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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까지 캄보디아 소수민족들의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였다. 딸이 초경기인 13세가 되면
아버지가 동네 큰 나무위에 나무로 작은 집을 지어주고 따로 나가살며 총각들과 그 나무위 집에서
자유로운 데이트를 하게 하여 그중 마음에 드는 남자하나를 고르게 했고 몇년 후 딸이 한 남자를
선택하면 절대적으로 찬성하여 언제라도 결혼식을 올려주고 데릴사위로 집에 들어와 같이 살게
하였다. 대개 딸이 임신을 해서 들어오는데 첫째아이는 누가 애비인지 별로 따지지 않고 두째애
부터 진짜 그 자식인가 추측만하지 그것으로 가정문제는 전혀 없다니 우리나라 사람들로선 전혀
상상도 이해도 못할 이야기다. 그들은 인간들 넘어선 우주적인 사랑에 넘치는 인간들임에 틀림
없었다.
그들의 식생활은 논을 경작하며 나오는 쌀을 대바구니에 담아 남비의 끓는 물의 수증기에 쪄서
먹는데 반찬은 그날 산에 가서 뜯은 약간의 나물을 소금물에 끓여 먹으면 진수성찬이었고 그
나물도 없으면 밥만 먹어도 훌륭한 식사였다. 삶에 스트레스란 없었고 매순간은 그들의 축제일
뿐이었다. 1972년 미국의 지원을 받는 론놀 정권의 캄보디아내전에 휩싸일 때 까지는..
중국의 지원을 받은 크메르 루주는 정부군과의 전투후 미군은 패퇴 철수하고 론놀은 하와이로
망명하여 생을 마치니 한국의 초대대통령 최후와 참 비슷하다. 그후 크메르 루주의 악행과
우리 군사정권의 악행도 정도의 차이는 좀 있지만 비슷하고..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도
망명으로 그곳에서 생을 마쳤으니 하와이는 그런 미국 쫄따구들의 마지막 도망처인 것 같다.
혹시 우리 윤통도 그런 운명일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프놈펜 함락 후 크메르 루주의 악행과 참상은 영화 '킬링 필드'에서 잘 묘사되어 있는데
노태우는 선거 바로 전날인 87년 12월 17일 저녁 전국적으로 티비에 어떤 예고도 없이 모든
정규방송을 스톱하고 전격 그 영화를 방영시켰던 것이다. 그 영화엔 잔혹한 살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는데 '공산주의자인 크메르 루주의 치하는 이토록 잔인한 것이다. 만일 우리
국민들이 나를 찍지 않으면 이렇게 끔찍한 공산치하로 들어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노골적
으로 암시하였고 그것은 상당히 먹혀들어가 많은 국민들이 2찍을 하여 노태우는 당당히
당선되었다.
헐리우드에서 막대한 예산으로 제작된 그 영화는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 히트를 쳤는데
미국 자국이 패배해 물러난 나라에 대한 그런 영화는 그후 베트남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를 양산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전쟁이 일어난 국제관계등을 잘 알면서도 그 영화들을 보면 정말 이상
하게도 영화를 제작한 미국의 의도대로 미국편에 서서 미국을 응원하며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곤 하였으니..
실베스터 스탈론주연의 영화들에서도 혼자 맨몸으로 밀림속 베트콩 진지로 숨어들어가
결국은 수류탄과 따발총으로 적들을 죽이고 땅속에 감금돼있던 동료들을 구해낸다는
천편일률적인 스토리들.. 미군 침략자들에 대항해 싸우는 베트공들의 편에 서야할 것을
그들이 수류탄에 죽어넘어가는 씬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 자신.
그 진지들을 다 폭격하고 지하에 감금돼있던 동료들을 구해 낸다는 늘 같은 내용의
영웅적인 스토리들..
