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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초등학생과 스타크래프트를!
2011.04.04.월요일
그냥불패 오모씨
봄바랑 살랑이는 일요일.
참 좋은 날씨입니다.
비온 뒤 갠 일요일 아침이면 비가 일으킨 먼지냄새를 맡으면 항상 설레입니다. 자유의 느낌이에요.
백수라 돈도 없고, 방구섞에 밖혀있는 타입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한바퀴 도니 여행온듯한 기분에 즐거웠습니다. 그런나 척박한 문화수준의 본인은 30분만 자유가 있어도 지루해져 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맑은 하늘 부드러운 봄바람을 뒤로하고 결국 담배연기 자욱하고 어두컴컴한 소음의 피시방을 들어가게 되었네요.
그 옛날 한 20여년전 제가 초등학생일때는 일요일 아침 엄마를 졸라 500원 용돈을 받고 교회 가야 한다는 친구들을 꼬드겨 오락실에다 헌금을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오락실이 집에서 멀어서 30분은 걸어야 했으나 가는 발걸음 발걸음이 두근거렸었죠.
시대는 바뀌어 오락실은 저물었고 대신 피시방이 일요일 초글링들의 낙원이 되었더군요. 어두침침한 피시방안이 초글링들로 바글바글 꽈악~ 들어차 있었습니다.
다른게임은 잘 할줄 모르고 오직 스타 외길인 저그유저로써 열심히 1:1대전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형 울트라로 밀어요 울트라”
(-_-;;) 응?
제 액면가는 40에 가까운데 별거없는 제 플레이를 계~속 관전하던 토실한 이미지의 초등학생이 저에게 말을 거네요.
"아 아니 지금 가스가 없어서 안돼안돼 감염충 몇마리로 버틸꺼야."
초등학생은 계속 제 1:1에 관심을 나타내며 코치하듯 이야기를 거는데 초등학교 다닐때 이후로 초등학생과 이야기를 해본경험이 전무한 제가 오히려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당황스럽더군요.
옆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제가 또 남의 눈을 의식을 좀 하는지라 왠지 멋지게 보이고픈맘에 (초등학생에게 말이죠 ㅠ.ㅠ) 어떻게든 손을 타닥타닥! 빠르게 움직여 보려고 노력도 해보고 그렇게 불꽃튀는 접전이 지속되다가 제 스타인생 최고의 플레이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상대 테란과의 중앙결전에서 바퀴와 저글링으로 상대병력을 싸들어가면서 감염충으로 진균번식 + 신경기생충 그리고 맹독충 자폭! 아아 이것은 곰티비에서 보던 프로게이머의 플레이!!
와아~
그 순간 초등학생의 눈이 빛나더군요.
응? 저 눈빛은?!
20여년전 감각이라 가물가물했지만 곧 떠올리고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국민학생시절 불광동 IQ오락실에서 학다리와 그림자 잡기를 멋지게 쓰던 형을 존경으로 바라보던 그것이네요.
"완전 대~에~박 짱이네요 님아"('님아' 라는걸 실제로 쓰는 세대더군요.)
소란스럽게 감탄에 감탄하는 초글링꼬마를 보니 이거 참 주위의 눈이 부끄러웠네요.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보잘것 없는 인생을 살고있어서 남에게 존경스런 눈빛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사람입니다. 초등학생 꼬마였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 신선하고 기분이 좋네요.
좋은 기분에 간식으로 핫바와 콜라를 사면서 꼬마것도 같이 사줬습니다. 꼬마가 부담스러울까봐 신경써서,
"어어 야 저기 카운터에 245번이라고 말하고 핫바랑 콜라 니껏까지 집어와"
"와 그래도 되요?"
