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리웁고 가슴 아픈 것 11
분향소에서 들어서니 하얗게 만발한 백합꽃으로
둘러싸인 한 가운데 환하게 웃는 명애가
해순이를 반겨 맞아준다
전에 보았던 고운 모습 그대로이어
더욱 더 해순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순간 서러운 감정이 복받쳐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려 옷깃을 적신다
닦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명애의 얼굴만
처다 보고 서 있자 곁에 있던 섭섭이가
옆꾸리를 찌르며 그만 울고 분향하라며
해순이에게 눈치를 보낸다
청동 향로앞에 놓인 하얀 백합꽃 5송이(5공주몫)를
잡아 명애 영정앞에 놓으며 명복을 빌어준다
빈소안에는 슬픔에 겨워 초췌해진 명애
남편이 퉁퉁 부은 눈으로 해순이를 반겨
맞고 그 옆에는 아들 둘 그리고 여고 3학년인
딸 수미가 하얀 소복을 입고 서러운 눈으로
해순이를 보며 울어 버린다
상주와 해순이, 섭섭이는 맞절을 하면서
눈물이 흘러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슬픔에 겨워 일어나지 못하다 한참 후
다음 문상객때문에 할 수 없이 일어나고
건너편 음식이 차려진 곳에서 기다리던
정란이에게로 가 마주 보고 앉는다
유난히도 명애는 백합을 좋아했었다
가을 백합꽃 축제가 열리면 어디서 그런
소식을 알았는지 모두에게 알려 함께 가곤
했다
하얀 백합꽃에 둘러싸인 명애의 영정사진은
죽기 일주일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정란이가
말하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기집애! 미리 죽을려고 마음을 먹고 준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아려온다
우리는 무얼하고 살았을까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서로를 모른 척
자신만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던가
명애가 그렇게 외로웠다는데 도대체 무얼하며
연락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았을까
머리를 쥐어 뜯어보고 두둘겨보아도 해답은
어디에도 없다
명애는 전자전기계열 회사에 다니다가 같은
회사 동료인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였다
남편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회사에 수석으로
입사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었다
남편이 입사하기 전 명애는 대학를 졸업하고
먼저 입사해 제품 개발실에 근무하였고
명애가 대리로 진급한 그 해 겨울에 남편이
제품 개발실에 들어 왔다
나이는 비슷했지만 남자는 병역의 의무를 치르느라
명애보다 3년이 늦었다
상하관계로서 같은 업무에 부딪히는 날들이
많았고 그러다 자기도 정이 들었다고 한다
농촌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난 남편은 5남 3녀 중
막내이어 형과 누나들이 학비를 보태주어
대학에 다니게 되었고 늘 돈이 궁해 학교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학비를 감면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여 받은 장학금으로 학비를
보태고, 강의가 끝나면 중고등학생 과외공부로
생활비를 충당해야만 했다
그러니 대학생활내내 변변한 미팅 한번 못해
보았고 그 흔한 커피 한잔 돈이 아까워
사먹지 못한 전형적인 소작농 막내아들이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쑥맥인 남편이
싫어 딴 청을 피웠지만 업무의 처리 속도나
제품 기획에는 언제나 머리 회전이 빨라
시간이 지날수록 놀래는 날이 많았다
회사에서 주는 인센티브로 제품 개발실에는
회식이 잦았고 회식의 끝에는 당연 노래방
이었다
노래라면 죽은 엄마가 살아와서 마이크를
달라고 애걸해도 안 줄 명애이니 당연 인기짱
줄줄이 구애하는 사람이 많았다
해순이와 5공주는 그때는 이미 서로 다른 회사에
다녔지만 1달에 4번은 정례 모임이어 꼭 만났다
1주일에 한 번 모두 바쁘지 않은 시간에
명동에서 만나곤 했다
물론 연락책은 여고시절부터 했던 해순이 차지였다
간혹 필요한 번개 모임은 24시간 이내로
핸펀 문자를 보내 만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한달에 못 만나도 10번이상 만났다
매번 만날때마다 도통 남자얘기는 전혀 안하던
명애가 어느날 사귀는 남자와 곧 약혼한다고
선포하였고 모두는 갑작스런 선포에 어안이
벙벙 얼굴만 처다 보았다
태숙이는 증권회사에, 섭섭이는 물류회사에,
정란이는 은행에, 해순이는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모두 말썽꾸러기들이지만 능력과 사교성은
