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는 천처히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걸까??
"언제부터...언제부터 류의 상태가 이러했느냐!!"
"소..소신도 그것을 잘,..."
들으나 마나 한 내관의 소리를 들으며 세안은 류의 손을 꼭 잡았다. 손끝으로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류의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걱정마라. 내가 널 구해줄테니.... 이런 쓸모없는 의사들의 말은 이제 듣지 않겠다. 사랑하는 내동생. 류......"
그랬지.... 류는 생각해 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하나뿐인 형이자 이나라를 통치하는 서왕(西王) 세안이라고.....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류는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아무리...기억이 혼재하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한시라도 이 사람의 이름을 까먹었을까?? 어렸을 때 부터 약한 자신의 몸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준 자신의 은인을.....
"류야!! 눈을 감지말아라!! 내가 어떻게든..어떻게든!!"
"형님!!"
류는 마지막 기력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세안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에 창백할 정도의 하얀 피부의 불쌍한 동생.....
"더 이상... 이러지 마세요. 저는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그..그런말 하지 말아라!"
"아뇨.... 저도 때는 느끼고 있습니다. 부디... 훌륭한 왕이 되시길...."
"류!!!"
류는 희미하게 웃었다. 더 이상..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벌써 10년째의 투병생활.... 이제 그
도 지쳤다. 류는 형의 손을 잡은 손이 스스로 미끄러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서안 왕제 이 류의 죽음이었다.
같은시각......
"아르!! 도대체 네가 왜!!!"
"아바마마.... 그리고 어마마마...."
아르는 힘없이 웃었다. 그의 화려하던 붉은 머리칼도 이미 백발이 되어 버렸다. 특정한 병명도 없었다....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는 무서움 속에서도 아르는 자신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괜찮습니다.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 흐윽......"
아르는 순간 자신의 모든것을 꿰뚫어 버리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이런 것이 죽음일까???
아르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가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하아악..... 아악!!"
"아르!! 도...도대체 이 아이가 왜 이러는 건가?? 어의!!"
"전하."
어의의 직책을 맡고 있는 론은 아르의 손목을 잡았다. 불규칙적인 맥박........ 이것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가.......
"이것은....."
"이것은 무어란 말인가!! 아르야...아르야!!"
'왜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너무 슬퍼.......'
'응?'
아르는 자신 외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느꼈다. 다른 목소리.... 투명한 목소리의 소유자가 자
신과 함께 있었다.
'누구......?'
'너무...슬퍼.....'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르는 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할 듯 했다. 아르는 존재하지도 않는 누
군가에게 마음의 손을 내밀면서 물었다.
'너는 누구야?'
'나....나는'
류.
"아아악!!!!"
론은 아르가 비명을 지르고 손을 놓아버리자 혹시... 하는 마음에 성급히 손목을 잡았으나...
이미 맥박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에?"
"왜,,왜그러는가?? 론경. 설마....."
아르의 아버지 파베르 3세는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론은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왕자님께서 소생하셨습니다!!!!"
(1)화 다시 살아나다.
류는 눈을 힘겹게 떴다. 이곳은 어디일까?? 이미 죽어버린 것일까??
"아르!!! 정신이 드느냐?? 내가 누군지 알아 보겠느냐?"
화려한 금발.... 류는 드디어 천국에 왔구나,...라는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시는 그 지긋지긋한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되겠지....
"웃는 것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 구나."
"저어......."
"응? 뭐 시킬 일 이라도 있느냐?? 이 아비가 뭐든지 해주마."
"아르라뇨?"
"응?"
"전 류입니다. 이 류라고 하지요. 서왕 세안의 동생입니다."
".........."
잠시동안의 침묵..... 류는 어색함을 느끼며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제각각의 머리칼..... 언제나 검고 단정한 머리칼만 봐오던 류는 이 현란함에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이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겠지??"
"오오~ 주여!!"
"???"
갑작스런 외침에 류가 고개를 돌리자 아까 자신에게 말을 건넸던 사람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뭐라고...중얼거리고 있었다. 신기한 사람이군.... 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무리 천국이라도 이런 사람들 사이에 누워 있는 것은 예절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런데....
"응??"
류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긴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무슨 색이지...이건?? 아까 그사람과 같은 머리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부드럽던 흑발도 아니었다. 마치..... 형님의 옷에 항상 장식되어 있는 자수정과 같은. 아니.... 루비와 자수정을 한데 섞어 놓은 듯한 붉은 색.....
"이..이건...?"
류가 자신의 머리칼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자 별안간 한 붉은 머리의 아주머니가 와서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고 울었다. 황당....
"오! 신이시여. 이 아이에게 기억상실이라는 고난을 주시다뇨!!"
'기억상실??'
이게 왠말이냐?? 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부터... 뭔가가 이상하긴 했다. 아르라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질 않나..... 머리칼이 뒤바뀌지 않나........ 설마!!!!!!!
'내가 어떻게든..어떻게든!!!'
'설마!!!!!'
형이었던 세안은 주술을 할 줄 알았다. 물론 황제이기 때문에 미천한 주술사라는 사실은 자신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지만...... 설마. 형님이 부활을 주술을........말도 안된다. 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주술이었다. 설마....설마........
"아르. 일단은 아무생각말고 자거라. 다시 깨어난 후에 애기를 하자구나. 론경."
"네. 왕자님 실례를....Sleep!"
류는 다시 어둠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저 아이가 어째서 기억을....."
