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개장 동물원(외 1편)
박민서 밤하늘엔 야생 동물들이 갇혀 있다 다시는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처럼 높이 걸려있다 먹이사슬이 없어 푸른 불꽃을 먹고 처녀 사육사가 별의 촛불을 하나씩 켜면 동물원 야간개장을 시작한다 낮에는 잠을 자다가 밤에만 나타나는 동물들 계절마다 우리 밖으로 튀어나온 숲 동물들이 나란히 거리 한복판을 우르르 지나간다 가로수에서 별의 열매를 따 먹는다 그 열매에서 사자와 독수리, 황소와 전갈을 낳는다 양 떼를 몰고 가는 유목민이 치는 별점 대륙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별자리들의 틈을 메운다 동물을 숭배하는 습관이 있었다 얼굴을 핥거나 밭을 갈지는 않지만 좌표 없는 우리와 달이 열두 개 떠 있는 별자리에서 동물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상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누구도 키우지 않는 동물 한 마리 망원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별 하나에 끈을 묶고 사는 동물 서로 흩어져서 환하게 밝아오면 처녀 사육사가 듣는 사방 문 닫는 소리 야간개장 자유이용권을 목에 걸고 활활 타오르며 늙어가는 사파리에 간다
아메리카노 물결이 만든 음악을 아시나요 가난을 감추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에티오피아 은근한 신비감으로 뜨겁게 흔들고 나면 가야 할 원점을 잠시 잃는 도시가 있어요 북위 23.5도에서 남위 25.5도까지 햇빛이 꿈틀거려요 커피나무에서 햇볕에 그을린 아이들 손이 자라고 트리니티 대성당엔 아이들이 두 손 모으고 있어요 하루를 하루로 풀기 위해 아침을 마시지만 중독은 개기일식처럼 순간의 어둠이에요 수면을 깨뜨리고 길을 내어드린 몸속 되돌아올 수 없는 유일한 통로가 중독의 은신처이니까요
커피 속 캄캄하게 숨은 말들이 한 모금씩 빠져나오면 그 많던 회오리도 한순간에 침묵하지요
복종은 나를 잊어야 완수하는 것 이 어둠의 끝은 쓴맛이 끝난 자리 이른 아침 때론 늦은 오후에 마시면 영혼까지 지배하는 이 힘을 어떻게 아이들은 이해할까요 내 안으로 칩거할 수밖에 없는 뜨거운 감정 저항이 없는 두려운 중독을 에티오피아에서 퍼뜨렸을까요
까만 어둠만 마셨을 뿐인데 밤새 하얘지는 아침의 기분은 아메리카노입니까
두 손이 나무 끝까지 자란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아침마다 커피로 쓰디쓴 안부를 물어요 —시집 『야간개장 동물원』 2024.4 ------------------------ 박민서 / 전남 해남 출생.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19년 《시산맥》 등단. 시집 『야간개장 동물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