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可居島)를 아시나요?
김황식 전 국무총리2026. 8. 15. 00:33
[아무튼, 주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일러스트=유현호
정부에서 일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본 인터뷰 기사가 마음을 잠시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자가 우리나라 서남단(西南端)의 가거도라는 작은 섬을 찾아 섬마을 이장과 대담한 내용입니다. 조선 시대부터 살아온 선조들, 그리고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애환이 얽힌 이야기입니다. 가거도에서의 생활은 아름다운 자연과 풍성한 어족 자원 속에서 살아가는 좋은 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정부의 부족한 배려에 대한 불평으로 이어집니다. 급기야 가거도가 차라리 중국으로 편입되는 것도 무방하겠다는 망언(?)에까지 이릅니다. 중국 땅의 닭 울음소리도 들릴 정도로 가깝다는 지리적 여건을 빗댄 말입니다. 순간 참으로 고약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했겠는가 하는 생각에 잘 챙겨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거도의 현안 문제를 점검하고 조속히 가거도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가거도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태풍의 길목으로 태풍 피해가 심하였습니다. 튼튼하고 안전한 항만 시설을 갖추는 것이 제일 긴요합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에 걸쳐 찔끔찔끔 진행되어 겨우 완성된 항만은 다시 태풍에 의하여 일부분이 망가졌습니다. 조속한 복구 노력과 함께 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위로가 필요하였습니다.
가거도는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직선거리로 145㎞, 뱃길로는 233㎞ 떨어져 있는 절해의 고도(孤島)로 쾌속선을 타고도 몇 시간이 걸리는 곳이기에 부득이 헬리콥터를 타고 가서 부서진 방파제 한쪽에 착륙하였습니다. 큰 바위들이 태풍에 마을 앞까지 밀려와 널브러져 있어 태풍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와 환영해주었습니다. 정부 수립 후 중앙정부의 차관급 공무원도 방문한 적이 없는데 대뜸 총리가 방문한 것을 고마워하면서.
가거도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가거도라는 섬 이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히였습니다. 섬의 공식 명칭은 1896년 고종 때 행정구역 개편 이후 ‘사람이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가가도(佳嘉島·可佳島)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대흑산도와 구별하기 위하여 소흑산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주민들은 소흑산도는 일제가 붙인 이름이므로 우리 고유의 지명을 되찾자고 꾸준히 건의하였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2008년 국가 어항 명칭을 소흑산도항에서 가거도항으로 변경함으로써 가거도라는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가거도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이지만, 어쩐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살 만하다는 아쉬움이 담겨 있는 이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민들에게 살 만한 가거도를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안거도(安居島)로 만들도록 노력하자고 말하고,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그 내용의 글을 써서 남겼습니다. 물론 가거도라는 이름에서 느끼는 저의 주관적 아쉬운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주민들은 저의 글귀가 새겨진 비석을 마을 앞에 세웠습니다.
가거도는 작은 섬이지만 바다에서 솟구쳐 오른 639m의 독실산이 벗어 놓은 군모(軍帽)처럼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상을 오르기가 쉽지 않고, 원시림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으며 해안 곳곳에는 오랜 세월 파도가 깎아 만든 절벽과 기암괴석이 즐비합니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마을끼리도 산을 넘기보다 배를 타고 왕래하는 것이 편한 마을이 있을 정도입니다.
요즈음 섬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섬 여행은 불편한 교통과 숙박시설에도 불구하고 날씨와 바다 상황 등 자연에 순응하면서 명승지가 아니라 자기를 찾아 나서는 여행인 것 같습니다. 배편이 끊기더라도 괘념하지 않고 책을 읽으며 배편이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 가거도는 한 번쯤 찾아갈 만한 여행지입니다. 그런데 가거도 여행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동쪽 끝의 독도, 남쪽 끝의 마라도와 달리 서남쪽 끝 가거도는 덜 알려진 섬입니다. 그렇기에 가거도를 찾는 것은 또 하나의 국토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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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섬의 공식 명칭은 1896년 고종 때 행정구역 개편 이후 ‘사람이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가가도(佳嘉島·可佳島)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대흑산도와 구별하기 위하여 소흑산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주민들은 소흑산도는 일제가 붙인 이름이므로 우리 고유의 지명을 되찾자고 꾸준히 건의하였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2008년 국가 어항 명칭을 소흑산도항에서 가거도항으로 변경함으로써 가거도라는 이름을 되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