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3. 9. 13. 수요일.
아침부터 가느다란 비가 내린다.
나는 오늘 아침에 밥을 굶은 채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상가 4층으로 올라갔다.
당뇨를 20여 년이나 앓고 있기에 한 달 또는 두 달마다 내과병원에 들러서 당뇨검진을 받는다.
손가락 끝이나 또는 팔뚝 혈관에 주사바늘을 찔러서 혈당 등을 조사하고, 6개월마다 여러 증상에 대한 종합검진을 받는다.
오늘은 6개월마다 검진하는 신장, 백혈구 빈혈 등을 검진받으려고 팔뚝 혈관에 주사바늘을 꽂아서 피를 뽑아냈다.
내일 오전에 내과병원에 다시 들러서 검진결과를 들어야겠다.
나는 귀와 눈이 어둬서 병원에 갈 때에는 내 아내가 늘 함께 동행한다.
2.
<한국국보문학> '등단시인방'에는김병환 시인의 시가 올랐다.
제목 : 조조 버스
어둠 속
조조 버스에
시니어 북적인다
.... ......
늦으면
일자리 빼길까
마음은 콩닥콩닥
...... ...........
내가 아랫처럼 댓글 달았고, 퍼서 여기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내 댓글 :
덕분에 사회공부를 더 합니다.
'조조 버스'
이게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검색했지요.
첫차부터 오전 6시 30분까지 버스, 지하철을 타면 기본요금 20% 할인. 단 카드 결재시에 혜택.
'조조할인 버스'이군요.
저는 나이 많은 탓인지 버스 탈 일이 거의 없지요.
지하전철도 이따금씩 공짜로 이용할 뿐이라서 나들이가 거의 없지요.
나이 든 노인들이 일당 일자리를 얻으려고 첫새벽부터 집을 나서서 버스나 지하전철을 타는군요.
하루 일당은 얼마쯤이나 버는지...
서울 송파구 서민주택 뒷골목길에서는 종이를 주워담아서 잔뜩 쌓은 리어커를 이따금씩 보지요.
등허리 굽은 영감 때로는 할머니들도 있대요.
저는 퇴직한 지도 만15년을 넘었고, 퇴직한 뒤 시골에서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서울로 올라와서 살지요.
서울로 되올라와서 살면서도 이제껏 일자리를 구하려고 애 쓴 적은 없지요.
위 시는 삶의 현장에서 보고 듣는 내용이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하는 시이군요
동전 한푼도 못 버는 나한테 위 시는 많은 감동을 줍니다.
엄지 척! 합니다.
나는 집나이 일흔여섯(만74살).
1949년 1월 말쯤에 태어난 나는 호적신고가 몇달 늦는 바람에 국민학교(요즘에는 초등학교)에는 집나이 아홉살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1956년부터 학교 다니기 시작했고, '가갸거겨', 덧셈 뺄셈을 배우기 시작하여 수십 년이 지난 지금껏 나는 '글자벌레, 책벌레'가 되어서 날마다 글을 읽고, 또 컴퓨터 자판기를 눌러서 생활글을 쓴다. 물론 A4종이에 일기 등도 쓴다.
나는 집나이 스물여덟살에 서울시 중구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으나 월급 두 달어치만 받고는 이내 사표를 내고는 다시 공부를 더했다. 집나이 설흔한살때부터 직장 다니면서 다달이 월급봉투를 받아서 아내한테 내밀었다. 이런 생활이 30년 넘게 이어졌고, 정년퇴직을 했다.
퇴직한 그날 오후에 시골로 내려가서 그때까지 혼자 살던 어머니 곁으로 갔다. 어머니 집나이 아흔살.
나는 시골에서 살면서 텃밭 세 자리에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 화초를 장에서 사다가 심고, 가꿨다.
* 과일나무 묘목은 400여 그루.
돈벌이하고는 하등의 상관도 없이 그저 '키우는 재미, 들여다보는 재미'로만 농사 지었다. 돈 한푼어치도 벌지도 못하는 건달농사꾼, 엉터리농사꾼이었다.
공직생활 30년이 더 넘었기에 다달이 연금이 나온다.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된다. 바깥에 나가서 추가로 일하면서 추가로 돈벌이 하지 않아도 됄 만큼이다.
