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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성중종주 계획에 따라 '성삼재 휴게소 → 노고단대피소 → 노고단고개 → 피아골 삼거리 → 돼지령 → 임걸령 → 노루목 → 삼도봉 → 화개재/뱀사골 삼거리 → 연하천대피소 → 벽소령 대피소 → 선비샘 → 영신봉 → 세석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개선문 → 법계사 → 망바위 → 칼바위 → 중산리 탐방안내소 → 거북이산장식당 → 중산리 대형주차장'의 34.9km 코스를 15시간 내에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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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483.022㎢의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닌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둘레가 320여km나 되는 지리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동과 서, 영남과 호남이 서로 만나는 지리산은 단순히 크다, 깊다, 넓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10월 1일 국군의 날 임시공휴일이자, 화요일에는 월요일 심야 출발 지리산 무박 성중종주 산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지리산의 많은 대피소에서 1박 또는 2박 하며, 성백 또는 성중, 화대, 추화(추성리를 들머리로, 칠선계곡으로 올라 화엄사까지 달리는 종주) 등의 종주는 많이 했으나, 무박으로 달리는 종주는 대중교통으로 다닐 때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방식이다. 해서 안내산악회의 산행계획을 보기 전에는 그런 종주가 있는지도 몰랐다. 일정대로라면 일과처럼 된 이틀 뒤 3일 개천절 목요방 산행인 문경 '장성봉~막장봉~애기암봉~원통봉' 연계 산행에 참석해야 하나, 장성봉~막장봉'은 백두대간 연결 산행 때 다녀온 산이라[산행기], 초면의 애기암봉과 원통봉 때문에 둘을 놓고 고민하다가, 산행 열흘 전 선택하기로 하고 일단 둘 다 신청했다. 그러다, 좀 무리기는 하지만, 두 산행 모두 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이 생겨, 그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8월 87과의 괴산 '막장봉~장성봉~시모살이계곡' 연합산행이 10월로 연기되는 바람에 10월에만 괴산 '막장봉~장성봉' 산행을 두 번이나 해야 해, 아쉽지만, 목요방 산행을 취소했다.
어쨌든 안내산악회를 알게 되면서 산행 계획 중 무박 성중, 또는 화대를 보며, 저건 내 능력 밖이라 여겨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자주 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래 언제 날 잡아서 한번 시도해 보자는 것으로 바뀌어, 산행 버킷리스트 상위에 자리 잡아 버렸다. 이게 세뇌다! 산꾼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종주라, 대기업, 중소, 아니 폐쇄 산악회 구별 없이 전세 버스를 이용해 성중, 화대, 그 역의 종주도 많이 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선택권은 널린 게 지리산 무박 종주다. 그래서 이 산악회, 저 산악회 몇 번 신청했다가 대개 출발 일주일 전, 겁을 먹고 전부 취소했다. 그러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 늦으면 못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2024년 내 실행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적당한 시기를 찾다가 이왕이면 친숙한 인솔 대장이 진행하는 산행에 참석하는 게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7월 9일, 10월 1일 군국의 날 달리는, 출발은 9월 30일 심야에 하는, 지리산 성중종주 산행을 신청했다. 계획이 공지될 때만 해도 목요방 선두 조, 둘도 같이 신청했으나, 일정이 꼬여 그들은 취소했다.
지리산 성중은 잊고, 늘 하듯이 폭염 지옥 속에 목요일, 일요일 또는 화요일 산행을 다니다, 지리산행은 가까워지는데, 가은은 언제 올지 모르는 날씨라, 이걸 계획대로 진행해야 하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결정적으로 9월 15일 한강기맥 5구간 오음산행[산행기], 19일 남덕유산행[산행기] 때 진정한 지옥을 맛본 후라, 10월 1일 산행은, 비가 내리거나 시원해진다는 예보는 믿을 수 없으나, 폭염은 비교적 정확한 기상청 예보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9월 24일 현재 기상청 중기예보에 의하면, 지리산이 있는 전북, 전남, 경남 셋 다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씨라, 불볕더위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는 일은 없을 듯하다. 그리고 기온은 영상 17℃~25℃! 물론 도시를 기준으로 한 거라 해발 1,500m가 넘는 능선은 그보다 10℃ 이상 낮을 걸로 예상돼, 추위를 느낄 수도 있을 거 같다. 와중에 그 시기에 제주에 태풍이 상륙한다는 외국 기상청의 예보도 있어, 오히려 통제로 산행이 취소되는 사태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와중에 군국의 날이 임시공휴일이 되면서, 평일 49,000원이던 회비가 휴일 55,000원으로 6,000원이 올랐다. 물론 그전에 신청한 사람은 변함이 없어, 지금 취소하면 6,000원을 손해 보는 기분이라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무박 산행을 피하는 건 심야 버스에서 자는 거라,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그마저도 4시간이 채 안 돼, 최상은 아니어도 평균 수준의 컨디션도 안 되는 상태로 산행해야 하고, 와중에 아침, 점심 두 끼를 산에서 해결해야 해, 짐도 그만큼 무겁다. 그나마 지리산은 물이 풍부해 물에 대한 부담은 없으나, 그렇지 못한 종주가 많아, 배낭의 무게가 부담스러운 것도 있다. 해서 이동 중 버스에서 최대한 잠을 잘 자기 위해 수면제로 저녁때 빨갱이로 반주하고, 한 끼는 불광동에서 김밥을 사서 준비하고, 다는 한 끼는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 중이다. 현재는 좀 무겁기는 하지만, 아지트 선반에서 거의 일 년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발열 도시락을 가져가는 걸 고려 중이다. 물론 하산주 시간이 확보된다면, 중산리 대형 주차장에 있는 몇 식당을 경험한 결과 그나마 가장 나은 기사 식당에서 저녁 반주로 마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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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8일 대기업 안내산악회와 함께한 예미산행에서 버스를 동원한 안내산악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산행기], 아니 동행한 일행은 빼고, 배낭 분실 후, 슬링백과 물가방의 크로스라는 시스템으로 배낭을 대신해 왔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의외로 훌륭해 바꿀 생각 없이, 지금까지 유지해 왔는데, 문제는 슬링백에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적어 발열 도시락을 넣고 나니, 다른 건 넣을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40ℓ가 넘는 미스터리 렌치를 메고 가는 건 종주의 성격상 맞지 않아, 고민하다가, 마누라의 15ℓ 그레고리가 놀고 있다는 게 기억나, 그걸 들고 가기로 했다. 해서 슬링백과 미스터리 렌치에 있던 필요한 걸 꺼내, 그 배낭에 넣었다. 물론 발열 도시락도. 그 과정에서 놀란 게, 15ℓ 배낭의 용량이 엄청나다는 거다. 과거에는 적어 보이던 게 크게 느껴지는 건, 아마 그동안 슬링백에 익숙해져서일 거다. 사실 그게 내가 추구하는 BPL(Back Packing Light)이다! 당일 지리산 천왕봉 기상청 산악날씨 의하면, 17시부터 비라 별로 신뢰는 안 가지만, BPL을 위해 비와 관련된 장비는 빼고, 대신 막판 지칠 것에 대비해한 짝뿐인 등산지팡이를 챙겼다.
지리산 무박 성중 종주라면, 자고로 사당 기준 23시 50분 출발이라고 다들 알고 있는데, 이번 산행은 그보다 1시간 이른 22시 50분 출발이다. 아마, 성삼재에서 3시 정각에 산행을 시작할 수 있어, 거기에 맞추기 위함인 듯하다. 아니, 동계인 11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는 4시, 그 외는 3시라, 늘 그렇게 해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어쨌든 평소 무박보다 모든 걸 1시간 일찍 시작해, 지난 목요일 염속산에서 어쩌다 획득한 생강 담금주를 반주 겸 수면제로 저녁과 함께 마신 후 9시 30분경 준비한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 오랜만에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했다. 연신내역이 아니라, 불광역으로 향한 건, 산행 중 아침이 될지 점심이 될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김밥을 사기 위함이다. 연서시장 내 김밥집이 등산객 대상이라, 새벽에 문을 여는 건 당연하나,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을 이유가 없어, 불광역의 24시간 김밥집에서 사기 위함이다. 그런데, ‘왕순이 주먹밥 김밥’은 화장품 할인점으로 변해, 어쩔 수 없이 길 건너 김교수 김밥집에서 샀다.
