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258년 마니우스가 지휘하는 북부전선에서는 전란의 광풍이 휘몰아 치고 있었다. 전해의 죽음과도 같은 가뭄에 먹을것을 잃은 갈리아의 수많은 일족들이 알프스를 넘어 떼거지로 이탈리아북부로 내려갔던 것이다.
마니우스는 당장 원로원으로 전령을 보내었다. "국가의 비상사태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결코 이탈리아북부에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칠리아의 군단을 북부로 수송하라. 이번기회에 이탈리아북부의 모든 갈리아족을 멸족시키겠다."
당황한 원로원은 시칠리아의 정예병들을 북이탈리아로 수송하는 법안을 결의하였다. 그 군단의 사령관은 데키우스내각의 명철한 젊은장군 아그리파가 맡았다.
한편 북부, 서부, 북동부의 세 알프스통로에서 쏟아져내려오는 갈리아군을 막기 위해 마니우스는 자신의 부관인 세르비우스와 군사를 나눴다.
전해의 시민병들은 국가의 위기상황이므로 고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초과근무를 서게 하였다. 그러나 로마의 시민병들은 불만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패하면 그다음은 로마라는것을 알기에...
이제까지 유례없는 규모의 군대가 동원되었다. 세명의 사령관이 이끄는 3개의 군단이 갈리아의 모든 촌락들을 불태우며 북진했다.
그 로마군과 마주친 갈리아군의 족장은 톨루사였다.
그는 로마군의 방위따위는 신경쓸 여력도 없었다. 어서 내려가 약탈과 갈취로 배를 채우는 것이 급했다. 이제까지 십만명의 갈리아족이 아사했다. 농사법이 익숙치 않은 그들에게는 가뭄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마니우스가 이끄는 병력이 북이탈리아를 휩쓰는동안 막 상륙한 아그리파가 전 군대를 이끌고 갈리아군에게 덤벼들었다. 거대한 살육의 현장은 넓고 고요한 설원에서 펼쳐졌다.
아그리파장군은 철저했다. 갈리아군의 압도적인 수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많은 갈리아용병들을 포섭했다. 그의 뇌물에 갈리아의 한 부족이 매수되었으며 그들은 의식주제공을 담보로 로마에게 목숨을 맡겼다.
또한 그는 갈리아군의 강력한 기병을 눈여겨 보았다. 갈리아기병의 돌파력은 로마군의 방위를 뚫기에 충분했다. 그는 시칠리아에서 훈련받은 정예기병들을 동원하여 적기병의 돌격을 막으려고 하였다.
전투가 시작되자 광포하게 달려드는 갈리아군에게 로마군이 필룸을 집어던졌다. 수많은 투창들이 하늘을 뒤덮었고 갈리아군의 피가 하얀 설원에 흩뿌려졌다.
몸으로 모든 창들을 받아낸 갈리아전사들이 로마군에 충돌했고 그때부터 무지막지한 살육전이 시작되었다.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는 갈리아군. 가족과 조국의 운명을 짊어진 로마의 시민병들.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전투였다.
하지만 전투의 승패는 아그리파가 고용한 갈리아군이 결정지었다. 굶주림을 해소해준 로마군에게 목숨을 건 갈리아용병들은 자신들의 족장이 전사하는 와중에도 갈리아군의 좌익을 전멸시켜 승리를 가져왔다. 순식간에 좌와 정면에서 포위된 갈리아군들은 압도적인 수에도 밀릴 수 밖에 없었고 결국엔 대부분의 전사들이 로마군의 창에 꿰뚫렸다.
족장 톨루사는 패잔병들을 이끌고 알프스이남의 파타비움으로 틀어박혔다. 하지만 이미 대기하고 있던 세르비우스장군의 별동대가 순식간에 파타비움을 포위했고 이틀 뒤 파타비움은 갈리아군의 시체로 피바다가 된 채 불타올랐다.
이렇게 로마의 군대가 휩쓴 북이탈리아는 폐허가 된 도시들과 썩은 갈리아사람들의 시체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군은 자신들의 방어를 위해 싸웠으며 로마 원로원에서도 북이탈리아정복이 과연 성공적인지, 아니면 그저 잔혹한 침략전쟁이었는지 찬반논란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마어마한 인구가 북이탈리아에서 사라졌으며 로마군은 지중해최강의 군대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첫댓글 재미있네요. 더 올려주세요.
계속 재밌게 보고 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