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 역시나 김연아 선수 피겨 때문에 잠을 설쳤습니다. 출근했다가 의원회관 주차장에서 차에서 깜빡 선잠에 들었습니다. 20분이나 잤더군요. 10시 40분에 본청으로 갔고, 11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촉구 정치권,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오랜만에 전에 프레시안 기자로 일했고, 그래서 그때 늘 저랑 어울렸고 친한 후배이자 술친구로 지냈던, 지금은 안철수 의원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는 윤태곤 만나 이런저런 농담들을 나누었습니다. 뭐 주변에 당직자들도 있고 의원들도 계시고 그래서 정치적 이야기 말고 딴 소리 좀 하였습니다. 회의 끝나고 잠시 당 대표실에 들렀고, 12시에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사무처리 했습니다. 1시 15분 사무실에서 간단히 점심 때웠고, 1시 30분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일부 조직개편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법안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2시 30분 여의도로 나가 교육자치 관련 비공개 미팅을 가졌습니다. 이런저런 의견을 듣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걸어서 나가 걸어서 돌아왔는데 벌써 봄이더군요. 오늘 문득 봄을 느꼈습니다.
2. 뒤늦게서야 본회의장에 잠깐 들어가 출석을 확인하는 정도였고, 김재윤 의원‧홍종학 의원 만나 몇 가지 급하게 의견교환 했고, 다들 지방선거가 관심이라 지금 그런 쪽에 대한 많은 조언들 주십니다. 다시 당대표실로 가 비공개 워킹그룹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5시에는 홍보 TF관련 역시 당내 회의에 참석했고 다시 또 다른 미팅 하나 있었고 5시 30분 당에서 추천하는 공직후보자 추천회의에 참석했다가 다른 일도 있고 또 제가 누군가를 추천한다는 게 부담스러워서 중간에 나왔습니다. 참 어렵고도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가능한 한 이런 일을 피하고 싶은데, 참 쉽지 않네요. 재판으로 말하면 기피사유에 해당합니다. 스스로 빠져나가는 부담스러운 내부적으로 충돌되는 이해 때문에...
3.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밀린 일 처리하고 억지로 짬을 내서 한 시간 정도 운동 하였습니다. 9시는 다시 시내 쪽에서 지방선거 관련 비공개 미팅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조언을 주시겠다는 분이 계셔서 나가야 합니다. 당 내 좌표 혹은 정책적 스탠스라고 그럴까요, 그리고 지도체제의 문제, 선거 대비 체제의 문제에 대해 언론들은 의도적으로 진영론 혹은 대조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당 내 분열주의를 강조하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당 내 정책적 차이, 조직적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 방식이지요. 그저 어감의 차이이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은 없습니다. 언론이라면 언제 어느 때고 이런 방식의 잣대를 들이대고 주관적 관점을 강조하는 건 필연적 숙명이지요. 정치가로서, 정당으로서.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될 이유도 없고, 또 민주당 내의 이런 구분법이 하물며 새누리당의 친이 ‧친박 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아직 집권 1년차를 갓 넘어가는 새누리당에서 여전히 친이네, 친박이네 하며 분열상이 노출되고, 또 박심이네 비박심이네 하며 논쟁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 아무리 못나도 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잘났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게 그러하듯 상대적 의미이지요. 이제 집권 1년차 정부와 정당에서, 그것도 거의 절대적으로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정당에서 벌써부터 지방자치 선거 그리고 당권을 놓고 구시대적 계파인 친이와 친박이 얼굴을 붉혀가며 싸우는 모습은 민주당의 다툼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분열의 과잉은, 계파의 과잉은, 대립의 과잉은 민주당의 몫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몫이요, 숙명인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늘 강조드립니다만, 여전히 정확하지도 않은 이념적 지표를 바탕으로 좌니 우니 중도니 하는 논쟁 자체가 전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늘 강조드립니다만, 법안에 대한 표결을 중심으로, 그리고 일관성을 중심으로 17대때부터 지금까지 의원들을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 민주당에서 제 스탠스는 어느 정도 일까요. 17대때 조중동이 저를 지칭할 때 수식하던 표현은 “강경반미자주파”입니다. 과연 그때 제가 그러했을까요. 위키리크스가 표현한 저에 대한 표현은 “reform-minded“ 였습니다. ‘개혁성향의’ 뭐 이정도 아니겠습니까? 저를 좌파로 표현한 수식어는 거의 없었습니다. 위키리크스에 제가 21번 정도 언급이 되었는데 대부분이 개혁성향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부분 조중동에 의해서는 좌파취급 받은 것이지요? 저는 유럽으로 가면 중도우파 수준이라고 저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중도좌파로도 평가 못받을 것입니다. 아무리 냉정하게 평가하더라도 사회당원도 아니고, 보수당에서 왼쪽 정도 됐을 겁니다.