나는 산골 아래의 시골 태생이라서 지금도 값이 허름한 채소 등이나 즐겨서 먹는다. 가격이 비싼 육류(고기), 생선(어류) 등은 거의 먹지 않는다. 아내가 설, 추석, 제사, 내 생일 때에는 고깃국을 끓여서 나한테 내미나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고개를 흔든다.
주머니가 가벼운 나는 그저 무 배추 등 푸성귀로 만든 김치, 값이 싼 감자 고구마 등이나 즐겨 먹는다.
이런 식성이기에 다달이 나오는 연금, '쥐꼬리보다 조금은 더 긴 연금'으로도 그럭저럭 생활한다. 빚 안 지고도....
나는 노동일을 하면서 일년짜리 새경(머슴), 품삯, 품값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
동전 한닢조차도, 종이돈 1,000원짜리 한 장조차도 번 적이 없다.
따라서 위 '김병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학교 교문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내 아버지 어머니 덕분에 나는 1950년대에 시골에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시절에 대전으로 전학갔고,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녔다(정치외교학 전공).
군 제대 뒤에는 취직시험을 준비한다면서 노동자였던 아버지한테서 돈을 받아서 취직시험에나 정진했다.
나는 시험공부 기간 중에 공직시험을 몇 군데 치뤘고, 법무부 교정직으로 발령났으나 처음서부터 사표냈고, 서울시 중구 동직원으로 취직했으나 2개월이 채 안 되어서 그만 두었고, 과기처 공직에는 처음서부터 사표냈다.
더 공부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아버지의 나이는 환갑을 코앞에 두었다. 무학자 노동자인 아버지한테 내가 용돈 타 쓰고, 대전에서 사설학원에 다니면서 학원비를 낸다는 게 무척이나 그랬다.
그래서 아버지 환갑을 치룬 뒤에는 나는 눈 딱 감고는 다음 해 1월부터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있는 어떤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직장 다닌 지 두 달이 채 안 되어서 3월 초에 결혼했고, 아내는 곧바로 임신했기에 나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는 그저 한 직장에서만 다녔다.
'쥐꼬리보다 조금 더 긴 월급을 받으면서...
'자식이 넷이나 되었고 ....
나는 어머니 아버지한테 많은 은혜를 받았으나 내가 되갚은 것은 별로 없다.
내 어머니 아버지는 학교 교문이 어디에 붙었나도 모르는 무학자, 노동자 계급이었다.
나는 덕분에 학교에 다녔고, 무직자 생활도 했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아내를 만나서 평범한 가정을 꾸며왔다.
나는 지금껏 별다른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일생을 살아오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는 1978년 5월 초부터 서울 송파구 잠실지역에서 살기 시작했으니 2023년인 지금껏 46년째 산다.
퇴직한 지도 오래되니까 내 등허리뼈는 나날이 굽어간다.
운동삼아서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주택가로 어슬렁거리면서 걷는다.
이따금씩 리어커에 폐지를 담고서 힘들게 끌고 가는 영감 할아버지와 등허리가 굽어서 고개를 땅으로 숙인 할머니가 끄는 리어커를 본다.
송파구 삼전동 하단에 흐르는 강 '탄천' 쪽 도로변에는 폐지 등 잡동사니를 수거하는 작업장이 있다.
길거리에서 리어커를 끄는 노인을 이따금 본다.
폐지를 수거해서 팔면 1kg에 얼마쯤 벌까?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폐지 수거....
내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노동 품값.
등등이 숱하게 이어져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내가 모르는 사회현상이기에....
일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 화장실 앞에서 빈 병을 수거함(통)에 하나씩 넣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빈 병 하나를 주워서 수거함에 넣으면 얼마쯤 받나요?" 물었더니만 "병 1개에 10원 받습니다" 고 대답했다.
빈 병 1,000개를 주워 와서 수거함 통에 하나씩 넣으면 고작 1만원이라고?
빈 병을 줍고, 가져오고, 수거함에 하나씩 넣는 노력과 시간을 계산하면 보상비가 너무나 적다.
귀 어둔 내가 잘못 들었을 것 같다. 더 많이 받았으면 싶기에....
2023. 9. 13. 수요일.
오후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모레인 금요일(9월 15일)에는 자동차 끌고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야 하고, 일요일(17일)에는 산소 벌초행사에 참여해야 하는데.... 이렇게 큰 비가 내리면 벌초행사가 뒤로 미뤄질까 봐 걱정이 앞지른다.
가을비... 그만 그쳤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