이후 불광역으로 내려가, 오금행 22시 3분 열차를 타고, 22시 43분 양재역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른 후 1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 앞으로 갔다. 그리고 양재에서 산악회 버스를 기다릴 때면 늘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있던 서초구청 주차장 석축 바위에서 건너편 외교원 앞을 살펴봤다. 물론 양재에서 출발하는 일행이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예상보다 작아, 산악회 신청자 명단을 확인했다. 분명 나를 포함 다섯인데,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람은 나를 포함 셋에 불과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데, 10시 58분 산악회 버스가 도착해, 차에 타면서 인솔 대장에게 다섯이 아닌 듯하다고 얘기하자, 한 명은 24시로 착각해 택시를 타고 죽전으로 오기로 했다는 거다. 역시 나만 24시로 알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에 만족하면 자리로 가 앉았으나, 버스가 출발을 안 해, 고개를 내밀어 대장을 보니, 아직 한 명이 도착을 안 했다는 거다. 응? 혹시 그도? 어쨌든 예정된 출발 시각인 23시가 지나자, 버스는 계획대로 출발했다.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하려고 유턴하기 위해 지하도 위 중앙차선에 바짝 붙어, 양재역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그 직전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등산복을 입고 배낭을 멘 사람이 위험하게 도로로 뛰어든다. 정시까지 기다린 다른 한 명의 승객이다. 정황상 평소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다른 안내산악회를 이용하다가, 처음으로 대기업 안내산악회를 이용하는 바람에 버스 정차지를 착각한 듯하다. 나도 과거 대기업 안내산악회를 처음 이용할 때 정차지를 혼동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도로를 가로질러 온 승객이 타는 걸 보고, 바람막이를 벗어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잠결에 죽전, 신갈에서 승객을 태우고, 어딘지 모를 휴게소에 정차했다는 걸 알았으나, 계속 잤다. 물론 깊은 잠은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은 비몽사몽이다. 그리고 버스가 힘들게 고개를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고 창밖을 봤다. 성삼재가 멀지 않다. 해서 슬리퍼를 벗고, 등산화를 갈아 신은 후 끈을 조이는 거로 등산 준비를 마치고 조금 지난, 2시 40분경 버스는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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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 주차장 도착 10여 분 전 실내등이 들어오며, 인솔 대장이 성중종주 산행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코스야 다들 아는 거니, 새삼스럽게 설명할 것도 없으나, 성중이 아니라, 백중, 즉 백무동을 들머리로 하고 중산리를 날머리로 하는 산행도 있어, 와중에 한신계곡으로 오르느냐 하동바위로 오르느냐는 차이까지, 인원 파악을 먼저 했다. 일단 지리산이 처음인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셋이다! 응? 그런데 성중에 도전한다고,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니, 오히려 뭘 모를 때 시도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다음 백중종주는 네 명이다. 고로 대장 포함 28명 중 24명이 성중종주에 도전한다. 인원 파악이 끝나고, 주의 사항 설명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 게 장터목 도착 시간이다. 유유자적 1시까지 도착한 산꾼은 천왕봉으로 향해도 좋으나, 그렇지 못한 등산객은 중산리로 하산하라는 거다! 18시, 즉 오후 6시 마감인데, 1시를 기준으로 하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어쨌든 안내산악회의 누적된 경험의 결과다! 하긴 국립공원은 성삼재에서 장터목까지 14시간, ‘장터목→천왕봉→중산리’는 6시간을 책정하고 있다! 와중에 중산리 탐방안내소가 공사 중이라 대형차량 주차장까지 1.6km, 27분 정도를 더 내려가야 한다!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둘러메고 버스에서 내려, 등산 앱을 기동하고 현 위치, 정확히는 성삼재 주차장의 고도를 확인하려는 데, 등산 앱이 알람을 울리며 무언가 팝업된다. 성삼재 배지다. 걸어서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모르겠는데, 차 타고 올라왔음에도 뭘 잘했다고 배지 수여지? 이건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성삼재가 출발지라, 기록으로 남긴 후 하려던 걸 계속했다. 그런데, 산길 샘이 20m~30m가량 e-산경표보다 낮은 것과는 달리 램블러는 GPS 고도가 비슷하다. 그럼, 산길샘의 GPS 동기화에 문제가 있다는 얘긴가? 그건 지리산 종주 중 계속할 예정인 고도 확인 과정에서 밝혀질 거다. 어쨌든 1,102m로, 최고봉인 천왕봉이 1,915m니, 813m의 고도차다. 역시 백무동이나 거림 등의 다른 들머리 대비 고도차가 얼마 안 된다. 해서 다들 지리산 종주라면 성삼재에서 시작하는 거다. 고도를 확인한 후 주차장을 떠나, 탐방지원센터를 향해 올라가는데, 친숙한 산꾼이 3시에 개방인데 벌써 올라가는 이유를 물어, '화장실!'이라고 답하고 무인 마트를 지나 계속 갔다. 그리고 탐방센터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로 가 배낭을 벗어 두고 매일 하는 아침 의식을 치르기 위해 들어갔다.
다른 산행지였으면 산행 중 땅을 파고 봤을 의식을 편안히 앉아서, 핸드폰을 보며 치르고 있는데, 갑자기 등산 앱이 음성으로 2km 지점을 통과했다는 경과보고를 해, 깜짝 놀라 앱의 트랙을 확인했다. 실내 화장실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은 이후 앱이 GPS 신호를 찾아, 주변을 돌아다닌 게 기록으로 남았다. 말인즉 난 변기에 앉아 있는데, 등산 앱이 GPS 신호를 찾는 과정이 기록으로 남았다. 시간상으로는 10여 분, 거리는 1.5km 정도다! 밀폐된 공간에서 앱이 GPS 신호를 찾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류다. 해서 램블러를 버렸던 건데, 다른 앱도 같은 증상을 보이니, 굳이 어떤 앱이 낫다고 할 수도 없다. 어쨌든 최종 기록에서 시간으로는 10분 정도를, 거리로는 1.5km가량을 뺀 게 그나마 사실에 부합하는 기록이다. 이런 오류를 기록하지 않으려면 다른 산행지에서 늘 하듯이 GPS를 쉽게 수신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에서 땅을 파고 아침 의식을 치르면 된다. 어쨌든 2시 58분경 의식을 마치고 나오니, 우리 일행뿐 아니라, 승용차를 타고 올라온 등산객 등, 30여 명이 탐방센터 앞에 모여 차단봉이 올라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11월 1일부터 다음 해 2월 28일까지의 동계로 4시부터, 그 외는 하계로 3시부터 입산이 가능하니, 그 시각에 정확히 차단봉이 올라간다. 그렇다고 탐방센터에 요원이 기다리다가 차단봉을 올리는 것도 인력 낭비라 언제부터인가 무인 시스템을 설치했다. 고로 법 없이 사는 무법자는 차단봉에 매달린 '입산시간지정제 집중 단속 중'이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가도 된다. 하지만, 1분 정도 남아, 그렇게 간다고 산행에 영향을 미칠 것도 아니라, 차단봉이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3시 정각 차단봉이 자동으로 올라간 후 노고단 고개를 향해 출발했다. 사진으로는 남길 수 없는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어두운 밤 산행은, 당연히 보이는 게 없어, 앞만 보고 가니, 나도 모르게 속도가 빨라져 페이스를 잃는 일이 많다. 이번 산행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걸 깨닫는 순간부터 속도를 늦췄으나, 다른 등산객은 여전히 빠르게 올라간다. 와중에 노고단 고개까지 차량이 다니는 포장임도(林道)다! 어쨌든 보이는 게 없어, 앞만 보고 가는 건 여명이 밝아오는 토끼봉까지 계속됐다. 말인즉 토끼봉까지는 사진 기록도 거의 없으나, 그나마 있는 것도 어두워 물체 구분이 잘 안된다.
3시 18분 앱의 고지 도착 음성 메시지에 깜짝 놀라, 핸드폰을 꺼내 어딘지 확인했다. 무넹기다! 사실은 이거 때문에 버렸던 램블러를 이번 산행에 사용하는 거다. 산꾼에게는 산길샘의 친절함이 더 유용하나, 고지와 관련된 메시지가 없어, 주요 고지를 지나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해서,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한 성중종주에서는 그런 일이 없게 하려고, 다소 불친절해도 램블러를 꺼내 든 거다. 그리고 3시 20분 화엄사 갈림길인 무넹기 이정목에 도착해 기록으로 남긴 후 길을 재촉해, 3시 21분 노고단 대피소 갈림길에 도착했다. 갈림길이라고 해봐야, 갈지를 쓰는 임도로 계속 가는 '편안한 길'과 가로지르는 거리가 짧은 길의 차이라, 당연히 갑판 계단인 짧은 길로 가, 위에서 다시 임도에 합류했다. 이후 3시 27분 두 번째 갈림길에서도 역시 짧은 길인 돌길로 위로 향해 3시 33분경 새로 단장한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과 날짜가 같은 작년 10월 1일 흥수와 1박 화대종주 때 노고단 대피소가 한참 공사 중이었는데[산행기]. 1년이 지난 현재는 공사가 끝나고 숙박객을 받고 있다. 그런데, 과거 대피소 정문 왼쪽에서 등산객을 축복하던 마고 상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굳이 가던 발걸음을 돌려, 정문으로 올라갔다.
