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고민가운데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화를 내고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할 수 있는가? 아니면 화를 내고도 죄를 짓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분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이 있는가?”1) 어떤 이는 분노는 모두 죄라고 말한다. 성경의 몇몇 구절들은 분노의 감정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다. 에베소서 4장 31절에는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시편 37편 8절은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산상수훈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마5:22)”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성경 구절들은 분노의 감정에 대해 관대하다. 시편 4장 4절은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라고 말하며, 에베소서 4장 26절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분노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2)
경건하고 헌신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은 분노에 대한 이 모순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나님은 스스로 진노하시면서 사람들에게는 분노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상반된 모순의 말씀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되겠는가? 성서에 나타난 분노에 대해 어원적으로 또한 신학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구약에서의 의미
분노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구약성경에 약 455번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는 경우는 375번이나 된다.3) 히브리어에서 분노에 해당하는 표현 중 가장 널리 쓰이는 단어로는 ‘아나프’(ףנָאָ)가 있다. 이 단어의 명사형은 ‘아프’(ףָאָ)인데, 이 명사의 원래 뜻은 ‘코’이다. 이 명사형 ‘아프’가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이 낱말은 사람이 분노할 때 콧구멍이 벌어지거나 콧김이 세차게 내뿜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4) 동사 ‘아나프’는 항상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지만(14회), ‘아프’는 하나님(170회)과 사람(40회)의 진노를 모두 표현하고 있다.5)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었지만, 모세가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던져 깨뜨릴 때의 강렬한 그러나 약간은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분노를 표현하는 경우에도 쓰이고 있다. 또한 분명히 옳지 못한 발람의 분노(민22:27)에도 쓰이고 있다.
‘아프’라는 단어 다음으로 자주 쓰이는 단어는 ‘자암’(םעַ)이란 어휘이다. ‘자암’이란 단어는 동사(12회), 명사(22회), 총 34회 나타나며 주로 후기 예언서나 성문서에 쓰이고 하나님의 노(怒)나 저주를 나타낼 때 자주 쓰인다. 명사로 사용된 22회의 경우는 전부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묵시문학 속에서 ‘자암’은 ‘진노의 때’를 가리키는 특별한 뜻으로 사용되었다.(사 26:20, 단 8:19, 11:36)6)
2. 신약에서의 의미
신약에서 ‘분노’(진노, 화냄)에 해당하는 대표적 헬라어로, ‘쒸모스’(θυμός)와 ‘오르게’(ὀργη)가 있다. ‘쒸모스’는 매우 흥분된 상태로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터뜨린다는 의미로 잠시 동안 발끈하여 순식간에 타오르고 곧 사라진다. 그러나 ‘오르게’는 마음이 안정되거나 지속적인 상태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분노를 말한다. 이 단어는 보복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고, 그 본질상 오래 계속되는 경향이 있다. 어원적으로 ‘오르게’는 식물 또는 과일의 즙 같은 내부 물질이란 의미에서 어떤 사물의 타고난 기질, 성질, 성격, 또는 충동을 뜻하는 단어이다. ‘쒸모스’와 ‘오르게’는 서로 바꾸어 사용될 수 있는 동의어로서 인간의 분냄과 하나님의 진노 모두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이는 곧 의로운 진노와 그릇된 분노를 표현할 때 똑같이 사용된다는 말이다.7)
3. 하나님의 분노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의 분노와 다르다. 왜냐하면 인간의 분노와는 달리 하나님의 분노는 죄를 향해 쏟는 거룩한 진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부정함과 불경건함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다. 하지만 이 분노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의 일부이다. 인간과 달리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진노를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시103:8; 사48:9; 욘4:2; 나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보이시는 정당한 반응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또한 자비하시고 사랑이 무한하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다.8)
하나님은 그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셨고,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기고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신29:28; 삿2:20; 수23:16). 특히 하나님의 진노는 그 백성이 이방의 다른 신들에게로 향할 때 더욱 격렬해진다(출32장; 민25장; 신2:15, 4:25, 9:19,31:29; 삿2:14; 왕상11:9, 14:9; 왕하17:18).9)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이방신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곧 종교적인 죄로 인해 분노하셨다.
그런데 또한 하나님의 분노는 사회 윤리적인 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약자들인 고아들과 과부들을 부당하게 대하는 일과 사회적인 불의에 대해서도 분노하셨다(출22:22-24; 사1:15-17; 렘5:28; 암5:7,10-12; 미3:1).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의 혼합주의적 신앙과 이방정책으로 인해서도 분노를 나타내셨다(사1:10-17, 30:1-5, 31:1-3; 렘5:28; 겔16:26; 호5:13, 6:6).10)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분노하시고 그 분노를 공공연히 표현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마가복음 3장 1-5절에서 주님은 한편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신 이적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완악한 태도를 보였을 때 화를 내셨다. 요한복음 2장 13-15절에서 주님은 성전으로부터 돈바꾸는 자를 쫓으실 때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 주셨다. 이 장면에서 주님은 그 돈 바꾸는 자들이 부당한 환율로 폭리를 취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인간의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을 나타내야 했기 때문이다.11)
하나님의 분노는 그의 긍휼하심과 뒤섞여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진노 가운데서라도 자비를 기억하신다(합 3:2).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면, 이제 그분은 그 백성을 위로하신다. 하나님의 분노는 죄에 대한 그의 의로우신 반응에 의해서 조정되고, 그의 인내와 자비의 속성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분노는 하나님 자신의 속성인 ‘사랑’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행위이다.
4. 사람의 분노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지도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때때로 격노했던 사람이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왔을 때, 백성들이 우상을 만드는 것을 보고 격분해서 십계명이 쓰인 돌판을 부숴버렸다(출32:19). 모세가 백성들을 책망한 것은 당연했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의 계명이 쓰인 돌판을 부숴버린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궤를 옮기던 웃사가 죽임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분노했다(삼하6:6-8).
인간의 분노는 모세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 표현하기도 하지만 다윗 경우처럼 하나님을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과 욕구에 제한을 받기에 오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분노하는 까닭은 그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거나(창27:45, 30:2, 39:19; 민24:10), 다른 사람이 이용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창34:7, 삼하12:5, 13:21), 혹은 누군가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나 불신을 드러낼 때(출16:20, 32:19; 왕하13:19)이다.12)
구약은 대체로 인간의 분노를 합당치 못하다고 본다. 이것은 창세기 4장5-7절에 잘 나타난다. 나아가서 인간의 분노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창49:6-7). 오히려 분노를 참는 것이 좋은 일로 묘사된다(잠15:1, 21:14). 지혜로운 자는 분노를 참는다(잠 29:8, 11). 잠언은 분노가 불타오르는 사람보다 냉철한 사람이 명철하다고 여긴다. 분노는 미련한 자의 특징이다(욥 5:2, 잠 14:17, 29, 전 7:9).13)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에서는 분노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분노가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따라 죄로 변할 수 있다. 분노의 감정이 이기적인 미움과 원한, 보복으로 표현되면 이는 심각한 죄가 된다. 분노의 감정을 느꼈을 때 지체하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분노를 표현할 때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결국 분노의 감정이 옳고 그른가는 분노 그 자체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느냐에 달려 있다.15) 분노 그 자체는 중립적인 감정이다. 신앙인들은 분노를 느꼈을 때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려 건강하게 표현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승리해야 한다.
분노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감정의 소리를 들으면서 결코 그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분노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숙지할 때, 분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스스로 간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분노를 일으키는 여러 원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옮긴글>
[출처] 성경이 말하는 분노 (은혜성서교회) | 작성자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