우리는 이념의 반쪽을 북한이 그야말로 개판치듯 잡아먹고 있는 바람에, 실상은 좌파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고 인민민주주의도 못되는 주제에 지들이 좌파고 사회주의자고 공산주의자고 이따위 주의주장을 늘어놓는 바람에, 고작 사회주의 왕조에 불과한 마당에, 그 후유증 이를 테면 빨갱이 후유증, 극단적 반공주의 후유증, 분단 후유증, 요즘 같으면 종북 두려움 때문에 어느 누구도 중간을 기준으로 왼쪽에 가는 걸 두려워합니다. 저는 그래서 중간을 기준으로 한국 정당과 정치인들은 오른쪽에 몰려있고 혹여라도 중간 쪽으로 가다가 빨간색 물감 튀길까봐 두려워서 아예 그쪽 근처로 가지 않고 오른쪽, 오른쪽에서 다들 고만고만하게 모여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강조하는 문장 있지요? 존경하는 최장집 선생님의 말씀인데, 한국의 보수 양당의 차이가 뭐가 있느냐, 지역기반의 차이하고 남북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 말고는 무슨 차이가 있느냐, 사회경제적 접근 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 이런 비판을 하고 계시지요? 저는 이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여전히 좌클릭이니 우클릭이니, 이런 논쟁들이 저는 참 불편합니다. 그래봐야 부처님 ‘오른’손바닥에서 놀고 있는 꼴입니다. 손오공이 아무리 근두운을 타고 돌아다녀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 했었지요? 저는 그것을 더 축소해서 새누리당이건 민주당이건 오늘날과 같은 분단의 현실, 반공 이데올로기가 극단적으로 지배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왜곡되어 이해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새누리당이건 민주당이건, 그 정책적 스탠스가 아무리 좌우를 넘나들어 봤자 부처님 왼손이 아닌 오른손바닥에서 놀고 있는 꼴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중간을 기준으로 좌우를 넘나들어야 좌클릭, 우클릭인데 중간을 기준으로 오른쪽 50에서 놀고 있으면서 아무리 좌클릭하고 아무리 우클릭 한들 여전히 오른쪽이라는 의미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현재 양당제의 좌표라고 생각합니다. 그 오른쪽과 오른쪽의 틈새 사이를 비집고 안철수 신당이 들어오고 있지요? 그렇다면 오른손 내에서 왼쪽 근방이 민주당이고, 중간이 안철수 신당이고, 오른쪽 근방이 새누리당 쯤 되는 건가요? 그래봤자 소동파의 싯귀처럼 ‘달팽이 뿔’끼리 싸우는 꼴입니다. 달팽이 뿔끼리 싸워봐야 거기서 거기인 것이지요. 너무 냉소적으로 이야기했나요?
한 가지만 덧붙입니다. 저도 어느새 당내 기득권이 된건가요? 당내 주류가 된건가요? 당내 지도부가 된건가요? 저는 그냥 당내 테크노크라트일 뿐입니다. 임명직 당직자일 뿐입니다. 그것도 한시적 당직자입니다. 지방선거 앞두고 일시적으로 등판한 지금 같으면 제가 자위컨테 패전처리 투수에 불과합니다. 다만 그 패전을 벗어나기 위해 제가 맡은 이닝을 확실하게 책임지고 싶고, 서로 힘을 모으고 파이팅을 해서 제가 이닝을 잘 틀어막으면 다음 이닝에 타자들이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치고 해서 현재의 국면을 역전시키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신승이건 압승이건 역전승이건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제가 가진 투구수의 한도내에서 최선을 다해 던질 뿐이지요. 그렇다고 제가 패전처리 투수로 머무르고 싶겠습니까. 어떻게든 제가 맡은 이닝을 퍼펙트하게 틀어막고 야수들과 치열하게 방어해서 공수가 바뀌게 되면 반드시 강공을 퍼부어서 대역전극을 만들어내고, 또 저 다음이닝을 책임질 투수가 잘 던져서 완벽하게 세이브 투수에서 넘겨줄 수 있다면 이 또한 정치적 의무이자 기쁨 아니겠습니까. 딱 그 정도입니다.
