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0일 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다윗 가문의 요셉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목수로 일하는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3,55; 1,19 참조). 그는 같은 나자렛에 살고 있던 마리아와 약혼하였는데, 같이 살기도 전에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신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요셉은 파혼하기로 작정하며 고뇌하지만, 천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리하여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가 되어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또한 성인은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며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명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예수님을 기르는 일에 헌신한 의로운 요셉 성인을 기리고, 성인의 믿음과 덕을 본받기로 다짐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평생 순종의 삶을 사셨던 요셉 성인님
나는 참으로 욕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이 왜 그리 많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미련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특히 지식에 대한 끝없는 갈망은 나를 더욱 집착하게 해서 매일 책을 사들이다 보면 일 년에 적어도 200여권의 책을 읽고 공부하다가 연관성이 있으면 다시 그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묻고 학원에도 다니고 혼자 연습도 하면서 전쟁을 치루는 듯 했습니다. 특히 교회의 새로운 피정 프로그램이 나오면 어김없이 참석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뒤에는 공의회 문헌을 가지고 매일 공부하면서 그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공부하기에 천국이지만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혼자서 의문나면 해결할 수 없기에 여기 저기 찾아서 공부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책을 사 볼 수 없으면 서점에서 눈치를 보며 오랜 시간 서서 책을 읽고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 국회도서관에도 많이 드나들었습니다. 전문가에게 묻고 싶어도 쓸데없는 고집과 자존심으로 묻지도 않고 혼자 연구하고 알아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전공 보다 모든 잡학에 능한 사람으로 변해서 잘 모르면서 다 아는 것처럼 보였는지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은 “돌아다니는 잡학사전”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면서 ‘한 우물을 파라.’고 충고도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백화제방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주장들이 제기되어 옳고 그름을 서로 다툰다.>라는 뜻입니다.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 활동하던 시절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서로 내세우며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속에서 학문도 발전하고 정치도 발전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공산당 선전부장 루딩이(陸定一)가 1956년도에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공산주의의 수정을 주장하는데서 정치적인 구호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모든 이론을 제기하면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세미나나 심포지엄과 같이 어떤 사상이든지 모두 털어놓고 그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을 택하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생각으로 아주 교만해져서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피정에 참여했다가 ‘사막의 체험’ 시간에 눈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배가 부른 마리아’를 나귀에 태우고 베들레헴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요셉 성인이 갑자기 떠올려지면서 그분의 삶, 의로움, 예수님과 성모님을 돌보기 위하여 일생을 바친 헌신적인 삶, 그리고 그분의 겸손한 삶 등을 차근차근 살펴보는데 요셉 성인과 내가 대비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환경도 다르고 지리적, 시대적으로 전혀 다른 분이지만 문득 그 분께서 아무런 욕심이 없는 분으로 느껴지고 많은 것을 가지려하거나 많이 배우려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머무는 것입니다. 다만 당신께서 배우신 생업으로 목수 일을 아주 묵묵히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날 그 분을 노동자의 주보로 모시고 있는지 모릅니다. 노동자로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의 삶과 그분이 하시는 일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이 주님의 아버지로서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것에 조금도 마음을 두지 않으시고 하실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천하다는 목수 일을 멈추지 않으시고, 생계를 유지하시고, 많은 수입이 아니어도 부족함 없이 검소하고 겸손하게 사셨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분은 아주 슬기롭고 대단한 스승이셨기에 예수님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특히 그분의 전공분야인 목수 일을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톱질을 하고, 대패질을 해서 곱게 만들고, 끌은 어떻게 쓰고, 아교는 어떻게 붙이고, 망치질을 어떻게 해야 하고, 격자 쇠는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어떻게 눈금을 그리고, 자귀로 다듬고, 끌 칼로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지 일일이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물의 이치와 가장 좋은 재료를 구하는 법과 사람들이 어떻게 디자인을 해야 편할 것인지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셨을 것입니다. 자기 자식을 잘 가르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속성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였고, 잘 따르셨지만 요셉성인의 가르치심은 아주 탁월하였을 것입니다.
