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 "찌우"로 불리던 박지우.
초콜릿케이크를 좋아했던 소녀 지우는 오빠랑 10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막내였습니다.
아버지는 늦둥이 지우가 너무 예뻐서 지우 발가락까지 깨무는 장난을 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우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부모님 사이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잘 정도로 애교가 많았고, 10살 많은 오빠를 잘 따랐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때부터 늘 반장을 했던 지우는 고등학교 1학년 때도 반장을 했고,
2학년 때에는 모임 회장을 할 정도로 활동적이고 리더쉽 많으며 남을 잘 배려하는 아이였습니다.
지우의 꿈은 자주 바뀌었는데 나중에는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싶어 했습니다.


[세월호 그 후] “천사 같은 지우야! 내 딸이어서 행복하다”(안산=뉴스1) 최대호 기자 = “천사 같은 지우야! 너는 누구보다 빛나고 예쁘다. 영원히 사랑해” 추석을 하루 앞둔 7일,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이 안치된 경기도 화성시 효원납골공원 3층에서는 가슴 시린 생일..www.fnnews.com
결혼 10년 만에 본 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다.
파주에서 사업하는 부모님은 주말에 한 번씩 안산으로 왔다.
엄마는 그렇게 잠깐이라도 지우를 보는 일이 낙이었다.
어릴 때는 일주일 만에 만난 딸이 너무 예뻐서 마냥 물고 빨았다.
지우도 엄마를 굉장히 챙겼다.
잔소리할 때도 있었지만, 엄마가 깜빡한 일은 뒤처리를 도맡아 했고
사은품으로 받은 화장품이 있으면 꼭 나눠 쓰는 착한 딸이었다.

지우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돈 몇천 원을 아끼고, 수돗물 잠근 것도 꼭꼭 확인하는
알뜰한 성격이었지만 ‘불’은 절대 포기 못한 이유였다.
지우는 항상 방에 불을 켜놓고 잤다.
그토록 밤을 무서워하던 손녀딸이 걱정돼
할아버지는 곧잘 마중을 나갔다.
지우가 떠난 뒤에도 할아버지는
아이가 돌아오던 밤 10시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혹시라도 지우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서울까 봐.

지우는 죽음도 두려워했다.
가끔 엄마에게 손금을 보여주며
"나 얼마나 살아? 오래 살지?"라고 물어보곤 했다.
참사 이틀 만에 돌아온 지우 손은 까맣게 변해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열 손가락만.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결국, 장례를 마친 뒤 엄마는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3개월 동안 산소호흡기를 낀 채 살았다.
겨우 나아지긴 했지만
몸의 고통도, 마음의 고통도 여전하다.
어릴 때부터 그토록 좋아했던 노란색을 보면 엄마는 이제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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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생일인 분들이 많네요..!
생일축하해요❤
지우야 생일 많이 축하해!
생일축하해 지우💕
나랑 이름도같고 나이도 같네 지우야 생일축하해❤️
생일축하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웅 된대!
지우야 생일축하해!!💛
지우야 너무 생일축하해! 사랑 많이 받으며 자랏구나!!
지우야 생일축하해!
지우야~생일 너무너무축하해~❤️
지우야 생일 축하해!
지우야 생일 축하해💗💗💗
지우야 생일 축하해
생일축하해 지우야!
지우야 생일 축하해!
지우야 생일 진짜 너무 너무 축하해❤️
지우야 생일축하해 ❤💙💚💛💜
지우야 생일 축하해!!!
지우야 생일축하해💜💚
생일축하해요 하늘에서 행복한 생일 보내고 있죠?
지우야 위에서도 행복하고 생일축하해❤️
생일축하해 지우야!♥?
지우야 늦었지만 생일축하해♡ 너의 밝은모습 더 많이볼걸.. 하는 아쉬움이 들긴하지만 내 기억속에 너는 항상 좋은모습이였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