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월 23일 재계 자산순위 14위 규모의 대기업 '한보철강'이 자금난에 부도 처리된다. 한보철강의 부도로 계열사는 물론이고 수천 개에 이르는 하청업체와 거래업체, 또 한보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까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부도 위기에 몰린다. 대한민국 외한위기 사태에 첫 신호탄인 셈이었다.
3월 18일, 재계의 26위인 삼미그룹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철강 경기가 좋았던 때는 12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17위까지 올랐던 그룹이었다. 삼미그룹의 부도로 100여개나 되는 삼미특수강 하청업체도 연쇄 도산할 위기에 놓였다.
4월 21일, 자금난을 겪던 진로그룹의 부도를 막기 위해 정부는 급히 부실기업정상화 대책을 내린다. 하지만 부실기업정상화 대책이 급박하게 추진되면서 제2 금융권 등 자금시장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진로 문제에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하며 부도를 막겠다는 방안이었지만 이로 인해 다른 기업의 부도는 되려 앞 당겨지고 말았다. 이후 5월 대농그룹, 6월 한신공영 등 굴지의 기업이 줄줄이 부도처리되며 무너진다.
7월 15일 재계 서열 8위인 기아그룹이 부도 방지 협약 대상으로 지정되며 사실상 부도 처리된다. 10대 재벌도 안심할 수 없다는 항간의 얘기가 현실로 드러나 충격은 더했고 기아의 5천개가 넘는 협력 업체또한 비상에 걸려 기아의 부도는 한국 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부도 발표까지 했다가 가까스로 부도를 면했던 쌍방울 그룹이 10월 15일, 결국 자금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법원에 화의 신청을 냈고 다음 날 최종 부도처리 된다. 쌍방울과 함께 태일정밀 그룹 또한 10월 16일 부도를 맞는다.
열흘 동안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를 끝낸 국제통화기금 IMF 조사단은 한국은 장기적인 구조 조정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위기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며 한국은 경제위기라고 하기 어렵다는 발표를 한다. 하지만 10월 24일 미국 S&P사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장기 AA- → A+, 단기 : A1+ → A1로 하향조정한다.
연이어 주식값이 폭락하고 환율이 솟구치는 상황이 발생되고 10월 27일, 1달러에 940원을 넘어서는 모습까지 연출되며 주가 500선 붕괴가 우려되는 사태가 빚어진다. 미국 무디스사 역시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장기 : A1 → A2, 단기 : P1 → P2로 하향 조정한다.
10월 28일, 결국 하루만에 종합주가지수 500선 마저 무너지며 증시 붕괴의 위기감은 고조된다. 하락지수는 35.19포인트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하락폭 6.63%도 사상 최대치였다. 미국 투자기관 모건스탠리는 '아시아를 떠나라' 라는 보고서를 띄웠으며 강경식은 정부에 외환시장개입중단 지시했지만 재판에서는 불인정된다.
10월 30일, 환율은 1달러에 천원 가까이 치솟았다가 정부의 개입으로 폭등세가 주춤해 졌고, 주가는 다시 폭락해서 외환시장과 증시는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져 버린다.
10월 31일, 환율의 급등으로 11월 1일부터 유가가 인상된다는 소식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로 사람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11월 1일 해태그룹이 끝내 부도처리 된다. 당시 재계 순위 24위었던 해태그룹은 30대 그룹 가운데 5번째로 부실기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다.
11월 4일 재계 순위 25인 뉴코아 그룹이 화의 신청을 한 데 이어 최종 부도가 났다.
11월 7일 주가가 사상 최대 폭으로 떨어졌고 환율은 다시 급등하며 조금씩 안정세를 보이던 금융 시장이 다시 흔들거리기 시작한다.
11월 10일 환율이 사상 처음으로 미화 1달러에 천원을 넘어선다. 물가는 오르고, 또 외채를 갚아야 하는 기업의 부담은 그만큼 커지게 돼 가계와 기업 모두 먹구름이 낀다. 당시 김영삼은 전 부총리 홍재형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고 한다.
11월 17일 외국언론은 한국 IMF구제금융 요청 가능성 시사하였고 프랑스 경제 전문지 레 제코는 IMF가 한국에 400-600억달러 긴급 지원을 검토하였다고 보도하였지만 이때까지만하더라도 재정경제원은 '사실무근'이라며 뻔뻔하게 부인하는 태도를 보인다.
11월 21일 정부는 결국 국제 통화기금 IMF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며 경제 우등생 한국의 신화를 뒤로 한 채 사실상의 국가 부도를 인정한다. 외환 위기가 한창이었던 11월 초 외환 보유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경식 부총리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지 열흘도 안돼서 IMF의 구제 금융을 요청한 것이다.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 IMF의 긴급 자금지원을 위한 협상이 최종 타결된다. IMF로 부터 550억 달러를 지원받게 됐지만 이후 한국 경제는 사실상 IMF의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금융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고려증권이 12월 5일 최종 부도처리 된다. 직접적인 원인은 IMF 체제에 따라 위기를 느낀 거래 은행들이 자금 제공을 기피하여 어음 2,700여억 원을 막지 못해 끝내 쓰러진 것이다.
