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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는 구한말 고종황제 시절에 정부에서 설치한 외국인 공동묘지 구역이 있습니다. 현재 공식 명칭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이지만 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의 묘 145기 외에 일반 외국인의 묘가 272기로 도합 417기의 묘가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가운데에 일부 묘비가 오벨리스크 형상이어서 구한말 이후 한국에 들어온 서양인 내지 선교사 중에도 오시리스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밖에 일부 묘비에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에 의하면 오벨리스크는 프리메이슨이 숭배하는 오시리스 신의 상징이라고 하니 오벨리스크 묘비가 설치된 무덤의 주인공들 역시 프리메이슨일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양화진의 무덤들은 19세기 말부터 한국에서 프리메이슨 조직이 활동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사진 출처 : cafe.daum.net/sk3421
사진 출처 : http//www.church21c.com
프리메이슨의 상징물 오벨리스크 ; 김필재(조갑제닷컴) 2015. 3. 22
고대 이집트에서는 새로운 왕이 나올 때마다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그 결과 기원전 1300년 시기에는 이집트 전역에 걸쳐 오벨리스크가 존재했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바알(Baal)신을 상징한다. 구약성서에서는 바알과 야훼(여호와)가 경쟁관계로 등장한다. 바알은 농경국가에서 숭배되었고, 야훼(여호와)는 목축국가에서 숭배됐다. 이 같은 대립관계로 인해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바알을 마왕이나 악마, 지옥의 군주 등 사악한 존재로 묘사해 왔다. 프리메이슨은 오벨리스크를 매우 신성시하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농경의 신인 오시리스(=바알神)는 이집트의 왕으로 누이였던 이시스와 결혼했다. 오시리스는 그의 왕권을 시기했던 형제 세트에 의해 살해당했다. 오시리스의 시체는 14조각으로 나누어져 이집트 전역에 흩어졌다. 이시스는 남편의 시체를 찾아 男根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땅에 묻어주었다. 오시리스는 이후 지하의 통치자가 되었다. 세트는 오시리스의 성기(性器)를 나일강에 던졌는데, 이를 물고기들이 뜯어먹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축제 때마다 오시리스의 男根을 되찾는다는 의미로 곳곳에 오벨리스크를 세우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외형적인 서양의 문화를 형성했다면 메이슨 사상은 비밀스럽게 전승되어 정신문화를 형성했다. 메이슨의 역사를 모르면 서양 역사를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과연 서양에 대해, 미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공부를 해서 제대로 알면 역사가 되고 모르면 음모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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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솔직히 그런선교사님 무덤이 아니더라도 오벨리스크 있는 선교사님들 무덤이 많음 참아이러니함 서양장례문화는 그냥 십자가를 세우는것이였는