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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자기, 조선백자 등 도굴 판매하는 ‘골동장사’ 성행
나는 당 간부를 하던 남편의 도움으로 2003년~2008년까지 골동품장사(유물 도굴‧판매, 이하 ‘골동’)를 했다. 북한에는 아직도 고려자기나 조선백자 등 역사 문화재가 많다. 주로 황해도, 개성, 함경남도(은곡, 양덕) 등지에 있는 옛 묘지에서 도굴하는데, 특히 함경남도 양덕(동양성)에서 골동품이 많이 나온다. 나는 주로 구성 구주성, 동림군 당주성, 양덕 양주성 등 성 주변을 찾아다녔다. 그밖에도 선천군에 묘 자리가 밀집된 지역과 청송리를 자주 다녔는데, 나는 ‘돈주’여서 돈을 대주는 역할이었고, 장사파트너 2명을 영입해 같이 다녔다. 산골마을 양덕에 골동바람이 분 것은 2005년 즈음이다. 당시 개성에서 활동하던 도굴꾼들이 동양성 주변에서 꽤 많은 양의 고려자기를 도굴한 일이 있었다. 값 나가는 고려자기들이 마구 나왔는데, 이 일로 단속에 잡혀 감방살이 간 도굴꾼도 많았다. 그 이후부터 도굴 바람이 불었고 지금은 검찰소부터 보안서까지 모두 골동을 하겠다고 나설 정도이다. 도굴 도구로는 징격 8미리정도되는 뾰족한 쇠로 된 침과 호미, 삽, 소침을 갖고 다녔다. 대부분 묘 자리는 해가 잘 받는 곳에 있기 때문에 그런 곳을 다니며 흔적을 찾아야 한다. 골동시장에서 조선시대 유물 보다 고려시대 유물을 더 비싼 값으로 쳐주는 분위기여서 주로 고려시대 때 묘를 찾아 다녔다. 고려시대 때 묘는 주로 돌무덤이다. 자세히 보면 사람이 인위적으로 쌓은 돌과 자연적인 돌은 차이가 있다. 묘 자리를 찾으면 땅찌르기(기다란 침으로 땅을 찔러 유물지인지 확인하는 행위)를 한다. 1000년 전 묘지라고 해도 한 번 삽질한 자리라서 그런지 찔러보면 침이 쑥 들어간다. 계속 찔러 묘 자리가 확인되면 네모 모양으로 틀을 잡고 도굴을 하는 것이다. 도굴한 골동품은 신의주로 가져가 중국 대방(상대방 무역 업자)에게 판다.
■ 단속기관 끼고 해야 안전, 한국산 모조 고려청자가 진품으로 돌고 돌아 골동을 시작한 초반에는 주로 산삼, 서각, 도자기를 취급했다. 당시에는 진품이 없어 (유물)모조품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후에는 실제로 땅에서 도굴 한 것을 많이 팔았다. 모조품은 민간에서 구할 수 있다. 모조품들은 한국에서 제작된 제품들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한국은 기술이 좋기 때문에 진짜처럼 그럴 듯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모조품을 골동품이라고 속여 팔기도 하는데 이것이 진품처럼 골동품 도굴꾼이나 밀수꾼들 사이를 돌고 돈다. 이렇게 한동안 북한 내에서 유통되다가 중국 쪽에 가서 모조인 것이 밝혀지면, 다시는 거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다 같이 망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들여온 모조품은 기본적으로 비싼 자기들이다. 누가 들여오는지는 모르지만 그들도 밀수꾼들일 것이다. 나도 한국산 모조품으로 수없이 장사했었다. 골동품 말고도 모조품을 15개씩 들고 다녔는데, 주로 자개로 된 작은 연적이었다. 처음에는 모조품을 봐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서히 골동품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차츰 보는 눈도 생긴다. 사실 골동품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 바닥에서 바가지 쓰기 십상이다. 초보들은 잘 모르고 덤비기 때문에 망하는 사람도 많다. 이제는 북한에서 땅 위에서 돌아가는 것 치고 진짜는 없다고 봐야 한다. 나도 골동장사를 5년 동안 했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이 없다.(수입이 거의 없다는 뜻-편집자 주) 처음에야 협작(사기) 당해서 그렇다 쳐도, 골동을 하면서 단속기관 입막음으로 들어가는 돈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돈 모으기가 쉽지 않다. 북한 형법에 유물의 도굴, 판매 죄는 교화형에 처한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단속기관을 끼고 해야지만 안전하다. 단속기관으로는 해당 보안서부터 시작해서 담당국, 검찰서, 보위부, 연합단속조, 역두보안서(역전 파출소-편집자 주)까지 최소 11명은 먹여 살려야 한다. 특히 보위부, 보안서, 행정, 재판소, 청년동맹이 속해 있는 연합단속조가 제일 세력이 커서 꼬박꼬박 챙겨줘야 한다. 이들이 요구하는 액수는 저마다 다른데 적게는 500달러부터 시작해서 1,000달러까지도 요구한다. 그런데 단속기관이 끝이 아니다. 골동품을 운반하려면 역장도 조금 챙겨줘야 한다. 주로 골동이 나오는 곳이 산골이다 보니까 차편이 제한되어있다. 나는 청진행을 주로 이용했는데, 그곳 역장들 대부분에게 뇌물을 줘야 했다.
