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리웁고 가슴 아픈 것 10
불면의 밤을 보낸 해순이는 아침 일찍
식단을 차리느라 어제 사온 야채 및 두부를
양념해서 지지고 볶고 한다
매콤한 양념냄새가 해순이의 코를 자극하고
생선을 굽기 위해 가스렌지위에 올려진
후라이펜안에 식용유가 지글지글 타고 있다
무엇을 한참이나 생각하던 해순이는
놀라 얼른 생선을 올려놓고 가스렌지 주변에
튀어 번질번질해진 식용유 기름을 부엌용
휴지로 깨끗이 닦는다
온통 죽은 명애 생각으로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멍한 상태가 이어진다
거의 아침 준비가 끝나가자 그제서야 일어난
남편은 세면을 하고 식탁에 해순이와 마주
앉아 아침을 먹는다
참 오래간만에 같이 앉아 먹어보는 아침이다
늘 발발이인 남편은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간혹 한가한 날에는 시집에
불려가니 한 집안에서 같이 사니 남편이지
자기 사람이 아니다
같이 한 방을 써 본지도 오래 되었고
겉모습만 번지르한 부부지 각 방을 쓴지 오래이다
특별히 전할 말이 있으면 용건만 간단히
말을 하고, 하루종일 가게안에 둘이 있어도
용무외에는 말이 도통 없는 편이다
아침을 반쯤 먹고 있을 때 광주에 사는
섭섭이에게 전화가 왔다
명애가 새벽 5시에 운명을 하였다고 한다
죽기 전 반짝 돌아온 정신(회광반조)에
남편한테 먼저 가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남은 아들 둘에게는 혼자 남겨진 아버지를
잘 모시라 말을 하고, 여섯 살에 입양한 고등학생
딸에게는 열심히 공부하고 홀로된 아버지와
오빠 둘을 잘 챙기라며 당부를 하였고
마지막 눈을 감기 전 해순이가 보고싶다
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은 해순이는 통화가 끓어진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음을
가을보다 더 서럽게 피울음으로 울었다
묵묵히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남편은 명애
란 말이 나오고 죽었다는 말을 듣자
깜작 놀라 전화를 받는 해순이를 바라보았고
주저앉아 통곡하는 해순이가 안 되었는지
다가와 어깨를 잡고 위로한다
집안일은 걱정하지 말고 마지막 가는 친구의
장례식에 가보라며 평소에도 없던 따사로운
정을 보내온다
남편도 원래 해순이에게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 초기 해순이가 집안일에 몸 상할까봐
늘 안절부절 쫓아 다녔고 저녁에 집안일 끝나고
방으로 돌아오면 아픈 어깨며 다리를 주물러
주곤 하였다
참 자상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맞벌이하는 시누이 조카들이 시집으로
들어오고, 그걸 핑계로 자주 드나드는 시누이
의 고자질로 화가 난 시부모의 간섭으로
멀어지게 된 것이다
같이 있는 시간을 안 주려는 듯 무슨 일이든
핑계를 대어 남편을 불러내여 해순이를 늘 혼자
있게 하였던 것이다
광주에 사는 섭섭이와 만나기로한 약속시간 오후
2시에 맞추기 위해 오랜만에 미장원에 들러
간단히 머리도 짜르고 몸에 맞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해남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해남에서 광주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지만 버스시간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기에 1시간 일찍 버스터미널에 나오니
마침 12시에 출발하는 버스표가 한 장 남아있다
표를 끓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여기저기를
흝어보다 구석진 곳에 있는 자판기에서
블랙 커피 한 잔 빼어 마시며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무심코 본다
오락 프로그램인지 예쁘장한 연예인들이
나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대며
좋아하고 있다
사자와 생자간의 틈은 이렇게도 극명한 것이다
어제의 생자는 이젠 말없는 사자가 되었고
돌아가는 시간속에서 영원히 정지되어
풍화에 부스러진다
삶의 영원은 바라지도 않지만 정해진 운명
이나 늘 순조롭게 순풍을 탔으면.