공사 전에는 대피소 정문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등산로와 마주 보고 있어, 마고 상이 바로 보였으나, 공사 후에는 정문이 오른쪽 TV 송신소 송신탑을 바라보고 있어, 등산로에서 정문이 보이지 않아, 대피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회전해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해서 올라가서 보니, 마고 상은 여전히 정문 왼쪽에 서서 오가는 등산객을 바라보고 있어, 마고에게 인사하고, 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배낭에 바람막이를 벗어 넣었다. 비록 날씨는 쌀쌀하나, 산행 중이라, 땀이 흘러 벗었다. 고로 멈춰 서면 추워,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전진이다. 바람막이를 넣고,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등산로를 향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올라오던 등산객이 스탬프가 어딨는지 묻는다. 응? 스탬프? 아, 이번 산행도 까만 소의 국립공원 스탬프와 백두대간 인증, 성중종주 인증으로 안내산악회에서 인증꾼을 대상으로 호객했고, 와중에 임시 휴일이 되는 바람에 만석을 채울 수 있었다. 당연히 인증이 목적인 등산객에게는 스탬프가 중요하다. 그런데, 인증은 내 관심 밖이라, 그게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대피소 정문 쪽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 보라고 하고, 등산로로 내려가, 역시 거리가 짧은 돌길로 노고단고개를 향해 갔다.
깜깜한 급경사 돌길을 랜턴 빛에 의지해 이번 산행의 주요 고지 중 하나를 향해 가는데, 3시 44분 고지 반경 100m 내라고 앱이 음성으로 알려줘 그 순간부터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3시 46분 노고단고개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은 올라갔으나, 지정 시간이 아니면, 주 능선으로 진입을 막는 차단봉과 등산객을 통제하는 초소를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어두워 사물 구분이 안 되는 건 여전하다. 와중에 인증을 남기는 노년의 산꾼을 뒤로하고, 고개에서 주 능선으로 내려가, 본격적인 종주 산행을 시작해, 4시 4분 출입 금지 경고문이 아니라, 무성한 조리대가 길을 막고 있는 왕시루봉과 문수암 갈림길을 지난 후 확인한 노고단 날씨에 의하면 15시부터 비다! 비록 기상청을 신뢰할 수는 없지만, 이게 맞다면 예정대로라면, 다행히 그 시각에는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 중이라, 비를 맞을 염려는 없다. 지리산이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을 정도로 광대해, 양쪽 끝이라 할 수 있는 노고단과 천왕봉의 날씨가 달라, 천왕봉은 17시부터 비라는 예보다. 어쨌든 비를 피할 수 있다는 예보지만, 비를 맞았을 때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배낭이 아니라, 급조된 마누라의 배낭이라, 비상시에 대비한 여벌의 옷이 없다. 와중에 땀을 닦고, 씻은 후에는 물기를 닦을 수건도! 덕분에 배낭은 더 가벼워졌지만!
당일 노고단 날씨를 확인한 후 빨라지지 않도록 페이스를 유지하며 계속 전진하자, 4시 20분 앱이 고지 반경 10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여기에 고지가 있었나? 해서 확인해 보니, 돼지령이란다. 돼지령까지 동영상을 촬영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고, 해 봐야 보이지도 않아, 고지라는 걸 무시하고 계속 가, 4시 21분 도착했다. 그리고 4시 29분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쳤다. 이후 4시 34분 임걸령이 멀지 않다는 메시지를 듣고, 임걸령 샘이 멀지 않아, 비록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4시 35분경 도착해 샘에 놓여 있는 컵으로 물을 받아 맛을 봤다. 역시 임걸령 샘물은 사시사철 시원해, 한 번 더 받아 마신 후,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왼쪽으로 지난 산행 때는 본 기억이 없는, 돌로 쌓은 담이다. 아마 등산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돌을 일렬로 쌓은 듯하다.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해, 4시 43분 임걸령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앱이 또 다른 고지 반경 100m 내라고 알려준다. 이건 또 뭐야 하고 확인하니, 날라리봉이다. 국립공원 공식 지도에는 없는 봉우리지만, 등산 앱의 지도에는 있는 봉우리다.
그래서 그런지 날라리봉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 다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쉼터가 정상이 아닐지 추측할 뿐이다. 당연히 정상이 어딘지 모르니, 동영상을 촬영해 봐야 의미가 없어, 계속 페이스를 유지하며, 이번 산행 처음으로 갑판 계단을 오르기도 하며 가자, 이번에는 5시 2분경 반야봉 갈림길이자 노루목이 멀지 않다고 알려준다. 해서 당연히 동영상을 촬영하며 올라, 5시 4분 도착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하게 도착한 일행인지 알 수 없는 산꾼이 뒤에 처진 친구와 통화하는 걸, 본의 아니게 들었는데, 반야봉을 다녀오겠단다! 응? 1시간가량 걸리는 반야봉을 왕복하고도 성중종주를 시간 내 마감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으나,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일행이 아니다. 말인즉 성중종주가 목표가 아닐 수도 있는 등산객이다. 산행을 시작하고 한참 후에 알게 된 거지만, 성삼재에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건 우리 일행만 있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이 가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길목의 대피소가 목표인 등산객도 많았다. 노루목에 있는 천왕봉까지 21km라는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기고 길을 재촉하다가, 조금 아래 있는 가물면 마르는 석간수가 지금은 흐르는 걸 확인했다. 하나 유감이라면 배낭 분실 때 거기에 매단 컵도 잃어버려, 석간수 맛을 보지 못하고 기록만 남기고 지나쳐야 했다는 거다.
5시 10분 거의 500m마다 있는 이정표 중 '천왕봉 20.5km' 이정표를 지나고 나서, 비 소식이 궁금해 기상청 앱의 위성 지도를 확인했다. 예보야 기상청 직원이 하는 거라 틀릴 수 있으나, 위성 사진이야 기록이라, 의도하지 않는 한 오류가 없어 차라리 그걸 보고 날씨를 내가 판단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요즘은 위성 사진을 많이 본다. 그런데, 그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산꾼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어쨌든 위성 사진을 보면 비구름이 한반도 남쪽을 향해 몰려온다, 고로 몇 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비가 내리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천왕봉에는 17시부터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 직원의 예보가 맞기를 마고와 반야에게 기원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후 5시 14분 또 다른 반야봉 삼거리를 지나고, 15초 후 반야봉 쌍봉이 감추고 있는 황금사원인 묘향암 갈림길에 도착했다. 물론 이정표 따위는 없고, 그 대신 지리산을 지키는 반달가슴곰 출몰 지역이니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서 있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해 5시 19분 삼도봉 반경 100m라는 메시지를 듣고 동영상을 촬영하며 갔다. 와중에 어두워 진정한 삼도봉 정상으로 향하는 길로 갔다가 등산로로 되돌아오기도 하며 전진해, 5시 21분 3도의 이름을 새긴 삼각뿔이 있는 삼도봉에 도착했다. 이후 그것과 삼도봉 명패가 박힌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정표에 의하면 삼도봉은 노고단고개에서는 5.5km, 천왕봉에서는 20.0km 거리에 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가 26km니, 주 능선의 23% 정도 지점으로, 고개에서 여기까지 1시간 35분이 걸렸다. 그럼, 이 페이스라면, 천왕봉까지는 6시간 정도 걸린다는 얘기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 노고단 고개에서 삼도봉까지는 비록 기복이 많기는 하나, 화개재에서 올라야 하는 토끼봉 같은 기복다운 기복은 없다. 토끼봉도 그중 하나지만, 화개재부터 장터목까지는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는 꽤 많은 기복을 통과해야 한다. 그중에는 동네 뒷산보다 높은 기복도 서넛 된다. 어쨌든 삼도봉을 떠나, 5시 27분 화개재로 내려가는 마의 갑판 계단 입구에 도착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내려가는 것보다 올라오는 게 더 힘든 계단이다. 요즘은 이 계단이 없던 학창 시절에는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궁금해진다. 그 계단을 내려가다 어둠 속에 보이는 봉우리 실루엣 즉 토끼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으나, 결과물은 아무리 찾아봐도 봉우리의 모습은 안 보인다. 그래도 찍을 건 찍으며 내려가자, 5시 36분 화개재 반경 100m 내라고 알려줘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다가, 쉼터가 있는 곳으로 우회전해, 5시 38분 화개재 이정목이 있는 쉼터에 도착했다.