■ 전국 각지에서 도굴된 골동품이 신의주로 모여 중국으로 골동 시장이 크게 형성되는 곳이 신의주다. 나도 신의주에 가서 골동을 팔다가 다른 쪽으로 길을 터볼까 싶어 청진, 함흥, 원산으로 가 보았다. 그런데 결국은 신의주로 모이게 되더라. 신의주에서 골동을 팔고 받는 액수가 마음에 차지 않아 알아본 것이었는데 헛수고만 했구나 싶었다. 남신의주 낙원기계 쪽에 가면 중국과 골동품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골동품 거래 시장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고 개인집들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몇 년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골동 하는 개인집을 알게 된다. 신의주에 가면 ‘거간꾼’을 전문적으로 모집하는 사람이 있다. 거간꾼을 모집해서 신의주로 도자기 등의 골동품을 뽑은 후에 바다를 통해 중국 집안시 청하진으로 보내는 것이다. 골동 장사가 이루어지는 개인집에는 각 지에서 들어온 골동품이 다 모인다. 어느 정도 모아져서 한 차 정도 만들어져서 거래가 되겠다 싶으면 전화로 중국 대방을 호출한다.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하면 그쪽에서 배가 온다. 골동품을 배에 다 싣고 나면 하나당 가격이 얼마라고 이야기 해준다. 돈을 직접 거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북한에 있는 중국 화교 구좌(계좌)로 입금한다. 그러면 중국 화교에게서 돈을 받아 집에 가지고 가는 식이다. 중국 대방과 거래할 때도 당연히 해안경비대를 끼고 이루어진다. 북한 전역에서 모인 골동품을 실은 배가 보통 한 달에 2~3번씩은 중국으로 나간다. 골동이 깨질까봐 포장을 잘해서 보내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부피와 실제 양 사이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차량 정도는 되는 양이다. 내가 거래한 곳에서만 한 달에 2~3번씩 골동품 실은 배가 나가니까 다른 곳에서도 그 정도는 나간다고 볼 수 있다. 골동품을 내보내는 사람을 3명 알고 있는데 그쪽도 한 달에 2~3번씩은 물건이 나간다고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아주 엄청난 양이다. 북조선에서 도굴로 발견되는 골동품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헐값에 팔려간다. 중국으로 나가는 골동품은 주로 노리개, 봉채가 많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값을 쳐주는 것이 고려청자다. 역사책도 많이 찾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고서의 원본 같은 것들이다. 그밖에도 호박단추, 엽전, 상평통보, 특수지폐라고 부르는 일본지폐, 안에 물을 채우면 달라지는 독, 강남석(보석), 김홍도 그림, 병풍 등도 취급한다. 골동품이 나갈 때 게르마늄, 노디움 같은 금속도 나가는데, 금속만 전문으로 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골동품이라고 오래된 것이 무조건 나가는 것은 아니고 중국 대방이 택해서 가져가는 것이다.
