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킬로그램
목욕탕 저울에 나타난 숫자
나 어쩌다 이 짐 속으로 속으로 빨려들게 되었나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에 나는 길 구석에 서서 끈을 약간 느슨하게 풀어놓고 흘러넘치면서 흘러넘치는 것을 본다 어둡고 축축한 밤 검열대 위에서 덜어내는 짐 내용물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올리고 흔들고 뺐다 넣고 지퍼만 조금 열고 머리칼을 쥔 채 퉤퉤 사랑하는 동안 아직 사랑이 아니라는 미친 혼잣말까지
폭발과 낙하, 삽입과 방출, 그러면서 닳고 낡아가는 지겨운 짐을 찾아 다시 발작하고 어느 날엔가 줄을, 수많은, 거의 들을 수 없이 거칠게 줄을 감고
나의 짐은 나를 끌고 나는 나의 짐을 끌고, 질질
엄마, 난 어둡고 축축한 데가 좋아요, 그게 어때서요?
구석에 서서, 이 생각이 미치지 않게, 난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아까 난 왜 그렇게 말했을까
가령, 내 머리를 툭툭 치며
이 고기는 영혼이라는 엉성한 줄로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묶은 것인데요, 시간의 통로에 쑤셔 넣어져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어요, 헤헤, 단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단정하고 역겨운 말투로, 아아아, 제발, 제 발설에 발끈하여 말하지 말자 말하지 말자, 하면서 말하는 나여, 어떤 짐이건 내게 온다면 난 그걸 질질 끌고…… 그러면서 공사판이건 부두건 하역부들의 근로에 관해 말할 처지가 아니지 않았느냐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모여 있었다
기내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짐은 15킬로그램, 벽돌만 한 내 책을 트렁크에 넣을 수 없다고 했지 저리 던진다 해도 아무것도 깨뜨릴 수 없고 집을 짓는 데 쓸 수도 없지 그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보잘것없어지자
15킬로그램에서 0.26킬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57분의 1, 그 정도에 미치지 않게, 그 안에 들지 않으면 누가 읽겠어, 읽기를 포기하라고, 너 작정하고 이따위로 쓰는 거지? 내가 웃기기 위해서라면
내가 좀더 잘 웃거나 웃게 하는 짐이었다면 질 좋은 짐이었다면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을까 나 말고 통장을, 화장품 통을, 라디에이터를…… 엄마는 더 나은 선택을 했다
짐을 열어보면 삶의 질이 보이지요 질에는 질염이 있고 빨갛게 붓는다 해도 난 그 안을 볼 수 없거든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든…… 생각이 거기 미치자 난 내 짐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들은 나를 놓고 떠났다 기차역에서 나는 나를 분할해서 여기저기 실었다 굴뚝이 사라진 동네, 전깃줄이 사라진 동네, 끊긴 전화선처럼 뒹굴뒹굴 나는 이리저리 심심했다
그리하여 갑시다, 네임 라벨을 잃어버리지 않은 포장지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뭉개진 마음은 알코올과 함께 휘발할 수 있는 거잖아요 술을 얻어먹으려는 핑계를 대며…… 이런 맨송맨송한 거짓말들로 창작은 참조에서 수집으로 주둥이를 벌리고 술을 붓는다 자기치료를 하는 심정으로 바지를 올린다 미처 말하지 못한 것보다 이미 뱉어놓은 짐이 무거워도 난 다시 주저 없이 말하는 존재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생각이 여기 미치기 전에 다른 말을 하자면 연일 최고의 한파 최고의 기분 마침내 최고의 예술이라는 말에 쏟아지는 토사물 똥을 먹는 개처럼 곪은 피부를 긁으며 분비물이 터지지 않게 제때 나를 게운다
물이 오물이 흐르고 대체로 정기적으로 피가 흐르는 나, 때때로 짐짝을 옮기듯 질질 이동하며 일시적으로 나라는 나라, 시라는 무국적의 세계-만약, 그 짐이 버려졌다고 해도 더럽다고 해도 상처 나고 구멍난 데가 많다고 해도, 그게 오히려 자랑이 되는…… 아니라고요? 그러거나 말거나-로 부터 자유롭게 출국하고 귀국한다고 착각했던 혹은 과대망상
그래도 된다면
피나는 곳에 입을 맞추고 밑으로 간다 굳이 방향을 정해서가 아니라 이게 천성, 땀이 밴 발에 입술을 맞춘다 더 아래로…… 할 수 있어 축농증 때문에 괜찮아 하지만 손수건 가진 적 없지 더 밑으로 발아래 검은 나무뿌리 묵묵히 묻어놓은 것들 번져가는 핏물 동네 수도꼭지처럼 내 말문에서 빤간 물이 쏟아질 때까지
내가 널 껴안기 때문에 넌 다른 이를 껴안고 껴안지만 그 다른 이가 또 다른 이를 껴안고…… 이런 뒤죽박죽 팽창을 사랑이라고 부르자, 쳇, 코 푼 휴지와 헌 코의 나날이 지나면 코 푼 휴지 같은 꽃이 피고 지는 창가를 서성이듯 칫칫, 코는 헐고 기차는 오고 닥치는 대로 아무렇게나 나를 싣고 가는
나는 배 속의 거지 질 속에서 성년을 맞은 사람 녹슨 짐 문제는 끝없이 좁고 캄캄한 통로에서 몸뚱이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어느 날 끈이 풀리고 내가 쏟아지면, 그게 어때서
일시 귀국한 사람들이 모여 바다 밑에 가라앉은 고대 도시와 먼 나라 시위대와 사라져가는 문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난 일시적으로 흥분하고 벌벌 떤다 하지만 할 말 없다 왜냐하면 나 때문에 이들은 흡연할 수 있는 바깥 의자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함께 벌벌 떤다는 것 같이 연기 속을 떠다니는 것 이게 기쁘다 오늘도 연일 최고의 한파 언제나 쌌다 풀었다 다시 싸는 짐짝으로써 연기나 피웠어야지 그것까지만 좋았지
내가 추위에 떨며, 민망과 부끄러움에 떨며 내민 책, 무거우니까 부치라고 했을 때, 나는 변소에 갔다가 그곳을 나와 길 구석에 서 있다 죄송합니다만, 저울 좀…… 24시간 영업하는 이상한 목욕탕에 가서 시집 무게를 쟀다, 0.26킬로그램, 얼마나 더 가벼워야 하나
이래도 된다면 아 씨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해도 난 흘러넘친다 그 사랑 이야기는 언제쯤, 누벨바그, 너무 시시하고 어지러워, 멈추지 않는 구토, 더듬더듬 내 마음의 똬리를 틀어 나를 옮긴다 똥 먹는 개와 오물이 차오르는 쓰레기통 사이 달빛이 비치는 물웅덩이 말고 그보다 좀더 어두컴컴하고 이상야릇하게 더러운 구석으로
- 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