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급 6명 잇따라 '보직 거부'
국가인권위원회 과장급 간부 6명이 최근 잇따라 보직 발령을 철회해 달라고 하거나 보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왔다. 이들은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인권위 수장으로서 부적합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권위 5급 이상 승진 인사가 이재명의 결재가가 나지 않아 1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
인권위 안팎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안 위원장에 대한 퇴진 압박이 전방위로 가해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안창호 인권위원장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22일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장으로 발령받은 A 서기관은 23일 오전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 ‘보직 발령 철회’를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A 서기관은 “인권위는 2년 전 12·3 내란의 그 밤에 머물러 있다”며 “(인권위가) 윤석열 방어권 안건에 대해 어떤 반성과 책임도 없고 퀴어 축제는 올해도 불참했다”고 주장했다.
23일 오후에는 B 광주인권사무소장이 내부 게시판에 “인권위는 건너기 힘든 강을 건넜다”며 보직을 반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C 군인권총괄보호과장, D 차별시정총괄과장, E 서기관, F 기획재정담당관 등도 보직 반납을 선언했다.
보직 발령 철회를 요청하거나 보직을 반납하겠다고 밝힌 6명은 인권위 과장급 중간 간부다. 공무원이 보직 인사 발령에 반발해 철회를 요청하거나 반납을 선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인사권자가 별도의 인사 조치를 하지 않는 한 보직 발령은 유효하다.
이 때문에 보직 인사에 반발한 이들이 사실상 인사권자인 안창호 위원장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에 보직 반납을 선언한 인권위 공무원들은 안 위원장이 인권위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권위 일부 직원들은 윤석열 정부 때인 지난 2024년 8월 안 위원장이 지명됐을 때부터 그의 일부 종교적 발언과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문제 삼아 공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가 작년 2월 내란 혐의로 수사를 받던 윤 대통령에게 불구속 수사 원칙 등 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하라는 권고를 의결하면서 인권위 일부 직원의 반발이 표면화했다. 인권위 직원 42명이 게시판에 안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을 연쇄적으로 올렸고, 전국공무원노조 등은 인권위 전원위원회 진행을 가로막기도 했다.
일각에선 안 위원장이 반(反)동성애 단체의 반대 등을 이유로 2년 연속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불참한 것도 문제로 삼고 있다.
인권위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임명하지만 총리의 통할을 받지 않는 독립 기구다. 다만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5급 이상 공무원 임명은 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런데 인권위가 작년 9월 초 3·4·5급 승진 대상자 10여 명에 대한 제청안을 이재명 측에 보냈지만, 10개월 가까이 이재명의 결재가가 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통상 4·5급 승진 인사는 석 달, 3급 승진 인사는 6개월 정도면 대통령 재가가 났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란 말이 인권위 내부에서 나온다.
공안 검사 출신으로 헌법재판관을 지낸 안 위원장은 현 민주당 세력과 갈등을 빚어왔다. 안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 대한 방어권 보장 문제 등을 두고 민주당 성향 사람들과 설전도 벌였다.
안 위원장의 임기(3년)는 내년 9월까지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이번에 보직 반납을 선언한 간부 중 시민단체 출신도 적지 않다”이라며 “이들과 이재명이 ‘안창호 인권위 체제’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인권위 인사를 둘러싼 파행이 불거지면서 인권 차별·침해 사건과 관련한 진정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사건 처리율은 2023년 113.3%, 2024년 102.4%였다. 한 해 접수된 진정 전부에다 전년도에 접수된 일부 진정까지 처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년엔 처리율이 90.2%로 떨어졌고, 올해는 3월 기준 87%에 그쳤다.
안 위원장은 일부 과장급 간부의 보직 철회 요구와 관련해 “법과 인사 원칙에 따라 인사 발령을 낸 것이고, 추후 인사 조치에 대해선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거취와 관련해서는 임기를 마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