그 많은 월남전쟁영화 중 으뜸이라는 '플래툰'이란 영화를 보면서도 마지막 장면에 용감히
싸워 전우들을 구해내고 자신을 구하러 온 헬리콥터를 향해 질주하지만 그 헬리콥터는 닥아
오는 적들의 총격때문에 할 수 없이 그를 남겨두고 출발하고 주인공은 뒤에 남아 헬리콥터를
향해 절규하던 그 처절한 그 비극적인 명장면(위 사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를 두고
떠나는 헬기 안에서 눈물흘리던 동료들.. 나도 그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그를 향해 총을
쏘는 베트콩들을 저주했다. 영화제작자들은 영화 포스터에도 그 마지막 씨인을 인쇄하여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그것은 세계 곳곳에 퍼져 미국 침략전쟁의 미화작업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베트콩전쟁영화는 그렇다쳐도 전에 헐리우드에서 주구장창 만들어내던 그 많은
인디언과의 전쟁영화. 어렸을 때 티비가 없던 시절이라 영화관에 가서 비싼 입장료를 내가며
많이 보았는데 그때도 인디언들이 미국연방군들의 총에 맞아 쓰러지면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으니.. 나는 그 때 인디언들이 우리의 직계 조상들이었다는 것을 학교에서나
어디에서나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랬다쳐도 요즘 가끔 보여주는 옛 인디언들과 싸우는
영화를 보면서도 인디언들이 총을 맞아 쓰러지면 속으로 안도의 쾌재를 부르고 있으니
도대체 나란 존재는 어떻게 돼먹은 존재인지 한심스럽다. 영화란 요물은 인간을 이렇게
다스리는 것인가.. 매스 미디어란 인간들을 완전하게 반사적으로 바보로 세뇌시켜버리는
도구인가..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한번도 인디언 원주민에 관해 언급을 안하셨는데 항상 그 점 궁금하여
왜 여쭈어보지 않았던가 후회가 막급이다. 후회막급인 건 그 뿐이 아니지만. 만약에 내가 단
한시간이라도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께 여쭈어볼 말들이 참 많다. 월남전쟁에 대해선
여러번 말씀하셨지만. 한 민족이 통일하겠다는 것을 미국은 왜 한사코 그리 방해하는가 나쁜
놈들.. 하시며 탄식을 하셨었다.
교도소에서 나오신 몇년 후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영화를 부산 현대극장에 가서 보신 후 그
영화는 미국이 제작했지만 참 잘된 영화라며 극구 칭송하셨다. 오스트리아의 한 애국자 해군
장교가 2차대전의 독일침공에 대항해 알프스산을 넘어 탈출한다는 스토리에. 그리고 새로
들어온 젊은 가정교사 아가씨가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그 장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미국에서 제작한 그 영화의 결말은 그 장교가족들이 탈출하는 목적지는 결국 미국이었다.
얼마전 티비에서 '머나먼 알라모'란 오래된 영화, 미국이 멕시코를 침략 정복해 승리하는
전쟁에서 존 웨인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도 A time to be reaping.. 하는 그 아련히 낭만적인
주제가를 들으며 가슴 젖어들던 자신이 참 부끄럽고도 한심스러웠다.
결국 그 전쟁에서 진 멕시코는 그 황금 노른자땅인 캘리포니아 주 등을 내주고 그 후 석유
가 콸콸 쏟아지는 텍사스를 통째로 다 내어 주었으니 실상 미대륙 전체를 미국은 날 살인
강도로 다 뺏은 것 아닌가.
그런데도 그 욕심은 끝없어 이 조그만 나라 남한의 전작권도 움켜쥐고 안내주고 있으니.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납치해간 17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인들은 자연속에서 행복
하였다. 남자들은 대개 아내를 7,8명씩이나 거느리는 것이 예사였으니 한 집안에 그 아내들이
낳은 아이들만해도 수십명이나 되었다.
그래도 아내들은 자신의 아이라고 특별히 더 편애하는 법이 없었고 아내들 사이에 질투로
싸우는 법도 없이 서로 화기애애했으니 그 이유는 사유재산 구분이 없었고 학교가 없었기 때문
이었다. 자신의 사유재산을 더 치지하려 싸울 일도 없었고 학교가 없었으니 자기 자식을 더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경쟁할 일도 없었으니까.
