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632년) 선덕여왕이 아버지 진평왕에 이어 27대 왕으로 민족사 최초의 여왕으로
등극하였음(진평왕이 아들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
- 한국 최초의 여왕으로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신라의 초석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
ㅇ (635년) 당태종 이세민은 선덕여왕을 신라왕으로 인정하지 않다가 3년여가 지난 635년에 선덕여왕을 ' 주국낙랑군공신라왕'으로 뒤늦게 인정함
- 이세민은 여왕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대국 고구려를 견제해야 하
는 현실적인 여건에 따라 왕으로 등극한지 3년여만에 신라의 국왕으로 추인함
※ 당태종 이세민 취임(626년, 당의 통일 618년)
ㅇ (635년)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인해 국가존립이 위태
로워지자 강대국인 당나라에 의지하여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였음
- 640년 무렵에는 귀족자제를 선발하여 '당나라의 국자감'에 유학을 보냈고, 642
년 정월에는 조공을 바치는 등 외교적인 노력을 강화함
※ (638년)위경(한국시조)께서는 신라 선덕여왕의 요청에 따라 당태종이 파견한 8학사의 일행으로 당성(화성시 당성)*을 통하여 동래함
ㅇ (642년 7월) 고구려와 백제에 의해 당나라와의 외교거점이었던 당항성까지 침략 위기에 몰리자 신라는 급히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음
- 당태종의 뒤를 이은 당고종(649년 왕으로 취임)은 신라를 공격하지 말라는 사신을 백제에 보내곤 했으나, 백제에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를 멸망시킴(660년)
※ 이후 당과 신라는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의 내분을 이용하여 고구려도 통합하여 마침내 676년에 통일신라를 건국하였음
* (화성시 당성) ①한때 이곳은 벡제의 영역이었는데, 당성군이 되었다가 6세기(551년) 이후 신라의 영토가 된 후에는 당나라와 교통하는 주요 항구의 역할을 담당
②신라 경덕왕이 한 때 당은군으로 고쳤다가 다시 당성으로 복구했음
③ 이곳은 전략적인 중요성이 인정되어 삼국간의 격전이 한창이던 642년(선덕여왕 11년) 에 백제가 고구려가 함께 공격하여 신라와 당나라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했고. 이 소식을 들은 선덕여왕은 당에 사신을 보내어 위급함을 전하기도 하였음
[화성시 당성 모습]
첫댓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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