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 코리아를 갈망하며 제사받기 원하시는 광개토태왕
장수태왕이 세운 광개토태왕비문에서 광개토태왕은 1만년이 지나도 태왕릉을 지킬 수묘인들은 만주와 북한지역의 예인들과 남한지역의 한인들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광개토태왕께서 먼 훗날 수.당 100만 대군으로도 정벌할 수 없었던 고구려에 열등감을 가진 지나국이 고구려(대진국 발해)사를 왜곡하려는 동북공정의 만행을 미리 내다 보시고,
광개토태왕이 민족의 뿌리로 인식하고 있던 한반도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릉을 지킬 것을 명한 것이다. 광개토태왕의 선견지명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어떤 정신나간 자들은 예인.한인들이 만주와 한반도인들이라는 기본적인 역사인식도 못하고 지나대륙의 사람들인양 착각,날조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 역시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망국적인 사이비 민족사관이라 할 것이다.
지나국이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로 주장한다면 광개토태왕비문에서 지나인들로 하여금 광개토태왕릉을 지키도록 명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윤복현

고구려 개국성조 추모왕 고추모의 유훈/하늘의 도(순리와 양심)로써 백성을 다스려라!
[보도자료] '중국문물보'의 보도에 따르면, 2012년 7월 29일 길림(吉林)성 집안(集安)시 마선(麻線)향 마선촌의 마선강 가에서 한 주민이 비석을 발견하여 문물국에 신고하였는데, 문물국이 현장에 조사팀을 내보내어 조사한 결과, 고구려 비석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이 비석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결실된 상태로, 현재 크기는 높이 1m73cm, 너비 60.6-66.5cm, 두께 12.5-21cm, 무게는 464.5kg이고, 정면에는 예서체로 총 218개 글자를 새겼는데, 총 10행으로, 마지막 10행을 제외하고 행마다 22자를 적고, 10행에는 20자가 확인되며, 218자 중 판독이 가능한 글자는 140자라고 전하고 있다.
['중국문물보' 공개 비석 전문(□는 훼손된 글자)]
□□□□世必□天道自承元王始祖趨牟王之創基也
□□□子河伯之孫神□□□□蔭開國闢土繼胤相承
□□□□□□烟戶以□河流四時祭祀然□□備長烟
□□□□烟□□□□□富足□轉賣□□守墓者以銘
□□□□□□□□□太□□□□□王神□□與東西
□□□□□□追述先聖功勛彌高悠烈繼古人之慷慨
□□□□□□□□自戊□定 律敎□發令□修復各於
□□□□立碑銘其烟戶頭卄人名□示后世自今以后
守墓之民不得□□更相轉賣雖富足之者亦不得其買
賣□□違令者后世□嗣□□看其碑文與其罪過
비문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볼 때 광개토왕비 비문의 내용 중, 추모왕의 건국과 수묘(守墓)에 관한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바, 국강상광개토경호태황 또는 장수홍제호태열제 시대에 세운 수묘비(守墓碑)가 분명하다고 보인다.
대체적으로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다,
"0000 세대에, 반드시 하늘의 도를 지키며, 스스로 원왕(元王)을 이은 시조 추모왕의 창업이로다. 000 아들이며 하백의 손으로 신(神)과 같이 00하고 그늘을 00하며, 나라를 열어 땅을 열고 대를 이어 계승하고, 000000 연호로써 하류(河流)에 0하고 사시사철에 제사하였도다.
그러나, 00 마련하지 0 하고 길이 연(호)가 0000 하며 연(호)가 00000 하여, 부자는 전매하여 수묘자로 새기어 000000000 하고, 크게 00000 하였다. 왕께서 신(神) 00 동서(東西)와 더불어 00000 하고,
더듬어 선대 성왕들의 공훈을 기록하여 널리 높이고 멀리 떨치며, 옛 사람의 강개(慷慨)를 잇고 00000000하도다. 무0년부터 율(律)을 정하고, 0을 가르치고, 령(令)을 발하여 수복(修復)하게 하고, 0000에 각 비를 세워, 그 연호의 머릿수 20인의 이름을 적어 후세에 0하여 보이니,
지금부터 이후에는 수묘하는 백성들이 더 이상 서로 전매하지 못하고, 비록 부자라 할지라도 역시 사고 파는 것을 하지 못 할지니, 00(만약) 영을 어기는 자는 후세에 0 하여 대를 이어서 00하여, 그 비문과 그 죄과를 보게 할 것이로다."
(□□□□世必□天道自承元王始祖趨牟王之創基也□□□子河伯之孫神□□□□蔭開國闢土繼胤相承□□□□□□烟戶以□河流四時祭祀然□□備長烟□□□□烟□□□□□富足□轉賣□□守墓者以銘□□□□□□□□□太□□□□□王神□□與東西□□□□□追述先聖功勛彌高悠烈繼古人之慷慨□□□□□□□□自戊□定律敎□發令□修復各於□□□□立碑銘其烟戶頭卄人名□示后世自今以后 守墓之民不得□□更相轉賣雖富足之者亦不得其買賣□□違令者后世□嗣□□看其碑文與其罪過)
비문에 보이는 연호(烟戶)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면 왕릉을 보살피도록 지정된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위 내용을 보면 이번에 발견된 비석은 기존에 알려진 광개토태왕비 비문의 내용에 있는 광개토황의 업적 중에서 수묘자(守墓者) 즉 연호(煙戶)에 관한 것을 기록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된 비석은 무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서 광개토황이나 그 아들인 장수제가 고구려 왕릉의 소재지에 건립한 것이 되는 바, 광개토태왕 비문의 마지막 부분 중 연호에 관한 내용에서 선대 왕들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였다라고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비석은 선왕의 묘마다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守墓人)을 비석에 새기어 소위 연호법(煙戶法)을 분명히 하였던 수묘비(守墓碑) 중 하나인 것이며, 시기적으로 위 무0년은 광개토호태황 시대인 서기408년 무신(戊申)년보다는 장수제가 광개토태왕비를 세운 서기414년 갑인(甲寅)년의 4년 뒤인 서기418년 무오(戊午)년이 확실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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