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가 255장 (구 187장) / 열왕기상 16 : 29 - 34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255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열왕기상 16장 29절 – 34절 말씀입니다.
29.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아멘!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조를 보면, 시므리가 왕노릇 한 지 7일 만에 군지휘관 오므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시므리가 머무는 수도 디르사를 함락하였고,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자살했습니다. 딱 7일이었는데, 그 짧은 기간에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시므리의 7일 천하 이후 이제 오므리 왕조가 시작됩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오므리 왕조는 매우 중요합니다. 악한 왕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일단 원조인 오므리는 시므리를 대신해 왕이 되었고, 초반 4 - 5년간은 디브니와 권력다툼을 벌입니다. 5년 만에 북 이스라엘의 권력을 잡고, 그 다음해에 사마리아로 수도를 옮깁니다. 북 이스라엘의 세 번째 수도입니다. 처음 여로보암 왕 때는 세겜이 수도였고, 그 다음 바아사 때 디르사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마리아로 옮긴 것압니다. 디르사가 더 내륙 쪽 산지에 있는 도시인데 반해, 사마리아는 지중해 쪽으로 좀 더 내려간 곳이며, 이방 나라들 특히 해상무역이 발달한 두로와 시돈과 가까워지려는 목적을 지닌 곳입니다. 시돈은 당시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바알을 섬기는 나라였습니다. 시돈과의 동맹을 굳건하게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요? 사돈 맺는 겁니다. 그래서 시돈의 공주를 며느리로 맞아들였죠. 아들 아합을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 시킨 겁니다. 그 사마리아에 오늘 읽은 대로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바알의 신전을 건축하고 바알을 위해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상을 만들었습니다.
아합의 삶에 대한 평가를 본문을 통해 좀 더 자세히 봅시다. 오늘 본문 30절부터 33절까지가 오므리의 죄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아합의 잘못을 기록한대로 읽으려면 숨이 찹니다. 실제로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16장 30절부터 33절까지 총 7개의 동사가 미완료 계속법이라는 문법적 특성을 가지고 이어집니다. 우리말로 느낌을 살리면 이렇습니다.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죄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이세벨을 아내로 취하고, 바알을 섬겨 예배 하고, 바알을 위한 제단을 쌓고, 아세라 상을 만들고, 하나님을 노하게 하였다.” 쉽게 말하면 악한 일을 시리즈로 이어서 했다는 겁니다.
아합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만을 섬기려 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아합의 아합의 왕위를 이은 아들은 아하시야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께서 붙잡으신다.” 입니다. 아하시야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이렇게만 기록을 합니다. 이년 동안 다스리다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을 때 여호와를 붙잡지 않고 바알세불에게 물어보러 갔스니다. 아마도 아버지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지 못했고 살면서 보고 배운 게 바알을 섬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위급한 때에 하나님을 붙잡지 못했던 같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열왕기상 22장 52절은 악한 조상을 모두 따랐다고 평가합니다.
아하시야가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아하시야의 동생, 그러니까 또 다른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그 다음 왕이 됩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높이신다.” 열왕기하 3장에 여호람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여호람은 아버지 아합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앴다고 합니다. 아버지 아합과 형 아하시야가 왕 노릇할 때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보고 느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합의 아들은 이 둘 외에 70명이 더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0장에 보면 예후가 아합의 아들 70명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왕이 된 아들 둘의 이름을 알 수 있고, 그 이름이 여호와 하나님과 관련이 있으므로 아합이 처음부터 완전히 하나님을 무시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랬던 아합의 평가가 이처럼 가장 악한 왕, 여호와를 완전히 떠나고 바알을 섬기는 자가 되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가장 큰 것은 그의 아내의 영향일 겁니다. 오늘 본문 31절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므리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솔로몬이 그랬던 것처럼 아내를 위해 사마리아성에 바알 신전과 제단을 만들고 아세라 상을 만듭니다.
언약의 백성이라면 언약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약의 백성다운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결혼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다양한 상황들이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과 결혼해야 합니다. 오므리와 아합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과 결혼 동맹을 맺으면 지중해로 나아가 해상무역을 할 수 있고, 나라가 부강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온 나라에 우상 숭배를 가져오게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가문도 몰락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언약적인 복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오므리와 아합이 대를 이어 악한 일을 하는 이 시절 북 이스라엘에서는 왕만 나쁜 게 아니었습니다. 왕의 악행은 즉시 백성의 악행으로 전파됩니다. 그 한 예로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다는 기록이 이어집니다. 히엘이 그 터를 쌓을 때 맏아들 아비람을 잃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수 6:26) 히엘이 혼자 여리고성을 건축했겠습니까? 악한 왕 아합의 지시와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합과 히엘이 한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이었나를 이해하기 위해 여리고성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살펴봅시다. 출애굽 한 지 40년 만에 광야 여정이 끝나고, 요단강 동편에서 강을 건너 가나안 지역으로 들어온 후 점령한 첫 성이 여리고입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한 곳이며, 물 샘이 있어 종려나무 성읍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주 환경이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힘 좀 쓴다는 세력이 나타날 때면 어김없이 그곳을 차지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기원전 1,400여 년 전에도 그렇게 성을 튼튼하게 지었을까요? 그런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엄청난 기적이었죠. 고고학적으로 두께가 6미터에 높이가 20미터정도 되는 성이었다는데, 그런 굳건한 성이 무너지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여리고에 다시는 성을 짓지 말라는 것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며, 만약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는 이 무더기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성의 무너진 돌무더기를 그대로 두고 이후로 아무도 여리고에 성을 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500여 년 동안 지켜져 왔습니다. 그러한 여리고에 성을 쌓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떠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지워버리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왕기서는 아합 왕의 악행을 대표하는 것으로, 히엘의 여리고 성 건축 사건을 들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그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적인 가치에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많은 사람들의 선택은 인간적인 가치가 우선이 됩니다. 어제도 오늘도 늘 그곳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가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었겠습니까? 요단강을 건널 때도 열 두 개의 돌을 세웠는데, 그게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지켜주었습니까? 돌무더기는 그냥 보고 지나가면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분명히 그것들을 볼 때 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았어야 하는 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경험하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지금은 구약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 진리의 말씀이 보존되고, 우리에게 선포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를 통해 그 은혜를 매 주 체험합니다. 이 말씀에는 육신의 부패와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여 교회를 확실하게 세우고 위로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우리는 성도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새 언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옛 언약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예배를 통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언약의 백성다운 삶을 살며, 장차 올 영원한 나라에서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될 것을 소망합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을 사모하고,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기도에 힘쓰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를 주장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