긴 우주의 명멸하는 시간속에서 찰나인
우리네들의 삶의 영욕들
찰나속에서 아주 찰나인 명애의 삶
행복이란 찰나인 우리삶의 그릇이 작아
채워지지 못하고 근거리에서 맴도는 것일까
보일 것 같아 잡아보면 흰꼬리만 잡히고
머리는 손아귀를 빠져나가 저멀리 있는 행복
광주에 도착해서 대합실로 가니 섭섭이가
기다리고 있다
광주에서 경기도 성남에 가는 버스가 3시
20분에 있다고 하면서 어디 가서 요기좀 하고
가자며 섭섭이는 해순이를 터미널안 분식집
으로 인도한다
해순이 친구 섭섭이는 조부가 지어준 이름이다
아들만 잔뜩 있는 집안에 딸을 기대했던
할아버지가 줄줄이 아들 3명에 이어 딸이
태어나자 다음에도 딸을 얻고 싶어 섭섭이
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섭섭이는 자기 이름이 너무 싫어 친구들조차도
이름 부르는 것이 싫어 늘 만나면 신경질을
내곤 하였지만 나이가 중년으로 향하니
이젠 많이 수그러들었다
분식집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우동을 시켜
놓고 섭섭이는 해순이보고 얼굴이 부석부석하
다고 걱정을 많이 해준다
이럴 땐 꼭 언니같은 섭섭이다
차를 타고 성남으로 가면서도 섭섭이는
해순이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한다
문득 옛날 함께 다니던 여고시절이 생각났다
서울에서 다니던 B여고 5공주로 통하던 시절
얼마나 왈가닥이었으면 감히 대놓고
맞대꾸하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나 명애와 해순이는 말 꼬며 훔쳐 먹고
팔 비트는데 명수이어서 덤벼드는 얘들도
처음에는 까불어대지만 나중에는
미안하다고 슬그머니 꼬랑지를 뺐었다
그러다 보니 해순이와 명애는 더욱 친해
지고 죽마고우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3공주하고 관계가 서먹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친자매처럼 더 가까
웠던 것이다
B여고는 서울 인사동 경복궁옆에 있었고
시골에서도 괜찮게 산다는 얘들과
공부도 좀 한다는 얘들이 모인 여자고등학교이다
사립여자고등학교이어 교풍이 엄격하고 규율이
엄해서 그렇지 모두들 집안도 부유하고
공부도 잘한 아이들이 모여서인지
주변 사람들의 인식, 전국적으로도 꽤나 알아
주는 명문 사립여자고등학교이다
해순이는 각별난 아버지의 사랑으로 유학와
학교에서 약간 떨어진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혼자 자취를 했으며 늘 걱정인
엄마가 쌀이며 부식이며 매달 한번씩 직접
가지고 올라와 공부를 도와주고 있고
쇄검정에 사는 이모가 가끔 불러 고기도 사주고
옷도 챙겨주곤 했다
고등학교에서 자체 출제한 문제로 학생들을
뽑다보니 경쟁률이 높지만 공부를 잘한
해순이는 해남에서 유일하게 합격을 하여
군 신문에서도 이름을 올리고 군수와 지역
유지들이 주는 장학금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입학 후 발생하였다
힘들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였지만
합격한 아이들을 또 한번 성적순으로 가르다
보니 여기서도 꼴찌와 1등이 생겼다
해순이를 비롯한 5공주들은 처음에는
미리 공부한 덕을 보아 중간쯤 갔지만
약기운이 다한 탓인지 나날이 아래로
곤드박질쳐 이젠 끝에서만 놀고 있다
모두 고향이 다르고 사는 곳도 달라 처음에는
몰랐지만 학생부를 제집처럼 드나들다
알게 되었다
모두들 그런대로 1학년은 버터왔지만
2학년에 진급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낙제가 싫어 중간고사에 컨닝하다 들킨
정란이, 툭탁하면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거는
해순이와 명애,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요’
라고 외치며 단발을 끝내 거부하고 요리조리
학생부 선생님 눈을 용케고 피해가다 잡힌
섭섭이, 방과후 사복을 멋지게 빼 입고
19금 애정영화를 몰래 보다 영화관
화장실에서 잡힌 태숙이.
