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놈의 딸년
어떻게 생겨났나
어떤 찌질한 놈이 있었다. 이 놈은 나라가 백척간두에 선 6.25동란에도 징집영장을 피해 고향인 전라북도 순창을 버리고 대구로 숨어들었다. 고향에서는 그를 과거 남로당 프락치라고 했었다. 당시는 호적이 있었을 뿐 주민등록제도는 없었고 전쟁 통이라 병역 관리도 부실했었다. 이 놈은 동란 후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이 민의원으로 당선되며 그의 비서로 채용된다. 그 후 58년경 딸년을 낳을 즈음 김성곤이 경영하던 대구 방직공장의 공장장으로 있었고 5.16혁명이 일어나고 혁명군이 했던 여러 사회개혁 중 군 징집기피자를 단속했는데 이 놈도 해당되어 모든 직에서 잘린다. 징집기피자로 공직에 나설 수 없으니 세탁소를 시작한다.
세탁소는 서울로 말할 것 같으면 옛 미아리 텍사스나 청량리 588, 남대문로 양동과 도동, 영등포와 용산 역전 앞 같은 적선지대로 그 유명한 대구역전 태평로 부근 속칭 '자갈마당' 사창가였다. 이 찌질한 놈은 이곳에서 주고객인 불쌍한 불우여성들의 호주머니 돈을 굵어 모아 부자가 됐다. 그 당시 세탁소 하는 집은 지금의 중산층 이상이었다. 굶는 사람이 숱한 시절에 세탁소는 창업비용도 들고 했기에 주변까지 돌볼 수 있을 정도로 중상류의 생활이 보장됐다. 이 놈이 58년에 낳은 딸년은 그렇게 유년기를 유복하게 커갔다. 당시 통금에도 불구하고 대구 역전 자갈마당은 24시간 영업이 가능했고 육두문자와 쌍욕이 판치는 곳이라 딸년도 배운 것이란 육두문자와 쌍욕뿐이라 한다.
한번은 국회의원 시절 술이 취해 기자들에게 '좆같은 놈', '좆같은 새끼', '씹할 놈' 등으로 욕하다 언론을 타기도 했었다. 딸년은 공부도 중상 정도로 곧 잘해 경북여고를 거쳐 1977년 한양대에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년의 성격이 정말 더럽다는 것이다. 반골기질이야 애비에게서 받았겠지만 양친 모두에게 더러운 DNA 기질만 받아 만들어진 거였다. 성질이 더러워 고용한 운전기사도 밥 먹듯이 해고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대구 딸의 변절처럼 얘기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리 불편한 남자와 플라토닉한 사랑을 했고 가난한 세탁소집 딸로 묘사되어 오늘도 코스프레 중이다.
네이버나 구글이나 검색하면 이 여자 이름 외에 부모 얘긴 일절 없다. 웃기는 일이 아닌가? 다른 정치인이 이랬다면 이 여자가 가만히 있었을까? 관제언론 타도를 외치던 여자가 관제 언론의 달콤함을 즐기는 지금이 정녕 그들만의 르네상스인 듯하다. 왜 모든 미디어에 5선이나 하고 장관인 여자의 약력에 부모 얘기는 뺐을까? 지금은 역관제의 시대다. 이게 순풍일까? 완장이 가진 양면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는지…. 쯧쯧쯧.
또 다른 이바구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와 면담할 때 성장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구 자갈마당은 동쪽으로는 전매청만 있었고 주변에 주택은 없는 성을 매매하는 사창가라는 사실은 보통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최근 온 나라가 연일 화제의 중심에서 국민에게 짜증과 피로감을 주는 법무장관이 어릴 때 성장했던 곳이 부모들이 운영하는 자갈마당 옆에 위치한 세탁소였다. 쇼윈도에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세탁물이 주종이었다. 밤이 되면 천태만상으로 벌어지는 광경은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공포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머리채를 서로 잡고 고성을 지르며 저희들끼리 아귀다툼하는 혈투에다 포주들의 험악한 욕지거리, 술 취한 남성들의 고함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막다른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리 먹고 살기가 힘들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그런 곳에 빌붙어서 장사하는 사람은 보통사람은 감히 생각도 못하는 곳이었다. 부모의 노력으로 공부 잘해서 법무장관이라는 높은 직위에 올랐다지만 단언하건대 인성과 인격의 대부분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다. 국정의 중심에서 온갖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추미애의 용기와 배짱이라 해야 할지? 사악함과 표독스러움이라 해야 할지? 국민의 반쪽은 전자이고 반쪽은 후자일 것이다. 최근에 벌어지는 추미애의 작태를 보고 다시 한 번 인생에서 성장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비바람 끝에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잊힌 시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PS]
옛날 대구 동아극장 뒤 자갈마당 사창가 창녀촌 옆에서 추미애 부모가 금수세탁소 간판으로 장사를 했었는데 추미애는 어린 시절 거기에서 자랐고 그런 환경 속에 성장한 탓인지 지금 아주 추악한 여자 되어버렸다. 이일을 어찌 할꼬.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