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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독일에 업무차 출장을 갔었지요. 거래 업체와
상견례후에 일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축구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도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특히
영국하고는 한-일전의 라이벌의식 이상으로 경쟁심이 크며
실제로 축구가 사회체육으로서의 역할이 대단하기때문에
축구는 이들에겐 먹고 자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이러니 축구를 잘 할 밖에 없죠..
이야기가 무르익는데 갑자기 "미스터 차"는 어떻게 지내냐고
하더군요. 갑작스런 질문에 그 사람이 누구냐 했더니 "차붐"
이라고 하데요. "맞다 차범근이 예전 서독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지?"하면 근황을 알려줬더니(TV 해설가) 그의 활약상을
알려주더군요. 당시에는 차범근때문에 한국을 알게되고 한국
이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도 알았답니다. 당시에 UEFA 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차붐을 모르면 서독에서는 동독간첩일거라
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차범근은 독일에서 정말 유명인이었다
고 하더군요. 그 사람말이 과장인지 확인은 못하겠지만 하여간
우리가 알고 있는것 이상으로 독일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은 확실합니다..
나카타 하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에요. 차붐은
독일에서도 영웅이었던 사람이며 벤치워머인 나카다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
<축구는 국가대항이나 한번씩 볼뿐 통 관심이 없는
독일사는 고모가 전에 한번 한국에 나왔다가..
축구얘기가 나오니까... 차붐 얘기를 하더라구여..
어떤 사람이 한 분야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기면, 그 분야
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들도 그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자연히
알게되지여...
예를들면, 선동열, 박찬호, 이만기, 황영조, 서태지, 박세
리.... 자기 분야의 유명세를 뛰어넘는 머 그런사람들
독일에서는 차범금이 그런 사람이래여...
축구에 전혀 관심없는 아줌마들도 차범근이 누구고, 어느
나라사람이구.. 그런거를 안다고 그러더군여...
요즘같으면, 매일 차범근님 경기를 보고 그랬을텐데 아쉽네여..
>
<
중고등학교시절에 스포츠신문에실리던 차붐에 대한기사가기억이남니다.'차붐헤트트릭"차붐 분데스리가 뒤흔들다""유럽이 들썩이다" 당시 세계최고의 축구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의선수로대접받은 차범근. 그당시어려웠던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기쁨을주었던 차붐.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도 지금의 박찬호보단 못하지만 대단히 선풍적이었읍니다.제가말하고 싶은건두가지. 첫째로는 차붐의 능력과 성실성입니다. 만약에차붐이 어릴적부터 유럽에서 축구를 배웠다면 어땠을까요? 일본이나 중국이 국가적으로유소년들을 브라질이나 유럽으로 유학보내지않습니까.그당시유럽 축구계에선 어떡게 축구후진국인 한국에서 이런 대선수가 나올수 있을까? 야단 법썩했답니다.[그이후로 한국선수들을 다시보게되어 도미노식으로 허정무.최순호.김주성..유럽으로 갔지요.결국은 실패하고 돌아왔지만..]저는 차범근이 그런 경우였다면지금의 어떠한공격수보단 잘했을거라 믿습니다.한예로 그당시 tv로 녹화중계된 분데스리가에서 터치라인따라 볼을몰고달리는데 덩치큰 유럽선수가 따라오지 못하더니 어느새 패널티라인 근처까지 와서슛을날려 골을 넛더군요.차범근의스피드는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였죠.그리고 개인기도 큰 공간이나 밀집지역에서도 두세명은 자신있게제쳐서 골을 너었으니까요.또 제일 중요한건 골감각입니다.축구선수는 골을 너어야할때 너어야 인정받지않습니까?[한국축구의 영원한 숙제] 차범근의 분데스리가의골 98득점은 당시 최고였죠[2-3년전에야 깨졋지만.외국인선수로] 두번째로는 영웅입니다.우리는 정말 영웅을 못만듭니다.영웅은 한국가의 희망이고 외국에의 이미지마킹이라 생각됩니다.그런데 우리는 한낱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정파적으로 다르면 전국적으로 영웅에게 박수를 보내고 기대어도 위에있는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그영웅을 따돌리고 비방하는데 어떻게 한국에서 영웅이 나오겠습니까? 월드컵 조추첨에서도 외국의 올드스타들이 추첨을 하는데 우리는 뭡니까? 아시아.유럽.아니 세계에서 알아주는 차범근씨를 제외시키다니...너무 창피합니다.축구협회는 자성해야합니다.너그러워야 합니다.바로앞의 이해관계를 쫒다가 우리의미래 우리의영웅을 놓치게 됩니다.축구영웅 차범근.전담마크맨 1-2명을 달고 제치면서 강슛을 날리던 갈색폭격기 차범근.그때 그모습이 그립습니다.축구스타 홍명보도 일본에서 마감하고 돌아왔습니다.그러나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차범근만한 선수가 나올지...꼭 나왔으면 합니다.그러면 우리 영웅 한번 키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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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이 국민들에게 원성을 사면서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하물며 10도 더 지난 일인데 그의 선수생활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습니까....