"신께서.... 목숨 대신 기억을 앗아가신듯 하옵니다."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파베르는 아직도 울고 있는 왕비의 어깨를 끌고는 아르의 방을 나왔다. 자신에게는 5 아들이 있지만 이 자신의 옆에 있는 왕비의 아이는 저 아이. 아르 뿐이었다. 게다가.... 특별히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가 아니던가?? 태어날 때 부터 몸은 약했지만 저 아이는 지식이 특출났다.
어떤 분야에서는 왕궁 서기가 혀를 내두르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살았으니 됐잖소..."
"네...흑... 폐하."
파베르는 굳게 닫혀 있는 아르의 방을 한번 힐끗 바라본 후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님의 가호가 함께하길 바라면서......
(2)화 아르 룬 쉐이난.
"아르!! 괜찮니?"
"이제 괜찮습니다. 형님...."
류는 자신에게 다가와 걱정스레 안부를 묻는 금발머리 남자를 향해 힘없이 미소지었다. 그의 이름은 케이. 바로 자신의 형이라고 했다. 자신이 이곳에 온지.... 벌써 2주일. 그는 자신의 아르라는 사람의 영혼이 바뀌어 버린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마도 이 일은 자신의 형이었던 세안의 짓이리라.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뭘 생각하고 있어?"
"에에.... 아무것도요."
케이는 힘없이 웃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언제봐도 화려한 붉은 색 머리칼이었다. 마치... 루비를 물에 녹인 듯한.... 화려함. 한때 이 머리칼이 힘없는 백발이 되었었던 사실이 안믿길 정도로...
"기억은...아직이냐?"
케이의 말에 류는 힘업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케이는 자신도 모르게 동생의 어깨를 안았다. 너무나도 힘 없는 어깨...... 자신들의 사랑스런 동생의 어깨가 이렇게 연약했던가...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 케이였다.
"언젠가는 되찾게 되겠죠.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
케이는 기억을 잃고 나서 왜인지를 모르지만 훨씬더 공손해져버린 아르의 어깨를 감싸앉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멀리서 자신들을 부르러 오는 기사 한명이 보였다.
"2왕자전하. 그리고 5왕자 전하. 빨리 들어오시라는 왕비전하의 명이 계셨습니다."
"호오....네가 걱정되었나 본데? 아르. 지금 들어간다고 아뢰어라."
"네. 그럼."
"자자...가자구. 아직 넌 몸도 다 않나았으니."
"감사합니다 형님."
류는 자신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케이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사람을 보고 있자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 지 모를 세인이 생각이 났다. 세인......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을 보호하고 간호하던.... 그는 잘 있을까?? 제발 부활의 주술이 그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기를.....
"아르! 이렇게 돌아다니지 말라고...아. 케이를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만에요. 아픈 동생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 저의 죄가 크죠. 어마마마."
케이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왕비를 바라보았다. 벌써.... 자신의 양어머니가 된지 15년이 지났는데도...(아르의 나이는 15세) 이렇게 자신을 어려와 하다니......
"어마마마. 전 괜찮습니다. 바람을 쐬고 나니 한층 몸이 좋아진 듯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응? 아.... 네가 나갔다는 소릴 듣고. 그리고 보니 폐하께서 찾는다고도 하셨구나."
"네에...."
어머니라....... 류에게는 어머니가 없었다. 자신을 낳은 후 바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1년 후 아바마마 조차 돌아가셨기 때문에 세인은 자신의 나이 1살. 그리고 세인의 나이 12살때 왕좌에 올라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류는 지금 눈앞에 있는 아르의 어머니가 마치 자신의 친 어머니 처럼 느껴졌다. 아주 다정하고...... 사랑이 느껴지는.
"폐하께서 납시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들어오는.... 저 아버지도 역시.....
(3) 마법공부
"오오! 이제 다 낳은 거냐? 아르."
"네.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그리고 씨익~ 웃는(그래도 살포시 웃은 것 처럼 보여.....) 아르. 파베르는 왠지 모르게 너무
나도 공손해져 버린 자신의 아들을 보며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껴야 했다.
"이제부터는 소홀히 했던 마법공부와 검술 공부에 심취할 수 있겠구나. 허허...네가 워낙 공
부하는 걸 좋아했어야지....(밥맛!! 공부하는 게 좋다니!!)"
"네??"
마법?? 그게 뭐지......????? 아르는 왠지 물으면 안될 것 같으면서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세상에!! 이제 그런 것 조차 까먹느냐?? 그럼 검술이 무엇인 줄은 아니냐???"
"그거야...."
당연하죠. 류는 검술을 잘 하진 못했지만... 세인이 검술 연습을 하는 것은 자주 봐 왔었다.
게다가..세인은 꽤 고수 축에 속했으니까....
"알긴 알지만...."
왠지 모르는 척 해야 할 것 같지만.....
"흐음. 이거 큰일이군. 그래도 아르는 마법은 꽤나 구사했었는데.... 다시 배워야 하나?"
"뭐. 몸에 배여 있으니까 다시 해도 금방 익힐 겁니다. 너무 심려마세요. 아바마마. 그리고
아르 너도,"
난 별로 심려 안했는데.....
"그럼 네 검술 스승과 마법 스승부터 소개를 해 주어야 겠구나. 그것도 아마 모를테니."
"네."
"오랜만이십니다. 아아..기억을 잃었다는 소린 들었습니다. 흑흑... 얼마나 영특하신 전하셨는
데. 아. 하지만 걱정마십시요. 전하는 워낙에 영특하셨으니까 다시 쉽게 익히실 겁니다. 아
아..그러면 마나는 아십니까? 아..죄송합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셨죠?? 그럼 마나라는 것
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드리죠. 이런,... 제가 계속 서있게 했군요. 이런 죽을 죄가.... 어서 들
어오시죠."