선택권은 중국 대방에게, 고가의 유물도 헐값에 가져가 중국과 거래하면서 굉장히 억울한 것은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고 해도 직접 만나서 돈과 상품을 거래하는 ‘맞돈’(동등한 자격으로 하는 흥정-편집자 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고 돈 쥔 사람, 즉 중국 사람들한테 선택권이 있으니까 비싼 골동품도 싸게 팔 수밖에 없다. 내가 제일 비싸게 판 것이 1,000달러 미만이었다. 절대로 비쌀 수가 없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헐값에 사가고 있다. 비싼 물건도 중국인에게 사달라고 사정해야 팔 수가 있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도 1,000달러까지는 쳐주지만 웬만해서는 그 이상으로 값을 쳐주지 않으려고 한다. 북한 사람들이야 당장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싼 유물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내보내는 것이다. 북한 사람 중에 ‘이 유물이 나중에 돈이 될 것이니 보관해야지’하는 사람 한 명도 없다. 자개박이 사각 밥상의 경우 중국 측에서 10,000달러 정도 쳐준다. 그런데 그것이 중국으로 넘어가면 굉장히 비싸진다고 한다. 우리가 물건 내보낼 때 보면, 골동품을 한국 사람들이 와서 사간다고 들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한국에 팔 가격의 1/100정도만 우리에게 주고 사가는 것이다. 우리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골동품 중에 값이 조금 나가겠구나 싶은 물건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볼 때 그 정도면 가격이면 괜찮다고 생각한 금액일지라도 중국 사람들에게는 헐값이나 다름없다. 나도 고려청자기 주병(목이 긴 것)을 선천에서 도굴한 적이 있다. 목이 깨진 것이었는데 상감 기법도 살아있고 연꽃과 국화 무늬가 새겨진 것이었다. 내가 대방이 없어서 아는 사람에게 팔아달라고 했는데, 4,000달러만 받아달라고 부탁했었다. 고려청자기 하나 값이 아니라 다른 것도 끼워 넣어서 그 가격이었다. 일종의 덤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올 때까지 받지 못했다. 그 사람이 중간에서 가로채버린 것 같다. 골동 장사판에서 크게 노는 사람들은 100,000~200,000달러 정도는 유통하는 것으로 본다. 나도 실제로 봤는데 연선(밀무역이 이루어지는 국경지역)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공한 사람들이다. 밥상(자개박이)이나 도자기(청자, 백자)로 성공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번돈을 돈을 밑천 삼아 굴린다. 내가 알고 지내는 골동장사꾼 3명도 골동품 ‘사업’을 한 지가 20년 되었다는데 표현은 안 해도 몇 십만 달러씩은 깔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고위급 사람들도 골동을 하는 분위기다. 고위급들은 골동을 하고 싶어도 주변 시선이 있기 때문에 ‘알삼이’(아주 잘 알고 말 잘 듣는 사람으로 남한 용어로 심복부하)를 내세워 몰래 작업하는 편이다. 대상이 생기면 알삼이를 내세워 투자해주고 그 사람들이 운영하게끔 한다고 들었다. 국가보위부에서도 골동을 많이 하는데 국가보위부 소속 마크를 갖고 와서 물건을 구입해 평양으로 올려 보낸다. 그러면 그것을 해외로 내보내 고가에 밀거래 하는 선이 있다고 들었다. 북한에서는 골동품 밀거래는 1980년대 중반부터 있었는데 누가 골동품 장사로 돈을 많이 벌었는가에 대해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돈이 누가 많은가를 두고 경쟁하는데, 원래 신의주가 돈이 많아서 신의주 갑부와 청진갑부가 나섰다고 한다. 각자 재산이 2,000만 달러라고 자랑했는데 평양갑부와 비교해보니까 어림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돈은 기본적으로 해외 다니는 사람들이 버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또 어느 항일투사 손주도 골동 광신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위급들도 골동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2003년 즈음에 고위급들이 골동으로 번 돈을 해외로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도 그 말이 맞을 것 같다. 2011년에 무력부 간부들이나 고위급 간부들이 돈을 가지고 너무 악착같이 구는 것이었다. 돈에 미쳐서 계획을 끔찍하게 강요하곤 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저렇게 간부들이 돈을 숨겨두는 것인가 싶었다. 한국에 와서 보니 군부의 외화벌이가 내각으로 옮긴다고 보도가 있던데 아마 그것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골동으로 돈 벌기도 하지만 폭행‧살인 등 범죄 노출 골동품 장사를 5년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양덕(양주성) 양주군 감찰과장 마저도 탐침을 메고 골동한다는 이야기다. 그 사람이 골동 장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2005년 도굴꾼이 잡혀왔는데 감찰과장은 도굴꾼이 도굴한 유물들이 돈이 되는지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도굴꾼은 감찰과장에게 “이걸 팔아서 같이 나눠 먹자”고 제안 했지만 감찰과장이 이게 무슨 돈이 되겠냐며 꼭지를 잡고 들었다 놨다 하다가 그만 부러뜨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양에서 고고학자들 3명이 내려와 그것을 보더니 양주에 이런 보물이 있냐며 감탄하며 가지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후에 그 유물이 역사박물관에 전시가 되었는데 그 감찰과장이 너무나 아쉬워서 후에 그것을 보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총 9종이였는데 그 중에 가장 비싼 것은 중간에서 다 채가고 싼 몇 종만 전시가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이 감찰과장이 골동품이 돈이 되는 것을 깨닫고 자기도 탐침 메고 골동 찾아 땅찌르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성행한 골동 장사가 지금도 여전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양덕군에만 해도 최소한 100명은 골동 장사를 하러 다닐 것이다. 