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43「그믐밤」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별빛마져 창백한
섣달 그믐 시린 밤
등 굽은 그믐달은
모로 누워 자는데
쪽방집
그 할머니는
무엇하고 있을까
-구충회의 「그믐밤」
시인은 섣달 그믐 시린 밤에 모로 누운 등 굽은 그믐달을 보며 쪽방집 그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다.
휴머니즘! 따뜻한 가슴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고도 남는다. 이보다 더 좋은 수사는 없다. 쪽방은 독거 노인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등 굽은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모로 잘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작금의 노인의 현실이다. 그믐달은 달력에서 마지막 달이다. 그것은 독거노인의 추운 인생을 그리 말한 것이다. 측은지심의 인간애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시조는 바로 인(仁)이다.
데려 가고 싶어도 꿈쩍 않는 산들이
가지 말라 떼써도 흘러가는 강물이
잠겨서 탄식이 되는 아우라지 울음이
- 이화우의 「정선 와서」
꿈쩍 않는 산들이 흘러가는 강물이 잠겨서 탄식이 되는 아우라지.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의 구슬픈 울음이 있는 곳이다. 데려가고 싶어도 데려갈 수 없는 산이요 가지 말라 떼써도 흘러가는 강물이다. 이것이 인생의 애(哀)가 아니고 무엇이랴. 인생도 이와 같으리라.
12개의 단어가 아니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인생을 달리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시조야말로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가 아닐까.
시조는 이런 것이야 한다.
- 2024.8.7.주간문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