"아...네네."
참으로 청산유슈 격으로 술술 말이 나오는 사람이군. 포트라고 했던가?? 아르는 타칭 자칭
자신의 마법 스승이라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마나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근본은?'이라는
교재와 함께 3시간이나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별로 지겹지는 않았다. 워낙에 책을 좋아하는 류였기 때문에(너도 10년동안 누워
있어봐. 책말고 할 게 있는지....) 새로운 지식이라는 것은 그에게는 최고의 흥미거리였다.
"자. 이제까지 마나가 무엇인가에 대해 공부하셨습니다. 내일부터는 마나를 다루는 법을 가
르쳐 드리죠. 그런데 제가 드린 말씀들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아..이해하신다고요? 하아... 역
시 영특하신 전하십니다. 제가 이 재미에 살지요. 아아... 검술 수업을 받으셔야 한다고요?
아쉽습니다. 전하와 좀더 고차원적인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럼 내일 또 뵙겠습
니다. 안녕히계십시요."
자기 할 말만 다 하고 나가는 포트....... 얼이 빠진 아르
"난 아무말도 안했는데??"
(4) 검술 수업
왠지 한 것 같지도 않은 마법 수업을 끝내고 연무장에 도착한 아르는 자신 말고도 검을 휘
두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머리색깔이란 항상 검은 머리만 봐오던 그에게는 부적응 거리였다.
푸른 머리칼의 1왕자 사엔 (왠지 시엔이랑 비슷하다,)
금발 머리칼의 2왕자 케이
또 푸른 머리칼의 3왕자 아지엔
약간 회색빛을 띄는...무슨 색인지 명확히 알수 없는 머리칼의 소유자 4왕자 슈에체른.
제각각의 인사를 받으며(어째 한명이 빈다...) 아르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군청
색 머리칼의 남자가 다가와 자신에게 인사를 올렸다.
"드디어 다 나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아르님."
"네. 감사합니다. 저어..."
".....기억을 잃으셨다는 것이 정말이었군요. 칸드경이라고 불러주십시요."
"칸드경,.,,,"
검은 머리칼과 닮으서일까??? 칸드라는 사람에게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끼며 아르는 검을
잡았다. 전에나 지금이나.... 검하고는 인연이 없는지 검을 잡는 느낌이 영 어색했다,
"전하께서는 기초부터 닦으셔야 겠습니다. 그래도...이해하시겠지요?"
"아? 네에..."
쯧.... 아르란 녀석도 검술이 참 미약했나 보군. 아르는 어색하게 검을 잡고 휘둘러 보았다.
그런데....... 자신이 쓰던 검하고는 무언가가 달랐다. 세인이 쓰던 검은 훨씬 더 크고 무거웠
는데.... 이건 왜이리 작고 이런 보석은 왜이리 많이 붙어 있는 걸까???
"칸드경. 원래 이런 검을 쓰나요?"
"네? 아아... 레이피어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특히 전하처럼 초보는..."
"레이피어라..... 흐음. 어감이 좋군요."
뭔가 어색한 이름이지만 보석처름 이쁜 어감...(무언가 이상타...이쁜 어감??)
.....................
무지 피곤하다...... 검을 휘두르는 일이 이렇게 힘든 것일 줄이야.....
"아. 아르. 괜찮냐?"
"으으윽...형님. 치지 마세요..."
"훗.... 그러니까 더 치고 싶은데??"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찌르는 케이의 검집을 피하느라 훨씬 더 가중되는 고통을 받는 불쌍
한 아르였다.
"잠시만요! 전하"
"응? 칸드경?"
"주무시기 전에 검을 100번 휘두르시는 것은 잊지 마세요."
"........."
오~ 신이시여!!! (완전히 이쪽 말투 다배웠당.)
(5) 무도회 - 1
오늘.... 뭔가가 소란스러운 것을 아르는 느꼈다.
이리저리 떠들어 대는 시녀들.
왔다갔다 하는 시종들.
복도에 걸린 거울만 바라보는 기사들....^^;;;
"몰라?? 케이샨 공국의 공녀 축하 무도회라는데."
"케이샨.... 공녀?"
"아아...미안하다. 잠시 이 형님이 니가 기억 상실증이라는 것을 잊었구나."
"괜찮습니다 형님."
내가 웃자 케이는 뭐가 그리 귀여운지 계속 내 볼을 쥐어 흔들고 있었다. 옆에서 사엔이 책망의 눈질을 주는 것도 모른채....
"그럼 저도 준비를 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지. 아마도 시간되서 루크경이 데리러 갈거야."
루크경은 나의 근위기사이다.
"네에. 그럼...."
아르가 나가는 것을 보고 케이는 웃음을 싹 지웠다. 옆에서 사엔이 중얼거렸다.
"분명히....그 케이샨의 공녀는..."
"그걸로 유명한 공녀 맞죠?"
"그래... 불길한 악마의 머리칼의 소유자. 바로 그녀지...."
그리고 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루크경....제발."
"안됩니다. 한치도 양보 못합니다."
아르는 난감함을 느꼈다. 루크가 시녀들을 시켜 들고 온 옷은.... 화려함의 극치. 전에도 왕궁에서 살아서 왠만한 화려함에는 눈깜빡 안하는 아르 역시 이번 옷을 보고는 한숨밖에 안나왔다.
완전히...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으로 도배를 할 참인가???