골동 장사로 돈 맛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끊지를 못한다. 골동이란 게 호기심이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약과 같다. 사실 북한에서는 열심히 일해서는 살 수가 없으니까 더 골동이 성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골동을 한다고 해서 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 ‘나는 돈 잡이’란 말이 있다. 나도 골동하면서 자전거, 텔레비전 몇 대씩 날려먹었다. 골동을 가지고 가는 대신에 맡겨놓는 물건들인데, 맡겨놓으면 다 팔아먹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렇게 골동 장사 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 뿐만 아니라 골동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살인사건도 있다. 예를 들어 나한테 정말 비싼 고려자기가 있다고 하면 골동을 보러 사람들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내 쪽에서는 그 사람이 돈이 있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상대 쪽에서 돈은 있으니까 물건을 먼저 보자고 하면, 보여줘야지 거래가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너도 나도 골동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니까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을 보여주고 나서는 둘이서만 이야기하자며 데리고 들어가서는 몇 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상대방 사람을 죽이고 물건만 갖고 간 것이다. 내가 골동을 그만 둔 것은 2008년이었다. 2008년 중국에서 올림픽을 하기 전까지는 중국 대방들이 대대적으로 골동품을 거둬들여 갔다. 그런데 2008년이 지나니까 이제는 거둬들일 만큼 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골동품 가격이 똥값이 되었다. 100달러 받던 것을 중국 돈으로 100원 주겠다고 하니, 비용이 맞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골동을 그만두고 바다무역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 무장 강도, 북한 영해서 군인 죽이고 버젓이 강도짓 서해바다 쪽으로 조금이라도 외진 바다로 가면 중국 해상 무장강도(해적)들이 많다. 특히 철산반도 쪽에 중국 해상강도들이 많은데, 2009년에는 중국 해상 무장강도 때문에 중국과 북한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 일이 있었다. 당시 단속 나간 우리 군인들을 중국 무장강도들이 마구 죽인 사건이 있었다. 중국 강도들도 총은 무서워한다. 그런데 우리는 총 한번 쏘려고 해도 위에서 지시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격할 수 없다. 쏘지도 못하는 총이란 것을 아니까 무장 강도들이 겁 없이 마구 덤볐던 것이다. 그래서 후에 방침 내려온 것이 우리측 무장경비정도 총을 쏠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씩 나아졌지, 그 전까지는 중국 해상 무장강도들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무장 강도들은 무작정 배에 올라와 사람을 죽이고 고기배를 통째로 가져가 버린다. 그들은 ‘뽀르래기’라고 속도가 빠른 쌍기통 5톤짜리 배를 몰고 다니는데, 그것이 북한 영해까지도 들어온다. 거기서 조금만 더 북한쪽으로 들어오면 통제하게 되어있지만, 우리 측에서 잡으려고 나가봤자 중국배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으니까 헛수고다. 또 북한 경비정 승인받고 들어오는 중국 배들이 사기치고 달아나는 경우도 있다. 북한 경비정의 승인을 받은 중국배가 들어와 닻은 내리지 않은 채로 북한 배에 자기들의 배만 붙여놓고 물건을 먼저 보내라고 한다. 우리야 돈이 없으니까 중국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물건을 먼저 싣고 나면, 그들이 돈을 계산하는 척하면서 바로 도망을 가는 것이다. 우리 배들은 속도를 그만큼 낼 수가 없으니까 잡을 수도 없다. 대체로 중국 해상 무장 강도들은 밤에 북한 영해로 들어온다. 원래는 공해상에서 경비정이 검열하고 승인 받은 배들만 상선장에 들어올 수 있는데 중국배가 너무 많다보니까 상선장에 들여놓고 통관시키는 방법을 쓴다. 그런 중국 배들은 장비가 좋으니까 한번 들어와서 도둑질 해가면 그 양만해도 어마어마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도 앞 바다와 철산반도 쪽으로 북한에서 중국으로 팔아먹은 땅(북한 해역)도 많다. 듣기로는 중국인들에게 50년 계약으로 어디까지는 가져도 좋다는 식으로 했다고 한다. 2009년 매봉무역회사가 팔았다고도 하고 5호 관리부에서도 팔았다고 하는데, 둘 다 군대 쪽인 것 보면 군대에서 팔아먹은 것 같다. 그쪽으로 장우라 양식장(조개, 생선, 새우잡이)이 있는데 중국 배들이 이제는 승인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있다. 내가 단동에 갔을 때도 중국 배들이 북한 영해에 너무 많아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오히려 북한에서 팔았기 때문에 자기네 땅이라며 작업하는 것을 보았다.
