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편 6장
子曰(자왈) 弟子(제자) 入則孝(입즉효)하고 出則弟(출즉제)하며 謹而信(근이신)하며 汎愛衆(범애중)호되 而親仁(이친인)이니 行有餘力(행유여력)이어든 則以學文(즉이학문)이니라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弟子가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仁한 이를 친근히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함에(행하고서) 餘力(餘暇)이 있으면 그 여력을 이용하여 글을 배워야 한다.”
謹者는 行之有常也요 信者는 言之有實也라 汎은 廣也요 衆은 謂衆人이라 親은 近也요 仁은 謂仁者라 餘力은 猶言暇日이라 以는 用也라 文은 謂詩書六藝之文1)이라
‘謹(근)’은 행실에 일정함이 있는 것이요, ‘信(신)’은 말에 실제(성실함)가 있는 것이다. ‘汎(범)’은 넓음이요, ‘衆(중)’은 衆人(중인, 여러 사람)을 이른다. ‘親(친)’은 친근히 하는 것이요, ‘仁(인)’은 仁者(인자)를 이른다. ‘餘力(여력)’은 暇日(가일)이란 말과 같다. ‘以(이)’는 이용함이다. ‘文(문)’은 詩書(시서)와 六藝(육예)의 文(문)을 이른다.
☉ 程子曰 爲弟子之職은2) 力有餘則學文이니 不修其職而先文은 非爲己之學也니라
尹氏曰 德行은 本也요 文藝는 末也니 窮其本末하여 知所先後면 可以入德矣리라
洪氏曰 未有餘力而學文이면 則文滅其質이요 有餘力而不學文이면 則質勝而野니라 愚謂 力行而不學文이면 則無以考聖賢之成法하고 識事理之當然하여 而所行이 或出於私意요 非但失之於野而已3)니라
☉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제자가 된 직분은 힘이 남음이 있으면 글을 배우는 것이니, 그 직분을 닦지 않고 文(문)을 먼저함은 爲己(위기)의 학문이 아니다.”
윤씨(尹焞(윤돈))가 말하였다. “덕행은 本(본, 근본)이요 문예는 末(말, 지엽)이니, 그 본 · 말을 궁구하여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덕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홍씨(洪興祖(홍흥조))가 말하였다. “여력이 있지 못한데 文(문)을 배우면 文(문)이 그 질을 멸하게 되고, 여력이 있는데도 文(문)을 배우지 않으면 질에 치우쳐서 비루해질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힘써 행하기만 하고 文(문)을 배우지 않는다면 성현이 만들어 놓은 법을 상고하지 못하고 사리의 당연함을 알지 못하여 행하는 바가 혹 사사로운 뜻에서 나올 것이요, 단지 비루함에 잘못될 뿐만이 아닐 것이다.
1) 六藝之文
六藝는 禮 · 樂 · 射 · 御 · 書 · 數의 여섯 가지 技藝를 이른다. 이 경우, ‘六藝之文’은 六藝에 대한 내용이 담긴 글의 의미가 된다. 그러나 六藝를 詩 · 書 · 易 · 禮 · 樂 · 春秋 등의 六經으로 보아 《詩》 · 《書》 등 六藝의 글로 해석하기도 하는바, 이 경우, ‘六藝之文’은 六經의 글을 의미한다.
2) 爲弟子之職은
본인의 초기 번역에는 ‘爲弟子之職하고’로 懸吐하여 ‘弟子의 직분을 하고’로 해석하였으나 《二程全書》에는 ‘凡爲弟子之職’으로 되어 있으며, 《近思錄》에는 ‘凡爲’를 모두 삭제하여 ‘弟子之職’ 으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제자가 된 직분’으로 수정하였다.
3) 愚謂……非但失之於野而已
이 장의 말씀이 학문보다 실천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학문을 경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朱子는 다시 학문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章下註를 구성한 것이다. 《論語》의 章下註는 상당수가 異說과 餘論인 경우가 많으며, 다른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이 대부분인데, 이 장의 경우처럼 다른 학자들의 말을 인용한 뒤에 ‘愚謂’, ‘愚案’ 등의 말머리를 붙여 자신의 의견을 더한 경우도 있다. 이는 인용한 여러 학자들의 말을 종합 · 결론짓기 위하여 덧붙인 것인바, 학자들의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 이를 보충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장의 경우, 洪氏의 말이 실천과 학문을 함께 강조함으로써 孔子의 말씀에 대한 오해를 줄여주고 있지만, 朱子는 학문에 대한 강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였기에 이러한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출처] 논어 학이편 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