전체적으로 금실로 수놓아진 흰색 튜닉. 그리고 백구두(^^;;;). 은실이 수놓아진 보자에 은빛 깃털이 꽂혀 있었다. 세상에...저 은색 깃털은 어떻게 구한걸까?? 흰색이 아닌 것은 오직 중앙에 다는 루비 브로치 뿐이었다.
"이건.....너무 화려하잖아요?"
"전하께서는 흰색이 가장 잘 어울리십니다."
"........."
확실히... 붉은 머리에 흰색은 잘 어울리긴 하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잖아!!!!!!
"휴으... 그럼 루크경. 조건이 하나 있어요."
"말씀하십시요. 전하."
"망토는 검은 색으로 하죠."
"......."
"......."
........
결국엔 망토는 붉은 색으로 합의를 봤다. (촌시럽게...) 피처럼 붉어서 섬뜻하게도 보이던 망토가 입으니 머리빛깔과 잘 어울려 꽤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그 붉은 망토가 안쪽 흰색 튜닉을 대부분 가려주어 적잖아 위안이 되었다.
"에에. 이제 됐나요? 루크경."
"아? 네에.... 정말로 멋지십니다. 정말로....."
"에이..... 띄우지 마세요. 어지러워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 너무 멋지십니다."
루크는 아름다우십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잡아 넣어야 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은 흰 얼굴을 더더욱 희게 보였고 게다가 앵두같은 붉은 입술....쫙 빠진 몸매. 게다가 유혹하는 듯한 눈꼬리(위..위험해!!).... 루크는 한순간, 어디까지나 한순간 넑이 빠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째서...남자인 왕자님이 왕비전하보다 더 요염하신거냐구!!!!!
젊어 보여서...아직 결혼한 지 몰랐는데.... 아르는 괜시리 미안함을 느끼며 망토의 끌림에
따라 무도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6) 무도회?? -2
~~~~~~~~~~~~~~♪~~♬~~~~~
"좋은 음악입니다. 누가 부르는 거죠?"
"아아..... 아마도 크레아인 백작부인의 아리아일 것입니다."
"흐음...좋은 목소리군요."
"크레아인 백작부인은 바로 전하의 이모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요?"
자신에게 친척이 있다는 소린 첨 들었기 때문에 아르는 어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는 발걸음을 빨리 해 벌컥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오오!!! 아르 왕자님께서"
"오오~ 아르님!"
"아아~ 아르왕자니임~♡"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목소리에 아르는 잠시동안의 현기증을 느껴야 했다. 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아르 전하십니까?"
"네?"
어떤 고운 여성의 목소리에 아르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입을 쫙~ 벌릴 정도로 놀랐다. 그 곳에는 기품있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빼어난 미녀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히 흑발이었다. 예전의 자신과 같은 검은 머리칼!!!
"아리엘 케이샨이라고 합니다. 고귀하신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고귀하신 공녀를 뵙게 되어 저야말로 영광..."
아르는 얼떨결에 인사하면서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분명히 흑발이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예전 자신과 같은 머리칼을 보게 된 아르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가슴이 벅차 있었다.
"이 머리칼이 신경쓰이시나요?"
"네?"
묘하도록 차가운 음성.... 아르는 검은 눈동자를 표독스럽게 뜨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훗.... 보통 들 악마의 딸이다. 악마의 머리칼이라고들 하죠. 전하께서도 그리 생각하십니까?"
"아니...난. 그저....."
"그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네에?"
예상치 못한 말을 들어서일까?? 아리엘은 놀란 표정으로 아르를 응시했다. 아르는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고귀해 보이시는 군요. 그 머리칼은. 공녀께서는 그 머리칼로 인해 더더욱 돋보이십니다.
밤 하늘과 같은 기품과 아름다움에 말입니다."
"........."
아리엘은........ 조금...이 아니라 상당히 놀랐다. 설마 소문 자자한(무슨 소문??) 제국의 5왕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게다가 자신더러 아름다운 머리칼이라고 한 사람은 이 사람이 처음이었다. 자신을 낳은 어머니 조차 천하고 더러운 머리칼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 음악이. 공녀. 저에게 그대와 함께 춤을 출 영광을 주지 않겠습니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아르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감미롭게 들리는 것일까?? 아리엘은
손을 앞으로 내밀며 살짝 미소지었다.
"기꺼이. 고귀하신 분."
(7)무도회?? -3
"호오..... 아르?"
"아...형님."
고개를 들어보니 3왕자 아지엔이다. 아지엔은 옆구리에 금발의 미녀 한명을 끼고(?)는 춤추고 있는 아리엘과 아르의 옆으로 다가왔다.
"흠?! 아아... 죄송하오. 케이샨 공녀님."
"아뇨 괜찮습니다."
아리엘은 싸늘하게 웃었다. 언제나... 자신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처음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이제는 면역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오늘은 케이형님이 어째서 안보이시는 거죠?"
언제나 옆에서 귀찮게 하기 때문에.... 없으니 허전하당.
"케이? 푸우웃.... 하아. 미안. 죄송하오 공녀. 케이 형은 말이지....... 지금쯤 아주 시달림을 당하고 있지."
"????"
"기억을...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케이의 약혼녀... 알어?"
".....(도리도리)"
"바로.... 아즈테이야 공작의 여식이야."
"흐음... 그 아즈테이야 양께서.......?"
"푸웃... 그 애(?) 나이가 얼만 줄 알어??"
"?"
"형님과는 10살 차이. 바로 8살이야."
"........ 그래요?"
"....별로 놀랍지 않나 보구나?"