매해 난파 사고만 10번 이상, 해안가 시체 떠 다녀도 신고 안 해 서해 바다에서는 이래저래 죽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중국 무장 강도 때문에 죽은 사람을 해마다 보지만, 사고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꽃소라나 물웅개비잡이 배에는 많은 노력(인력)들을 태우고 작업에 나간다. 그런데 배가 낡으면 파도가 조금만 세게 쳐도 쉽게 부서져 사고가 난다. 200~300명 정도 타는 큰 배도 깨질 때가 있다. 큰 배부터 작은 배까지, 한 해 동안 사고 났다는 이야기를 10번 이상은 듣는 것 같다. 그런데 한번 사고가 났다 하면 작게는 몇십명 많게는 몇백명씩 죽는다. 2008년 봄 500여명을 태우고 나간 소라잡이 배가 안개가 껴서 방향을 못 찾아 사고가 난 일이 있었다. 사실 봄에는 안개가 많이 발생해 ‘백정 살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이 죽는다. 2009년에는 54마력 배가 침몰되어 선원 15명이 죽은 일이 있었다. 나도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었는데 모두 죽었다. 바다 나가는 사람들은 목숨 걸고 나가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1년이면 1,000명도 죽어 나가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과부와 홀아비도 많이 생겼다. 한번에 5백명씩 타는 소라잡이 배는 고기잡는 배가 아니라 돌이나 모래 등을 실어나르는 작업선으로 부선(艀船)이다. 이런 배는 길이가 30m, 너비가 15m 되는 큰 부선에 500명씩 타면 와글와글 하다. 이런 배에 가족끼리, 아는 사람끼리 생활하는데 꼴이 말이 아니다. 이렇게 큰 배도 1년에 한 번씩은 사고가 난다. 운이 좋으면 지나가던 배가 살려줄 수도 있지만, 죽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봐야 한다.
가장 작은 것이 8마력짜리 2m 배로 10명은 탈 수 있다. 24마력 배는 50~100명도 타지만 보통 작업선이라고 할 때는 15명 정도 승선한다. 큰 배든 작은 배든 낡은 배는 암초만 걸려도 바로 사고가 난다. 많은 사람들이 죽으니까 누가 통계를 낼 수나 있을까 싶다. 북한 인구가 2,000만 명이라고 하지만, 내가 북한에 있을 때 실제로 1,800만 명 될까 말까 한다는 말을 들었다. 바닷가에 가보면 파도에 밀려들어오는 시체가 많다. 오늘은 여기 있던 시체가 밀물 썰물에 밀려 내일은 저기 가있고, 바다에 계속 둥둥 떠 다니는 등 그런 일이 많다. 말로야 시체를 거둬줘야지 바다가 잘 된다고 하지만 시체를 거둬주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시체를 거둬주려고 보안서에 신고를 하면 조사가 끝날 때까지 신고한 사람을 못살게 대한다. 언제 봤는지, 어디서 봤는지 물어대며 의심부터 한다. 마치 신고한 사람이 죽인 것처럼 못살게 하니까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 그거 대면하고 있을 수가 없어 신고를 하지 않고 방치해둔다. 시체라는 소리만 들어도 일부러 안 보려고 하는데도 서해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보면 한달에 보통 10번은 보는 것 같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 작업배 선원 하겠다며 각지에서 찾아와 배사고로 죽는 사람들은 사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작업선에 노력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북한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가 아니라 굶어죽기보다는 그나마 바다 쪽이 먹고 살기가 낫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모여드는 것이다. 내가 골동 장사하던 2005~2008년 함북도에 가보니 풀 먹고 풀 독이 올라 뚱뚱 불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생각한 것이,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은 그래도 살만 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주들이 이런 상황을 이용한다. 작업선으로 노력 나가는 사람들은 선주가 횡포를 부려도 고발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내가 1,000달러 정도의 생산물을 만들어가도 100달러나 줄까 말까 한다. 작업선에 있는 사람들은 선주가 주는 것으로 먹고 작업해 생산물을 바치는데 먹이는 수준이 굉장히 한심하다. 쌀도 제대로 안 주고 부식물도 안 준다. 그래도 배를 타면 굶지는 않으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일하는 것이다. 나 역시 벌 때는 좋은데 종업원들 돈 계산 할 때면 아까운 마음이 들더라. 그러니까 제일 만만한 종업원을 강탈하는 것이다. 작업배에 타는 사람들이 돈 벌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대부분이 먹는 것이 남는 사람들이다. 작업배로 노력 나가는 사람들 연령대는 30~40대가 많지만 15세에서 60세까지 다양하다. 60세가 되면 되도록 배에 태우지 않으려고 하는데, 딸이나 아들을 따라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배에 같이 타겠다고 해서 태우는 것이다. 큰 배는 한번 바다에 나가면 3~4개월, 작은 배는 1개월 정도 바다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노력 나가는 사람들은 바다 위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육지로 나왔다가 바다로 들어가는 것도 기름을 써야 하니까 다 돈이다. 그래서 ‘달리기 배’들이 움직이면서 먹는 물이며 쌀이며를 소라잡이 부선이나 고기배에 공급하면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여자들의 경우 배를 타면 성폭행 당하거나 임신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작업배에 식모로 탄다고 하면, 선장 책임 하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폭행당할 위험까지는 없고, 선장의 애인이거나 아는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선주들이 하는 일인데, 이때도 군대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정박하겠다며 땅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바다에서 먹고 자며 작업을 하게끔 시키는 것이다. 육지에 배를 대더라도 종업원들은 잘 곳이 없다. 숙소가 없기 때문에 바닷가에 그저 박막 꽂아놓고 맨 땅에서 자야 한다. 돌은 많으니까 간혹 돌을 쌓아 온돌처럼 그 위에서 자기도 하는데, 그것도 경비를 서는 군대에서 못하게 한다. 북한에서 해변은 군인들 관할이기 때문에 빈 땅이란 것 자체가 없다.