아무 생각 없이 화개재 이정목을 기록으로 남기고, 성삼재를 출발해 천왕봉으로 향하는 산행에서 첫 번째 고비, 즉 죽음의 깔딱이 기다리는 토끼봉에 오르기 위해 등산로로 돌아가려고 갈림길로 가자, 우리 일행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핸드폰을 보며 무언가 중요한 걸 하는 듯 등산로를 왔다 갔다 하더니, 내게 길을 터준다. 그 중요한 일이 뭔지는 모르나, 잘 해결되기를 바라며, 마의 토끼봉으로 향해, 호흡을 조절하며 나무를 땅에 박은 계단이 아니라, 그 계단 옆 가드를 따라 위로 갔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등산객 셋이 내려와, 연하천대피소에서 자고 하산하는 등산객이라 생각했는데, 서로가 전진해 가까워지자 익숙한 얼굴들로 무언가를 찾으려 다시 내려오는 듯했다. 이런 경우는 휴식 후 등산지팡이를 놓고 갔다가 그걸 찾으러 돌아오는 게 대부분이라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중 여성이 나를 보더니, 화개재에서 인증했냐고 묻는다. 응? 인증? 이게 뭔 소린가 하고 얼굴을 쳐다보자, 화개재 이정목에서 인증했냐고 다시 묻는다. 그때야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갑판 등산로에서 만난 한 쌍과 지금 이들은 화개재 이정목을 찾지 못한 거다. 화개재 쉼터의 위치를 모르는 사람은 지금처럼 어두운 새벽에는 못 찾는다. 나야 2021년 11월 목통골 산행의 들머리를 찾기 위해 화개재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다가, 쉼터와 이정목의 위치를 안 거고, 달리느라 바쁜 등산객이 화개재 이곳저곳 뒤지고 다닐 일이 없으니 알 까닭이 없다[산행기]. 이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았으니, 이정목의 위치를 자세히 알려줬다. 그리고 헤어져 각자의 갈 길을 갔다. 그런데, 화개재 이정목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궁금해 구글링했다. 까만 소가 2024년 5월 오픈한 지리산 성중종주 프로그램은, 72시간 내, '성삼재휴게소', '피아골 삼거리', '화개재', '선비샘', '로터리대피소', '중산리탐방안내소'의 여섯 곳에서 인증해야 한다. 그중 이정목이 있는 건 화개재가 유일하니, 아마 이정목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남겨야 하는 듯하다[기사]. 물론 안내산악회야 등산객 스스로가 알아서 하는 거지만, 까만 소 성중종주 프로그램으로 호객했으니, 인솔 대장이 위치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이 사람들이 화개재까지 얼마나 내려가야 하는지 궁금해 지도를 봤다. 700m가 조금 넘는 듯하다. 위에서 내려오다가 날 만났으나, 걸음을 돌린 지점 기준으로는 더 멀다!
성삼재에서 차단봉이 올라가기를 기다리며, 인솔 대장, 친숙한 산꾼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산꾼이 일출을 어디서 볼지 물어, 아무 생각 없이 노고단 고개라고 답했다. 그런데, 자신은 토끼봉에서 보겠다고 해, 그게 가능한지 되묻자, 그렇지 않으면, 삼도봉에서 일출을 기다려야 해 달릴 거라고 했다. 이후 나는 왜 노고단고개라고 바로 답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1974년 처음 지리산에 오른 이후 성삼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노고단대피소에서 버너와 코펠 세트로 무언가를 끓여 이른 아침을 먹는 게 전통이다. 이번 산행이 예외인 것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끓일 도구를 뺐다. 말인즉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니, 당연히 노고단고개에 도착할 때쯤 일출이 시작된다. 덕분에 성삼재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는 노고단고개에서 일출을 보는 거로 머리에 박혀 있다! 참고로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지리산에 오른 건 이번 산행 인솔 대장이 진행한 2024년 즉 올해 1월 9일 거대종주가 처음이다[산행기]! 그때는 전통에 따라 장터목에서 끓여 먹었다! 물론 2023년 낙남정맥 종주팀을 따라 거림에서 고운동재까지 달린 산행이 있기는 하나, 낙남정맥 산행이지 지리산행은 아니다[산행기]. 당시에는 세석대피소에서 컵라면으로 해장을 겸해 아침을 해결했다.
지옥의 깔딱으로 뇌리에 박혀 있는 토끼봉 정상으로 향하는 급경사를 오르는데, 전혀 지옥이 아니다. 오히려 유유자적 올라갈 수 있다. 어렸을 때 얼마 안 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산행을 하다 보니, 시간에 쫓겨 달리느라, 지쳐서 지옥의 깔딱으로 머리에 남은 듯하다. 일출까지 30분 정도 남았으나, 토끼봉 정상은 얼마 남지 않았다. 고로 그 산꾼이 맞았다. 달리지 않더라도, 토끼봉에서 일출 감상이 가능하다. 다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토끼봉 주변에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없다! 그는 어디서 일출을 보겠다는 건지 궁금해하며 위로 가는데, 앱이 정상 반경 100m 내라고 알려준다. 해서 동영상을 촬영하며 올라, 6시 10분 정상목이 있는 안전쉼터에 도착했다. 물론 일출 전이고 내 기억대로 아무리 둘러봐도 전망대는 없어, 혹시 명선봉으로 가는 길목에 기억하지 못하는 전망대가 있을 수도 있어, 일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오른쪽으로 붉게 밝아오는 여명을 주시하며 갔다. 와중에 아직 일출 전이나, 날이 밝아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이는 명선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남기는 봉우리의 모습이다!
일출과 그걸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를 찾으며 명선봉으로 향하다가, 우연히 뒤로 고개를 돌렸는데, 여기서는 보이지는 않는 햇살이 마치 조명처럼 비추는 엉덩이가 있어, 가던 길을 멈추고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토끼봉도! 그렇게 밝아오는 여명 속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사물이 보이기 시작해,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며 가는데, 6시 33분 앱이 '운봉무덤' 반경 100m 내라고 알려준다. '운봉(雲峰)은 내 별명이자 호다! 물론 처음 보는 메시지가 아니다. 과거 운봉무덤이 궁금해 여기저기를 다 뒤졌으나, 정체를 파악하는데, 실패했다. 당연히 정확한 무덤의 위치도 모른다. 하지만, 동영상을 촬영하며, 일단 정상으로 향했다. 6시 37분 바위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울창한 숲 사이로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무덤을 찾아봤으나, 바위 군락이다. 혹시 돌무덤? 와중에 앞서가는 인솔 대장이 운봉무덤에서 찍은 거라며 일출 사진을 보냈다. 그럼, 나와 거리 차이가 별로 안 난다. 답장으로 역시 일출 사진을 보내며, '내가 지리산에 묻힐 상인가?"라는 글도 같이 보냈다. 그리고 길을 재촉하다가, 무언가 이상해 앱의 지도를 봤다. 갈림길로 샘이 있다는데, 주변을 둘러봤으나 안 보인다. 그렇다고 그걸 찾으려고 숲을 헤집고 돌아다닐 상황도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고 전진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엉덩이가 품고 있는 황금사원이 보이는지 확인하고, 보이면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확대해야 간신히 보인다. 그렇게 가, 6시 59분 명선봉 정상과 혼동하기 쉬운 정상에 도착했다. 명선봉도 쌍봉으로 그중 낮은 봉우리 정상이다. 거기서 명선봉을 향해 내려가다 숲이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지점에서 뒤로 돌아, 아직도 여명 속에 있는 백운산과 불무장등, 왕시루봉, 그리고 앞을 가로막는 명선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전진하자, 7시 12분 고지가 멀지 않다고 앱이 알려줘 동영상을 촬영하며 갔다. 그런데, 등산로는 명선봉 정상을 우회해 연하천으로 내려가고, 종주에 바쁜 등산객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걸 따라간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상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등산로에서 벗어나 앞선 산꾼의 인적을 따라 명선봉으로 향해, 7시 16분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등산객이 거의 찾지 않는 봉우리라, 울창한 수풀이 진행을 방해하고, 정상 직전에는 통신탑이 있다. 그래도 이름이 있는 봉우리라, 최소한 산꾼이 만들어 나무에 매단 명패는 있을 거로 생각해 주변을 찾아봤지만, 없어 정상 표지인 삼각점과 남부능선, 남해를 기록으로 남긴 후 등산로 돌아와, 연하천대피소로 향했다.
현재 시각 7시 20분 아래가 연하천이다. 아침으로 김밥과 발열 도시락 중 어떤 걸 먹을지 고민하다가, 김밥을 먹기로 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발열 도시락을 먼저 먹는 게 좋지만, 아무래도 장터목에서 지친 몸을 위로하는 데는 그나마 따뜻하고 고기라도 조금 있는 발열 도시락이 나을 듯했다. 그리고 김밥이라면 굳이 연하천대피소에서 먹을 이유도 없어, 배낭에서 그걸 꺼내 먹으며 간격이 맞지 않아, 짜증 나는 갑판 계단으로 동영상을 찍으며 대피소로 향해, 7시 27분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이 휴식 중인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연하천의 샘터로 가는 동안 김밥을 다 먹어, 샘 뒤 기둥을 가로지르는 판자에 박힌 못에 걸린 바가지를 꺼내 물을 받아 마셨다. 이후 정비를 하기 위해 야외 의자에 앉으려고 보니, 모두 이슬인지 비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에 젖어, 어쩔 수 없이 석축에 주저앉아, 등산화를 벗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들어간 이물질을 제거하고, 복장 등을 재정비한 후 다음 목표인 벽소령을 향해 떠났다. 연하천에서 천왕봉까지 남은 거리는 15km, 평균속도는 3km가 조금 넘으니, 이 페이스라면 천왕봉까지 5시간이 걸린다. 그럼 12시 반경 천왕봉 도착이다. 물론 단순 산술 계산일뿐이다. 와중에 15km는 도상거리로, 장터목까지 넘어야 할 봉우리를 고려하면 실제 거리는 20km가 넘을 확률이 높다.