우리나라처럼 부동산과 교육문제로 평생을 싸움과 경쟁으로 지새우다보면 진정으로 편안히
행복해 할 여유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인간이 태어나 긴장감없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은 유치원 들기 전의 약 5년 간 뿐 그 후론 학교성적 입시 경쟁 겨우
학교를 마치면 취업경쟁 결혼.. 또 자식부양.. 이런 사회엔 그저 안태어나는 것이 최선이렷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에 대항해 싸우다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 짐바브웨는 독립투쟁으로
감옥에 11년간이나 갇혔던 무가베라는 애국자가 석방되자 국민들의 열열한 지원속에 집권을
하게된다. 그는 처음에는 제법 의욕적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듯 했는데 그가 첫단추를
가장 잘못 끼운 정책은 전국의 토지개혁을 하며 영국인들 소유였던 토지를 압수하지 않고
그들의 소유권을 그대로 인정하며 그들과 타협한 것이었다. 그들은 전국에서 가장 기름진
옥토를 3문의 1쯤 차지하고 있었으니 짐바브웨가 식민지에서 실제로 벗어났다는 의미는
상당부분 퇴색하였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계속하여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무가베는 점점 독재체재를 구축해가며 언론과 반대파를 억압하면서 정치적 탄압과 인권
침해가 빈번해진다.
나는 2010년부터 짐바브웨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애를 3년간 돕고있었는데 매달 3만원이란
적은 돈이었지만 그것으로 그 아이는 충분히 공부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남의집 주로 영국인들
농장에 날품팔이 노동을 하러다니고 있었는데 그일도 매일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이 없는 날은
쉬어야했으니 집안은 극도로 가난하여 집도 없어 그냥 땅바닥에 어깨 높이도 안되는 임시 작은
갈대 오두막을 세워 기어들어가고 나오는 식이었다.
밑으로 남동생이 셋 있었는데 그 작은 오두막에 어떻게 6식구가 다 들어가 누울 수나 있었는
지도 의아스러웠다. 도와주는 기관에서 그 오두막사진과 그 여자아이와 엄마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 주었는데 그런 집에 주소가 있을리도 없고 그마저도 자주 집을 옮겨다니며 지어 매달 그
기관으로 보내면 그 엄마가 정해진 날에 돈을 찾으러 오는 식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 삼만원 외에도 자주 라면박스에 온갖 학용품들을 담아 보내주었는데 그 기관에서
한번은 그 학용품을 더 이상 보내지 말아달라 하였다.
이유는 그 학용품들은 질이 너무도 우수하고 좋아 반친구들에게 위화감을 주어 안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그 아이는 당연히 그 학용품을 학교에 가져가 썼는데 자연히 그런 학용품을
처음 보는 반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져 동요가 일어나 위화감을 주고있다고 그 담임선생님이
기관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 옆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
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얘기라 당장 끊었다. 그 선생님은 상당히 의식이 있는 옳은 교육
자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짐바브웨는 오랜 영국의 식민지로 지내 영어가 대충 통해 그 애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영어로 가끔 편지를 보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이 돈을 보내는 이유는 네가 학교를 졸업한 후
여성운동가가 되어 너의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말을
평생 잊지말고 실천하기 바란다'고. 기한이 되어 3년후엔 돈을 더 보내지 않았지만 십년이나
지났으니 지금 쯤 23살로 성인이 되었을 테고 그애는 내말을 잊지않고 실천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중1때 3년이 되어 내가 학비를 끊으면 어찌 학업을 계속할까 싶어 다시 3년을 연장해 주려
했는데 기관에선 그건 법에 어긋난다, 3년이 만기일 뿐이니 더 계속하려면 다른 아이 그것도
꼭 초등학교학생을 소개해 주겠다하여 그냥 포기했다.
한사람이라도 계속해야 우뚝선 성인이되어 일을 할 텐데.. 내 추측에 그것은 짐바브웨정부
와의 최소한 타협인 것 같았다. 한사람을 확실히 키운다는 건 필시 그는 커서 반정부세력이
될 확률이 크므로. 그냥 적당히 글만 깨우치는 정도로 조금만 도와야 탈이 없어질 테니까.
그 오두막집은 자주 옮겨 짓고 주소가 없어 직접 편지를 보내볼 수도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요즘 티비를 보면 너무 자주 아프리카 난민들 실상을 보여주며 성금을 보내달라고
야단 하는데 나는 그장면만 보면 화가 난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깨끗한 물도 못마시고 배가
고파 고통을 당하게 만든 것은 오랫동안 그들을 식민통치한 강대국들이고 정직한 아프리카
정부가 서는 것을 방해한 탓인데 그들이 싼 x 을 왜 우리보고 치우라는 것인가.. 우리가 성금을
보내봤자 그건 밑빠진 독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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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어요~
세계사를 꿰뚫고 간파하시는 언니의 지식과 지혜에 참여합니다.