다른 학생들은 모두 공부하는 시간에 학생부
에 불려와 노력봉사르 하며 우정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렇고 그런 불명예스런 일로 만나
어색하였지만 화장실 청소 및 교무실 청소,
방과 후 교문 밖 청소, 등교시간에 맞춰
정문에서 피켙을 들고 캠페인을 하면서
급속도로 사이가 찰떡처럼 견고해 졌다
‘컨닝을 하지 맙시다’
‘정해진 학교 규율을 지킵시다’
‘교복을 단정히 입읍시다’
‘청소년 금지 애정영화를 보지 맙시다’
‘싸움질을 하지 맙시다’
일주일동안 번갈아가며 피켙을 돌려들면서
쌓아진 우정
그 험한 벌속에서도 힘들고 냄새나는 화장실
청소에서 움튼 녹녹지 않는 우정이 5공주를
탄생시켰고, 몇 달이 지나자 다른 얘들도
들어오고 싶을 정도로 부러운 클럽이었다
학교가 파하면 시골이 집인 섭섭이, 해순이,
명애와 서울이 집인 정란이, 태숙이가
해순이와 섭섭이 자취방에 모여 순정만화를
본다, 그러다 배고프면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재미있게 지냈다
명애는 종로3가에 있는 큰 집에 얹혀 있어
활동에 제약이 많았지만 늘 빠지지 않고
모임에 어울리면 같이 보란듯이 종로며
을지로를 제집 드나들듯 다녔다
누구 하나 주머니에 거금이 생기면
솔선수범하여 공주들을 소집하였고 소집
연락책은 해순이가 도맡아 했다
연락이 오면 비밀을 기하기 위해 항상 만났던
장소 종로 낙원상가옆 먹자 골목 순대촌이었다
‘순이네 떡볶기집’은 5공주의 비밀 회동 장소
이었고 저렴한 순대며 떡볶이 튀김 김말이도
푸짐한 곳이다
간혹 돈이 없으면 외상까지 줄 정도로
어눌한 충청도 말을 쓰는 주인아줌마와
아주 친하기도 하였다
낙원상가내 스카라 극장 프로 담당은 정란이,
좀 괜찮은 순정영화가 상영되면 바로 소집
명령이 태숙이한테서 내려 오고 모두들
미리 준비한 멋진 숙녀복을 입고 순이네집
으로 모인다
영화 관람비는 순차적으로 서로 돌아가며
부담을 하며 돈이 없는 경우에는 잘사는
정란이가 부담을 하곤 하였다
광주를 출발한 무정차 직행버스는 5시간이 지나
성남 버스 정류장에 들어선다
차에서 내린 해순이와 섭섭이는 대합실을
나와 택실르 타고 성남 성모병원 장례식장
으로 향한다
해남보다 북쪽이라 그런지 길가에 늘어진
가로수들이 조금씩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으며
더 쌀쌀해진 가을바람이 불고 있다
마음이 공허한 탓인지 부는 바람에 좌불안석
장례식장에 가는 몸이 영 불편해진다
가서 어찌 죽은 모습을 보지
생전의 모습을 본지도 꽤 오래 되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해 오기만 하다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컸고 들어선 입구
전광판에는 김명애 5호실이란 글귀가
횡으로 지나가면서 사라진다
사람도 사라지고 이름도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존재하는 자신도 실체없는 모습이어
허무속에만 맴돌고 바람같아 진다
마음을 다잡고 5호실에 가니 예전의
정란이가 반겨 맞으며 눈시울을 붉힌다
5공주 중 태숙이는 남편따라 런던에 있고
명애는 죽었고 남은 것은 3공주 해순이,
섭섭이, 정란이뿐이다
갑자기 속깊은 울음이 지옥처럼 울려 나왔다
고요한 울음이 떨림없이 울려나오다
바닥을 치며 한바퀴 허공중을 돌다
퍼져 멀리 멀리 나간다
살아오면서 쌓인 울분이 가슴을 치며 나오고
셋이는 서로를 붙잡고 하엽없이 울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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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코스모스 흔들림과 흐르는음악과함께 마음이 찡해오며 가슴아픈슬픔을 저도함께 격어왔습니다 고인에 명복을 빌니다
고맙습니다
어제의 가슴 아픈 기억이 있기에
오늘이 소중한지도 모른답니다
무덤은 땅속에 만드는게 아니라 가슴속에 만드나 봅니다.. 깊은슬픔이 살아가게 하는 이유와 힘을 주기도.. 기운내세요.
감사합니다
깊은 슬픔이 있으면
곧 기쁨도 따라 오겠지요
추워진 날씨에 몸조심 하세요
내 사랑아~~아침음악이 넘 좋으네요
커피한잔이 부족한것은 모네타님의 글에 푹 빠졌다고나 할까요~
멋진 가을하늘만큼이나 희망이고 사랑이 넘친날 되세요~
고맙습니다
추워진 날씨에 몸이 잔뜩
움추려지는 아침입니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지시는 것도 좋겠지요
에효넘 슬퍼요 작가님
넘 좋아하는 노래와 글에 푹 빠져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덕분에 대전에 살고 있는 제 친구 명애가 생각나
친구 명애(제 친구도 명애가 있어서)와 통화 하면서
작문의 글을(소설 한 편을)읽어주었네요
올 가을에는 소망의 열매도 따보시고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는 오늘 되시길요...*^^*
감사합니다
가을빛이 너무 곱기에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아고....친구란 이름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마음 써내려가게 하는글에 슬픈 마음이 앞섭니다...지금은 여고동창들도 각자 따로 살고 있으면서 정작 사회친구들 아이들을 키우며 지내는 학부형,곁에 사는 매일보는 이웃사촌이 더 깊은 애정과 나눔을 함께하지요,,,음악이 참 좋은 아침입니다...우리 서로 나의 욕심,,미련함을 내려놓고 자연을 돌아보고 감사히 사는 날들이었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곱게 달아주신 댓글에
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환절기에 몸조심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