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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가 되는 인생 (눅 3-121)
2025년 4월 7일 (월요일)
찬양 : 갈보리 산 위에
본문 : 눅 16:19-31절
☞ https://youtu.be/mjRe5ATl-xA?si=hWC-MwAlR-IVLNlv
거룩한 주일을 보내고 이제 새로운 한 주간을 보낸다. 오늘은 내일 있을 중보기도 세미나를 준비하고, 소중한 후배 목사님을 만난다. 모든 일정 가운데 주님의 뜻을 이루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온다. 역시 바리새인의 특징인 돈을 좋아하고 종교적 위선과 영적 무감각에 빠진 현실을 고발하는 이야기다.
19-21절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체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자색 옷은 고대 로마 시대에 황제, 고위 관료, 귀족들이 입는 상징적인 옷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부자라기보다 사회 최상위층의 권세자로 이해할 수 있다.
고운 베옷은 고운 아마포로 만든 옷으로, 사치와 허영의 상징으로 쓰였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부자의 사회적인 위치와 권세를 나타내며 그것이 오직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영적 무감각을 드러낸 멋진 비유다.
<대문 앞에 버려진 체>
여기에 사용된 대문의 헬라어는 ‘πυλών’으로 일반적인 문이 아닌 크고 웅장한 성문 스타일의 입구를 말한다. 즉, 이 부자의 집은 대저택 수준이었고, 그 앞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의 시선이 머무는 장소였다.
"버려졌다(ἐβέβλητο)"는 단어는 의도적으로 버려진 또는 던져진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나사로가 스스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인간적인 존엄도 없이 방치된 상태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니까 부자는 대문 앞에 매일 같이 존재하는 고통의 현실을 모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날마다 보면서도 무시하고 살아가는 부자의 무관심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사람보다 체제, 율법보다 자비가 결여된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개들이 헌데를 핥더라>
유대인들에게 개는 부정하고 천한 동물이었다. 그런 개들이 나사로에게 와서 헌데를 핥더라는 것은 개들조차 아픔을 위로했다는 표현이다. 인간은 무시하는데 동물조차 알고 위로하더라는 풍자적 표현이다.
부자는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영적으로는 눈앞의 고통에 무관심한 빈곤한 상태였음을 드러냈으나, 개들은 위로가 필요함을 알고 핥아주었다는 말이다.
이 비유의 반전은 22절에서 시작된다. 22-23절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한 번 죽는 것은 인생의 필연으로 나사로도 부자도 죽었는데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음부에 들어갔다. 문제는 음부에서 부자는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을 보았다.
음부에서 나사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실제 사후 세계의 지리적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극적인 대비를 위한 비유적 장치이다. 여기서 음부(ᾅδης, 하데스)는 일반적으로 죽은 자들의 임시 거처로, 신약에서는 종종 심판 전의 대기 공간으로 묘사된다. 여기서는 형벌의 장소로서 묘사되었다.
반면, 아브라함의 품은 고대 유대 문헌(특히 탈무드와 유대 묵시문학)에서 의로운 자가 죽은 뒤 안식하는 장소, 즉 의인의 천국으로 비유되었다. 이것은 하나님 곁, 천국을 묘사한 것이다.
이 비유의 핵심은 이 땅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한 단절과 고통이 따른다는 경고하기 위함이다. 25-26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31절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는 죽은 뒤에도 회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사로를 보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부탁만 하고 있다. 회개는 지금 여기서 살아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부자는 날마다 그 앞을 지나쳤을 것이다. 그는 단지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놓친 자였다. 이것이 통탄할 일임을 알지 못하고 말이다.
부자는 분명 율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율법의 참된 정신인 자비와 정의를 행하지 않았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개를 청하고 계신 것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지금의 삶이 영원한 삶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본문은 말씀한다. 기회는 지금 여기서만 존재한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보다 지금 들려지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들려지는 말씀을 듣지 못하면 기적이 일어나도 믿을 수 없다. 이 고백이 오늘 아침 말씀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이 아침 다시금 마음을 새롭게 하여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구체적인 가난한 자와 고통하는 자를 향한 사랑을 잃어버린 부자의 끝을 깊이 묵상한다. 회개하려 해도 회개할 수 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 부자의 깊고 애통한 탄식이 들려오는 것 같다.
내게 주신 자리를 누리는 삶이란, 자기만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누림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명을 이루는 누림이 되어야 함을 배운다. 율법의 근본정신을 놓치고 율법을 자기 높임과 영광을 위한 사다리로 사용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오직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주님, 이 종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도 삶의 사다리가 되어 주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삶으로 나가게 하소서. 이 은혜가 나만을 위한 나에게서만 멈추는 그런 어리석음이 없게 하소서. 이웃을 향하지 못했던 나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이 하루도 철저히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 중보기도 세미나 교재가 하나님의 뜻을 담아 출판되도록
1. 웨이브리즈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이 주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이 시대를 이끌 진짜 목사가 세워지도록
3. 30억의 재정 공급을 통해 선교회가 새로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4. 라마나욧선교회 행정 시스템이 섬김을 위한 최적의 구조를 찾도록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만의 방식을 세워가도록
6. 틴케이스가 2025년 세운 계획들이 세워져 가도록
7. 작은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 가도록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8. 충주 라마나욧이 구체적인 사역 방향을 정하여 세워지도록
9. 박정제목사를 비롯한 팀원들 모두가 성령안에서 충만하도록
삶을 바꾸는 질문 : 다음 질문을 통해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1. 내 삶의 "대문 앞"에 있는 나사로는 누구인가요? 나는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가요?
2.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나는 어떤 자세로 응답하고 있나요? ‘죽은 자가 살아나도 믿지 않을’ 영적 둔감함은 없는가요?
3. 나는 말씀을 나만의 만족이나 위로로만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요? 이웃에게 연결되는 사다리가 되고 있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