바빠서 동료의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수많은 회의에 끌려다니느라 제 정신도 아니고,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라이프사이클과도 워낙 달라서 온갖 통증에 시달리고 있고, 또 마음도 정신도 여전히 제 줄기를 찾아가지 못합니다만, 그래도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런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간혹 선출직도 아니고 또 최고위원 멤버도 아니고 그저 당분간 돌아가면서 하는 당직을 맡고 있을 뿐이고 그런데도 안타까운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냥 확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계파로 분류하거나, 구악으로 분류하거나, 누구 사람으로 분류하거나, 무능한 지도부로 매도하거나 뭐 이런 방식들의 여런 글들도 있고 뭐 멘션들도 있더군요.
한편으론 흘려버리고, 한편으론 쯧쯧하고 맙니다만, 이제 채 100일 조금 넘게 남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좀 더 당 내의 논의, 그리고 정선된 주의 주장들 그리고 이정도의 갈등조차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공정하고 균형잡힌 당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좀더 신뢰성이 필요하고 좀더 일관성이 필요하고 그래서 정당민주주의 특히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필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확대해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냥 제 쓰잘데기 없는 소견입니다. 제가 즐겨쓰는 단어, 닭벼슬만도 못한 벼슬입니다. 당직이 무슨 공직도 아니고 감투도 아니고 패권도 아니고 자랑도 아닙니다. 그저 일시적으로 떠맡은 골치아픈 의무에 불과하고, 한순간 당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그정도 수준 아니겠습니까. 과잉해석되거나 과잉비판이 가해지지를 않기를 희망합니다. 저도 전에 그런 방식의 비판을 감행해온 건 아닌지, 지나치게 냉소적이진 않았는지, 지나치게 비판을 위한 비판을 거듭하지는 않았는 지, 지나치게 극단적 지지자들을 향한 발언만을 과잉표출 하지는 않았는지 새삼 반성합니다. 여기까지입니다.
4. 내일 새벽이지요? 아침 회의가 있어서 TV중계를 보고 자야할지, 자다 일어나 봐야할지, 포기해야할지 늘 이런 사소한 고민이 역시나 세상을 지배합니다. 아참, 기왕 생각난 김에 두 가지 촌평만 적어두고 갑니다.
첫 째는 공군사관학교 내부의 논쟁입니다. 여전히 평등을 잘못 해석합니다. 여학생 생도에게 요구되는 체력의 수준이 남학생 생도와 같아야 하나요? 평등은 같은 건 같고, 다른 건 다르게 입니다.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여성의 체력 수준이 현존 남성의 체력과 동등하나요? 정말 한심한 기준입니다. 어떻게 아직까지 이런 방식의 기준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버젓이 공표되고, 뻔뻔하게 해명하고, 비판에 둔감한지 도대체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캄캄합니다.
둘째는 대학생이건 신입생 OT에 지도교수가 따라가면 달라집니까? 그리고 지도교수가 따라가야 합니까? 여전히 지도를 받아야합니까? 아예 학부모를 보내지 그렇습니까? 물론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또 그런 시설을 안전하게 갖춰놓지도 않은 채 학생들을 받은 그 사업자에 대한 비난, 당연히 강력해야하고 처벌 또한 나가야합니다. 대신에 학생들도 좀 더 신중하게 확인하고 스스로 안전과 책임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성인입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정보를 얻고, 스스로 계약하고 스스로 확인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그런 성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언론들이 지도교수가 안따라간 게 문제고, 지도교수가 간섭하지 않은 게 문제고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흐리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전 이런 방식의 문제제기에는 비판적입니다.