요즘은 대중매체가 잘 발달하여 박찬호를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그 시절만 해도 차범근 선수가 뛰는 모습을 그리 쉽게 볼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서(방송용 위성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TV 보급률도 낮았으며 당장 끼니 때우기 힘들어서 축구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차범근 선수에 대한 생각은, 그가 단지 막연하게 훌륭한 선수라는 생각들이 주를 이루었었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워낙 뛰어난 선수였기에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엄청난 선수로 알려졌고, 지금의 박찬호, 박세리보다 훨씬 더 지명도가 높은 선수가 되었었지요.
현재 축구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몇 있지요. 프랑스,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따라서 톱 클래스에 속하는 선수들도 여러나라에 흩어져 있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지단, 피구, 베캄, 히바우두 등등...
제 기억으로는 차범근 선수가 독일(그때는 서독이었죠)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독일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단적인 넘버 원이었습니다. 감히 아무도 넘볼 수가 없었죠. '철의 군단'이라는 표현까지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대부분 독일 선수들 이었습니다(물론 다른 나라 선수들도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서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선수가 많은 선수들을 모두 제압하고 최정상 그룹에 자리잡았습니다...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기자분이 차범근 선수의 경력을 주욱 나열하셨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말 그대로 '화려'합니다. 그리고 그외에도 여러가지 기록들이 많습니다. 아직까지 그 누구도 경신하지 못한 기록들도 있고...
그의 경력들을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그를 단순히 뛰어난 선수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으실겁니다. 정말로 '슈퍼스타'이니까요...
그런 훌륭한 선수가 좋지 못한 일로 한국축구와 잠시 거리가 멀어진 것이 안타깝지만, 그의 아들에게 좋은 활약을 기대하며 또한 그에 못지않은 뛰어나 선수가 또 다시 나타나길 바랍니다....
저는 단지 차범근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에 대해서 좋은 말과 좋지 않은 말이 함께 공존하지만, 그저 한 선수에 대한 뛰어남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대표팀의 게임에 대해 많은 관심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도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예전의 차범근 같은 선수가 두명만 있으면 월드컵 우승도 가능할텐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아쉬울때는 어쩔수 없이 그런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더욱 열심히 해서 모두들 차범근 선수에 못지않은 선수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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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이자, 박찬호와 박세리 이전에 우리나라가 어디
쳐박혀 있는지 세계가 관심도 없던 시절..
세계최정상 스포츠 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최초의 한국인.....바로차범근이다.
그는 79년부터 89년까지 당시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였던 독일 분레스리가에서308게임의 외국인 최다 출전기록과 98골의 외국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고, 그 기록들은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얼마전에 깨졌지만...)
지금은 세계최고 스타들이 모두 세리에 A 무대에서 뛰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최고의리그는 분데스리가였다. 그의 독일 무대 첫골은 세번째 경기만에 나왔고, 그 골은독일키커지가 선정하는 골든볼로 선정되어 그 주간내내 독일 TV를 장식했다.