이곳에서는 놀라운 일인가?? 아르는 옛날에 살던 곳에서는 50대 왕이 10대 후궁을 들이던 생각을 하면서 40살 차이고 극복할 수 있는 걸... 이라고 생각해고 있었다. (이거랑 그거랑 어찌 같냐?? 이건 로리라고~~~ 로리는 죄야!!!)
말이 씨된다는 어느 곳에 속담이었던가......(어디의??)
마침 8살짜리 아즈테이야 영애를 에스코트 하고 있는 케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엄청난...키차이와 언밸런스란...... 아르는 자기도 모르게 헛 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저기...아즈테이야 양? 이곳에서 놀고 계실래요?"
"싫어!! 오빠랑 같이 놀꺼야."
".....^^;;;(삐질....)
세상에....능구렁이 케이가 저렇게 쩔쩔매는 상대가 있다니!!! 아르는 속으로 아즈테이야양에게 엄청 존경심을 느끼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케이에게 사악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약점 잡았다....'
점점 사악하게 성격이 변해가는 듯..... 아르는 예전에는 전혀 하지도 못할 생각을 하면서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다 작가 탓이니....)
(8) 무도회 -4
"황제 부처 납십니다!!!!!"
"오오오~~"
귀족들이 옆으로 쭉~ 나눠지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 어떻게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다. 아버지는 그 튀어나온 배를 불쑥 내밀면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나온다. 이 커플 역시 언밸런스군.
"아르? 이리로.... 어머!"
나를 향해 손을 내밀던 어머니는....아리엘의 모습을 보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왕족 특유의 뻔뻔함과 유연함으로 표정을 수습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이샨 공녀. 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아르의 댄스 파트너가 되어 주셨군요?"
"저야말로 아르 전하께 신세를 졌습니다."
"어머머~ 아르님? 저 아시겠어요?"
높은 소프라노톤의 목소리....(귀가 찢어지겠다.) 알고 봤더니 아까 노래를 부르던 나의 이모라는 사람이다.
"오랜만입니다. 크레아닌 백작부인."
"어머. 기억을 상실했다고 들었는데..."
"루크경에게 들었습니다."
내 말에 얼굴이 발개지는 크레아닌. 이봐요.... 왜?????
"어머~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네요. 케이샨 공녀님. 상당히 아름다우시네요..?"
"아아...감사합니다."
약간 황당해 하는 아리엘.... 나도 약간 황당하다. 이때가지의 상황으로 봐서..,, 한번도 놀라지 않은 사람 아닌가???
"춤 추실까요??"
"훗...기꺼이."
나는 또 다시 아리엘을 에스코트하여 홀의 중심에 섰다. 에에에??? 왜 다들 물러서는 거야? 머쓱하게...... 같이 추자구!!
"언니. 아니.. 왕비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루에린......"
"호호. 그나저나 아르..... 상당히 변했는걸??"
"......."
"애가...이런말 하긴 그렇지만 조금 요염해진 듯 하지 않아?? 왠지 모를 색기."
"루..루에린!!"
"훗...농담이야. 왜 그렇게 과민 반응을 하고 그래??"
루에린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는 아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변해버린 건 어쩔 수 없다, 원래 붉은 머리는 유혹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내일이면 떠나시겠군요?"
"그래요. 오래 있으면... 다들 싫어할 테니까요."
"이런.... 누가..."
아르가 난처한 듯한 미소를 짓자 아리엘은 아르가 이곳에 만난 후 처음으로 지어보이는 화사한 미소로 아르의 그 난처한 미소를 싹~ 지워 버렸다.
"오늘 왕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네?"
"혹시라도 무사수행 중... 케이샨에 들으실 일이 있다면 저희 집으로 오세요. 성심 성의껏 맞
이하겠습니다. 고귀하신 분이여."
"........무사..수행이라뇨??"
.......................
"오오. 공녀. 대접이 소홀했던 것을 용서하시구려."
"천만의 말씀을요. 폐하."
전혀 속보이는 대화들을 하면서 서로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 파베르와 아리엘.... 그들 사이에
서 아르는 옛날 '류'였던 시절의 자신이 생각났다.
자신을 둘러싼 가식적인 모든것들.......
"전하?"
"......"
"아르 전하."
"아? 이런....실례를 공녀 용서하십시요."
"아닙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훗...아마도 케이샨 공녀가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 그럴 겁니다."
"케이!!"
".....(화끈.)" <--이것은 아마도 아리엘.....
케이의 능글맞은 대화에 아르는 발끈하는 성질을 누르고 침착하게 이성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형님의 약혼녀는 배웅안하십니까?"
".....!!!!"
"상당히 어울리는 한쌍이더군요. 감명. 또 감명 받았습니다."
"아..아르!! 너 상당히....."
"네에?"
"사악해 졌구나."
"하아....."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애길 하고 있는 거야?? 아르는 케이를 다시 싹 무시한채 떠나가는
아리엘의 마차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검은 머리칼..... 언제 다시 볼 수 있
을 까???
(9) 무사수행
"응? 아아... 그러고 보니 너도 벌써 15세구나. 원래라면 저번에 갔어야 했겠지만 아파서 안갔지?"
"그런데 그게 뭐죠?"
"무사수행이란....."
무사수행이란 일종의 왕족을 위한 시련이란 것이었다. 왕위 계승자가 정해지지 않으면 소생 왕자들은 모두 15세가 되면 무사 수행이라는 것을 떠나야 한다. 일단 취지는 그렇다.... 하지만.....
"그냥 놀다 오면 되는 거야. 경치 좋은 데 하나 잡아서 그윽하게 즐기고 오라고."
"그 그윽하게 즐기라는 건 뭡니까??"