누구보다도 많아 회사내에서도 여고시절 길렀던
끼를 마음껏 발산 인기가 제법 상승가에
있었다
해순이는 중견 건설회사 사장비서실에 근무
하고 있었다
사근사근하고 붙임성있는 태도와 친절한
서비스에 회사내 중역들의 칭찬이 대단하였다
그러던 중 기획실의 이사가 해외출장중이어
대신 사장 결재를 맡으러 왔던 총각하고
눈이 맞아 연애를 하고 있었다
핸섬하고 예의바른 해순이 남친은 늘 해순이
에게 무엇이든 양보하였고 해순이가 원하면
달도 따다줄 것같은 사람이었다
서로를 너무 좋아한 두 사람은 양가집에 인사를
하였고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던 해외
원유 프랜트 공사가 차질을 빗게 되었고
공기마저 연장해야할 지경에 놓이자 기획실
이사와 해순이 남친을 중동에 장기간 파견
하였다
어찌할 수 없어 해순이는 남친을 중동에 보냈지만
갈수록 회사사정은 나빠지고 끝내 부도가 나
다른 회사에 인수 합병되었고, 중동 원유 플랜트
공사는 예정대로 추진되었고 남친은 새론 회사의
소속으로 계속 공사가 끝날 때까지 남게 되고
해순이는 퇴직하였다
공사가 끝날려면 작게 잡아도 5년이다
처음에는 자주 연락도 하고 하던 둘 사이는
해순이가 퇴직하고 나서는 연락이 뜸해지고
흐지부지 물거품이 되었다
정말 너무 좋아서 몸과 마음을 다 주었던 사람인데
이젠 추억속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 후 몇 년 동안 서울에서 중소기업 2군데에
다니다 귀향하여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과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현 남편과 결혼하였던 것이다
해순이가 고향으로 귀향하기 전 1년전 가을빛이
가슴까지 올라와 쓸쓸해졌을 때
캄캄 무소식이었던 명애의 연락이 왔다
10월 둘째 주 일요일 오후 2시에 명동 신세계
백화점 5층 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 약혼식을 한다고
모두 모이라 한다
그날 약혼식에서 본 명애는 약간 배가 불러
보였다
본인은 애써 감출려고 한복으로 커버하였지만
걷는 걸음걸이와 부스스한 얼굴에서 4공주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인지 명애 집안에서 서둘러
그 해 11월 단풍이 완전히 붉게 물들던 오후
명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집은
종로구 평창동에 꾸렸다
결혼 후 집들이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5공주
들이 만나 즐거운 하루를 보냈고 그 것이
마지막이었다
결혼 후 대치동에 사는 정란이의 소식에 의해
명애의 소식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해순이도 결혼 후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친구들 만나지도 소식도 거의 듣지 못했다
명애는 결혼 후 행복했는지 모르겠지만
명애 남편회사는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시키느라
빚을 많이 지고 그 연유로 기업 사냥꾼들에
표적이 되어 M&A 매물로 나왔다가 인수자가
없자 10시간에 걸친 채권단의 마라톤 협의
끝에 최종 부도처리 되었다고 한다
회사가 망하자 명애와 남편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조그마한 전파상을 운영하였다
그때부터 명애는 조금씩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모든 것에 의욕을 잃어갔으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단지 근처에 사는 정란이하고만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첫 아이는 서울에서 낳고 둘째 아이는 전파상을
부부가 운영하면서 낳았고, 나중에는 외로워
고아원에서 예쁜 딸을 입양하였던 것이다
성남에 온 후 성실한 남편과의 공동사업이 어느 정도
괜찮아져 돈이 모아지자 시내 변두리 도로옆에
아담한 양옥을 구입해 도로쪽의 담을 허물고
점포를 내었고 나머지는 살림집으로 사용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문을 열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열심히 하는 남편덕에
집안 형편도 많이 나아지고 아이들도 대학에
다녀 한숨을 돌리자 다시 우울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녁 찌게를 끓이다 멍하니 동공이 풀어진
상태로 서 있다 냄비 그릇이 시커멓도록 타서
집안 연기가 가득했고, 아이들 교복을 다리미질
을 하다가 정신을 놓는 바람에 교복을 태워
버린적도 있었다
남편과 같이 잠자다가 홀로 일어나
불도 안 켜진 거실에서 새벽까지 홀로 앉아 있다거나
한숨이 꼬리를 달고 다녔다
남편과 아이들은 처음에는 생리가 끓어지고