7시 46분 음정마을 갈림길에 있는 '탐방로 안내'도에 의하면 삼각고지는 바로 위다. 해서 7시 48분 정상이라 생각되는 곳에 도착해 앱의 지도로 확인했다. 맞다. 삼각봉이다. 물론 정상이라는 어떠한 표지도 없어, 정상의 모습만 기록으로 남기고 길을 재촉하는데, 7시 50분 고지가 멀지 않다고 알려줘 '뭐지?'하며 앱을 확인했다. 삼각고지란다. 좀 전에 지나온 정상과 앞으로 올라가야 할 정상 어느 게 진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동영상을 촬영하면 올랐다. 이 정상 또한 정상임을 알 수 있는 어떠한 표지도 없어, 정상 부근 이정표를 표지라 생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국립공원에서는 여기가 아니라 직전의 정상을 삼각고지로 표기하니, 여기에 정상 표지가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고 직전의 정상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기록으로 남길 건 남긴 후 계속 전진했다. 와중에 고도가 높아지면서 주변의 조망이 트이기 시작해, 보이는 걸 감상하고 사진으로 담았다. 그중에는 이번 산행 처음 보는 천왕봉과 거기까지 이어지는 주 능선,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장터목대피소, 벽소령대피소를 한 장으로 담은 것도 있다.
8시 15분 주 능선의 첫 번째 전망대라고 할 수 있는 형제봉이 멀지 않다는 알림을 보고, 동영상을 촬영하며 급경사를 올라, 정상(?), 바위 전망대에서 사방을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이후 길을 재촉해, 8시 23분 장터목대피소 11.2km 이정표를 지나, 8시 34분 앱의 지도에 전망바위라고 표기된 걸 보고 역시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두 번째 바위 전망대에 도착했다. 이후 주변에 보이는 걸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조금 전 형제봉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남동진하는 주 능선을 따라가며 보이는 건 거리만 차이가 있을 뿐 대상은 같다! 8시 40분 '벽소령대피소 0.7km'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긴 후 갑판 계단을 오르자, 지리산에서는 흔히 보는 바위문이다. 다른 산이었으면, 이름이 있을 법한데, 이 문은 이름이 없다. 8시 54분 앱이 고지가 멀지 않다고 알려준다. 가까운 곳에는 ‘벽소령대피소’가 있을 뿐이지만, 대피소는 배지 수여 대상이 아니라, 무슨 고지인지 궁금해 앱을 확인했다. '벽소령' 그 자체다. 하긴 벽소령도 지리산의 주요 고개 중 하나다! 해서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8시 56분 벽소령에 자리 잡은 대피소에 도착했다.
벽소령 또한 연하천과 비슷하게 평일임에도 생각보다 등산객이 많이 있는 것에 약간 놀랐다. 이 놀라움은 세석, 장터목 등 모든 대피소에 같았다. 그리고 2021년 12월 마고를 보기 위해 평일 천왕봉에 올랐을 때[산행기]와같이 홀로 천왕봉을 즐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며, 가던 중 천왕봉에서 인증을 남기고 내려오는 수많은 등산객을 보고, 곰곰이 기억을 더듬다가 10월 1일 국군의 날을, 똥폼 잡기 좋아하는 사람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고 행사도 한다는 게 떠올랐다. 말인즉 오늘은 평일이 아니라, 공휴일이다. 고로 우리 일행 중 청춘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설명이 된다! 어쨌듯 과거에는 물을 구하기 위해 대피소에서 200m가량 아래에 있는 계곡 상류로 가야 했으나,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취사장 벽에 수도가 달린 걸 발견했다. 기억으로는 2019년 12월 산행 때 처음 본듯하다[산행기]. 어쨌든 그 수도에서 컵이 없어, 입을 대고 물맛을 보고 대피소를 떠나, 종주 산행 난 코스 중 하나인 벽소령~세석 구간 산행을 시작했다.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하고, 덕평봉으로 보이는 앞의 봉우리도 기록으로 남기며 전진해, 9시 19분 초딩 시절 추억이 남아있는 ‘(구)벽소령 길’에 도착했다. 사실상 여기까지가 벽소령이다. 세석대피소까지는 5.2km!
벽소령을 떠나, 세석대피소로 가는 길목의 전망대에서 지나온 벽소령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며 백두대간을 남동진하자, 앞이 급경사 깔딱으로 정체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봉우리 정상이라, 동영상을 촬영하며 올랐다. 그리고 9시 35분 도착한 정상에는 청춘의 남녀 한 쌍이 쉬고 있는 안전쉼터와 생각지도 못한 '덕평봉' 이정목이다. 말인즉 지리산 주 능선의 주요 봉우리다. 그럼 당연히 앱이 고지가 멀지 않다고 알려줘야 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해서 지도를 확인했다. 두 앱 모두 덕평봉은 조금 더 가야 한다. 지도의 등고선으로 봐도, 정상은 아직 멀었다. 그럼에도 국립공원에서 여기에 정상목을 세웠다는 건 진정한 정상은 통제구역이라는 얘기다. 뭐 그러려니 하고 주변, 특히 반야봉과 중봉 그리고 그 중턱의 황금사원인 묘향암을 주시하며 가는데, 9시 45분 앱이 고지가 멀지 않다고 알려준다. 진정한 덕평봉이다. 해서 혹시나 명선봉처럼 정상으로 오르는 길 있을 거라는 생각에 왼쪽을 주시하며 동영상을 촬영하며 갔다. 그런데, 명선봉과는 달리 정상으로 향한 인적이 전혀 없고, 정상은 울창한 숲을 뚫고 가야 해 도전은 포기하고, 다만 그것의 실루엣을 기록으로 남긴 것에 만족했다.
진정한 덕평봉 가까이에 있었다는 걸 인증하기 위해 앱의 지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현 위치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실제는 없지만! 그리고 선비샘이 멀지 않다는 것도. 해서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9시 54분 선비샘에 도착해 그 물을 석축 위에 놓인 바가지로 물을 받아 맛을 봤다. 물론 한두 번 마시는 물이 아니지만, 지리산 주 능선 위의 샘 중에 맛이 가장 떨어진다. 정확히는 별로 시원하지가 않다. 내가 원효도 아니고 시체 썩은 물이라 그런가? 그런데, 과거에는 유심히 보지 않아 기억이 안 나는 건지 모르지만, '선비샘의 유래' 소개문 뒤로 돌무덤이 보이는 게 전설에 맞게 돌무덤을 조성한 듯하다. 아니, 애당초 돌무더기를 보고 호사가들이 선비샘 전설을 만든 건가? 9시 54분 선비샘을 떠나, 세석으로 향하는데, 왼쪽으로 안전쉼터 겸 갑판 전망대다. 이름은 선비샘 전망대! 물론 보이는 건 지금까지와 다른 게 없다. 그래도 찍을 건 찍어야 해 사진 몇 장 찍고 쉼터를 떠났다. 와중에 인상 깊은 건 가야 할 길목에 있는 영신봉에서 분기한 지리산 남부능선이자, 낙남정맥이다. 이후 전망대를 떠나, 10시 10분 '장터목대피소 6.6km' 이정표를 지나, 10시 18분 천왕봉 7.8km 이정표에 도착했다. 이정표상으로는 천왕봉까지 남은 거리가 10km 이하라는 걸 처음 본 듯하다.
10시 29분 칠선봉 직전 또 다른 바위 전망대에 도착해 역시 지금까지 보아왔던 조망을 다시 감상했다. 다른 게 있다면, 갈수록 천왕봉이 가까워진다는 거다. 그런데, e-산경표는 이 전망대를 칠선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과거에는 여기를 칠선봉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칠선봉은 천왕봉 쪽으로 조금 더 간 봉우리다. 어쨌든 더 가까워져,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천왕봉과 능선을 감상하고 사진도 남겼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제석봉 아래 ‘장터목대피소’도 보인다. 물론 남해로 뻗어 나가는 산세의 파동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전망대를 떠나 철선봉으로 향하는데, 10시 37분 고지가 멀지 않다고 앱이 알려줘, 늘 그렇듯이 동영상을 촬영하며 갔다. 그런데, 가도가도 칠선봉은 나오지 않아, 촬영을 중단하고, 칠선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와 바위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동영상을 촬영하며 전진해, 10시 43분 이정표 기둥에 '칠선봉' 명패가 박힌 정상이 아니라, 그 아래에 도착했다. 칠선봉은 뾰족한 암봉으로 - 고로 조금 전 칠선봉이라 생각하고 기록으로 남긴 봉우리는 칠선봉이 아니다 - 네발로 기어오르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듯했으나, 오늘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 사진만 찍고 떠났다. 그런데, 전망대가 1,576m고 암봉이 1,552m니 전망대가 정상이 되어야 하지 않나?