저도 방송에서 아프리 카의 처참한 환경을 보여주며 도와달라는
광고에 서너개의 단체에 매번 일만원씩을 보냈어요
그런데 그 어렵게 사는 아이는 몇달이고 계속 광고에 나왔어요
그렇게 시급하면 도와서 상황이 나아져야 하는데 광고 내용은 몇달을 지속해요
제가 그런 단체에 돈을 보내고 있다고 하니 아는 분이 보내지 말라고 해요
그들에게 가는 것은 얼마 안돼고 그 단체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쓴다는 말을 듣고
사실인지는 확인을 못했지만 광고의 내용은 달라져야 믿지요
언니는 비단 한 단체에 도움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는 마음을 보고 항상 감탄해요
그렇게 세계가 마법의 손길로 나아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연말에 언니의 글이 빛나네요 항상 건강하세요.....
국내 양심수 돕는 기관 등도 보내는 돈의 7,80%는
직원들 월급 단체운영비로 소요된다해서 안보낼가
생각도 했는데 나머지 2,30%라도 전달되려면 그 수
밖에 없다해서 할 수 없이 계속하고 있었지
정말 정부에서 도와줘야 할 대상들은 외면하고있고
영부인 성형외과로 빠져나가는 우리 혈세가 수십억원이니...
@산비탈양 몇 개의 소위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연말 총회에 참석해서, 결산 보고서들을 보고 매우 놀랐었습니다.
년 9천만원 내지 거의 1억의 예산이 사용되는데.....거의 대부분은 총회 등의 비용으로 사용되고
본래 목적인 양심수 후원 등에는 고작 몇백만원 정도 밖에 사용되지 않아서....참으로 놀랐습니다.
그래서....더는 후원을 하고 있지 않고...나아가 시민단체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는데...
운동방식이 너무 구태의연하고 확장성 등에서 도무지 실효성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단체들이 도대체 어떻게 "통일"을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사회적 "진보"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말인지??? 심각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최근의 내란사태에서....2030 여성들의 응원봉 시위문화와 발언들을 보면서
시민단체들의 나아갈 방향성과 행동방식에 대해서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에 대해 매우 간략한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정론직필
온갖 끔찍한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않고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변절하지
않으신 대개 연노한 '양심수'분들이 존경스러워 오랫동안 후원금을 보내드렸지요.
그런데 본시 약정한 3년이 지나도록 계속 자동이체되고 있어도 눈감아드리고
있었는데 8,90%가 그분들에게 가고 나머지가 운영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면
기쁘게 봐드리려했지만 거의 10년이 되도록 내가 보내드리는 건 눈먼 돈이
되는 것 같아 지난달에 드디어 은행에 가서 차단시켰습니다. 슬픈 마음으로.
직필님도 그래서 그러셨군요...
아프리카난민광고가 뜨면 서둘러서 아웃시켜버리죠.
자국민도 못보살피면서 사기치는 소리를 하면 열받죠.
한두번이 아니고 안면에 철판을 깔고 그러니..........
저주의 괴성을 듣고 싶은 거로 보여집니다.
그 돕고 있는 단체들 자체가 딮스로 아프리카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이라 더욱 화가 난 거였지요
그래도 그 단체를 통하지 않으면 내가 도울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더 화가 납니다
산비탈님께서
아버님께 인디안 문제에 대해 물어보셨다면
아버님께서는
우리 나라 문제나 베트남전쟁문제에 대해서 처럼
미국에 대해 비토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인디안을 학살하고 침략자, 강점자가 오히려
주인행세를 하는 미국,
베트남전쟁을 일으키고 숱한 베트남 민중을 학살한 미국,
한반도를 강점하고 전쟁을 하고
통일을 방해하고 80년동안 틀고 앉아있는 미국,
세 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이 너무나도 비슷하지요
그것은
주인과 강도의 싸움이였고
인간과 야수와의 싸움이 였지요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를 매도할 때 항상 전가의 보도
처럼 인권을 들먹이는데 참으로 그들의 얼굴이 쳐다
보입니다.
그 선량한 원 주인들을 학살하고 틀고 앉아 주인행세
를 하고 있으며 한국의 통일도 방해하여 온 미국.
그러나 하늘의 섭리는 더 이상 그들을 용인하지 않습
니다. 미국에 요즘들어 왜 그리 제어할 수 없는 산불과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나겠습니까.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호주의 원주민학살을 하고 살고
있는 영국도. 지구에 재해가 일어나면 영국 일본 미국
부터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