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168호 성공하길 원하면 광고하라 (롬10:9~17)
2002년 아프리카 가나 집회는 애초 주최 측에서 40만가량의 인원이 몰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습니다. 그래서 부푼 가슴을 안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갔는데, 그게 아닌 겁니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꿈을 보여주시는데, 집회에 사람들이 시들한 나무 아래 조금 모여 있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에 가보니 전혀 광고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매스컴을 통한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고 비용까지 받아놓고서는 그저 벽보나 붙이는 초보적 광고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광고를 안 하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초석 목사를 누가 알겠습니까? 황당했지요. 그러나 제 성격 아시죠? 저는 위기 때면 더욱 진격하는 스타일이지 않습니까? 라디오 방송국 4개사를 찾아가 인터뷰광고를 하고, 직접 광고전단지를 들고 시장으로 나가 적극적으로 광고했습니다. 그 결과 하마터면 무산될 뻔한 집회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2006년, 우크라이나 남부의 흑해 연안 도시에 있는 오데사 집회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집회를 준비한 니콜라이 목사는 집회 장소로 88체육관 만한 넓은 장소를 빌려놓았지만, 실상 집회에 찾아온 사람은 300~400명 정도였던 참담한 집회였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하면 광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니콜라이 목사로서는 하나님의 큰 종을 모시고만 오면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줄 착각했습니다. 숱한 도시의 집회에서 대성황을 이루는 사건들을 목격한 그는 ‘오데사 정도야….’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능력 있는 종이라 해도 광고하지 않는데 누가 알겠습니까?
여러분, 광고는 성공의 기본전략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도 광고를 하셨을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신 것을 스스로 광고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다는 광고를 전단지, 곧 성경에 실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9:6),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5:2).
그리고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이 어떤 고초를 당하시는지, 그 고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사야 55장을 통해서 광고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매 세례 요한을 통해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요1:26~27)고 광고하셨습니다.
마침내 광고한 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이 다가 아니라 천국이 있음을 광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작정 광고하신 것이 아닙니다. 광고 전략을 세우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오실 이가 당신이니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대답 대신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5)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청각적인 감동보다 시각적인 감동이 크기 때문입니다. 라디오로 광고를 듣는 것보다 TV로 광고를 보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고 말씀하심으로 보여주는 것이 뛰어난 광고 전략임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귀신을 쫓으셨고, 눈먼 자들을 보게 하셨고, 귀먹은 자들을 듣게 하셨으며,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 천국의 소망에 대해 설파하셨습니다.
이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졌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고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다(요11:45). 저도 예수님의 광고 전략을 그대로 모방합니다. 모든 집회 전에 성령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또 귀신을 쫓고, 예수 이름으로 병을 낫게 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이 열려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여주는 목회가 중요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곧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요,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병 고치는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병을 고치고, 지금 귀신이 나가고, 지금 축복을 받고, 지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면 믿지 말라고 말려도, 절대 우리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해도 줄을 설 겁니다.
성령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광고 방법은 시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광고해야 합니다. 광고하지 않으면, 전파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귀신을 쫓을 때 “너, 왜 예수 안 믿었어?” 하면 “몰랐어.”라며 우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우리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피 값을 받겠다고 하셨습니다(겔33:8). 전파해야, 광고해야 압니다. 광고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예수님이라도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기업들이 TV나 라디오, 신문 등 온갖 매체를 통해 광고에 열을 내는 겁니다.
TV의 20초짜리 광고가 얼마나 비싼지 압니까? 그러나 그건 약과입니다. 슈퍼볼(미국 프로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의 광고료는 30초당 자그마치 30억 이상이랍니다. 초당 1억인 셈입니다. 그래도 서로 광고를 내려고 하는 것은 그 이상의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광고판입니다. 우리를 보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때야 할지 생각해보세요.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3:1). 이 말씀은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에게 교회 가자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남편에게 행위의 본을 보이면 ‘과연 우리 집사람은 달라.’ 하고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웃이나 친척, 그리고 친구에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보다 우리가 반듯하고 옳게 행동하면 그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께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나 광고모델이 사생활이 문란하거나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을 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모델을 바꿔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삶이 어떠해야 할까요.
언제 가장 광고를 잘하느냐? 언제 침을 튀겨가며 광고에 힘쓰느냐? 그건 내가 체험했을 때입니다. “** 엄마, 이 화장품 말이야. 한번 발라봤는데 주름이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쫙 퍼져. 진짜야. 내 말 믿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써봤으니까 당당히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당당하게 전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예수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불이 붙어야 남에게도 불을 붙일 수 있는 법이거든요. 제가 해외에 가서 ‘이 밤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확실한 경험, 확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오시는 날까지 예수는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 열심히 광고하고 광고합시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12:3). 할렐루야!
광고는 생존전략이요 성공에 이르는 첩경이다
레일을 잘 깔아야 기차가 잘 달린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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