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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단풍으로 물들었다. 호반도시를 품은 의암호 단풍절경은 춘천 마라톤의 환상적인 짝꿍이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상쾌한 공기 마시며 달렸던 마라토너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며 달리고 달렸다. 올해 남자 일반부 우승을 차지한 고교 육상부 코치는 마라톤은 뛸 때마다 머릿 속 온갖 복잡한 생각을 말끔하게 비울 수 있다며 우승 소감을 전했다. 여자 엘리트부 우승자는 마라톤 국가대표 출신 우승 경력을 지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유전자로 부녀 우승이라는 이색적인 기록을 다시 썼다.
달리는 기부천사 션도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달리는 중 양쪽 허벅지 근육 경련이 차례로 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근육을 풀어가며 쉬었다 다시 뛰었다고 한다. 마라톤은 체력 안배와 페이스 조절 그리고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는 국내 최초로 건립되는 루게릭 요양병원에 4천219만5천원 기부를 위해 달렸다. 그는 올해 광복절에도 81.5km를 완주해 독립유공자 후손의 안전한 보금자리를 위해 15억원의 기금을 지원해 주었다. 해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연탄배달 봉사로 훈훈함을 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그의 의미 있는 나눔과 가치로운 선행은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다.
최근 행정실에서 겪은 일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발급하러 오신 50대 민원인은 지금은 학교가 없어졌다며 서류발급이 가능한지 걱정이 많으셨다. 졸업 당시와 달리 학교명도 변경되어 바뀐 현재 학교로 민원 담당자가 연락을 하니 교육청으로 졸업생 서류가 이관되어 관리되고 있다는 답변이었다. 해당 학교가 아닌 교육청으로 다시 팩스민원을 넣으며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빨리 회신이 왔다. 행여나 학교가 사라져 서류 발급이 어려울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방문한 민원인은 다행이라며 안도하셨다. 그리고 행정실 민원 담당자의 수고로운 전화와 친절한 응대에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다. 발급받은 서류로 늦은 만학도가 되어 다시 공부를 하겠다는 열정과 함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안고 되돌아가셨다. 그녀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우리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행정실 문을 두드렸다. 약소하다며 간식까지 챙겨 와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셨다. 마음만 받겠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작은 호의니 받아달라는 민원인의 진심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학교 행정실은 보통 교실 반 칸 정도의 크기를 차지한다. 이렇게 작은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때때로 강한 힘을 발휘해야 하는 마법 같은 요술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 예산과 회계집행을 비롯하여 굵직한 시설공사와 토지와 건물 재산관리가 이루어지며 소소한 시설 수리도 매일 발생한다. 학교운영위원회 선출과 회의운영 그리고 학교발전기금 관리뿐만 아니라 교직원 급여와 퇴직금 관리, 연말정산에 이르는 다양한 일들이 펼쳐진다. 작지만 강한 요술 램프라고나 할까.
이렇게 크고 작은 학교 일을 책임지는 행정실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울산시교육청 총무과에서 주관한 ‘2023 행정실장 역량강화 연수’에서 만난 동료와 선후배들이 반가웠다. 오전 연수의 주를 이루었던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유형 검사는 에너지 방향, 인식기능, 판단기능, 생활양식 기준으로 나눈 16가지 유형 중에서 나의 유형을 먼저 파악하고 상대방의 MBTI 유형에 따라 그 성격을 이해하면 업무 스타일도 가늠할 수 있어 관계와 소통에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메뉴로 구성된 정성스럽게 푸짐한 점심 식사와 차 한잔의 여유로운 티타임은 연수의 만족도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오후 연수는 팀 단위로 빌드업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뇌를 자극하는 다이내믹한 활동이었다. 여러 가지 퀴즈로 워밍업 해서 뇌를 말랑말랑 유연하게 한 후 본격적으로 팀 경쟁이 되는 고난도 협업 활동까지 구성된 프로그램이 매우 흥미로웠다.
연수를 마친 후 우리 팀은 함께 만든 아이디어 작품 앞에서 단체 사진으로 오늘을 기념하며 아쉬움을 뒤로했다. 일터를 벗어난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동료들과 공유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무척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일이다. 같은 일을 하고 있기에 공감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 크니까 말이다.
몇 해 전 명예퇴직하신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예전에 함께 근무했었고 학교 옮기고서 또다시 만나졌지만 명퇴를 앞두고 계셔서 두 번째 재회했을 땐 연말정산 때만 얼굴을 볼 정도였다. ‘실장님이랑 함께 또 근무할 줄 알았다면 명예퇴직 신청 안 했을텐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셔서 한동안 내 마음이 쿵 내려앉았었다. 함께 근무했던 시절 학교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함께 걱정하고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어준 사이였기에.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받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 주고 어깨를 토닥여 준다면 험난한 어둠 속을 함께 헤쳐나갈 힘이 생기는 법이다.
다시 만난 선생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얼굴에 미소를 되찾았다. 마음이 놓였고 내 마음이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