어느 봉우리가 정상이든 칠선봉을 지나, 지리산 주 능선에서 과거는 토끼봉이었다면, 최근에는 영신봉이 자리를 차지한 마의 아니 지옥의 코스가 코 앞에 있다. 그런데 시작부터 만만치 않아, 갑판 계단을 힘겹게 오른 후 허기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물가방에서 오이 한 조각을 꺼내 먹으며 갔다. 그리고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영신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영신봉의 전모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성중이든 성백이든 종주는 세석 또는 장터목에서 1박 하는 게 전통이라, 유유자적 노닥거리며 진행해 대피소 도착쯤에는 날이 어두워 영신봉의 전모를 보기 어려웠다. 당연히 반대로 종주할 때는 영신봉이 뒤에 있어, 의도적으로 길을 멈추고 돌아보지 않은 한 볼 수 없다. 어쨌든 보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영신봉을 기록으로 남긴 후 문제의 봉우리로 향해 가다,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이는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물론 저 멀리 노고단, 반야 쌍봉, 토끼, 명선, 덕평, 칠선으로 이어지는 지나온 주 능선과 거기서 분기해 남해로 향하는 능선의 모습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신조에 맞게 힘든 걸 즐기며 영신봉으로 향해, 11시 24분 앱이 목표가 멀지 않다고 알려줘 그때부터 동영상을 촬영하며 갔다. 그런데, 정확한 영신봉이야, 비탐구역인 낙남정맥 분기점에서 반대인 왼쪽으로 올라가야 하나, 그 역시 비탐이라, 분기점에 있는 이정표에 붙은 '영신봉' 명패가 정상석을 대신한다. 그런데 그 직전 등산로 가운데 큰 바위가 있는데 거기 앉아 있던 눈에 익은 남성이 혹시 오다가 여성 한 명을 보지 못했는지 묻는다. 봤다. 역시 눈에 익은 여성이 길목 바위에 앉아 쉬면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해서, 그렇게 알려줬다. 그리고 영신봉 명패가 붙은 이정표와 거기서 시작되는 낙남정맥을 기록으로 남기고 천왕봉 방향으로 가자, 인증 안 할 건지 물어,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계속 갔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촛대봉의 모습을 감상하며 가다, 굳이 대피소를 거치도록 길을 바꾼 국립공원 처사에 욕 퍼부었다. 과거에는 대피소에 일이 없는 등산객은 직진하면 됐는데, 언제부터인가 대피소를 거치지 않으면 목적지로 갈 수 없도록 변경됐다.
지리산 종주에 대피소 또한 주요 이정표라, 담치기 아니 월줄 하지 않고, 지시대로 동영상을 촬영하며 대피소로 갔다. 그리고 인증을 위해 대피소 명패를 기록으로 남긴 후 지리산 주 능선의 샘 중 손꼽히는 물맛을 자랑하는 샘으로 가, 역시 배낭을 잃어버릴 때 같이 분실한 컵 대신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끝으로 '세석 갈림길'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기고, 가쁜 숨을 고르며, 설악산 대청봉보다 5m 낮은 촛대봉을 향해 올라갔다. 물론 뒤로 돌아, 영신봉과 그 아래 세석대피소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고로 영신봉 뒤로 보이는 엉덩이 중 왼쪽이 반야봉, 오른쪽이 중봉이다. 그리고 반야 쌍봉을 빼고 제일 높은 봉우리가 노고단이다. 그렇게 정상으로 향해, 11시 59분 램블러가 촛대봉이 멀지 않다고 알려줘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12시 2분 기둥에 '촛대봉' 명패를 붙인 이정표에 도착했다. 촛대봉 또한 비탐구역에 있어, 올라가는 건 불법이나, 심하게 단속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정표 뒤 가장 높은 봉우리가 천왕봉 그 앞이 제석봉/제석단이다. 여기서 장터목까지는 2.7km에 불과하나, 국립공원 안내도를 보면 2시간이 걸리는 지리산 종주 코스 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그런데, 지도는 3.4km로 이정표보다 700m가 더 길다!
아침으로 김밥을 먹은 지 오래됐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체력 소모가 많아, 체력 보충을 위해 세석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갈 생각도 했으나, 그래도 인솔 대장이 1시까지 장터목에 도착해야 천왕봉에 오를 자격이 있다는 얘기에 따라, 그 지시를 지키기 위해 장터목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바로 출발했다. 하지만 허기져 견딜 수 없어,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서 에너지 바를 꺼내 먹으며 가면서,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봤다.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계속 가면서 이 구간에서 가장 힘들게 생각되는 암봉 전망대가 언제나 도착할지 초조해하며 가다가, 고도를 알기 위해 앱의 지도를 확인하다가 우연히 '화장봉'이라는 봉우리를 발견했다. 이거다! 고대하던 바위 전망대! 그리고 마침내 12시 44분 정상에 올라, 연하봉과 천왕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암봉에서 내려와 연하봉으로 향해, 12시 53분 연하봉이 멀지 않다는 메시지에 따라, 영상을 촬영하며 가, 연하봉 역시 암봉이라 정상석 대신 기둥에 '연하봉' 명패가 박힌 이정표에 도착했다.
제석봉과 천왕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찍은 시각이 1시 정각, 이미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은 상실했다. 하지만, ‘장터목~천왕봉~중산리’ 코스를 한두 번 오르내린 게 아니라, 내 페이스를 잘 아는데, 넉넉잡고 3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말인즉 장터목에서 2시에 출발해도 중산리에 5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급할 게 없다. 해서 서두르지 않고 지금까지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가, 1시 3분 장터목 0.4km 이정표를 지나, 1시 11분 앱이 장터목이 가깝다고 알려줘 역시 영상을 촬영하며 내려가, 1시 13분 등산객으로 붐비는 대피소에 도착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때까지도 오늘이 평일인 줄 알고 있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등산객에 약간은 당황했다. 와중에 바람이 강하게 불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취사장으로 들어가는 것도 생각했으나, 그럼 서 있어야 해, 그나마 혼자 앉아 있는 자리로 가 먼저 온 등산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앉았다. 그리고 찬바람에 한기를 느낄 정도라, 배낭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은 후, 발열 도시락을 꺼내, 15분간 밥이 데워지는 동안,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발의 열기를 차가운 바람으로 식혔다.
점심을 준비한 지 15분이 지나, 종이 도시락을 조립해 밥과 소스, 볶음김치까지 때려 넣고, 비벼서 막 한 입 먹으려는 데, 장터목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심상치 않아 확인한 예보에 15시부터 내린다던 비가 내린다. 애초 장터목에 진입할 때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는 했으나, 민감한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할 정도라 무시했는데, 지금 내리는 비는 폭우 수준이라 다들 짐을 싸서 취사장으로 들어가는 분위기지만, 이대로 앉아, 빨리 먹기로 했다. 다만 먹으면서, 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모자와 바람막이가 다인데, 이 상태로 비가 한 시간만 내리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텐데,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와중에 배낭이 바뀌어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것도 기억났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여기서 중산리로 하산한다. 하지만, 비가 잦아들고, 장터목에서 바로 중산리로 내려가나, 천왕봉에 들른 후 내려가나 비를 맞기는 마찬가지라, 강행하기로 했다. 다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거의 모든 샘의 물맛을 봤으나, 대피소 50m 아래에 있는 물맛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사실 올 때마다 물맛을 봤으니 한 번쯤 안 마셔도 된다. 끝으로 백무동 갈림길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기고, 그동안 무시했던 장터목의 높이가 궁금해 고도를 확인한 후 제석봉을 향해 급경사 돌길로 올라갔다. 참고로 장터목은 설악산 대청봉보다 51m~69m 높은 1,759m~1,777m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장터목에서 제석봉으로 오르는 초반의 급경사 돌길은 누구라도 쉬었다 가는 구간이라, 위로 가다가, 이런 일에 대비해 가져온 한 짝 밖에 없는 등산지팡이를 배낭에서 꺼내 조립해 그것에 의지해 위로 갔다. 그런데, 가랑비를 맞으며 제석봉으로 올라가는데, 천왕봉을 찍고 내려오는 등산객이 평소의 평일 수준이 아니라, 깜짝 놀랐다. 물론 다른 대피소도 많았으나, 여기는 많다는 수준을 넘어, 천왕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려면 최소 30분은 대기해야 할 수준으로, 연휴에나 볼 수 인파다. 해서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10월 1일, 음…. 국군의 날이다! 아, 세금 들여 안 해도 되는 군사 행진하는 날이고, 임시 공휴일이다. 고로 월요일이나 수요일, 금요일 연차를 냈으면 사흘에서 나흘을 놀 수 있는 황금연휴다! 청춘이 많이 보인 걸 포함, 모든 상황이 이해됐으나,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길 수 있을지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어쨌든 1시 56분 앱이 제석봉 반경 100m 내라고 알려줘,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1시 58분 전망대 앞 정상목에 도착했다. 과거 우리는 제석단이라 불렀던 제석봉 일대 또한 보호 구역이라, 등산객은 들어갈 수 없어 정상이 아니라, 전망대 앞에 정상목을 둔 거다.