12월 6일, 고려증권에 이어서 재계 12위인 한라그룹이 부도를 낸다. 한라그룹의 부도로 현대를 비롯한 거래 업체들의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고,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생산 차질이 생겼다. 1997년 한해 동안엔 무려 하루 평균 40개 기업이 쓰러졌다.
정부는 협상 과정서 하나를 양보하면 IMF는 또다른 조건을 내세워서 항복을 요구했고, 결국 IMF기관에 이것 저것 다 내주고 말았다는 논란에 휩싸인다. IMF에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피했지만 IMF의 요구에 너무 많은 것을 내준 게 아니냐는 우려에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은 국민들이 뭘 몰라서 내정간섭으로 오해한다는 발언을해 논란이 된다.
12월 10일 1달러에 1600원까지 환율이 치솟으며 연초 800원대에 비해 2배로 오른다.
환율이 연일 사상 최고치로 기록하면서 생필품 68품목까지 따라서 치솟았고 서민들의 생활고는 갈수록 심해졌다.
정부는 부도 위기에 몰린 5개 종합 금융사 나라, 대한, 신한, 중앙, 한화 총 5개 종금사 업무정지명령을 내린다. 이대로 뒀다간 기업과 다른 은행들까지 함께 쓰러질지 모른다는 우려때문이었다. 미국 무디스사 한국국가신용등급을 장기 : A3 → Baa2(준 Junk), 단기 : P-3 → N∙P(투자부적격)로 하양조정한다.
12월 11일 환율은 1달러에 1719원까지 치솟았고 나흘 연속 제한폭까지 오르며 외환시장은 마비돼 버린다. 국제통화기금 IMF의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외국 금융기관은 외화 빚을 찾아가고 있고, 외국 투자자들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외면하고 있는 상태였다.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 당선 선거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다.
12월 23일 사상 처음 1달러가 2천원선으로 폭등한다. 갚아야 할 외채만 2,000억 달러였으며 외화가 절대적으로 모자란 상태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자꾸만 떨어져 외화 차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김대중 당선자는 우리 경제의 실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 막다른 골목에 서있다며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외환위기를 극복해내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2000년 12월 10일,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위한 노력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증진시킨 공로로 새천년 첫 번 째 노벨평화상으로 지목된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자리서, 국제통화기금은 모두 차관를 상환하고,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공식 발표한다.
그리고 2001년 8월 23일, IMF로부터 빌린 195억달러를 모두 갚으며 불과 3년 8개월만에 외환위기사태, 즉 IMF사태가 공식 종료된다.
하지만 총선에선 또 한나라당을 찍는 .. 정말 뭐 같은 상황. 한나라당은 지역구 112석에 전국구 21석을 더해 모두 133석의 의석을 확보.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96석과 전국구 19석을 얻어 115석의 원내의석 확보.- _- 결국.. 우리 국민은 학습효과가 제로라는 것..
저때 정말 힘들었는데... 아빠 회사도 어려워져서 학용품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엄마는 맨날 동네에 생활비 꾸러 다니고.. 뉴스만 틀면 생활고로 자살한 사람들 이야기 나오고, 죽은 엄마 옆에서 며칠간 굶고 산 애기들 이야기 나오고... 그래서 김영삼이랑 새누리당이 끔찍하게 싫은데 사람들은 저때 일 다 잊었나봐... 어떻게 그것들을 다시 뽑아 줄 수가 있지?
와 195억을 4년도 안돼서 갚은거야 울나라짱
저때 정말 힘들었는데... 아빠 회사도 어려워져서 학용품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엄마는 맨날 동네에 생활비 꾸러 다니고.. 뉴스만 틀면 생활고로 자살한 사람들 이야기 나오고, 죽은 엄마 옆에서 며칠간 굶고 산 애기들 이야기 나오고... 그래서 김영삼이랑 새누리당이 끔찍하게 싫은데 사람들은 저때 일 다 잊었나봐... 어떻게 그것들을 다시 뽑아 줄 수가 있지?
아 이거보고 진짜 눈물난다...
아엠에프..97년끔찍한기억) ㅜㅜ셤기간이라대충밧는데나둥에잘읽어복ᆞ야지..보면정치계랑경제계랑진짜뗄수없는듯..중딩때정경유착보고는이해안갔는데이제감..정권바뀔때마다세계적기업의재벌총ㅅ수도벌벌떠는거보면
금모으기 운동 했자나 시발 나라 빚도 국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했는데 시발 투표는 왜 맨날 한나라당찍고 새누리당 찍냐고... ㅡㅡ 금모으기 운동 모르는 여시들도 있겠지..?
