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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돌아오면 마음이 들뜬다.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부모님과 가족을 만나 즐겁게 보낸다. 하지만 나는 명절이 반갑지 않다. 굳이 고향을 찾지 않은 이유는 시부모님이 시골에서 상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크다.
내가 어렸을 때 몸이 약한 큰오빠가 폐결핵에 걸렸다. 지금의 의술로는 질병도 아니지만, 그때 가정 형편엔 고치지 못하는 병이었다. 외따로 머무는 작은방에선 사계절 내내 기침 소리와 가래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육 남매 중 유일하게 여자인 나는 오빠가 좋았다. 산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송이버섯을 따고, 토끼를 잡는다고 눈길을 뛰어다닐 때도 오빠는 나와 같이 있는 걸 좋아했다.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친구 집에도 데려가서 아랫목 이불 속에 나를 묻어 놓았다. 친구들은 여동생 자랑하려 데리고 다니냐고 놀려대기도 했다. 오빠는 너희도 예쁜 동생 있으면 데리고 다니라고 웃어 보였다. 침침한 윗목에서는 과자 내기 화투놀이나 사다리 타기를 했다. 나는 지루함을 참다못해 잠이 들었다. 오빠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올 때는 등뼈에 닿은 가슴이 아프기도 했는데 그런 느낌이 좋았다.
농촌의 가을은 고양이 손까지 빌려서 일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족는 늦은 밤까지 콩 타작하는 일에 손을 보태야 했다. 큰오빠도 손을 보탰다. 그런 날은 몸이 약한 오빠는 밤새 코피를 쏟았다. 그 모습에 놀란 엄마는 먼 친척이 운영한다는 군산 ‘이언당’ 빵집에 취직을 시켰다. 시골에서는 취직을 잘했다고 했지만, 오빠는 휴양을 목적으로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 나는 남원 읍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때는 새벽밥 먹고 십 오리길을 걸어서 그럭저럭 다녔는데 2학년이 되니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었다. 마을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하루에 고작 5번이 전부였다. 밤 10시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다. 하루는 엄마, 하루는 아버지가 손전등 하나로 마중을 나왔다. 농사철이 닥치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자취하게 되었다. 본가에선 오빠와 동생들이 줄줄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 등록금도 늘 마감 날짜가 지나서 냈다. 나는 밀린 월세를 내지 못했고 주말이면 집주인의 독촉이 이어졌다. 아니 다짐을 받고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가면 월세 달라는 말이 입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 주인을 피해 다니다가 아마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즉시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때는 그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철없는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편지를 부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가 찾아 왔다. 그것도 일 년 치 월세를 들고. 나는 봉투를 열어보고 폴짝폴짝 뛰었다. 수척한 얼굴로 애써 웃으며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특별식 짜장면까지 사줬다. 군산으로 떠난 오빠는 두 달도 안 되어 집을 나갔다는 전갈이 왔다.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모든 소지품을 숙소에 두고 나가서 찾을 길이 없단다. 선원으로 잡혀갔나, 북한으로 탈북했나, 온 마을에 점점 빨갱이라는 무서운 소문만 번져갔다. 한두 달 불안한 시간이 지나자 낡은 소지품 가방이 집으로 왔다. 엄마의 눈물은 소지품 하나하나를 밤새 적셨다. 하루아침에 이성을 잃어버린 엄마는 미친 사람이 되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내 아들은 꼭 돌아올 거야. 날씨도 추워지는데 내 아들 생사 확인만이라도 해달라고 정한수 떠놓고 빌고 빌었다. 부엌에서 불을 때다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옷에 불이 붙기도 하고 버스정류장에서 눈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명절이 코 앞인데 꼭 올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다짐하고, 무너지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구했을까? 내 방세를 구하느라 오빠가 집을 나간 건 아닐까? 고향에 갈 때마다 오빠의 빈자리가 내 탓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오빠는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견디기 힘들었을까? 그때 왜 그런 장문의 편지를 아무 생각 없이 썼을까?
두 번의 명절은 엄마가 꼭 앓아눕는다. 이번만큼은 꼭 돌아올 것 같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 세월이 40년이 지났다. 오빠는 지금까지 연락 두절이다. 해마다 버스 정류장을 지켰던 엄마는 이제 오빠가 돌아온다 해도 알아볼 수 없다. 치매로 낮과 밤을 꿈속에서 보내고 있다. 그녀의 멈춰버린 시간 어디에 아들이 있을까?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만 알고 있는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자가 된 명절이 싫다.
등단 ; 2022 투데이직장인신춘문예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