데뷔 첫 해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 틈에서 바로 득점 7위에 올라 스타덤에 오르기시작,분데스리가 MVP에 선정되기도 했고 88년에는 UEFA컵 결승 2차전서 극적인 3번째골을 성공시켜 팀에 첫우승의 영광을 안겼다. 이를 기념, 명문 '레버쿠젠' 클럽은
당시 차범근의 사진을 영구보존하고 있다.
그는 소속팀을 두번이나 UEFA 정상에 올려놓았으며, 그를 계기로 그는 독일뿐아니라 전 유럽에 유명한 선수가 되었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박찬호가 데뷔 첫해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어 데뷔하자마자 메이저리그를 통털어 투수부문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그 다음 해,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을수상하고, 얼마 후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MVP를 먹고,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결승에 두번이나진출시키고... 그때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그리고는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관중들이 전부 "찬호!"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고, 야구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유니폼이 영구전시되고 도대체 박찬호를 모르는미국시민이란 없는 그런 상황...
이제좀 상상이 되시나~...차범근이 한게 바로 그런 것이었다.
레베쿠젠 클럽에서 발간한 책에 그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그는 뛰어난 운동선수다. 그리고 그는 팀의 어느 곳에나 세울 수 있는탁월한 재능을 가진 유일한 선수다..." 독일감독이 한 이야기다. 당시 분데스리가에는 차범근말고 또 한명의 동양인이 차범근보다 1년 앞서 진출해있었는데, 일본의 오쿠데라였다. 당연히 이들은 라이벌이었다. 박찬호와 노모처럼...차범근은 오쿠데라가 소속된 쾰론과의 경기에서는 언제나 펄~펄~ 날았다. 반면
오쿠데라는 차범근이 독일에 진출한 이후 비실비실 힘을 잃고 주전자리를 잃었다.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축구선수 마테우스... 아는가? 그는 차범근전담맨이었다.
허구헌날 차범근을 놓쳐 눈물을 삼키고 좌절하다 절치부심 노력해 오늘의 그자리에 오른 선수다. 독일로 떠나기전에는 어떠했는가... 70년대 국민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노래 중에
이런게 있었다.
떴다 떴다 비행기' 장단에 맞춘 '떴다 떴다 차범근...'
국제대회가 끝나고 나면 어른들 사이에는 '차범근을 인간 문화재로!' 하는 구호가유행했다.
그가 남긴 전설적인 게임기록중의 한경기만 소개하자...
77년 대통령배 국제축구에서 말레이시아와의 개막전 대결..
당시는 우리는 경기 종료 7분전까지 4:1로 지고 있었다. 그런데 차범근이 붕~붕~날기 시작하더니 , 마지막 5분동안 혼자서 세골을 넣어 4:4로 만드는 우리 축구사에길이 남을 기적을 연출하였다.
당시 차범근은 범아시아적인 스타로 동남아에 가면 지금도 중년의 택시기사들이"차범근 잘있냐"고 물어올 정도란다.
그가 한국에서 독일로 떠나기 전 동대문운동장에서는 <차범근 서독진출 환송경기>가열렸다.
차범근을 한번이라도 더 보러 3만 관중이 운집했다.
지금은 프로축구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올스타전이 열려도 이만큼 안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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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지금 이러한 통신매체가 1980년데 초 있었다면 우린 차범근이라는 인간을 영웅으로 모셨을것이다.
지금 우린 박찬호를 영웅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보다 더욱 휼륭한 영웅을 가지고 있다.
지금 박찬호가 약체팀을 일끌고 20승 월드시리즈 우승 그리고 사이영 상을 수상하기란 솔직히 힘들것이다.
하지만 차범근 감독은 그런 일을 예전에 이룩하였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차범근이라는 선수가 있었다면 우린 16강 아니 8강도 갈것이다.
11초 대의 빠른발 정확한 킥 유럽에서도 뒤지지 않은 몸싸움 우린 이런 선수를 영원히 만날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