우리사회의 안전의식, 안전 불감증, 이정도의 안전조차 확보해내지 못하는 전근대적 사회시스템과 안전의무들, 심지어 대통령께서 안전행정을 내걸고 있고 행정안전부조차도 안전행정부로 바꿀 정도로 안전이 국가의 모토인데도 여전히 성수대교 무너지듯 무너지고 있고, 여전히 삼풍백화점 무너지듯 무너지고 있고, 그것도 유명을 달리한 10명의 학생 중 9명이 구조가 늦어지는 바람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그런 뉴스를 보았을 때 과연 어느 누가 아이를 낳고, 어느 누가 한국 사회를 신뢰하고, 어느 누가 한국 사회의 안전시스템을 믿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게 얼마나 고통스런 상황입니까? 요 며칠 이 생각만 하면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과잉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제가 거의 지난 2년 동안 틈만 나면 일기에다가 나는 한국 사회에 거대한 재해가 몰아칠 것 같다, 산업사회의 피로증이 몰려올 것 같다, 원자력 안전 등이 괴롭다, 그래서 재해에 대한 책들을 최근 집중적으로 읽었고, 제가 늘 #cjcbooks에 올려왔습니다. 왠지 한국 사회에 거대한 재해가 몰아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 몇 년간 닥치는 대로 다른 나라의 재해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 재해 관련 번역서들은 무조건 삽니다. 과연 이것이 현대 국가입니까? 대학 신입생들의 그 밝고 찬란한 꿈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 그 밝은 희망과 미래의 비전조차도 살려주지 못하는 나라, 더 괴로워하고 더 고통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 같은 기성세대나 정치인들은. 그래서 부끄럽고 한없이 미안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서럽습니다. 오늘 돌아가신 부산외대 학생 중 한 분의 장례식 사진을 보았습니다. 늘 사랑을 주고받았을 강아지 한 마리가 운구되는 관 뒤에서 슬픈 눈초리로 쳐다보는 정말 가슴 아리는 사진이었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돌아가신 이 학생의 한에 대하여 신원할 의무가 있고, 이 강아지의 불쌍한 눈물에 대하여 응답할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질은 한국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고, 생명과 신체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 문제입니다. 돈 문제가 아닙니다. 400m 고지 문제도 아닙니다. 출동 시스템의 문제도 아닙니다. 더구나 학생이 단독으로 OT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법이 아닙니다. 지도교수 참여여부라는 이따위 논법은 더더욱 전근대적입니다.
요 며칠 이 문제로 혼자서 화내고 다니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메모로 남깁니다. 다들 트위터나 댓글 등을 통해 말씀하신 내용이겠지만 저 또한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런 부분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 제목 있지요?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딱 그런 기분입니다. 정치인으로서 사회적 시스템, 제도, 정책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해서 바꿔 놓아야하는 데 늘 이런 변죽만 울리고 맙니다. 그래서 스스로 정치라는 직업에 대해 매력을 잃어가고 저의 무능을 확인해 가고, 그래서 적절한 때에 하루빨리 떠나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저보다 능력있는 사람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다음 계주를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작권 삼진아웃제는 기본권인 ‘인터넷 접속권’을 저작권 보호 명목으로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액세스, 퍼블릭 날리지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지난해 3월 한국 국회에 보낸 서한에서 “현행 저작권법은 행정부가 그 어떤 사법절차 없이도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도 지난해 1월 정보인권 보고서에서 저작권 삼진아웃제 폐지를 권고했다. 인권위는 “규제의 실효성이 명확하지 않은 삼진아웃제가 다른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지를 충분히 검토해 필요하다면 해당 입법을 폐지할 것이 권고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2009년 삼진아웃제에 대해 위헌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최재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저작권 삼진아웃제 폐지 법안이 계류 중이다.
저작권 삼진아웃제는 불법 다운로드 등 저작권 침해 행위로 3회 이상 경고를 받으면 인터넷 계정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는 제도로, 2009년 7월 도입됐다. 하지만 저작권 침해액이 9000원에 불과한데도 계정을 폐지하는 등 가벼운 위반 행위에 과도하게 대응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폐지 법안을 대표 발의한 최재천 의원(민주당)은 “프랑스와 뉴질랜드도 삼진아웃제를 시행하지만, 법원 판결 없이 정부가 임의로 계정을 정지시키도록 한 것은 한국뿐”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는 최근 이 제도를 저작권법에서 없애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