중국 대방, 빌려준 돈 대신 사람 끌고 가거나 배 갈취 바다로 탈출해서 중국으로 달아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특히 여자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중국인이 “나랑 대방 맺자”해서 돈을 조금 대주는 일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갚지 못하면 식모(배 식모)로 저당 잡아 데려 간다. 사람을 빚 대신 끌고 가는 것이다. 매해 그런 일이 10~15번은 있다. 중국으로 데려가면 돈을 갚을 때까지는 중국 대방 마음대로다. 노예처럼 부려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그렇게 나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은 오히려 중국에 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예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 간혹 중국으로 갔다가 잡혀서 신의주나 압록강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아는 사람도 그렇게 중국을 갔다 돌아올 때 신의주 단련대에서 6개월 있었다고 했다. 그밖에도 돈을 못 갚았을 때 배를 회수해 가는 일도 있다. 웃지 못 할 일은 중국인들이 우리 경비정에게 돈을 주면서 “00배가 돈을 못 갚았으니까 회수해 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 경비정이 와서 10,000달러, 20,000달러짜리 배라도 뺏어다가 중국인에게 준다. 처음에는 무슨 밀수를 했거나 잘못을 해서 배를 빼앗기나 하고 영문도 모르다가, 나중에 보면 그 배가 중국 측에 가 있는 것이다.
나는 2008년부터 골동을 그만두고는 바다 장사(고기나 조개를 잡아서 중국에 파는 무역)을 시작했다. 바다를 끼고 하는 부업이 벌이가 괜찮고, 그 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여자들이 바다를 기반으로 해서 돈을 버는 경우가 많은 편이기도 해서 시작했다. 바다 장사 품목으로는 꽃게, 피조개, 소라가 제일 많다. 꽃게는 서해 남포에서 많이 잡히고 심미도 쪽도 어획량이 괜찮은 편이다. 심미도 아래에 상선장이 있는데 그쪽으로 모두 꽃게 어장이다. 철산반도와 신의주 쪽으로는 피조개가 많이 잡힌다. 피조개는 양식이지만 양식을 하지 않아도 양식장 근방으로 꽤 많은 양의 피조개를 잡을 수 있다. 조개가 화학물질을 좋아한다. 북한에서 그쪽으로 배를 대피시키고 포사격을 자주하기 때문에 조개들이 많은 것이다. 소라는 작업선들이 바다로 나가 기계로 뱅뱅 돌려서 망태기에 주워 담고 꽃게는 바다에서 훑어서 올린다. 그렇게 잡은 수산물을 북한 평안북도 철산반도 인근의 납도나 우도 상선장으로 가져가 중국 대방에 팔았다. 꽃게의 경우 1톤당 최고 14,000달러, 최하 7,000달러를 받는다. 피조개는 500~800달러, 소라는 크기에 따라서 500달러, 800달러, 1,500달러 짜리도 있다. 그밖에 거래되는 수산물로는 물웅개비, 꽃소라, 골뱅이, 갈치 등이 있다. 남도와 우도의 상선장은 세관이 인정한 배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중국 배와 북한 배가 만나 물자와 수산물을 교류한다. 양측이 만나 톤 당 얼마씩 가격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수산물을 넘기고 중국 측으로부터 돈이나 물물교환 식으로 기타 물자를 받았다. 중국 배는 기름이든 쌀이든 많이 갖고 들어온다. 쌀 같은 경우 북한 내 생산물로는 충족되지 않거니와 또 중국 쌀이 맛이 괜찮아서 주로 요구하는 편이다. 수산물 외에 정광, 석탄 등이 신의주를 통해서 중국으로 나가기도 하고, 간혹 새끼 돼지나 마늘, 볏짚, 갈대 등도 밀수 하는데 대부분이 수산물이다. 정광 같은 것은 부피가 크니까 밀수를 하더라도 육지로 한다. 부두에서 배가 출하되는데 부두 자체가 해산물 밖에는 통과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 잡으려면 작업배 확보하고 사업소 소속의 5개의 증명서 있어야 나는 납도 상선장은 멀어서 자주 안 가고 주로 우리도(島) 상선장에 나갔다. 많이 갈 때는 한 달에 10번 간 적도 있다. 상선장에 댈 수 있는 배들은 허가받은, 즉 사업소에 소속이 된 배들이다. 배는 거의 중국제인데 개인이 돈을 주고 사는 것이지만 사업소에 소속을 걸어두어야만 상선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개인들은 사업소에 소속을 걸어두는 조건으로 사업소에서 요구하는 생산 계획을 해줘야 한다. 예를 들면 기지장의 경우는 상반기‧하반기 각각 10,000달러 정도의 계획량을 준다. 지도원은 각 6,000달러, 선장들은 각 3,000달러, 조그만 배들은 상‧하반기 합쳐서 3,000달러씩 분담하고 있다. 계획에 해당하는 생산물을 맞추고 나면 나머지는 개인이 먹는 것이다. 바다장사를 한다고 하면, 잡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따로 있다. 나처럼 “상선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선주로 가지고 있는 작업배(조업배)들 마다 생활조건을 준비해 주어야 한다. 즉 내가 소유(?)한 작업배에 타고 일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게끔 쌀, 부식물, 기름, 담배, 술, 돈 등을 주는 것이다. 월급처럼 정액은 아니고 생산물에 맞게끔 챙겨주고 수산물을 가져가는 것이다. 수산물을 중국측으로 넘기면 중국측에서는 쌀, 기름(디젤유), 담배, 부식물을 준다. 그러면 이것을 받아서 돈을 만들어 작업배에 물자를 대주는데 사용한다. 물자로는 방수복, 장화, 전등, 라디오 같은 것도 포함된다. 