2000원에 멋지고 좋은 형이 되었고, 동심으로 돌아가 의기투합하여 5시간 가까이 둘이서 파티를 맺고 스타2 2:2를 즐겼습니다. 제가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닌데 알아주는 이가 옆에 있으니 왜 이렇게 스타가 잘되는지. 하는 게임마다 족족 승리니 꼬마는 저를 프로게이머쯤으로 바라보는 듯 싶었습니다.
중간에 꼬마가 엄마한테 혼난다고 집에 밥먹고 와야한다고 피시방을 나섰고,
"진짜빨리 왔죠. 달려왔어요 ㅎㅎ 헥헥"
10분여만에 숨을 헐떡이며 제 옆에 다시 앉는 모습을 보니 주인에게 충성하는 강아지 같기도 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꼬맹아 세상은 넓어... 오락 잘하는 걸로 멋진형이다 하고 존경할게 아냐...'
생각은 들었지만 말하진 않았습니다. 저도 그랬었고, 그럴 나이죠.
"우와 형 또 언제와요? 저 일요일이면 맨날 여기 있어요"
불과 몇시간 인연일 뿐인데 헤어지기를 무척 아쉬워 하는 꼬마를 보니 이거 어떻게 통닭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피시방을 나서며 초글링꼬마것까지 계산해줬고 마지막까지 멋진형으로 집에 왔습니다.
혹시나 20여년전 불광동 대신시장입구에 있던 IQ개발 오락실에서 <천지를 먹다 2>를 저와 같이하면서 끝판 깰 때까지 동전을 넣어주시던 아저씨 계십니까?(물론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었을 겁니다. 그나이 제 눈엔 다 아저씨였죠.)
이번에 빚을 갚았습니다. 이런 기분이셨군요.
P.S.마지막으로 꼬맹아, 형이라고 불러줘서 정말 고맙다.
그냥불패 오모씨
Lasiesta2011-04-04 15:06:22 [답글] [신고]
학다리 존나 반갑다.^^
빡돌2011-04-05 10:41:31 [답글] [신고]
아.... 기억이 새로새록~~
초딩때 오락실은 세상을 알게하는 그런 장소였지.
만일 오락실에 정진이 되면 모든 초딩들이 의자하나씩을 차지하고 나서는 아저씨께 동전을 하나씩 받았지.
또한 옆에 맛있게 보이는 오뎅 수십개는 그 짧은 정전 몇초에 자취를 감추고 빈통만 덩그란이 있었지.
난 그 짧은 정전의 순간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걸 깨달았지.
의자를 차지하고 동전을 받을까, 아님 오뎅쪽으로 뛰어가서 오뎅을 마구 먹을까 ...
참 어려운 선택....
난 항상 오뎅을 택했지만, 동전을 하나씩 공짜로 받아서 뒤에서서 구경하지않고
다시 오락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했지
참 좋은글 감사!
tilly2011-04-04 15:09:28 [답글] [신고]
솔까말.. 이런게 진정 감동 스토리 ㅋㅋ
험메리2011-04-04 15:19:05 [답글] [신고]
아이 눈물찔끔...감동이네 옛날 오락실 생각난다....단돈몇천원 선심에 진짜 우러러보였지 그곳에선.
Grrrr2011-04-04 15:27:50 [답글] [신고]
아.. 새록새록 기억난다... 온시내 오락실을 유랑하며 고수를 찾아다니던 젊은(?)시절... 학원 1층 오락실에서 학원 여자애에게 게임비 빌려주고 나는 100원으로 끝판 클리어에 초글링들 병풍에 둘러쌓인... 천지를먹다 원코인 클리어.. 아토믹키드 원코인 글리어... 동네스파 99판 이상 연속 승리등에 기억은.. ...
스타즈2011-04-04 16:12:55 [답글] [신고]
아오...로긴하게 만드시네효...근래 보기드문 감동글!!!. 근데 스타2 ??? 오옷, 신세대...ㅋㅋㅋ
이PD2011-04-04 17:26:22 [답글] [신고]
로그인 합니다. 중딩때 돈먹었어요라고 뻔한 구라를 쳐도 씩 웃으면서 100원짜리 건네주던 상계동 백산오락실 주인아저씨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저도 기회가되면 꼭 빚갚을께요.ㅠ.ㅠ
코헬렛2011-04-04 17:53:56 [답글] [신고]
아,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이맛에 부모가 되는건가요?
