은

모든 검사(檢査)와 진료(診療)를 영상(映像)에다

의존(依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과정(科程)에서 코를 통해서 내시경 검사(檢査)를 하는 중에

내시경 기구(器具)로 성대(聲帶)를 때려서 말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 말을 전했더니 모두 나의 병 때문에 일어 난 것이고

병 때문이라고 생기는 현상 이라고 회피(回避)했습니다.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에서 다시 돈이 들어가기 시작(始作) 했습니다.

여기에서 엉터리 언어(言語)치료(治療)라는 것을 했습니다.

이렇게 병원(病院)을 잘못만나면 커다란 낭패(狼狽)를 당하니

병원(病院)을 갈 때에는 병원(病院)을

잘 선택(選擇)하는 게 우선(優先)입니다.

지금도 말이 우둔(愚鈍)해 져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일들은 변호사(辯護士)를 사서 법적(法的)으로

처리(處理)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원래 목소리가 좋다고 해서 교회(敎會)

성가대(聖歌隊)에서 테너 파트 했었거든요?

테너란 남성(男性)의 최고(最高) 곱고 높은 발성(發聲)으로

노래하는 사람을 말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허리와 다리 아픈 것은 초진(初診)한 그 병원(病院)에서

치료(治療)를 마치고 지금까지 대학병원(大學病院)에서는

치료(治療)를 받지 못하고 진료(診療)자체(自體)를

포기(抛棄)를 했습니다.

 

암(癌)이란 무서운 병(病)입니다.

암(癌)에 걸렸다고 금방 죽지 않습니다.

본인(本人)의 의지(依支)에 따라서 암(癌)을

잘 관리(管理)하면 암(癌)을 극복(克復)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죽기 아니면 살기로 노원에서부터 한강(漢江) 까지

매일 같이 자전거(自轉車)로 왕복(往復)해서 달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어서지도 못했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依支) 했었습니다.

그리고 중랑천9中浪川)에 서식(棲息)하는

각종(各種) 식물(植物)을 채취(採取)하여

녹즙(綠汁)을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환우(患友)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하늘위의 주 하나님을 의지(依支)하고

함께 기도 하고 병을 이기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레루야 感辭 합니다.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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