제석봉 정상목에서 천왕봉까지 남은 거리는 1.1km, 현재 시각 1시 58분, 2시 반 천왕봉 도착을 목표로 위로 갔다. 사실 비구름 속이라 보이는 게 없어, 감상할 것도 찍을 것도 없어 그저 위만 보고 가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기록을 남기지 않은 건 아니라, 그래도 중요한 이정표는 기록으로 남기며 가, 2시 16분 이 구간에서 처음 보는 갑판 계단에 도착했다. 통천문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작년, 이 구간을 지날 때 공사 자재가 쌓여 있는 걸 봤는데, 그 사이 공사가 완료된 거다. 갑판 계단을 혐오하는 인간이나, 이 구간은 특히 겨울에 위험해 칭찬할 정도는 아니나, 이해는 할 수 있는 계단이다. 어쨌든 새로운 계단이라 동영상을 촬영하며 올라, 2시 17분 통천문 입구에 도착해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긴 후 다시 동영상을 촬영하며 통천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비구름 속으로 급경사를 올라, 칠선계곡 정상을 지나, 조금 오른 2시 30분 천왕봉이 멀지 않다는 앱의 전언이 있어,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2시 34분 인증으로 정신이 없는 천왕봉 정상에 도착했다.
먼저 여기까지 힘들이지 않고 올라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지팡이를 정상 바위에 기대놓고, 인증 대상이 바뀌는 틈을 이용해 정상석 앞뒤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정상석 주변 인구가 열 명이 채 안 돼, 혹시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길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로 등산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는 느끼는 거지만, 다른 건 몰라도 산에서 인증을 남기는 것만큼은 남녀노소 완벽한 평등이 이루어졌다. 과거에는 주요 이정표를 배경으로 인증을 남길 때 줄 서서 기다려도, 여성이 다양한 자세로 수십 장의 사진 찍는 건 애교로 봐주고, 남성들은 간단하게 인증할 수 있는 두세 장만 찍었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이야 기다리든 말든,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자세로 수십 장의 사진을 남긴다. 그게 다 까만 소의 인증 정책 덕분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슬슬 열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시점에 막 정상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늙은이들 인증을 찍어주던 산꾼이 그만큼 찍었으면 됐다고 핀잔을 준 덕에 내게도 기회가 와 인증 사진 몇 장 찍었다. 물론 자세야 정상석을 잡고 선 하나다. 이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지팡이를 주워 들고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천왕봉 도착이 목표보다 4분 늦은 2시 34분이고, 천왕봉을 떠난 시각이 2시 40분으로 6분 만에 인증을 남겼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날이 좋은 날도 천왕봉에서 중산리 구간은 찍을 것도 별로 없어, 그저 위만 보고, 아니며 그저 아래만 보고 내려가는데, 비구름 속이라 더 보이는 게 없어 그저 아래만 보고 내려가며, 특히 단체로 온 청춘 수십 명과 우리 일행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중년과 노년의 산꾼 십수 명도 추월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에 도착할 때까지 혹시 뒤를 따라오는 등산객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했으나, 없는 게 다들 대장 말을 잘 듣는 듯했다. 한 조각 남은 오이를 꺼내 먹으며 급경사 갑판을 내려가, 2시 48분 천왕샘에 도착해, 고여 있는 샘물의 맛을 봤다. 천왕샘 물을 맛보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과거 산행 때는 샘이 말라, 물이 없으니, 맛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2시 58분 선바위를, 3시 5분 개선문을 지났다. 중산리까지 남은 거리는 4.6km. 그런데, 페이스 유지하며 내려가다, 중요한 하나를 빠트린 게 기억났다. 이번 산행 목표 중 하나가, 천왕샘 부근에 있는 거로 알려진 통신골로 내려가는 들머리를 확인하는 거였는데, 깜빡했다. 다시 올라가 확인하기에는 너무 내려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계속 가, 3시 23분 그나마 비구름이 걷힌 법계사 앞 봉우리를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3시 28분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29분 법계사 일주문 앞에 도착했다.
이후 지난 산행 때는 바짝 말라, 물맛을 보지 못한 식수대로 가 맛을 봤다. 그런데, 낭비를 막기 위해 문명의 이기를 사용한 수도가 너무 강해 바가지에 담기는 것보다 튀어 나가는 물이 많아, 양껏 마시기 위해는 받는 횟수가 많아져 결과적으로 물의 낭비가 더 심했다. 어쨌든 여러 번에 걸쳐 물을 받아 맛을 보고 내려가, 한참 공사 중인 로터리대피소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청춘 둘이 공사장 벽에 붙은 셔틀버스 시간표를 보고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걸어간다는 거다. 그런데, 난 이정표를 보고 법계사에서 순두류까지 2.7km를 버스를 타고 내려가고, 칼바위 방향은 3.3km를 내려가는 거로 알았다. 그렇다면 버스를 안 타도 순두류가 짧으니 그 길로 내려가는 게 빠를 거로 생각했다. 와중에 버스가 다니는 길이라, 포장된 임도일 확률이 높아 악명 높은 중산리 급경사 돌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도 좋을 거다. 그럼에도 그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은 건 이번 산행을 백두대간 연결이라는 의미도 부여해 대간 코스 그대로 달리는 게 목표 중 하나였다. 그런데, 후에 자세히 보니, 그건 나의 꿈이고, 실제는 법계사에서 순두류까지 2.7km를 걸어 내 간 후 순두류, 즉 황경 교육원에서 버스를 타고 중산리로 내려가는 거다. 비록 중간에 버스를 타기는 하나, 시간이 맞지 않으면 더 걸릴 수도 있다.
당연히 칼바위 코스로 우회전하자, 내려가는 게 아니라 일단 헬기장으로 올라간다. 거기서 이런 봉이 있었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아직 비구름이 장악하지 못한 봉우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급경사 돌길로 지옥의 하산이 시작됐다. 매번 이 코스로 하산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무릎 나가기 딱 좋은 길이라, 등산은 그나마 괜찮은데, 하산은 절대 하면 안 되는 코스다. 지리산의 거의 모든 등산로가 구간구간 돌길이 있기는 하나, 여긴 천왕봉부터 칼바위 삼거리까지 거의 전 구간이 그렇다. 해서 할 수 있으면 이 코스로 하산은 피했으나, 이번 산행은 어쩔 수 없다. 바라던 성중종주를 완료했으니, 앞으로 이 코스로 내려갈 일은 없다! 그럼,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지리산에 오는 일도 거의 없을 거다. 어쨌든 돌길을 조심조심 하산 중인 많은 등산객을 추월하고, 두 개의 망바위도 기록으로 남기며 내려갔다. 와중에 갑판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해서 자세히 살펴봤으나, 딱히 잡히는 게 없다. 그런데 이 코스로 하산하며 만난 갑판 계단이 다 같은 상태다. 그러다, 계단 아래 공터에 놓인 하얀 폐기물 주머니를 보고 이상한 게 뭔지 알았다. 아이젠과 등산지팡이로부터 갑판을 보호하고, 등산객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설치한 폐타이어를 제거한 거다. 갑판 교체? 폐타이어 교체?
2시 40분 천왕봉을 떠나, 4시 16분 칼바위 삼거리에 도착했다. 지리산 정규 등산로 중 의신 코스와 여기 칼바위 삼거리에서 장터목으로 바로 올라가는 코스가 유일하게 가 보지 못한 길이다. 안내 산악회가 찾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의신 코스는 여러 방안을 검토 중으로 내년 봄 중 연하천, 벽소령 등에서 1박 하는 힐링 산행으로 계획 중이나, 칼바위 삼거리에서 장터목으로 바로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어쨌든 장터목 방향에서 내려오는 등산객 중 혹시 일행이 있나 잠깐 살펴봤다. 그리고 삼거리 계곡에서 씻은 후 쉬고 있는 등산객의 모습에 여기서 씻을지 고민하다가, 할 수 있으면 최대한 날머리에서 가까운 곳에서 씻기로 하고, 다리를 건너, 계속 내려가, 4시 20분 칼바위에 도착해,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등산 때는 어두워서, 하산 때는 정신이 없어, 늘 그냥 지나치기만 해, 칼바위를 기록으로 남긴 건 이번 처음이다. 아니, 마고 상을 찾아 내려갈 때 남는 게 시간이라 사진을 찍은 듯하나, 당시 원지에서 카메라를 분실해 자료가 없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다[산행기].