해상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일기예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형 라디오를 많이 이용하는데, 주파수를 잘 잡으면 한국 방송도 들린다. 이것 때문에 경비정에서 단속하기도 한다. 바다에 나가서 조업 할 때에는 반드시 증명서가 필요하다. 모두 5개의 증명서가 필요한데 우선 바다 출입증, 종업원증, 선원증, 그리고 어디부터 어디까지 국토 구간을 이용 할 수 있는 배정을 받아야 한다. 해상도 국토로 보기 때문에 국토구간 배정은 국토부에서 승인 받은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또 8군단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철산반도 앞바다가 8군단 관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5가지 증명서를 받아야지만 바다에 나갈 수가 있다. 5개의 증명서를 마련할때에는 매번 뇌물을 바쳐야 하는데 이것은 배가 소속된 사업소나 무역회사의 기지장들이 한다. 그러므로 배를 가진 사람들은 기지장에게 증명서발급을 위한 뇌물을 바치게 된다.
단속조가 돈 빼앗겠다고 닻으로 선원 내리쳐도 하소연 못 해 물고기나 조개를 잡아서 파는 바다장사에서는 배가 재산이다.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개인이 배를 소유하지 못한다. 때문에 개인이 자기 돈으로 사서 사업소에 등록하는데 새 것은 못 사고 모두 중고품이다. 내가 단둥에 다닐 때 한국에는 배가 넘쳐난다고 들었는데 그 배를 북한에 넘겨주면 얼마나 좋겠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배가 생명이고 재산이다. 북한 바다에 떠 있는 배는 모두 중국산으로 마력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80마력 배는 30,000달러, 54마력 배는 7,000~15,000달러, 24마력 배는 4,000~8,000달러, 8마력 배는 1,000~3,000달러 정도 한다. 120마력 배가 가장 큰 것인데 50,000~100,000달러까지 한다. 바다에는 작업배(조업배) 말고도 달리기배(운반배)들이 많다. 작업배들은 항상 바다위에 있고, 이들이 수산물을 잡으면 달리기배들이 받아 상선으로 가져다준다. 달리기 배들은 열심히 달려서 조금이라도 더 사오려고 하다보니 경쟁이 심하다. 북한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나려면(돈을 벌려면)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중국 대방(고기나 조개를 사주는 상대측 업자)한테 열성을 보여야 투자를 해준다. 때문에 열성적으로 가져다 바쳐야 하는 달리기배들로서는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배에 쌍기통(엔진 2개)을 달거나 해서 속도를 빠르게 하지는 못한다. 북한은 고기잡이 배의 속도가 경비정 보다 빠르지 않게 제한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 나간다고 모든 사람이 다 돈을 벌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못 버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만약에 사업소에서 떨어진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면 바다 출입증 자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계획량은 해놓고 봐야 한다. 출입증을 받지 못한 배들을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데 경비정이 많아 조업이 쉽지 않다. 경비정 연합단속, 해양국토부 단속, 연합 단속조 단속, 보위부 배 단속 등 여기저기에서 통제를 하니까 이 사람들에게도 고여야 하는 뇌물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사실 출입증을 받고 나가도 단속배들이 요구하면 돈을 줘야 한다. 출입증이 있으니까 돈을 안 주는 것이 맞지만, 북한에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단속정이 와서 단속 이유를 붙이려고 달려들면 빗자루 하나 없는 것까지도 걸리는 것이다. 때문에 일단 단속정이 붙기만 하면 무조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 사실 고기잡이배들이 마음 놓고 작업하는 날이 많지 않다. 한곳에서 고기를 잡는데 단속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그곳에서 또 단속한다. 이 외에도 상부에서 무슨무슨 방침이 떨어지면 그 방침 따라 또 단속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도 자주 단속을 나온다. 자기네 경비 구간이라고 단속을 빌미로 돈 뺏어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물을 쳤다가도 “국토부 배온다” 소리가 들리면 그 많던 배들이 사방으로 갈라져 필사적으로 도망을 간다. 그러면 단속 배들은 제일 만만하고 한심한 배 하나만 쫓아간다. 한번은 연합단속조에서 단속을 나왔는데 이리 도망가고 저리 도망가고 하니까 그것이 괘씸해서 단속조 배에서 배 닻을 들어 달아나는 배를 향해 내리쳤다. 쇠로 된 닻을 맞아 머리가 깨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다. 한번 단속에 걸리면 중국 돈 100위안 정도는 기본이고, 어떤 때는 500위안, 300위안 등 기준도 없다. 그 사람들 마음이다. 진짜 한심하다 싶은 배는 100위안만 받고 보내기도 한다. 뇌물은 모두 인민폐로 준다. 이제는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 나가도 북한돈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인민폐를 사용한다.