요셉성인의 순종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아무런 불평도 없이 순종하는 삶,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어려운 삶입니다. 성모님도 성령을 수락하셨고, 요셉 성인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심 없이 따르셨습니다. 천사의 인도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귀에 태우시고, 그 먼 사막의 길을 외롭게 걸으셨던 요셉성인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집트로 피난을 가셨고 낯선 땅에서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며 모든 것을 극복해야했습니다. 성모님을 정결하게 지켜 주시는 일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할 수 없는 의지로 인간적인 욕망을 다스리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교회의 수호자이시며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배필이신 요셉 성인의 대축일입니다. 성인의 삶을 가슴에 담으면서 그 동안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말만 무성하였던 삶을 반성합니다.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장황하게 살았던 삶을 크게 뉘우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과연 무엇이고 그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하느님을 함부로 판단하고 세상을 무시하였던 그 큰 잘못을 어떻게 기워 갚을 것인지 사순 시기 혼자 묵상하였습니다.
저희에게 요셉성인을 통하여 많은 진리를 전해 주시는 주님!
성인의 진솔한 삶을 본받지 못하고 교만하여 주님을 아프게 하였던 삶을 용서해 주소서. 요셉 성인의 삶처럼 의롭고 겸손하여 순종하고, 정결하게 주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다짐 하오니 저희에게 지혜의 성령을 보내주시어 주님 맘에 드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의로우신 성 요셉이여, 저희가 착히 살아 당신의 전구로 임종할 때에 거룩하게 죽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소서! 지금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음의 문턱에 있을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서 주님께 간절히 전구해 주소서.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4,13.16-18.22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축일3월 19일 성 요셉 (Joseph)
신분 : 마리아의 남편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예수님의 양아버지이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Josephus)에 대해서는 마태오 복음 1-2장과 루카 복음 1-2장의 예수님 탄생과 유년 이야기에 나오는 것이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대부분의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성 요셉은 다윗(David) 왕가의 후손이고, 요셉 가문은 유다 지방 베들레헴에서 나왔지만, 당시 성 요셉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 살면서 목수 일을 하고 있었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마리아와 약혼하였으나 같이 살기 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가진 마리아와 파혼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천사가 명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는 마리아와 함께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와 목자들의 방문을 받았고, 율법의 규정대로 할례를 베풀고, 정결례를 행하는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의 봉헌 예식을 가졌다. 그리고 헤로데의 영아 학살을 피하고자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하였고, 헤로데가 죽은 뒤에야 가족을 데리고 나자렛으로 돌아와 살았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 그는 매년 하던 대로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마리아와 소년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다녀오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을 알고 다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아들을 찾기도 했다.
이후 성 요셉은 루카 복음 4장 22절을 제외하고는 신약성경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성 요셉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이전에 선종한 것으로 여겨진다. 외경인 “야고보의 원복음서”에는 그가 마리아와 결혼하였을 때 이미 노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 요셉에 대한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요셉 이야기"라는 외경은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인기 있는 책이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주님의 양부’라는 칭호로 9-10세기에 일부 지역에서부터 시작해 ‘마리아의 배필’로서 성모님 공경과 함께 빠르게 전파되었고, 12세기경에 3월 19일이 요셉 성인의 축일로 정착되었다. 14세기에 들어서면서 작은 형제회를 중심으로 성 요셉에 대한 공경과 축일이 전파되다가 1479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성 요셉 축일이 전 교회로 확대되었다.
성 요셉 신심은 특히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와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 de Sales, 1월 24일)에 의해 보편화되었고, 1870년에 교황 비오 9세(Pius IX)는 성 요셉을 ‘가톨릭 교회(보편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1889년 성 요셉을 가장(家長)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서 성모님 다음의 위치로 올렸다. ‘노동자의 수호자’란 칭호는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가 부여하였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또한 비오 12세는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해서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축일’로 제정하였다. 성 요셉은 가톨릭교회 전체와 여러 나라와 단체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고, 또한 노동자와 가정뿐만 아니라 특별히 임종자들의 수호성인이다. 교회미술에서 성 요셉은 보통 백합꽃이 핀 지팡이나 목수 일에 필요한 연장을 들거나 아기 예수님을 안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셉 (Joseph) 형제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