이후 씻기 위해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갈 만한 길이 있는지 주시하며 가, 4시 38분 중산리 지리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통천길'에 도착하는 거로 사실상 산행은 끝났으나, 여기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주차장까지 짧지 않은 임도를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통천길을 통과해 임도와 만나는 초소에서 포장도로 건너보니, 과거 못 보던 ‘두류생태탐방로’라는 갑판 탐방로가 있다. 그런데, 초소 옆에 있는 이정표에는 생태탐방로 종점까지의 거리에 관한 정보가 없다. 대신 탐방로를 홍보하는 플래카드에는 편하고 빠른 길이라고 광고 중이다. 와중에 등산객 한 명이 그 길을 선택해 가는 게 보여, 나도 좌회전해 생태탐방로로 버스정류장까지 갔다. 그리고 후회했다. 완성된 지 얼마 안 된 길이라, 인적이 거의 없고, 구불구불한 중산리 계곡을 따라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지니, 임도보다 길다. 말인즉 빠른 길이라는 건 사기다. 그리고 생각보다 볼 게 없다. 중간중간 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진입로가 있으면 호객에는 좋을 듯하나, 계곡 자체가 출입 금지다. 그래서 외면하는 듯하지만. 그래도 기록을 남기며 가, 5시 8분 산악회 버스가 대기 중인 버스 정류장 겸 주차장에 도착했다. 고로 30분이 걸렸다. 아, 참고로 두류생태탐방로로 가면, 까만 소 성중종주 인증 대상 중 하나인 ‘중산리탐방안내소’를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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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8분 서울행 버스정류장이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이 보이고,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식당 방향으로 가는 게 보여, 그곳으로 가자, 카페 앞 야외 테이블에 친숙한 산꾼이 앉아 있고, 인솔 대장도 그 앞에 앉는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왜 이렇게 보기가 힘든지 묻는다. 해서, ‘두류생태탐방로’로 내려오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한마디 했다. 이후 식당을 둘러보자, 인솔 대장이 식사할 거면 내가 찾고 있던 '기사식당'을 추천한다고 해, 그 식당으로 갔다. 대부분 입맛이 비슷한 게, 한 번쯤 여기서 식사한 사람은 기사식당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 사실 멀리서 기사식당을 봤을 때, 내부가 텅 빈 게 영업을 안 하는 거 같아, 대안을 찾고 있었는데, 인솔 대장 말에 그 식당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은 후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이후 버스로 가, 슬리퍼와 비닐봉지를 들고나와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고 밀봉하고 세수와 세족하고 식당으로 돌아가, 지역 소주가 보이지 않아, 이슬이를 추가하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화장실에서 씻고 온 동안, 많아진 등산객의 면면을 살펴보고 있는데, 혼술 중인 등산객이 주문한 묵무침이 나오자, 주인장에게 김치를 요청한다. 그러자, 주인장이 비싸서 줄 수 없다고 한다. 웃기는 건 다들 그 말을 수긍한다는 거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식당에서 김치를 요구할 수 없는 나라가 돼 버렸을까? 그럼, 혹시 나도? 다행히 5시 17분경 내가 주문한 김치찌개에는 별도로 김치가 보인다. 오히려 서울에서는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김치를 빼는 게 일반적인데 여기는 별도로 주는 게 이상할 정도다. 어쨌든 이슬이를 반주로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는데, 김치찌개라기보다는 김칫국에 가까워 밥을 거기다 부어 말아먹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5시 45분경 배낭을 들고 식당을 나와, 비가 오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버스로 갔다. 그리고 텅 빈 배낭을 짐칸 제일 안에 던져 넣고 버스에 타, 출발을 기다렸다. 그런데, 출발 시간 10여 분을 남겨두고 인솔 대장이 핸드폰을 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게 정시 출발은 틀린 듯했다.
대장이 통화한 건, 노년의 산꾼 둘이 마감 시각에 맞춰 도착하기 어려우니, 식당 앞에 짐을 내려놓고, 출발하라는 거였다. 이런 사태를 예측해 보조 가방에 짐을 챙겨 놓고 산행을 시작한 노련한 산꾼으로 존경할 만하다. 아니, 경험에서 나온 건가? 해서 대장이 기사 식당 주인장의 양해를 구한 후 식당 의자에 가방을 두고 왔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한 명이 비어, 몇 번이나,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아, 5분 정도 기다린, 6시 5분 버스는 중산주차장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막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을 평하면서, 앞으로 산행할 때 참조할 수 있도록 조심해야 할 걸 얘기한다. 당연히 강조하는 건 유유자적하는 산꾼이 1시 40분경 장터목을 떠나, 천왕봉으로 향했다고 그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거로, 마치 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그 시각에 장터목을 떠난 걸 어떻게 알았을까? 이후 실내등이 꺼지자마자 잠이 들어 깨어보니, 8시가 조금 넘었고, 휴게소다.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로 가며 고개를 들어 명패를 확인했다. ‘신탄진’이라, 처음에는 서울이 멀지 않다고 여겨 놀랐으나, 버스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2시간은 더 달려야 해 가까운 게 아니었다.
10분의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뒤에 두고 온 세 명 중 연락이 되지 않은 한 명에 관해 얘기 꺼냈다. 비를 맞아 저체온증으로 한 동안 정신을 잃어 - 쓰러졌다는 게 아니라, 전화가 왔다는 걸 인식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의미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린 후 폰의 기록을 보고 연락했다고 한다. 대장이 전하는 얘기를 듣다가 어떻게 저체온증에서 벗어났는지 궁금했으나, 당사자가 없으니, 물어보지는 못했다. 어쨌든 내가 장터목에서 천왕봉과 중산리 중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했던 게 비를 막을 방패가 없어, 저체온증을 우려했던 건데, 그 상황을 막닥트린 일행이 실재했다. 그리고 다시 취침 상태로 들어갔으나, 잠이 안 와,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처음 신갈, 다음 죽전에서 일행이 내리는 걸 보고, 의자 아래 넣어뒀던 등산화와 양말이 든 비닐봉지를 꺼내 하차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9시 43분경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 정차한 산악회 버스에서 내려, 짐칸에서 텅 빈 배낭을 꺼내, 비닐봉지를 넣고 둘러멘 후 양재역으로 향하는 거로 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지리산 성중종주 계획에 따라 '성삼재 → 무넴기 → 노고단대피소 → 노고단고개 → 돼지령 → 임걸령 샘 → 임걸령 → 날라리봉 → 노루목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운봉무덤 → 명선봉 → 연하천대피소 → 삼각봉 → 형제봉 → 전망바위 → 벽소령대피소 → 구 벽소령 → 덕평봉 → (앱)덕평봉 → 선비샘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대피소 → 촛대봉 → 화장봉 → 연하봉 → 장터목대피소 → 제석단/제석봉 → 천왕봉 → 천왕샘 → 개선문 → 법계사 → 로터리대피소 → 칼바위 → 통천길 → 두류생태탐방로 → 중산주차장'의 42.8km(램블러) 코스를 14시간 38분 동안 달렸다. 휴식 24분, 이동 14시간 14분!
74년 초등학교 3년 여름 방학 때 처음 지리산 2박 3일 산행 후, 수없이 천왕봉에 오르고 다양한 종주를 했으나, 그 모든 게 대피소 또는 야영장에서 1박이나 2박 한 산행이다. 이후 안내산악회라는 존재를 알고, 무박 종주라는 것도 알게 되면서, 나도? 라고 꿈만 꿨던 걸, 2024년 10월 1일 마침내 주어진 시간 내에 지리산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달렸다.
예년과는 다른 2024년 여름 불볕더위라, 셀 수 없을 정도로 더위를 먹어, 다음으로 연기할까도 생각했으나, 기온이 내려가고 구름 낀 흐린 날씨라는 예보를 믿고 강행한 종주로, 막판 비가 내려 장터목에서 중산리로 탈출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였던 것만 빼면, 조망 좋고 기온도 적당해 산행에는 좋은 날씨라 완주할 수 있었다.
지리산에 남은 건 무박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지만, 이번 성중종주 결과, 그건 내 영역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아, 지난 2023년 10월 1일~2일 벽소령대피소 1박 화대종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23년이나, 24년이나, 10월 1일 새벽에 출발했다. 이런 일치가 자주 발생하는 걸 보면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