개짜증2011-04-04 18:11:46 [답글] [신고]
존나 감동이다. 2000원의 가오... 님은 멋쟁이~
좋은날올때까지2011-04-04 18:47:52 [답글] [신고]
아~훈훈하다 당신은 멋쟁이
보또부쉐2011-04-04 18:55:42 [답글] [신고]
아아 쿨쩍 ㅠㅠ
essentials2011-04-04 21:24:10 [답글] [신고]
아아... 멋진남자!!
우수한2011-04-04 22:03:47 [답글] [신고]
나도 눈물 찔끔...로긴하게 만드네....ㅎㅎㅎ
xcode2011-04-04 23:05:42 [답글] [신고]
괜히 저도 흐뭇하고 가슴이 싸~ 하네요.. ^^
soosia2011-04-05 00:37:47 [답글] [신고]
<이해의 선물> 스타판이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탕가게 주인아저씨가.......돈이 좀 남는걸? 하던....... 그 소설 기억나시는지....
땡땡구리2011-04-05 09:04:24 [답글] [신고]
ㅎㅎ~ 인정받는 기분...좋죠..!!
slapattack2011-04-05 10:49:11 [답글] [신고]
크허ㅓㄱ.
저 학다리...
왜 하는거였지? 잊어버렸네
그림자잡기라...그 근처에서 낚아채서 던져버리는 버그 말하는 거겠지?
정말 추억이다. 추억이야 ㅎㅎ
바이너리2011-04-05 17:52:50 [답글] [신고]
공격 무효 버그였던 것 같은데요. 일단 상대방 체력 조금 깎아먹은 후, 공격 무효로 시간 버티기.
룸펜2011-04-05 11:28:31 [답글] [신고]
정말 로그인할 수 밖에 없는 감동글. 나는 가수다 보다 더 감동적인 스토리~ ㅠ,.ㅠ 예전에 학다리 한번 하고 의자 뒤로 딱 제끼면서 한숨 쉬면 애들 다 넘어갔지 ㅋㅋ 천지를 먹다 원코인 엔딩은 어떻고.. 대딩 때 학교앞 오락실에서 천지를 먹다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몰려드는 초글링등..캬~ 추억이자 감동이네. 나도 언제 베풀 날이 있을까?
qwert3072011-04-05 12:53:56 [답글] [신고]
희망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2011년 대한민국 이땅에서 한줄기 서광을 보는듯한 감동을 느낀다.. 횽은 사나이임..
이토킹2011-04-05 15:37:46 [답글] [신고]
페이소스 만땅의 웃음일세... PC방 가면 저런 꼬맹이들 있지...
푸른하늘아래2011-04-05 23:29:25 [답글] [신고]
글 정말 잘쓰시네요, 이렇게 맛깔나는 글 오랜만!
모범청년2011-04-06 03:38:51 [답글] [신고]
불광동에 대신시장은 없습니다. 20년 전에도.. 아마 대조시장이겠죠. 그리고 대조시장 입구에는 오락실이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있다면 대조시장입구에서 큰길 건너편이었겠죠. 그게 IQ개발 오락실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길 건너편에 큰오락실 2개가 있긴 했습니다. 20년전이라면 제가 고딩이었네요... 혹시 나였나? 근데 초딩한테 돈을 넣어준 기억이 없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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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뎃글이 잼나는디요 ㅎㅎ
어젠 비가 부슬부슬 오더니
오늘은 화창한 금요일을 주시네요.
잼난글에 쉬어 갑니다..ㅎㅎ
즐겁게 오후 마무리 잘하시길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