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인터넷 검색으로 맛집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짬뽕 맛집이 있었습니다. 메뉴는 딱 두 개였습니다. ‘짬뽕과 탕수육’. 그런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언제 이 집에 와서 짬뽕을 먹어보겠어?’라는 생각으로 줄을 섰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마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상 다 치우면 들어오라니까요.”라면서 짜증을 냅니다. 뻘쭘하게 앉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상 다 치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무엇을 드릴까요?”라고 퉁명하게 묻습니다. “짬뽕과 탕수육만 있는 거죠?”라고 묻자, “메뉴 보면 알잖아요.”라고 대답하십니다. “물은 어디 있나요?”라고 물으니,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지도 않고 “물을 셀프입니다.”라고 말만 합니다. 기분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한마디 하려다가 다시 오지 않을 집이라는 생각에 참았습니다. 음식은 맛있었을까요? 별로였습니다. 그냥 평범한 짬뽕 맛입니다. 기분도 좋지 않아서 두 젓가락 먹고 그냥 나왔습니다. 화났다는 것을 이것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제 감정을 눈치챘는지 주인은 계산하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죄송합니다. 오늘 손님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요.”
더 짜증이 났습니다. 짜증의 원인이 손님이라니…. 결국 저 때문에 짜증이 났다는 말이 아닙니까?
누구나 남 탓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감사할 이유보다 자기 힘든 것만 생각하는데 어떻게 가까이 있을 수 있을까요? 맛집이 된 이유가 단순히 음식 맛 때문일까요? 근본적으로는 이 집을 찾는 손님 때문이 아닐까요? 나중에 보니 결국 폐업했습니다. 손님에게 감사하지 않으니 망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식당 주인에게 중요한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을 짜증의 대상으로 생각하니, 장사가 제대로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중요한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밭을 산다는 것, 좋은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서 그것을 샀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어떻게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좋은 것 발견하면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죄를 지어서라도 자기 것을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자기 것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사랑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마치 하나의 짐으로 생각하고 계속해서 남 탓만 했던 것이 아닐까요? 남 탓만 하다가는 우리도 망합니다.
오늘의 명언: 죽음은 삶의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 덕분에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존 릴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