오는 갱년기의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즐겁게 해줄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명애의 기분을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갈수록 명애의 우울증은 심해져만 갔다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고 판단한 남편은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좋다는 요양원에 보내도
보고, 거기가 지내기 힘들다는 명애의 연락이
오면 데리고 와 한동안 같이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한동안 잠잠하던 우울증은 어느날
또다시 도지고 그럴때마다 남편은 기도원이나
조용한 산사에 보내 명상을 쌓도록했다
명애의 병에 좋다고 하면 어디든 무슨 종교든
가리지 않고 명애를 손수 운전하여 데리고
가곤 하였다
죽기 2년전에는 우울증이 고쳐지지 않자
집에 데려와 놓고 일주일에 한번씩 근처 정신
병원에서 정신 치료를 받게 했다
죽기 전 좀 괜찮다 싶어 남편은 근처 모임에
나갔고 명애가 걱정되어 전화를 자주 했고
그럴때마다 명애는 전화를 받아 괜찮다고
자기 걱정말고 편안히 놀다 오라고 했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온 남편이 집안 모든
곳의 불이 꺼지고 컴컴해 이상하다 싶어 급히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미 명애는 약을
먹고 의식이 없었으며 갸날픈 숨만 붙어
있었다
대학생인 아들 둘은 아직 서울에서 오지 않았고
막내딸은 고3이라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119를 호출해 명애를 실고 성남 성모병원으로
갔고, 119 응급차안에서 남편은 아이들에게
엄마의 소식을 눈물로 알렸다
장례식장은 저녁이 오자 조문 온 손님들로 가득해
졌고 일손이 너무 딸린다
정란이와 해순이, 섭섭이 서로 상의 한 결과
명애의 화장이 끝나고 남한강에 재를 뿌린 후
집에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발인 아침 장례차를 타고 성남 화장장으로 향해
화장을 하고 태운 재를 곱게 모아
남한강 팔당대교옆으로 명애 남편이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갔다
남한강옆 팔당대교 근처에는 5공주들이 가을이면
단풍 구경 잘 오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강에서 보트도 타고, 만추의 가을 단풍도 즐기고
근처 천년 찻집에서 차도 마셨다
여고 졸업 후 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년 가을
두세번씩 오는 곳이다
명애의 재를 3공주와 아이들 남편이 한줌씩
강물에 뿌린다
뿌린 재들은 강물에 닿자마자 스르르 녹아 들어가고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입질을 해댄다
가을이 오는 곳에서 명애는 그날 그렇게 가을속으로
고운 옷을 입고 들어갔다
아무도 찾을 수 없고 볼수 없는 곳으로 혼자
5공주 중 가장 먼저 가을빛을 닮아 가버렸다
눈물도 말라버려 나오지 않고 가을바람에
마음만 스산해진다
인생은 언제나 욕심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나중에는 빈손으로 간다는 엄연한 현실.
꿈많던 소녀시절의 우리들의 모습은 어디에
남아있을까
저 하늘 푸른 물을 모두 뒤집어 쓰고 강물위로
걸어가고 싶어진다
거기에는 해순이가 그렇게 바라던 행복도
엄마의 고운 손길도, 아빠의 자상스런 눈빛도
변하지 않고 머물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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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랑은 늘 그립고 아프기도 한거 맞나봅니다
다시는 맞지 못할 젊은날이 그립기만 합니다
달필이신 작가님덕에 소설속에 취하고갑니다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그 사람

(제빵왕 김탁구 OST) 노래를 들으며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며 오늘을 마무리 해봅니다
고운 밤 되시어요
남편의 사랑으로도 채워 줄 수 없었던 명애의 허허로운 가슴을 알 것 같네요
저도 오랜기간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제 사업을 하면서 우울증을 벗어 났는데~~~
힘들게 산을 오르고 나면 산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가슴가득 피어 오르는 희열처럼
사업또한 힘듭니다
그 힘듬을 이겨내고 성취감이 다가 올때의 그 희열감이 우울증을 벗어나게 했는데~~~
에궁~~~ 명애님도 뭔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였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