사업소에 계획량 바치고 단속조에 뇌물 고이고 나면… 무리도에 가면 50톤짜리(200마력) 중국배 50척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모두 운영하는 배로 그만큼 실어가는 수산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 배들은 한번 들어오면 5일 정도 있으면서 톤수가 다 채워지면 나가고 또 다시 들어오는 식이다. 북한 서해바다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은 북한 국내 소비 없이 모두 중국으로 나간다고 봐야 한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것은 동해에서 나오는 낙지나 오징어, 망둥이 정도인데 비싸서 사먹을 생각조차 못한다. 그나마 방게는 싸니까 소비하는 것이지 대부분이 중국으로 간다고 봐야 한다. 나 같은 경우 28마력 배를 8,000달러에 구매해서 사용했다. 이 배에 가득 차도록 고기를 잡아 채워서 중국 대방에게 팔면 10,000달러 정도를 받는다. 그러면 10,000달러 중에서 국토부, 보위부, 보안서, 담당보안서, 기지(사업소)에 일정 부분을 바쳐야 한다. 또 지역 군인들, 연합단속조, 종업원 생활경비로도 써야 한다. 그밖에 경비정도 챙겨줘야 하는데, 문제는 경비정이 고정적으로 1척이면 다행인데 하루에 한 대씩 교대로 나오기 때문에 나올 때마다 다시 챙겨줘야 한다는 점이다. 경비정이 3교대로 나오는데 매번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단속에 걸리면 또 돈을 줘야 한다. 중국 대방에게 잡은 고기를 팔고 10,000달러를 받았다고 하면, 여기에서 국토부나 보안서에는 기름 1드럼을 뇌물로 바친다. 값으로는 150달러 정도다. 경비정에는 500달러, 연합단속조는 100~200달러를 챙겨주었다. 지역 군인들은 무턱대고 많이 달라고 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조절해서 인민폐 1,000원 정도 주었다. 사업소에 종합적으로 바치는 것이 6,000달러로 이것저것 처리하고 나면 결과적으로 절반이 남는다. 남은 5,000달러 중 1,000달러는 종업원들에게 들어가고 4,000달러는 일종의 작업비로 나간다. 배 부속품이라든가 기름, 선원들 유지비(술, 담배)등 기타를 제하고 나면 3,000달러 정도 남는다. 한 달이면 10~20번 정도 중국 대방에게 팔았는데, 20번을 팔았다고 하면 적어도 20,000달러는 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꽃게를 예로 들면, 꽃게의 경우 신선도가 중요하다. 그런데 운반하는데 까지 거리와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절반은 죽어 나간다. 우리가 가져갈 때는 분명히 살아있는 꽃게로, 운반할 때도 산소를 공급하면서 가기 때문에 그게 다 돈으로 계산 되어 들어간 것들이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꽃게가 조금만 비실비실해도 죽은 것으로 치고 돈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죽어 나가는 것이 20,000달러 중 5,000달러는 될 것이다. 그래도 어찌됐든 한 달에 15,000달러는 남아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렇지 못한 것은 사업 외에 별도로 부탁이 많기 때문이다. 보위부 같은데서 자꾸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면 그거 해주느라고 남는 것이 적다. 최종적으로 보면 많이 남았구나 싶을 때가 3,000달러였다. 그래도 북한에 있을 때 배를 3척 갖고 있었으니까 아주 못 버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생산물을 받기 위해서는 작업배들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뇌물사업을 잘 해둬야 한다. 그 사람들한테는 선불(그물이나 쌀)을 줘야지 내 대방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가는 돈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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