그리고 왕위 계승자가 정해진 경우에는 그 왕위 계승자만이 이 무사 수행을 치르게 된다.
"첫째 형.... 사엔이 태자 아니었나요?"
"응? 아아.... 사엔이 그리 특출난 건 아니잖아?? 하지만... 결국엔 사엔이 되겠지. 별다른 차이가 없으면 대개 첫째가 왕위를 이으니까...."
"그래요....?"
그런거군..... 어렸을 적 시엔이 하던 그..... 건가?? 하지만 세안은.. 피투성이가 된채 호랑이를 짊어매고 오던걸?? 그런...걸 재미삼아 한단 말인가? 여긴!!!?
"곧 아바마마의 명이 떨어질꺼야. 그럼..... 한 3개월 쯤 푹 쉬다 오라구."
.................................
"오오~ 아르야 어서 들어오거라."
"아바마마."
파베르는 아직도 화려한 금발을 자랑하며 보석으로 군데군데 장식되어진 왕자에 두꺼운 배를 내밀며 앉아 있었다. 아르는 그 옆에 공손하게 앉았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은 다름아닌 무사 수행 때문이니라."
'역시....'
어째서 듣자 마자.... 이런 명이 내려지는 지는 작가만이 알일! 어쨌든 아르는 호기심이 가득찬 눈으로 파베르의 설명을 들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무사수행이란 왕가의 위엄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행사 중 하나이다. 왕자로서의 생존력을 알기 위해 모든 신분 을 숨긴 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공로를 세워야 한다....(중략)...
하지만.... 이것은 허울일 뿐. 그저 아무 귀족 별장에 가서 편하게 지내면 된다......
"에에?"
"왜? 정말로 수행하고 싶으냐?? 허허......"
".......(약간 실망)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라. 준비는 루크가 알아서 할 것이다."
"네에!!!?? 루크..경도 같이 갑니까??"
"무슨 소리냐? 루크는 너의 근위기사인데. 그 외에도 약 300명 정도의 호위단을 선발할 것
이니 그리 알거라.."
"....(콰과광!!!)"
충격이었다.... 설마... 설마. 또 그런 옷(?) 을 입고 다녀야 하는 건 아니겠지?? 난 구경꺼리가 되고 싶지 않아!!!
아르의 걱정은.... 전혀 기우가 아니었다. 루크가 여행복이라 하며 준비해온 것을 본 아르는 충분히 질려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공작새의 깃털로 특별히 폐하가 하사하신 것입니다. 왕궁의 위엄을 돋보이게 할 장식이죠."
"그..그걸 꽂고 간다고??"
"네. 그리고 이 백옥은......"
갑자기 무사수행이 하기 싫어지는 아르였다.
(10) 무사수행 -2
"저분이 왕자님?"
"저분이 폐하의 5번째 왕자님이라고...?"
"엄청 미남이시네.."
"호오... 저분이??"
"처음 뵙는군. 또 그 무사수행인가?? 그 놀.러. 가시나??"
"호오....."
지금 아르의 심정을 말하자면... 쪽팔림의 극치였다.
주위의 백성들로 추정되는 엄청난 인파들이 거리에 모여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행렬을 보
기 위해서.....!!!
"저기..루크경. 우리 인원 좀 줄이고 조용히 가는 건 어떨까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왕가의 행렬은 대대적으로 광고를 해야 백성의 마음이 모
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원을 줄이다니요?? 자객이라도 나타나면 어찌 하시려고요?"
"하아.... 루크경도 있고 나도 내 몸은 지킬 수 있어요(오옷!) 그러니..."
"그것은 폐하의 재가를 받지 않는 이상 제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는 입을 다물어 버리는 루크를 바라보며 아르는 한숨을 쉬었다. 하루종일.... 거의 하
루종일 엄청난 인파의 시선을 받는 바람에 아르는 대인 공포증의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이
런걸..... 일주일이나 더 한다고????!!
"저자가.... 파베르 3세의 아들이라고?"
"그렇습니다. 아르... 네. 아르 룬 쉐이난이라는 올해 15세의 막내아들이라고 합니다."
"칫.... 지 애비 닮지 않고 곱상하게도 생겼군."
"네에?"
"아...아니다. 이건 내 헛말이고... 준비는 되었나??"
"네. 만만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르 일행을 날카롭게 바라보던 검은 머리칼(오오옷!! 또 검은 머리칼인가??)의 사나이는 그
피빛눈으로 난처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르를 쏘아보았다. 그녀와.... 꼭 닮은 그를.
"흐음....? 이곳은 어디죠? 루크경?"
"네? 아..잠시만...(부시럭..) 흠.. 이곳은 비렌경의 영지와 가까운 바이더라는 마을입니다."
"흐음... 왜 이렇게 으시시한 느낌이 드는 거지?"
"하하.... 숲 때문일 겁니다. 이 숲은 태고부터 있었다고 하죠.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숲입니
다."
"호오?"
어둠을 삼킨듯한 섬뜻함을 주는 나무의 역사에 아르는 새삼 놀라운 눈을 하고 바라보았다.
누구도 다가서기 힘들 듯한 저 나무가 그렇게 오래 됐나?? 그래서..... 그래서 이렇게 불길한
걸까?? 왜......
- 피슝.
"응?"
아르는 볼에 스치는 바람에 무심결에 뺨을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손에 묻어 나오는 것은
피.....
"전하!!"
"아........?"
아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불화살.....
"Shild!! 하아... 전하!!"
"아아....루크?"
"무..무사하셨군요. 잠시 피하십시요. 자네. 왕자님을 모시고 비렌경의 성으로 가게나. 이것
은.. 스크롤이네."
