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성, 일상 19-62, 저기 차 나오는 데로 가면 돼요
강변에 주차하고 이보성 씨와 내렸다.
병원 앞은 혼잡해 거기서부터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병원까지 갈 수 있겠어요? 먼저 갈래요? 바로 뒤에 따라갈게요.”
병원은 큰 건물이고 자주 다니는 익숙한 길이니 이보성 씨 혼자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외출할 때도 가능하면 집에서처럼 이보성 씨가 직원에게 의지하지 않기를 바랐다.
차에서 내리면 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던 습관이 지금은 없어졌다.
나란히 걷거나 아는 길은 앞서 걷는다.
빨리 오라며 재촉하기도 한다.
“네, 알았어요. 갑니다. 따라오세요. 가는 거죠? 맞죠?”
주차장에서 인도로 올라가는 데크 계단을 이보성 씨가 쿵쿵 거리며 뛰어 올라갔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뒤따랐다.
“어? 보성이 아이가? 보성아, 안녕? 어디 가는 길이고?”
계단을 오르자마자 자취하는 강자경 아주머니를 만났다.
시간을 보니 직장 일을 마치고 퇴근하시는 길인 듯했다.
“병원. 병원 갑니다.”
살가운 아주머니 인사에 웃으며 화답하면 좋으련만
목적에 충실한 이보성 씨는 짧은 대답을 툭 건네고 곧장 걸어갔다.
아주머니와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고 얼른 뒤따랐다.
인도 끝에 사거리 횡단보도가 나왔다.
멈춰 있는 곳에서 어디로 가도 상관없지만 토마토도시락 쪽으로 건너고,
그 후에 롯데리아 앞으로 직진하면 가장 가까웠다.
횡단보도 앞에서 이보성 씨가 도움을 청하는 듯 바라보기에
‘초록불이 켜지면 건너면 된다’고만 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보성 씨가 생각한 길로 걸어갔다.
추운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모습을 뒤에서 보며 걸었다.
이렇게 보니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
다를 것이 없다.
‘올 겨울 유행한다는 플리스 점퍼를 입으면 더욱 그럴까?
이보성 씨에게 잘 어울리겠다.’ 생각했다.
트리 장식을 꾸며놓은 군청 앞 로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뚜레쥬르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되는데
이보성 씨는 그러지 않고 고봉민김밥과 파리바게뜨 쪽으로 갔다.
하마터면 이보성 씨를 부를 뻔했다.
새어나오는 말을 참고 조용히 뒤따랐다.
반시계 방향으로 로터리를 돈 이보성 씨는 3시 방향 출구로 빠져나갔다.
농협과 랜드로바 앞을 지나 시장 쪽으로 가던 이보성 씨가 멈춰섰다.
고민하는 것 같았다.
도움을 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계속 보기에 말을 건넸다.
“이보성 씨, 왜 멈췄어요? 이쪽 맞아요?”
“아! 아닌 것 같은데요? 아이, 참. 저쪽인가? 저긴가? 맞나? 아니라니까요.”
몸을 틀고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이 맞는 것 같아요.”
“아, 그래요? 맞네. 저쪽이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고봉민김밥을 지나 뚜레쥬르 앞 횡단보도를 건넜다.
거기서 직진하다 경찰서 앞에서 다시 길을 건넜다.
‘다 왔다’ 싶었는데 마지막 골목길에서 이보성 씨가 그대로 직진했다.
저기서 돌아야 병원이 나오는데….
더 가다 단골로 다니는 중앙약국 앞에 멈춰섰다.
직원을 흘긋 보더니 그대로 들어갔다.
이보성 씨를 따라 약국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보성 씨 왔네요. 병원 다녀왔어요?”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는 한적한 약국에서
가운을 입은 약사 두 분과 직원 한 분, 사모님이 반갑게 맞았다.
오랫동안 다녀서 모두 이보성 씨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다.
“이보성 씨가 강변에서 병원까지 혼자 가는 길인데 여기로 들어오셨네요.
약국이랑 헷갈리셨나 봅니다.”
“아, 보성 씨. 여기 나와봐요. 길 알려줄게요.”
사모님이 이보성 씨 팔을 팔짱끼듯 가볍게 잡았다.
한 분만으로도 감사한데 네 분 모두 밖으로 나왔다.
“보성 씨, 저기 보이죠? 표지판 있는 곳이요.”
“어디? 어디요?”
“저기 표지판이요. 지금 하얀 트럭 나오는 곳이요. 보이죠?”
“네, 보이는데요?”
“앞으로 쭉 가서 저기 차 나오는 데로 가면 돼요. 갈 수 있죠?”
“확실합니다! 갈 수 있습니다.”
이보성 씨와 자세히 알려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마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처럼 중앙약국 네 분이 따뜻한 미소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보성 씨, 병원 갔다가 다시 와요. 이따 봐요.”
단골 약국 사모님 덕에 무사히 도착했다.
2019년 12월 18일 일지, 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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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팀장): 와, 감탄했습니다. 혼자 거창 시내를 두리번거리며 병원을 찾아 앞장서는 이보성 씨에게 감탄하고, 4명의 약국 직원분들이 병원 가는 길을 알려 주시는 것에 감탄하고, 섣불리 나서지 않고 이보성 씨를 기다려 주는 정진호 선생님께 감탄했습니다. 어디에도 정진호 선생님은 없었고, 이보성 씨가 만난 사람 누구라도 전담 직원의 사람은 없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정진호 선생님 보며 다시, 배웁니다.
최희정(국장): 기록에 감탄합니다.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가 분명하네요. 시내에서 만나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정겹습니다.
월평: 정진호 선생님,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중앙약국 약사분들, 친절히 알려주시고 배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분 모두 약국 문 밖으로 나오셨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왜, 나오셨을까? 과연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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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진호 선생님 일지를 읽으니 익숙한 거창 시내를 투어 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