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여기서 죽어나가도 아무도 몰라.
며칠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국정원(안기부)에다 공문을 보내서 1981년에 신정일씨를 고문했던 취조관들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그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라도 대줘야 보내줄 수 있다고 하니
2016년 여름 순창 도서관에서 만난 그 취조관의 친구분을 설득해서
그 취조관의 이름을 알아달라고,
그 전에 자신이 순창을 찾아가서 그분을 만나 알려달라고 하자
너무 막역한 친구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던 말까지 덧붙여서 나에게 얘기했다.
내가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았다.
다시 문자를 보냈다. 한번 뵙고 싶다고,
오후에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순창에 가 커피숖에서
그 얘기를 했다. 그러나 그(83세)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알려줄 수가 없다고,
”내가 쓴 책(지옥에서 보낸 7일)을 두 번이나 읽었다고,
며칠 새 그 책을 가지고 친구 집에 가서 의견을 들은 다음 친구가 허락하면 얘기해 주겠다고,
참 어려운 일이다.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이름이 바뀐 지가 언제인데, 한 세대가 지났는데도
1981년에 일어난 간첩 사건의 취조관들 이름을 알려줄 수가 없는 이 나라의 이 현실,
그 때 2016년 순창도서관에서 강연을 끝내고 순창의 회원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악수를 청했던 그 사람
“신정일 선생님 젊은 시절에 중정(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으셨던 적이 있지요?”
나는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이 사람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예? 그런데, 어떻게 저를 아세요?”
“그때 선생님을 취조했던 취조관 중의 한 사람이 제 친구였습니다.”
“그래요?”
내 머릿속으로 오랫동안 사라졌던 그 기억들이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듯 떠오르며 여러 명의 취조관들의 얼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맨 처음 찾아왔고, 내 뒤를 8개월 동안이나 추적했다던 그 사람?’
‘아니면 나를 고문했던 사람 중에 네 사람 중의 한 사람?’
‘아니면 나를 취조하고 커피도 주면서 문학의 동향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자술서를 썼던 그 사람?’
내가 기억의 실타래를 안간힘을 다해 풀어가고 있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내 친구는 성격이 여렸지요. 그래서 가끔 선생님 얘기를 나누곤 했지요. 이름이 특이하잖아요. 북한에 있는 정일이, 남한의 정일이.”
아하, 그제야 생각이 났다. 나에게 가장 친절했고, 커피도 주면서 문학의 동향을 이야기했던 그 사람?
마지막 자술서를 쓰고서, “힘들었지요, 이곳에 왔던 것을 ‘영광의 한시절’이라고 여길 날이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이분의 친구였구나. 그는 나에게 물었었다
“왜? 김일성이 아들인 김정일과 같이 정일이란 예명을 쓰고 있소?”
나는 그 이름을 열여섯에 스스로 지어서 쓰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 이름이 수상쩍다고 여러 번 묻고 또 물었었다.
나는 오늘에야 물었다.
“그 친구 분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했지요?”
어느 날 그 친구와 함께 TV를 보고 있는데, 내가 나오자
“어, 저놈, 북한의 김정일과 이름이 같은 놈,
우리 회사(안기부)에 와서 고생 많이 했는데,”
그 날 그 분의 그 말이 실마리가 되어 책을 쓸 수 있었으니, 좋은 인연인가,
나쁜 인연인가?
순창에서 전주로 돌아오는 내내 내 가슴에 슬픔인지, 쓸쓸함인지 모를
생각들이 겨울 풍경처럼 어지럽기만 했다.
발가벗긴 채 처음으로 들었고, 그곳에서 무수히 들었던 말,
“너 간첩이지? 평양에 가서 김일성에게 돈 받아왔지? 너 여기서 죽어 나가도 아무도 몰라”
그런데 나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 돌아와 몇십 년을 살아냈고.
내가 왜, 그곳에 간첩혐의를 받고 끌려가서 지옥 같은 고문을 받고 풀려났는지,‘
그리고 2023년 12월 27일에 그 자초지종을 알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선균이라는 배우는? 가슴이 답답했다.
좀 더 버티지, 문득 월명사의 제망매가가 떠올랐다.
생사 길은 이에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나 잇고,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아, 미타찰애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부디 저승에서는 평안하소서.
2023년 1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