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8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뒤늦게 철이 납니다.
우리가 흔히 독서를 할 때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그으면서 꼼꼼하게 익히며 궁금한 것을 생각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어제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분이 신문을 읽는 것을 보았는데 연필을 들고 신문 기사를 보고 밑줄을 일일이 그으면서 읽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얼굴을 보았더니 나보다 적어도 열 살은 더 들어보였는데 그 분을 보면서 내 공부하는 태도를 많이 반성하였습니다. 그분은 아주 천천히 중요한 기사의 내용을 되새겨 읽으며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통해서 나는 어떻게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있는지 잠시 되돌아보았습니다. 요즘 저를 아는 사람들은 복음 묵상에 대하여 신기한 듯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고사성어를 그토록 많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사성어를 전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읽고 공부한 것이지만 까맣게 잊어버린 것을 다시 읽고 생각하고, 어떤 복음 말씀에 따라서 어떻게 묵상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하면서 다시 찾아서 공부하고 옮겨 적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전에 공부한 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면 아마도 나의 머리는 이미 터졌을 것이라고 하면서 정말 ‘잊는다는 것’도 주님께서 주신 엄청난 은총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잘도 잊고 삽니다. 특히 내 죄에 대해서는 정말 잘도 잊고 삽니다. 그리고 먹고 살만하고 편해지니까 나는 점점 더 잊기도 잘하고, 무엇이 소중한지도 알지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이나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총을 고스란히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채근담 전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거역경중, 주신개침폄약석, 지절려행이부각. 처순경내 안전진병인과모, 소고미골이부지.’
居逆境中, 周身皆鍼砭藥石, 砥節礪行而不覺. 處順境內 眼前盡兵刃戈矛, 銷膏靡骨而不知.
역경 중에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침이요 약이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절조와 행실을 갈고 닦게 되거니와, 순경에 처하면 모든 것이 칼과 창이라 살이 없어지고 뼈가 닳아져도 알지 못하느니라.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어서 세상의 모든 말씀은 모두 나에게 은총이 되고 약석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의 충고도 감사하고 조그만 위로와 격려에 가슴 떨리는 소중함을 간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단 그 고비를 넘기면 모든 것은 나 잘난 멋에 살게 되고, 사람들의 그 간절한 도움이나 사랑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잊고 살게 됩니다. 또한 처음에는 아주 작은 죄에 대하여도 극도로 긴장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으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죄에 아주 둔감해지고 그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 속에 빠져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죄에 대하여 둔감해져서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자기 죄 속에서 죽게 됩니다. 이제는 죄 속에서 죄를 의식하지 아니하고, 죄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도 도무지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성당에 다니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만 자주 듣다보니 하느님은 하늘에 속하신 분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습관적으로 반사적으로 그 분의 천주성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존재를 다시 상기시켜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다음에야 겨우 그분의 존재에 대하여 의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숨을 거두신 다음에야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코 15, 19)라고 고백한 백인대장과 같이 깨닫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참 사랑을 알게 된 것처럼 내가 죽은 뒤 10년이 지나서야 내 자식들이 나를 알아줄지 모른다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돌아가신 뒤에야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시고 나는 나의 죄 속에서 죄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며 주님께서 나를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면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진리를 잊지 말고 살아야겠습니다.
<물린 자는 누구든지 구리 뱀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축일3월 28일 성 군트람노 (Gunthramnus)
신분 : 왕
활동 지역 ; 부르고뉴(Bourgogne)
활동 연도 :+592년경
같은 이름 :공트랑, 군트람누스
부르고뉴의 왕인 성 군트람누스(또는 군트람노)는 아키텐(Aquitaine) 출신으로 백성들에게 매우 자애로운 왕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의 권유로 시노드(Synod)를 세 차례나 열고서 성직자들의 규율을 확립하고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으며, 그의 신하들을 정의롭게 대했다고 한다. 그는 공트랑(Gontran)으로도 불린다.
오늘 축일을 맞은 군트람노 (Gunthramnus)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