한국은 냄비근성 뿌리채 뽑기 전까진 계속 반복될듯....뭐든 그때만 잠깐이잖아 사람들잌ㅋㅋㅋㅋㅋ에혀
답답하다...숨막히고 그냥...속터진다
무섭다ㅠㅠ 나는 어릴 때라 기억 안 나지만 그냥 이때 부모님도 많이 싸우시고 엄마 아빠 일 다 잘리시고 힘들었던 것만 기억나...엄마,아빠가 매일 저런 뉴스를 보면서도 우리 키우시겠다고 버텨주신 게 감사함
생각하기도 싫은 시기임. 그래서 그런가 그때 있었던 일은 장면장면 사진으로남긴부분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기억안난당
ㅠㅠ...
아나바다운동 기억나?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내돌반지두 없다ㅜㅜ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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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 김영삼때 빵터진거 ㅜ
앜ㅋㅋㅋㅋㅋㅋ비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리가 찰지구나
우왘ㅋㅋㅋㅋㅋ비유가 지대로닼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유 진짜찰지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해가 쏙쏙돼
아 .. 결론은 ..
끔찍했지 .. 우리아빠 뉴코아에 매장하나있었는데 부도나서 개망..... 그때 우리집도 붕괴돼서 난리도 아니었지 ㅠㅠ... 여담이지만 ㅎㅎ 성우들 더빙료도 한편당 3000~5000원인가 받고 일했었다고 하던데 .. 다시는 안터졌음 좋겠당
시발 아 아빠..ㅜㅜ이거때메 우리가족 운명이 바뀜..ㅎㅎ..
저때 울아빠 사업망해서 엄마가 자는 나 깨워서 잡고 엉엉 울었지...... 고작6살이었는데 인생을 안 기분이었음
ㅠㅠㅠㅠㅠㅠ진짜뉸물남.....
왜때문에 대체 김대중할아부지욕함??????????????????IMF때 아직 본때를안당햇나봉가^^
이것때메.... 우리집은 박살이 났었지 .........
내가 그렇게 치고 싶던 피아노도 결국 못배우고 한참뒤에야 배울수 있게 되었지.....
일곱살때라 기억이없지만......... 지금 만약 저 상황이 닥친다면 진짜 나라망하는거 아닌가 하고 엄청 무서울듯 ㅠㅠㅠㅠ
신기하다..우리집은 이때 그냥 큰 풍파없이 잘지나가서 나는 imf가 그렇게 무서운건줄도모르고.. 막 집에있는 금 왜 가져다 내냐고 묻고그랬었는데.. 정작 요즘이힘들지..저때는 몰랐넹
저때는 뭐 먹고싶다고 사달라고 졸라도 엄마가 잘 안사줬음 그때는 단순히 엄마가 그런거 사주는걸 싫어하는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우리집이 어려워서였어..ㅠㅠ 일곱살짜리 딸 과자 하나 못사주는 엄마 마음은 어땠을지.. 지금은 장보다가 뭐사자고 하면 엄마가 다 사주는데 그게 뭔가 어색함,.ㅋㅋㅋㅋ
이때 은행금리가 하늘을 찔러서 부자들은 이자만으로도 대박났다고 함. 건배대신에 외치는 말이 '이대로'라고 하는 말이 있었음 .- 우리 국사쌤
기억난다. 97년도 겨울..
어린 나이에 내가 엄마랑 내 생일 장보러 가면서 "엄마, 이번에 내 생일 안 차려줘도 돼, IMF라 힘들잖아" 이래서 엄마가 웃으시더니, 그래도 니 생일은 상다리 부러지게 해준다고 하셨었음ㅠㅠ
이때울아빠 대우다니다가 짤리고 밤에 아빠랑 자동차영업전단지붙이러가던거생각난다 난그냥존나밤에나가니까재밋엇눈데 ㅜ아빠한테뭐사달라그러면 아빠가 돈 없어 이러구 돈이왜없어?돈벌면되쟈나 이딴소리해댓음...ㅋㅋ
우리집은 imf 때 잘살다가.. 끝난 이후에.....
때는7살..과자가완전싸져서기뻐했는데...전혀몰랐지 imf좋은건줄알고
그래서 울아빠 회사이름이 바꼇즤
이때 5살ㅊ대 부모님한테 편지쓰면서 imf때문에 힘드시죠? 라고 썼던거 기억난다ㅜㅋㅋ
박정희때 부실기업 정리 제대로 안해서 그렇지...이때 우리 부모님도 엄청 힘드셨는데ㅠㅠ
휴...이때부터 지금까지..
나도어렸을때넓은집에서갑자기좁은집으로이사가서부모님한테좁다고짜증냈었는데.....아무것도모르고..아빤미국가서길거리장사하고오시고... 그뒤로아직까지도재개제대로안됨^^
이거 다시읽으러와야겠다..
와........이때 나 막 입학했을땐데.......이렇게 힘들었는지 몰랐어.. 아나바다 운동만 기억나네 ㅠ
휴 줄줄이 뉴스글만 봐도 그시절 얼마나 끔찍했는지 상상도 안간다.. 잘 버텨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ㅠㅠ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