"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옆에 부복한 병사가 고개를 숙인다.
"시간이 없습니다. 전하. 주위는 제가 끌겠습니다. 어서!"
"루크....!"
아르는 병사가 끄는 말에 이끌리면서 어깨에 맞은 화살을 뽑아내는 루크를 보고 뛰어가려
했으나 병사의 완력에 의해 저지됐다. 왜..... 자신 때문에.... 자신때문에..... 자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모두가. 자신때문에 희생되는 건가?? 어째서!! 루크도.... 세안도....왜!!
"왜애애애애!!!!!!"
(11) 숨은자들이 사는 마을 - 1
"하아하아....."
얼마나 뛰었을까??? 아르는 앞에서 달리고 있는 병사의 이끌림에 따라 방향도 모른채 무작정 뛰었다. 입에서 핏물이 나왔다. 말이라곤 제대로 탈 줄도 모르는 자신이 너무 무리해서 일까??
"전하..."
별안간 서는 병사. 놀란 아르^^ 병사의 다가오는 손에 흠짓한 아르는 순간 뒤로 물러섰다.
불길함.... 아까전부터 느껴지는 불길함....
"전하를 모셔오라는 윗분의 명이 계셨습니다. 다치계 하기 싫으니 부디 이리로...."
"누...누가 시킨 일이냐!!"
"훗..... 그건 전하께서 아실 일이 아니죠. 하압!!"
"........!!"
당했다...... 아르는 손을 양쪽으로 교차한 방어자세 그대로 눈을 질끔 감았다. 검도 없고 마법을 쓰려 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 채쟁!!
"이봐. 어린애를 괴롭히지 말라고"
아르의 앞에는 도끼를 멘 거구의 사나이가 서 있었다,
"왠놈이냐!! 썩 꺼지지 못하겠느냐??? 감히 귀족(貴族)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아아... 나는 원래 그런 거 모르는 사람이야. 그러니 네녀석이나 꺼져!!!"
그리고 순간 옆의 나무를 친 손은 그 나무를 통채로 뚫어 버렸다. 엄청난 괴력...... 병사의... 아니... 귀족이랬으니 기사인가?? 기사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휴... 나는 힘 조절을 잘 못하지. 어서 꺼져라."
"후..후회하게 해 주겠어."
언제나 패배자들이 지껄이는 말을 하고는 후다닥 달아나는 기사를 바라보며 사내는 아르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가 너무 괴기스러워서 아르는 순간 흠짓하고 말았다.
"이봐. 너도 네 둥지(??)로 돌아가."
"아... 잠시만요. 실례합니다."
"뭐냐??"
"당신 강하던데요?? 지금 저희 일행이 위험에 빠져 있어요. 함께 가 줄 수 없나요?"
"안돼. 난 바깥에는 못나가."
"네? 하지만... 이곳은..."
"이곳은 나의 생활 터니까... 할 수 없고. 게다가... 이미 싸움이 끝난 듯 한데...? 누군가를 찾
고 잇는 듯,......"
"........!!"
남자는 기척을 느낄 수 잇는 듯 했다. 하지만..... 옛날에 세안에게 산에 오래 산 사람은 산이 그사람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도...그런 사람인가? 아니... 그것보다.... 누군가를 찾는다는 건.바로 나....... 그렇다면 루크인가??
"젠장. 쿠린 자식(아마도 아까의 그 기사...) 도대체 애를 어디다 데리고 사라진 거야??"
"어쩌죠? 아까 그 달아난 기사는.... 아마도 수도에 알리지 않을까요?"
"그렇다 해도 어쩌란 말이야??? 어짜피 기회는 지금 밖에 없어. 그 꼬맹이를 찾아야지."
"......."
이들을 대화를 파이첸과 아르는 가까이서 듣고 있었다. 아르는 달아난 기사라는 사람이... 부디 루크이길 바라며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제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 나간다???
"이봐. 너... 우리 동네에 와 있지 않을래??"
"네?"
"쉿. 조용..... 이 근처에 우리 동네가 있어. 그런데...."
"????"
"이 약속을 지켜줘야 겠어. 아무에게도 우리 마을의 존재를 말하지 않겠다고."
"어..어째서요??"
아르의 말에 파이첸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로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동네는 숨은 자들이 살아가는 곳이니까.....(deserter's village)"
아르는 왠지는 몰라도 더욱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과 믿기 힘들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껴야 했다. 이거야 원,,,,,,,,,
(12) 숨은자들이 사는 마을. -2
약.....15년전. 그러니까 432년 물의 계절(한마디로 여름이란 뜻입니다. 쉽게 쉽게...) 한차례의 반란이 있었다. 현 왕의 파베르 3세의 숙부.. 후이덴 대공의 반란. 이 반란은 왕실을 경악시켰고 분노한 파베르는 그의 모의에 가담한 모든 식솔들을 잡아 들일것을 명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피신했다. 아무도 알지 못할 곳으로...... 그리고 결국 도착한 곳이 어둠의 숲. 낮에도 오기 꺼려하는(그런데...그런 길을 지나가던 아르일행은 뭐지??) 곳은 그들에게 좋은 은신처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한가지 철칙이 생겼다. 바로....
"한번 발을 들인 사람은 나갈 수 없다."
노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옆에 서 있는 파이첸이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영감님. 이아이는.... 하아. 그러니까. 목숨이 위험해서 할 수 없이 데려왔다니까요?"
"어쨌든 철칙은 철칙!! 외부자를 내보냈다가 파베르.... 폐하께서 아시면 어쩌려고!!"
