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러워하지 않는 것들은 무엇인가?.
내가 어린 시절부터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돈이 많은 부자. 책, 높은 지위, 권력, 맛이 있는 음식,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지만
내게 가장 큰 부러움은 아마도 집이었으리라.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에 단 칸 방에서 십몇 년을 살아서 그런지
단칸방에서 어서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
내 이름으로 된 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에서 벗어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지만
하여간 그 집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것만도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몇 십 채에서 몇 백 채까지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다는 데
겨우 한 채의 아파트를 소유한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지,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있던 내가 어느 순간,
그것에서 벗어났고, 더욱 다행인 것은 앞에 열거 한 것 중에서 어느 것 한 가지도
부러운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고대광실같이 잘 지어진 집도, 산해진미도, 산더미 같은 책도,
거드름 피우는 그 높으신 양반들도, 부러워하는 생각이 들지 않고,
저렇게 큰 집 관리 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까?
여기 저기 얽매어서 자유스럽지 못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할까?
그런 생각이 들게 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늦지 않게 깨달은 탓이리라.
알베르 카뮈가 <안과 겉>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피력했다.
“나는 이따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재산 속에 묻혀서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러한 재산을 부러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자면 노력이 필요하다. 오래 전 일이지만, 일주일 동안 나는 이 세상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본 적이 있다. 우리들은 바닷가에서 지붕도 없이 잠을 잤고, 나는 과일로 양식을 삼으면서 매일 같이 반나절은 인적이 없는 바다에서 지냈다. 그때 나는 하나의 진리를 배웠는데, 그 진리는 안락이나 안정의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그것을 고소와 불쾌감, 때로는 분노로써 맞이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특혜 받는 자로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소유할 줄을 모른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애써 가지고자 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것 중 어느 것도 나는 간직할 줄을 모른다.
그것은 낭비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어떤 종류의 아까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물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사라져버리고 마는 자유가 내게는 아까운 것이다. 가장 풍성한 호화로움이 나에게는 언제나 일종의 헐벗음과 일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나는 아랍 사람들, 또는 스페인 사람들의 저 아무런 장식 없는 집을 좋아한다. 그리고 더 보기 드문 일이겠지만, 나로서는 거기서 죽더라도 괜찮을 곳, 그곳은 호텔 방이다.
나는 언제나 집안생활이라고 불리는 곳, (그것은 내면생활과는 정반대의 것이지만)에 몰두한 채 들어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이른바 부르즈와 적이라고 하는 행복은 나에게는 따분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하기야 그러한 적응능력 결핍이 명예스러운 것은 못 된다. 그것은 나의 좋지 못한 결점을 길러주는 데 적지 않은 몫을 했다.
아무 것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나의 권리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심정에 생각이 미치지 못할 때가 있어, 그것이 나로부터 상상력을, 즉 남의 심정에 이해를 결하게 만든다.
사실 나에게는 나 혼자만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격언이 하나 있다.
‘큰일에 임해서는 자신의 원칙을 세워 그에 따를 것이요, 작은 일에는 자비심만으로 족하다.’
슬픈 일이지만 사람이란 자기가 타고난 천성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서 격언을 만드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내가 말하는 자비심이란 차라리 무관심이라 불러 마땅하다. 그 효과는, 짐작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별로 신통한 것이 못된다.“
카뮈가 죽어도 좋을 곳이라고 말한 곳이 ‘호텔’이라면
나는 그곳이 민박집이건, 모텔이건, 식당이든
청소년 수련원이나 식당에서 밥 먹고 상치우고 자는 것일지라도
따뜻한 방에 등을 누이고 잠들 수 있는 곳이면 족하다.
잠시 살다가 가는 인생길에서 여기도 내 집, 저기도 내 집,
음식은 배만 채우면 되고,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건강한 육체만 있으면
부러워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이것 역시 내가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리라.
내가 나를 위해서 세운 격언은 무엇일까?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것이요,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진다.
오고 싶은 자 오게 하고 가고 싶은 자 가게 하라. 모든 것이 운명이다.“
너무 길고, 너무 슬픈 얘기 같지만 내게는 이것이다.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오겠지,
2023년 1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