폐하...... 분명히 그렇게 불렀다. 아까 반역자의 집단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르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물었다.
"응? 아아..... 우린. 그저 조무라기들이지. 높으신 분들은 다 돌아가셨고... 우리 같은 사람이 무슨 이상이 있어서 반란을 일으켰겠느냐? 그저.... 그저 미천한 것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렇게....아..아니 폐하께 말씀드려 보지 그래요?"
"훗...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폐하를 만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용서해주신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
"하..하지만!!"
노인은 한손을 들어 아르의 말을 저지했다. 노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비록.... 이렇게 살고 있지만 우린 살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란다. 아르... 아르라고 했지?"
"네."
"오늘은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자거라. 차후의.... 네 문제는 내일 아침에 의논하자꾸나."
"하지만.... 일행이 찾고 있을 지도.."
아르가 근심스럽게 중얼거리자 파이첸이 아르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걱정 말라구! 아까 그녀석들도 말했잖아? 기사 한명이 도망갔다고.. 어짜피 지금 나가봤자
길 찾기도 힘들어. 저 영감 말대로 해라구..."
"네에..."
하는 수 없지.... 아르는 고개를 숙이며 촌장 며느리(노인이 촌장이니^^) 의 안내를 받아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봐. 파이첸."
"응? 왜그러슈? 영감."
"아까 한말..... 기사라니 그게 무슨??"
"아아.... 저 녀석... 누구한테 쫓기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게다가.... 저녀석을 뒤쫓던 무리가 저녀석을 호위하던 기사가 수도로 향했다고.. 하는 소릴 들었어."
"흐음...."
"음? 뭘 그렇게 생각하는 거유? 영감."
"훗훗훗.... 너 같은 돌은 상상도 못할 엄청난 사실."
"쳇. 잘났수..."
파이첸 마저 돌아간 후 촌장 노인은 아르가 걸어간 곳을 잠시 응시했다. 기사가 호위할 정도의 인물..... 그러고 보니 저 생김새며 옷차림 역시 예사 백성의 옷차림은 아니었다. 그냥 봐도..귀티가 느껴질 정도인데... 왜 몰랐을까?? 게다가... 저 얼굴... 어디선가 본듯한..?
"뭐...내일 아침이면 생각나겠지."
노인은 멋적은 웃음을 짓고는 집으로 향했다. 목욕물을 끓이는 듯...... 굴뚝으로 하얀 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촌장은 아직도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르와 리타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정말로 놀랐다. 아까의 그 모습.... 틀리지 않았다면 예전의 폐하를 본 듯 했다. 물론 외모는 다르지만.... 분위기. 그 고귀함과 위엄은 그 분과 동일... 아니 그 이상이었다. 어째서일까.... 저 소년이.... 저 소년의 신분.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할아버지. 후식 드세요."
"오오.... 그래 알았다."
리타는 옆에 과일을 한 접시 가져다 놓고 촌장의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 아르 재 어떤 애예요?"
"왜 관심있느냐??"
"아이참....."(그러면서도 부정하진 않는다...^^;;;)
촌장은 먹던 것을 다시 내 뱉을 뻔 했다. 지금방금... 아이참??? 내숭이란 단어는 절대로 모를 애한테서 나온 단어라 맞단 말인가?? 게다가.... 얼굴의 홍조. 붉게 타오르는 홍조는 대체 뭐란 말인가??
"훗....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끼치시는군. 왕가의 핏줄은..."
"네?"
"아무것도 아니다. 자...아르군에게 방을 안내해 줘야지?"
"네!!"
리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양쪽으로 묶은 갈래머리가 날리도록 껑충껑충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는 씁쓸한 촌장..... 역시 딸자식은 놔둬야 가버리는 것이군...^^;;
"아르. 이 방이 아르가 쓸 방이야."
"헤에.... 독방이네?"(독방은 생각도 못한 이...)
"에헴, 이래뵈도 우리집 부자라구!!"
"그래그래.... 응? 어둡잖아? Lighting!"
아르가 손을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자 밝은 빛덩어리 하나가 떠올라 방을 밟혀 주었다. 그리고 빙글 돌아서 인사를 하려는 아르가 본 것은.... 리타의 못볼 것 봤다는 표정이었다.
(14) 숨은자들이 사는 마을 - 4
"그...그...그거.."
"으응??"
"마법!!!!!???"
"아아...? 응..."
아르는 리타의 박력에 밀려서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간 리타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는 듯 하더니 리타가 별안간 아르의 손목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그렇담... 아르는 마법사?"
"아아? 아니... 그게 아니라..."
"오~호호호호호!!! 이 천재 리타가 한평생 살면서 모르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이 바로 마법!!!"
"......^^;;;;;"
"난 마법을 배우고 싶다구. 하지만... 여기선 가르쳐 줄 사람도 책도 없잖아?? 넓은 세상으로 나갈꺼야."
"하..하지만.."
"어머... 싫어?? 흑흑..아른 너무하는 구나..."
"아니...싫은 게 아니구.."
"호호호... 그럼 좋지?? 할아버지도 허락하지?? 그럼 됐어."
"저것은.... 다급함을 알리는 붉은 비둘기?? 케이. 무슨 일일까요?"
"글쎄다...... 형님은 어찌 생각 하시는지??"
"너와 같은 생각..."
"..........."
".........."
"흠흠..... 아니다. 알고 싶으면 아바마마께 물어 보는 것이 좋겠지."
"형님들!!"
케이와 세인. 아지엔은 멀리서 슈에체른이 다급히 달려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뛰었던지 그의 회색 머리칼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